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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령] 한국의 연도를 통해 살펴본 가톨릭 전례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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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27 조회수12,805 추천수0
파일첨부 한국의 연도를 통해 살펴본 가톨릭 전례음악.hwp [1,084]  

한국의 煉禱를 통해 살펴본 가톨릭 전례음악

 

 

1. 서론 

2. 전통문화와 상장례 문화 

3. 전통 장례노래와 전례음악 

4. 한국가톨릭 전례음악 

5. 결론

 

 

1. 서론 

 

1) 연구목적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마련이고 그러한 죽음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 상장례 문화이다. 문화란 자연과 반대되는 인위적인 것으로서, 인간이 생활을 통해 이루는 언어 · 학술 · 예술 · 종교 · 풍습 등 생활방식이나 태도를 모두 포함한다.1) 문화는 그 지역, 그 시대 인간들의 실제적인 삶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문화를 이해하는 작업이 바로 인간들의 삶을 이해하는 작업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인간들의 삶 속에 가장 깊고 본질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장례 문화 중 가톨릭의 煉禱를 통해 종교와 예술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의 종교 중 가톨릭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한국인들이 서구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을 검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근대문화 형성과정에서의 문제해결에 대한 작업으로서도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한국과 아시아의 미래를 위하여 이웃 종교들과 협력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 설정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상장례 문화 중 가톨릭 장례노래인 연도는 초기 한국 가톨릭에서부터 현재까지 상제례가 있을 때는 물론 11월의 위령성월에도 공동체에 의해 끊임없이 불려지고 있기 때문에, 대중들에 의해 전승되는 여느 민요보다도 많이 불리며 오랫동안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은 물론 가족, 이웃까지 보듬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전통적인 사랑가이며 타인의 슬픔을 공동으로 극복할 수 있는 힘찬 응원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인 중 가톨릭 교인들에게만 국한된 점과 喪家에서 불린다는 제한성, 그리고 문화 전반에 걸친 빠른 변이현상에 소요하고 있는 우려를 안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한국에 가톨릭이 들어온 시기의 사회와 문화를 살펴봄으로써 法古創新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중 전통상장례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온 가톨릭 연도의 특징을 밝혀서 시간과 공간에 제한되지 않고 부를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며, 앞으로 한국 가톨릭 문화가 진행해 나아가야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2) 내용 및 방법 

 

한국 가톨릭 문화의 바람직한 미래는 궁극적으로 한국인들의 보편적인 삶 속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한국인들의 삶 속에 스며들어 가 있는 유교와 불교 · 무교 등의 전통 종교문화와 마찬가지로 가톨릭 문화도 한국인들의 삶 자체가 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 가톨릭 문화가 한국인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움직일 수 있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가톨릭 문화의 제반 영역들에서 어떤 변화와 개발이 필요한지를 모색해보는 것이 본 연구 내용의 주안점이다. 

 

상장례 문화 중 일반적인 장례노래는 사회적인 변화로 인해 그 기능이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가톨릭 장례노래인 연도는 초기 한국 가톨릭에서부터 현재까지 喪家나 가정에서 끊임없이 불리고 있다. 엄숙함과 공포 · 슬픔의 감정이 미묘하게 교차하는 죽음의 순간을 슬기롭게 승화시키는 연도는 그리스도교에서 불리는 대부분의 노래가 서양음악 어법으로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통적인 음악어법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 노래가 담고 있는 의미를 한국의 상장례 문화 속에서 파악하고, 전통적인 음악어법은 오늘날의 언어 및 문화와 융합하여 바람직하게 부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언어 · 학술 · 종교 · 풍습 등 문화 전반에 걸친 변이양상은 문헌 및 선행연구를 통해 살펴보고, 연도는 전례에서 사용되는 시편 · 호칭기도 · 찬미가는 물론, 조선시대 전례음악인 종묘제례악, 타 종교 상여소리의 문헌 및 음악과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비교 분석을 통해 전통적인 음악어법을 찾고, 언어 및 문화에 맞는 바람직한 방법의 연도를 제시할 것이다. 제시된 연도는 음악에 비중을 두고 가사는 개정된 기도문을 사용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현재 불리는 연도의 부분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므로 초기에는 많은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음을 밝히는 바이다. 

 

 

2. 전통문화와 상장례 문화 

 

한국에 가톨릭이 들어온 시기는 17세기 초엽으로 보이나 그 시기는 종교보다 학문으로 받아들인 시기이므로 가톨릭계에서는 이승훈의 영세와 자발적인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1784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는 가톨릭의 유입 시기인 18세기부터 19, 20세기의 전통문화와 전통 상장례 문화, 그리고 가톨릭 상장례 문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가톨릭 상장례 문화는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17세기까지의 변이를 로마전례를 통해 살펴보고, 18세기 이후부터는 한국 가톨릭 상장례를 중점적으로 서술하도록 한다. 

 

1) 한국의 전통문화 

 

가톨릭이 유입된 시기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언어 · 학술 · 예술 · 종교 · 풍습 등을 통한 생활방식을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언어나 학술의 이해는 문학적 작품을 통한 순수한 접근이 가능하지만 본고에서는 종교보다는 서양의 학문(서학)으로 받아들인 조선시대의 사회적 변화현상들과 함께 추적해 보았다. 

 

17세기 이후 신분제도는 양반· 중인· 양인· 천민의 4분 구도로 되었는데,2) 양반만이 정치와 학문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며, 문학회를 조직하여 예술 활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중인은 서리나 아전 · 화가나 가객 등 전문직인을 말하고, 양인은 양민 · 평민 · 상민 · 서민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는 농업 · 상업 종사자들이며, 천민은 노비 · 백정 이외 궁중이나 관청에 소속된 음악가들을3) 포함한다. 이들이 사용한 언어는 한문과 한글로 양분되지만 신분에 의해 문자를 모르는 문맹자들도 다수 있었다. 

 

양반은 어려서부터 천자문으로 한문을 익히거나 국정의 기본이념인 유교사상을 담고 있는 명심보감 · 소학 · 사서오경 등을 통해 예와 악을 익혀왔다. 유교에 관한 이러한 서적들은 대부분 한문으로 되어 있으며, 공적인 문자 생활 역시 한자로 행해졌으므로 양반 사회에서는 한자가 주류문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란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새로운 가치관으로 인한 갈등은 문화의 변이현상을 가져왔으며, 기존의 가치와 사회에 반대하여 생겨난 실학사상은 비유교적이고 서구적인 서양학문에 호기심을 나타냄은 물론 봉건적인 사회제도를 개혁해 나아갔다. 실학자들은 주자학에 대한 반성으로서 조선 문화에 대한 정통과 가치를 재발견하려고 노력하였고,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서민생활로 관심을 확대시켜갔다.4) 이수광을 비롯한 이광정 · 허균 · 정두원 · 이영준 등의 학자들은 한문으로 번역된 천주교 · 천문 · 지리 · 수학 서적뿐 아니라 세계지도 · 악기 · 무기 등 서구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개혁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다. 이수광은 초기 실학파의 선구적인 인물로서 서양 문물의 지식을 끌어들인 《지봉유설》을 저술하였으며, 천주교를 종교가 아닌 지식으로 받아들였다. 

 

훈민정음(諺文, 한글)은 한자음을 통일하고 의미 전달을 명료하게 할 수 있는 과학적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부녀자의 글이라고 업신여김을 받거나 한문보다 쉽다고 천대받는 경우도 있었다.5) 그러나 제도의 붕괴로 인한 민족운동이나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한 작품, 여성들 사이에서는 한글이 서서히 민중의 언어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허균(1569~1618)의 《홍길동전》, 김만중(1659~1692)의 《사씨남정기》, 판소리 사설인 《춘향전》, 《심청전》 등의 소설을 비롯하여, 홍대용(1730~?)의 《을병연행록》(기행문) 등의 한글 작품들이 16~17세기에 등장하게 된다. 학자들은 훈민정음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되었고, 한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음들을 훈민정음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음운론의 체계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한 책으로는 신경준의 《훈민정음운해》, 유희의 《언문지》, 최석정의 《경세훈민정음도설》, 박성원의 《화동정음통석운고》등이 있다.6) 또한 사서오경이 언해본으로 널리 보급되었으며, 《소학》, 《열녀》, 《명심보감》 등에서 발췌한 내용에 언해를 붙인 《내훈》도 여성들 사이에 귀감이 되었다.7) 

 

구비 전승되던 가사문학들은 양반들에 의해 기록되어 일반 민중으로 확대되었으며, 동학가사 · 불교가사 · 내방가사 · 천주가사 등이 확대 보급되는 과정에서는 선율을 얹은 노래가 불리곤 하였다. 그러나 일부 유학자들의 고루하고 편협한 의식에 의해 조선시대 문자로 정착되는 과정에서는 앞선 시대의 작품들이 모두 기록되지 못하고 일부 버려진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8) 그 후 신채호(1880~1936)는 “남의 글로 내 나라 역사를 기술하기 힘든 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국문이 나오기도 늦게 나왔지만 나온 뒤에도 한문으로 서술한 역사기록만이 있으니 괴상한 일이다. 한문은 역사 서술의 도구로서 부적당하다”(조선사총론)9)라고 우리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가톨릭교인들 사이에서는 한글로 된 기도문과 노래가 확산되었으며, 연도를 수록한 《천주성교공과》와 《천주성교예규》 등 서학 관련 책들도 한글판으로 보급되었다. 또한 이벽(1754~1786)의 《성교요지》와 정약종(1760~1801)의 《주교요지》 등 한글로 된 교리서들이 출간되었고,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한글로 쓰인 서학 관련 책들이 83종 128책에 이르렀다.10) 양반이나 특정인들만 사용하던 이러한 한글이 가톨릭교인들 사이에서는 신앙심을 북돋고 서로의 단결을 꾀할 수 있는 민중의 언어로 정착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11) 

 

예술 면에서는 회화와 음악의 특징을 언급할 수 있는데, 회화의 일반적인 경향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민족적인 문인화나 남종화가 유행하였으며, 음악적인 특징은 궁중음악의 연주활동이 약화된 반면, 민간음악이 성장 · 발전한 것을 들 수 있다. 한국적이고 민족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들로서 진경산수와 풍속화가 풍미하고, 이들 작품 속에는 서양화법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12) 한국화를 이어받아 대성한 정선의 작품은 실제 풍경들을 다룸에 있어서 독자적이며 한국적인 화풍을 형성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풍속화의 유행을 주도했던 김홍도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물감을 진하고 흐리게 해서 형체의 원근 · 고저 · 명암을 나타낸 입체감을 강조한 뛰어난 화가로 추앙받고 있다. 신윤복은 부녀자를 중심으로 한 인물 풍속화를 주로 그림으로써 유교주의에 대한 반항과 인간주의를 표방하였다.13) 

 

음악의 문화적인 배경은 궁중음악과 비궁중음악인 민간음악으로 구별할 수 있는데, 조선후기 나라의 재정적 궁핍으로 인해 궁중음악의 연주활동은 약화된 반면, 민간음악은 새로운 음악 수용층으로 등장한 중인층의 후원으로 인해 성장 · 발전하게 되었다.14) 궁중음악을 담당하는 악공과 악생의 수효는 성종(1469~1494) 때 971명이었으나 임진왜란(1592) 이후 837명으로 감소하고, 병자호란(1636) 이후에는 619명으로 감소하였다.15) 반면에 민간음악인 판소리는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중인층의 서리나 아전, 풍류를 즐기던 지방양반들의 후원으로 절정을 이루었으며, 중인출신의 가객과 풍류객들에 의한 시조 · 가곡 · 영산회상 등의 민간음악도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신석기시대부터 이미 존재했을 것으로 보이는 민요는16) 노래문화로서의 역량이 증대되어 시부모 · 애정 · 이별 등의 가정사를 다룬 내용은 물론 노동 · 자연 · 사회 등의 다양한 내용을 담아 양인들뿐 아니라 부녀자들에게도 불리었다. 문학작품인 가사체에 선율을 얹어 노래로 부른 동학가사 · 불교가사 · 내방가사 · 천주가사는 물론, 대중17)에 의한 노래도 불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조선후기의 음악 양식적 특징을 정리하자면 가곡 · 가사 · 시조 · 판소리 · 민요 등 성악곡들의 활성화를 들 수 있다. 또한 기존 성악곡은 가사가 탈락되어 기악곡으로 전환되거나 많은 변주곡들이 파생되었고, 음악의 절주는 한층 빨라지고 음역은 높아졌다. 

 

한국 종교문화가 외래종교를 수용하는 과정은 대략 다섯 가지 유형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외래 사상의 전통적 요소가 그대로 유입되어 수용되는 傳統形, 고유의 것이 점차 사라지고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이를 대신하는 代替形, 순수 전통형과 고유형이 서로 섞여 나타나는 混合形, 한국 고유의 내용과 외래적인 형상을 표현하는 外裝形, 한국민족의 고유한 사상과 종교 전통인 固有形 등이다.18) 이렇게 수용된 종교들은 우리 민족과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지냈는가 하는 시간 단위는 물론 우리민족의 애환에 얼마만큼 동참했는가에 기준을 두기 때문에,19) 한국의 종교는 무교 · 불교 · 유교 · 도교 · 기독교 등 여러 종교가 적절히 조화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종교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무속은 굿이라는 의례를 행하게 되는데, 일상생활에 변화가 일어났을 때 민심을 수습하는 차원에서 굿을 행한다.20) 그러나 굿을 통해 구체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보다는 그 문제로 인해 발생된 사회적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데 근본적인 목적을 둔다. 농경문화와 관혼상제에 행해지던 가족단위의 가제는 환경의 변화로 인해 그 의미를 상실했지만, 동제에서 나타난 혈연공동체의 기능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온다. 한국인의 삶 속에는 이러한 무속의 기능뿐만 아니라 사고와 사상까지 녹아 있음이 다음 글을 통해 확인된다. 언더우드는 “샤머니즘은 한국의 종교적 견지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선교사가 대결해야할 가장 완고한 적”21)이라고 하였으며, 함석헌 역시 “미신은 어느 사회나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심한 곳은 없다”22)라고 하였다. 

 

4세기 후반에 우리나라에 들어 온 불교의 의례는 사원을 중심으로 발달한 승단조직과 죽음에 관한 의례가 중심이 되는데, 조선시대 유교 예절의 강화로 인해 독자적인 예절을 발달시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23) 하지만 민중 속에 침투하여 도교의 주술적인 요소와 무속의 점복 · 치병 · 의례 등을 수용하여24) 현재까지도 활발한 종교로 군림하고 있다. 

 

고구려 말에 들어와 국가적으로 보호를 받던 도교는 자연현상 중 천체현상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 신선사상과 불로장생을 목적으로 재초제라는 의례를 행하였다. 재초제는 일상생활의 문제 해결이라기보다는 육체적인 탈인간화를 통한 신성세계의 확인행위로서, 집단보다는 개인적인 수행에 목적을 두게 된다. 

 

유교의 의례는 고려 말 원나라를 통해 수입한 〈가례〉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차례· 기제· 묘제로 간략화 된 제례와 시신처리의 방법인 상례에서 조상숭배와 혈연집단의 예절이 나타난다. 유교의 이념은 정치는 물론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주었으며, 조선시대의 예법은 어떤 면에서는 중국보다 더 유교적인 성격을 띠었다고도 한다.25) 13세기에 들어온 유교는 성리학과 같은 형이상학적 사상체계는 물론 하늘을 숭배하고 조상을 섬기며 부모를 공경하는 등 제사를 중심으로 하는 실천 덕목까지 갖추었다.26) 도교와 불교가 신성세계를 중심으로 개인적인 의례를 발달시킨 반면, 무속과 유교에서는 혈연집단의 공동체적인 형성을 강화하였다. 

 

이해영은 “조선의 문화가 남성 - 사대부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유교문화와 여성 - 서민대중을 기반으로 하는 도교 · 무속 및 불교문화의 이중조직으로 구성되었다”27)라고 피력한 바 있다. 이렇듯 유교 · 불교 · 도교의 3교는 한국의 토착 종교라고 할 수 있는 무속신앙과 정신적이나 제도적, 사상적이나 실천적인 면에서 대립을 이루지 않고 자연스런 습합을 이루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18세기 가톨릭의 유입은 정신 · 제도 · 사상 · 실천 등 다방 면에서 갈등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1780년대의 천주교 의례에서는 지연 · 혈연적인 전통을 비판하면서 인간의 보편적 · 평등적인 가치를 구현하였고, 당시의 권위와 제도는 이러한 천주교인들을 살생하는 박해를 감행하였다. 양반 중심적 유교사회에 팽배해 있던 제도와 가톨릭의 평등사상으로 인한 갈등은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을 비롯하여, 1791년 진산사건, 1801년 신유박해, 1815년 을해교난,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 100년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박해로 인해 신자수가 감소하기 보다는 60여 년 동안 13,000명의 신자수가 증가 하였다. 극빈해진 신자들은 화전민이나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신유박해 직전에 1만 명이던 신자수가 병인박해 무렵에는 23,000명으로 늘어난 것이다.28) 

 

박해에 맞선 순교정신과 단결력, 상호부조로 연결된 신앙공동체는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져 살던 교인들을 묶어주는 영적인 지주가 되었다. 그 가족들은 고향을 떠나 경기 · 충청 · 전라 · 경상 · 강원 지역 등의 산간벽촌이나 화전지대로 모여들었다. 이런 피난 교인들끼리 촌락을 형성한 것이 교우촌이며, 공동생활을 이끌어 가는 촌장은 신부 대리인으로서 회장으로 불렸다. 그들은 신부를 대신해서 교리를 가르치거나 다른 교우촌 간의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신자들을 관리하는 등 지도자 · 교사 · 전도자로서의 역할로 지역공동체의 맥을 잇게 된다. 

 

성직자를 일 년에 한 번이나 수 년 만에 한 번 밖에 만나볼 수 없는 교인들은 매일 저녁에 모여 교리내용을 쉽게 부를 수 있는 천주가사나 죄인에 대한 통회를 담고 있는 시편을 낭송하였다. 이러한 반복적인 기도생활에 의하여 탄생한 연도(가톨릭 장례노래)는 전통 장례문화의 좋은 점과 천주사상을 융합하여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조상 제사 금지령은 양반 교인들을 교회에서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지만, 그 가족들과 양인 · 천민 사이로 확대된 가톨릭은 대중 종교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이렇듯 천주교 역시 갈등을 겪던 초기의 대립 관계를 극복하고, 기존의 종교들과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공동체는 가족과 친족을 중심으로 한 혈연공동체와 마을과 고을을 중심으로 한 지역공동체로 구분할 수 있다. 혈연공동체의 특성이 가문에 바탕을 둔 형식적 위계질서에 비중을 둔다면, 지역공동체의 특성은 지역 주민들의 상호의존성을 바탕으로 한 평등관계에 있다고 한다.29) 임진왜란 이후에는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혈연과 가문을 중요시하는 풍조가 생겨 가족제도에 큰 변화가 일게 된다. 조선초기와 중기에는 남녀의 차이는 인정했지만 차별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재산분배와 상속, 제사에서 아들과 딸, 장남과 차남의 구별이 없었으나, 전후(왜란과 호란)에는 국가보다는 혈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장자중심의 상속제도와 예법을 강조한 장례전통이 형성되었다.30) 

 

가족 단위 역시 대가족에서 소가족으로, 농촌에서 도시로 변화하게 되는데, 지도층들의 착취와 수탈이 강화됨에 따라 영세농민이 늘어나고 땅에서 밀려난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전하는 경상도 지역의 평균 가족수가 10.5명이었으나, 18~19세기의 《숙종실록》과 《순조실록》에 전하는 가족수는 4.4명으로 줄어든 것에서 확인된다. 15세기 초에는 한 가정에 부부와 결혼한 자녀들의 부부가 함께 살던 대가족제였으나, 18세기 이후에는 부부와 결혼하지 않은 자녀들이 함께 사는 소가족제로 변화됨을 알 수 있다. 

 

지역공동체의 구조는 대략 20~30호가 모여 마을이나 촌락을 형성하고 그 명칭은 洞里라고 불렀다. 동리에는 마을 주민들이 결성한 대동회가 있으며, 대동회에서 선출된 책임자와 임원들이 각종 일을 맡아하게 된다. 지역사회 구성원 전원이 결속하여 만들어진 규약에는 동계 · 촌계 · 군포계 · 상두계 등 신분과 목적에 따라 다양한데, 임진왜란 이후에는 사족이 조직한 동계(향약)와 하층민들의 조직인 촌계가 합해진 대동계와 향약계도 성립되었다. 동계와 동약은 16, 17세기에는 농민들의 참여를 배제한 사족들의 조직이었으나 전후에는 하층민들의 조직과 결합하여 향약계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31) 또한 17세기 후반에는 이앙법의 보급과 함께 등장한 두레가 품앗이와 함께 농업을 위주로 한 전통사회에서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보편화되었다. 18세기에는 생산력의 발전으로 인해 공업의 발생과 상인들의 적극적인 활동, 상품 화폐 경제에 의한 도시발달이 이루어졌다.32) 

 

2) 전통상장례 문화 

 

18세기 이후 한국의 전통상장례는 가례에 기초한 전통적인 유교의 예법을 따르고 있다. 고려 말기에 성행하기 시작한 성리학은 조선조의 정치이념으로 자리매김을 하였고, 조선의 3대왕인 태종 때 《주자가례》를 원칙으로 하는 상장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어온 불교식 장례와 화장법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단시일 내에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왔다. 

 

신라까지의 상장례 풍속은 상고시대의 풍속과 중국의 풍속이 교차하던 시기였고, 고려 성종 때 《예기》의 원리를 도입한 고려의 풍속은 유교식 상장례를 일부 병행한 불교식 상장례가 행해졌다. 불교식 상장례는 《증보문헌비고》나 《고려사》 기록에 의하여 확인할 수 있는데,33) 장례 기간은 대개 1년으로 화장법이 성행하였으며, 화장을 먼저하고 뒤에 매장하는 경우와 화장하지 않고 매장하는 경우도 있다. 

 

불교식 상장례 의식34)은 석문가례에 의하며, 장례를 茶毘라 한다. 다비식의 절차는 개식선언, 삼귀의례, 약력보고, 着語(교법의 힘을 빌어 망자를 안정시키는 말), 창혼(요령을 흔들며 혼을 부름), 헌화, 독경, 추도사, 분향, 사홍서원, 폐식선언으로 진행되고, 시신을 焚口에 넣고 다 탈 때까지 염불을 한다. 시신이 다 타면 주례승이 흰 창호지에 유골을 받아서 상주에게 주며 상주는 쇄골한 후 주례승이 있는 절에 봉안하고 제사를 지낸다. 제례의식은 49제, 백일제, 삼년상을 지낸다.35) 불교에서의 죽음은 고난과 오염으로 얼룩진 세속세계를 벗어나 맑고 깨끗한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계기로 여겼다. 그러나 그러한 죽음의 의미를 상실한 채 유교의 저승관념을 받아들이게 된다.36) 

 

이러한 불교의식을 폐하고 유교의식을 보급하기 위해서 세종 때는 《오례의》를 편찬하였고, 세조 때는 《경국대전》을 편찬하기 시작하였으며, 성종 때 《경국대전》의 완성37)을 통해 강력한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 이러한 적극적인 시책에 의해 ‘가례’가 사대부 계층에 보급되어 오랫동안 법과 제도가 준수되었고, 1894년 신분제도가 철폐되자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도 이를 따르는 풍조가 유행하여 통용되기에 이른다.38) 

 

상례는 통례 · 관례 · 혼례 · 상례 · 제례의 다섯 편으로 구성된 《가례》의 한 예법으로서 전통적인 의식과 절차는 19~25가지 정도이다. 사람이 생을 마감하는 임종에서 수시, 초혼(고복), 발상, 전, 습, 소렴, 대렴, 성복, 치장, 천구, 발인, 운구, 하관, 성분, 반곡, 초우, 재우, 삼우, 졸곡, 부제, 소상, 대상, 담제, 길제39) 등 여러 단계의 의식을 포함한다. 상례의 구조는 여러 단계의 의식을 묶어서 초종의례, 습렴을 중심으로 입관까지의 습렴 의례, 발인제부터 장례에 해당하는 치장의례, 삼우제부터 길제까지의 흉제로 크게 구별할 수 있다.40) 

 

임종이 다가오면 깨끗이 정돈된 방안으로 모셔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게 하고, 남자의 임종에는 여자를, 여자의 임종에는 남자들의 참석을 자제한 근친들이 조용히 임종을 지킨다. 가족들은 조용히 앉아 임종을 지켜보다가 임종이 확인되면 깨끗한 홑이불로 얼굴을 덮고 소리를 내어 비통하게 곡을 한다. 수시란 공경과 정성된 마음으로 시신을 바르게 하는 것을 의미하며, 초혼(고복)은 죽은 사람이 평소에 입던 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서거나 마당에서 북쪽을 향해 ‘아무개 복’이라고 세 번을 부른 뒤 시체를 덮었다가 대상을 치른 뒤 불사르는 의식이다.41) 수시가 끝나면 謹弔라고 쓴 등을 달고 대문에 喪中이라 표시하여 초상을 알리고 상례채비를 하는 발상을 한다. 영좌(빈소)를 설치하여 조상이나 문상객을 맞기 전에 간단한 술과 과실을 차려 놓는 예식은 전이라고 한다. 죽은 이의 시신을 깨끗하게 씻기고 수의를 입히는 일을 습이라 하는데, 얼굴에 면견을 씌우기 전에 반함을 한다. 반함은 물에 불린 쌀을 나무 수저로 세 번 떠서 입에 넣는 것으로 망인이 저승까지 가는 길에 필요한 식량이라 한다. 이불로 싸서 옷을 거듭 입혀 묶는 것을 소렴 · 대렴이라 하며, 염을 할 때는 곡을 멈추고 자세히 살펴 평안하도록 힘쓴다. 예전에는 목욕과 습은 임종한 날에, 소렴과 대렴은 그 다음 날에 행해졌지만, 오늘날에는 운명 후 24시간이 경과한 후에 목욕 · 습 · 소렴 · 대렴 · 입관 절차를 동시에 행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성복은 입관절차가 끝난 후 상주 및 복인들이 정해진 상복을 입는 예를 말하는데, 대렴과 성복은 같은 날에 시행할 수 없다. 성복은 종류와 기간에 따라 5가지로 구분되는데, 참최 · 제최 · 대공 · 소공 · 시마 등이다. 참최는 부모에 대한 3년 복이며, 제최는 처와 형제에 대한 1년 복, 대공은 4촌 형제에 대한 9개월 복, 소공은 6촌 형제에 대한 5개월 복, 시마는 8촌 형제에 대한 3개월 복을 뜻한다.42) 치장은 고인이 편히 쉴 수 있는 묘지를 마련하고 장례 날짜를 결정하는 것이다. 천구는 운구라고도 하여 시신을 장지로 모시기 위해 관을 옮기는 것이며, 관을 상여(오늘날은 영구차)에 안치하여 고인과의 마지막 작별의식인 발인제를 올린다. 하관은 시신을 내광에 모시는 일이고, 성분은 봉분을 쌓아 묘지를 조성하는 일이다. 성분이 끝나면 묘소 앞에 간소한 제수를 차려 위령제를 드린 후 상주 및 복인들이 신주나 영정을 모시고 돌아오는 반곡 절차를 행한다. 초우는 장례를 치른 날 행하는 제례 의식이며, 재우와 삼우는 각기 초우를 지내고 두 번째, 세 번째 지내는 제례의식이다. 졸곡은 곡을 그친다는 의미를 지닌 제례의식으로서 수시로 하던 곡을 멈추고 아침저녁으로만 행하는 것이며, 부제는 졸곡을 지낸 다음날 첫새벽에 지내던 제례의식이다. 소상은 첫 기일에 지내는 제례의식이고, 대상은 탈상이라 하여 초상후 만 2년이 될 때 드리는 의식이다. 담제는 상장례의 끝을 의미하여 대상을 지낸 후 2개월이 되는 달에 지내는 제례로서 효자의 심정이 비로소 담담해졌다는 의미이다. 길제는 담제를 지낸 다음달 지내는 제례로 고인의 신주를 정당한 위치에 모시는 제사이다. 

 

전통 상장례의 핵심은 효와 조상숭배를 들 수 있는데, 특히 초혼과 상청 · 사당에서 엿볼 수 있다.43) 초혼은 육신을 떠난 영혼이 다시 몸으로 돌아와 살아나기를 바라는 표현으로, 죽은 사람이 평소에 입던 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서서 영혼을 부르는 조상에 대한 간절함이 배어 있다. 상청과 사당은 죽은 조상을 살아 있을 때와 같이 모시는 장소로서 상청은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사당은 죽은 사람의 혼백과 신주를 모시게 된다. 상청에서는 졸곡을 하기 전까지 3년간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거나 상식을 올리게 되며, 3년상을 마친 신주를 모셔놓은 사당에서는 4대조까지 모시게 된다. 

 

이러한 상장례는 양반에 의한 지배층에서 주로 지켜졌으며, 1894년 갑오개혁 이후부터 신분제도의 붕괴에 의해 서민들 사이에도 유행하게 되었다. 19세기 이전에는 서민들이 양반의 법과 제도를 따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제 여건상 까다로운 복제에 의한 복색을 갖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균일하게 행해지던 가례가 유교의 쇠퇴로 인해 종교별 · 문중별 · 지역별 등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행하게 되었다. 《사례편람》 뒤에 첨부된 신식상례를 살펴보면 종교인(기독교인)과 비종교인 모두 전통상장례에서 나타난 절차를 거의 생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인은 초혼(고복), 피발(머리를 풀어헤침), 슬피 우는 것, 상복 입는 것, 혼백, 아침저녁의 전 드리는 것, 신주를 쓰는 것, 우제, 졸곡 등의 절차는 생략하지만, 염습과 입관, 발인은 과거의 예를 따라 행하게 된다. 대상 · 소상 · 기제사에는 음식을 차려 제사하는 대신 가족 및 친척이 둘러앉아 기도한다. 상복은 方笠[방갓]과 베 두루마기를 입는 경우, 흰 모자나 모자에 베 조각을 다는 경우, 초상 때 검은 비단을 왼쪽 팔에 매고 모자와 흰 두루마기를 입는 경우로 구분된다. 비종교인들도 교인의 상례의식을 따르는 사람, 신식·구식을 혼용하는 사람, 외국의 경우를 따르는 사람 등 천차만별이며, 상장례 예식의 명칭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해당한다.44) 

 

전통 상장례에서 엿볼 수 있는 사회조직은 조상이라는 집단과 후손이라는 집단으로 인한 혈연관계의 집단화 경향으로 볼 수 있으며,45) 제사 중 축문을 읽는 행위는 귀신을 부르는 무속의 한 예식46)으로서 한국의 토착종교인 무속신앙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1894년 이후 서민들 사이에 유행했던 전통상장례는 기독교의 전래와 함께 변화되거나 사라졌으며, 1934년 조선총독부가 공고한 표준의례와 1968년 정부에서 공표한 가정의례준칙에 의해 대폭 간소화되었다. 

 

3) 가톨릭 상장례 문화 

 

초대교회의 장례예절47)은 먼저 죽은 자의 눈을 감기고 몸을 가지런히 한 후 수의를 입히는 과정을 통해 슬픔과 위로를 표명한 유다 관습, 혹은 임종하는 사람이 죽기 전에 가족들을 모아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고대 로마 관습, 그리고 매장 후에 음식을 나누는 이교 관습들이 각 종교나 민족별로 거행된 것을 알 수 있다. 중세의 예절은 음복의 관습과 무덤에서 행해지는 위령 미사가 함께 행해졌으나 서서히 음복문화는 사라지고 위령미사만 남게 되었으며, 여러 수도원에서는 수도원별로 다양한 장례와 매장예절이 전승되었다. 이렇게 전승된 다양한 예절은 1614년 《로마예식서》의 장례예절에 일부 수용되기도 하였다. 

 

《로마예식서》의 장례예절은 망자의 집에서 성당으로 행렬하는 예절과, 성당 안에서 하는 예절, 묘지에서 하는 예절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장례예식의 중심에 사죄예식(Absolutio)을 놓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과 육신의 부활에 대한 파스카적인 성격이 중세 이후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기도문들과 후렴 구절 역시 생략되었다. 또한 이 예식서는 300여 년이 넘도록 서방교회에서 사용되어 왔지만, 지역이나 각 민족의 풍습을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부작용을 안게 되었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효와 제사문제에 대한 전례논쟁을 들 수 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공방을 벌여온 전례문제는 천주교 박해의 원인이 되었음은 물론 선교단체 사이의 불화와 혼선을 가져왔다.48) 1636년부터 106년간에 걸친 격렬한 의례논쟁은 1742년 제사를 금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으며, 이는 유교문화권 선교에 악영향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유교 의례 금지령이 반포된 이유는 제사가 기독교 신앙에 위배되는 우상숭배이고 미신이라고 확정되었기 때문이다.49) 

 

학문으로 연구되던 초기 한국가톨릭에서는 제사문제로 갈등을 겪지 않았으나, 1790년 북경에 주재한 구베아(Alexander de Gouvea) 주교로부터 기독교 신앙에 위배되는 제사를 금해야 한다는 답변을 접하면서 갈등과 핍박이 시작되었다. 천주교인들은 유교 전통인 제사를 거부해야만 천주교 신앙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에 갈등하기 시작했으며, 전통사회로부터는 사회질서와 윤리도덕의 기반을 뒤흔드는 반인륜적인 금수의 무리라는 평을 얻게 된다.50) 

 

한국가톨릭에서 일어난 최초의 사회문제는 제사금령에 순종한 윤지충과 권상연이 어머니의 죽음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일로 대두되었다. 윤지충은 그의 어머니 상을 당하여 외척인 권상연과 더불어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고 천주교 의식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51) 사회에서는 국법을 거스르는 범죄로 인식하여 그들을 고문하고 참수하였지만, 마음 약한 신자들이나 몇몇 양반들에게는 잘못을 회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는 1791년 전라도 진산에서 발생한 윤지충의 이와 같은 사건을 계기로 신앙관의 양분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천주교 신자들은 조상 제사 금령을 거부하여 천주교를 이탈한 그룹과 금령을 받아들여 사회로부터 배척당한 그룹으로 대별된다. 천주교를 이탈한 사람들은 이승훈 · 권일신 · 권철신 · 정약전 · 이가환 · 홍낙민 등이며, 이를 계기로 정약용은 교회를 떠나기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52) 그들은 조상제사가 유교 윤리의 핵심인 효의 상징적 표현이라 인식하여 금령을 거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금령을 받아들여 사회로부터 배척당한 사람들은 유항검 · 정약종 · 권상연 · 황사영 · 강완숙 등 남자는 25명 여자는 34명에 달한다. 

 

전통 문화와 고유사상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고53) 인식한 정부와 전통제사를 미신이라 여긴 천주교도들의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기독교의 입장을 명백하게 밝힌 정하상의 글이 있다. 

 

죽은 사람 앞에 술과 음식을 차려놓는 것은 천주교에서 금하는 일입니다. 살아있을 동안에도 영혼은 술과 밥을 받아먹을 수 없는데, 하물며 죽은 뒤에 영혼이 어찌하겠습니까? 먹고 마시는 것은 육신의 입에 공급하는 것이요, 진리와 덕행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아무리 효성 지극한 사람이라도 맛있는 것이라고 해서 부모님이 주무시고 계실 때 부모님 앞에 차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잠자고 있는 동안에는 먹고 마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잠들었을 때에도 이러한데, 하물며 영원히 잠들어 버렸을 때에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벼와 수수와 기장과 피와 향기로운 과실로 된 제사 음식을 차려 놓는 것은 헛되거나 잘못된 일입니다. 자식된 도리로 어찌 허위와 가식의 예로써 이미 죽은 부모를 섬기겠습니까? 

 

소위 사대부 집안의 神主라고 하는 것도 천주교에서 금하는 것입니다. 신주라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혈육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또 낳아서 길러준 부모님의 노고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라 부르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일입니까? 그런데 목수가 만들어서 분을 칠하고 먹을 찍은 신주를 보고 참된 아버지요 어머니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양심 또한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양반에게 죄를 짓더라도 성교회에 죄를 짓고 싶지는 않습니다.54) 

 

천주교인들은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과 나무로 만든 신주를 모시는 것을 스스로 금했지만, 조상에 대한 효와 윤리는 더욱 철저히 지켜나갔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서 연도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연도는 천주교 의식을 따르면서도 조상에 대한 효와 환난상휼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천주교 의식에 따라 죽은 연옥영혼을 위해 기도문을 송경하는 것을 연도라고 하는데, 임종에서 탈상까지 모든 상장례에서 행해진다. 연도가 행해진 예는 외국의 선교사들이 쓴 서한과 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말로 된 장례식 기도문과 예절을 공포한 뒤로 많은 신자들이 외교인을 상관하지 않고 그것을 공공연히 행하기 시작했습니다(1863년 다블뤼 주교 서한).55) 

 

5/15일 쿠데르 신부 사망 - 하루 온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신자들이 끊임없이 煉禱를 바친다(1892년 5월 16일 뮈텔 주교 일기). 

 

서 요한의 기일이다. 서 아우구스투스는 우리에게 음식상 세 개를 갖다 주고 연도를 한 교우들에게도 따로 여러 개의 상을 차려 내온다(1893년 11월 12일 뮈텔 주교 일기).56) 

 

죽은 영혼에게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지내는 것은 금했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것은 금하지 않았으며, 임종에서 출관 · 안장할 때는 물론, 죽은 후 3일, 7일, 30일, 기일에도 연도를 행하였다. 이러한 연도는 죽은 이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기한이 정해졌는데, 교종을 위해서는 일 년, 같은 지방 주교를 위해서는 아홉 달, 같은 지방 신부를 위해서는 여섯 달, 타 지방 신부를 위해서는 세 달, 회장을 위해서는 한 달, 다른 교우를 위해서는 7일이고, 죽은 부모를 위해서는 평생을 날마다 기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57) 이러한 연도를 행하는 방법은 《天主聖敎禮規》 뒷부분의 문답풀이에 상세하게 수록되어있다. 

 

문) 일작드르니 죽은이를 산이와갓치 셤김이 효의 극진함이라하니 부모 

ㅣ살아셔는 자식이 맛당히 졀할지라 부모ㅣ죽엇슨들 엇지 졀하지아니리오 

 

답) 그러치아니하니 죽은이를 산이와갓히 셤기라난 것이 반다시 이를 가라침이 아니라 대개 부모ㅣ죽엇슬지라도 그가라치신도리를 곳치지말고 마치 살아잇슴과갓히 그명을준행하고 그덕을법밧고 그은혜를품어 마치 즉금밧난것과갓히 기억하고 항샹뎌를 생각하야 마치 날마다 봄갓히함이 이효의극진함이오 죽은이를 산이와갓히 셤기라난바른뜻이라 만일 산이를 셤기난밧겻례로굿이셤기려하면 반다시 집밧게 두지못하고 뭇지도 말것이오 날마다음식을 나아와 공궤할 것이오 날마다 문안할 것이니 대개 살아셔는 집에셔 내여쫏지못하고 따헤파뭇지못하고 음식 의복 문안등 졀을 폐하지못함일새라 외교인들이 엇지하야 여긔는 이리완완하며 뎌긔는 그리급급하냐 하물며 이졀하난 례대범귀신공경하난 그릇된소견으로 말매암으니 엇지감히 본빗아스사로샤망에빠지랴(《성교예규》중 상례문답).58) 

 

문) 상사때에 념경긔구만하면죡하거늘 엇지굿하야소리를놉히고 노래하야외오나뇨 이는즐거워하난모양갓하야 됴상의례에크게합지아님이아니냐 

 

답) 그러치아니하니 이비록노래업시 그적경을외와도 죡하나 경을 노래하야외옴이 그연고 ㅣ 잇스니 하나흔노래하난소래 더욱내생각을들어쥬끠로 향케하고 더욱내마암을 슈렴케하고 더욱우리마암의큰원을 드러냄이오 둘흔거룩한노래의소래만일범대로하고 졍셩된 마암으로하면 능히마귀를쫏나니 대개마귀항샹근심하야 신락의소래를듯고견대지못함이오 세흔장사때에 교우의하난소래는 또한슯허하고근심하난소래니 그러나과도히못할지라 대개우리근심은바람업난무리의근심과다르니라(《성교예규》중 상례문답).59) 

 

효의 근본은 부모가 죽었을지라도 늘 기억하여 그 뜻을 따라 행하고 덕을 본받으며 살아 계실 때처럼 생각하는 것이지만, 음식을 놓고 절하는 것은 귀신에 대한 공경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초상 - 입렴 - 출관 - 행상 - 도묘 - 하관 - 발인의 예식에서 절을 하며 곡을 하기보다는 다 같이 경을 낭송60)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높여 노래하는 가운데 주님께 향한 간절함이 배가되고, 온갖 잡생각과 마귀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망자에 대한 슬픔과 근심이 발산되는 것이다. 연도를 하며 상부상조하는 모습은 외교인들에게 부러움을 살 뿐만 아니라 전교에도 큰 몫을 하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장례식은 그리스도인 죽음의 파스카 성격을 더욱 명백히 드러내야하며, 각 지역의 환경과 전통에, 또한 전례 색상에 관한 것에도, 더 잘 부응하여야 한다”61)라고 선언한다. 이러한 전례헌장의 의도에 따라 1969년 장례예식서가 공포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이 예식서를 번역하여 1976년 《장례예식서》를 발행하였다.62) 

 

각국에서는 장례예식에서 제시한 3가지 유형 중 자국의 관행에 맞는 예식을 채택할 수 있게 되었으며, 미사도 자국어로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제1양식은 망자의 집 · 성당 · 묘지 등 세 장소에서 거행되는 장례예식이고, 제2양식은 성당과 묘지 두 장소에서, 제3양식은 망자의 집 한곳에서 거행하는 예식이다. 

 

제1양식은(이탈리아 · 프랑스유형) 이전 《로마 예식서》(Rituale Romanum)에 나오는 장례식과 동일한 것으로 망자의 집 · 성당 · 묘지 등 세 장소에서 예식을 거행하며, 각각의 중간에 행렬이 있었다. 그러나 이 행렬은 오늘날 여러 이유로 부적합하기 때문에 집과 묘지의 예식은 생략하고 성당에서의 예식만 행하기도 한다. 성당에서의 예식 중에는 장례미사나 미사 없는 장례식이 모두 포함되는데, 미사의 유무와 관계없이 ‘말씀 전례’와 ‘고별식’(사도예절)은 반드시 거행한다. 

 

제2양식은(독일어권) 성당과 묘지 두 장소에서 거행하는 장례식으로 미사가 없는 것이 보통이지만, 미사는 장례 전이나 장례 후 다른 날 시신을 모시지 않은 상태에서 봉헌할 수 있다. 

 

제3양식은(아프리카 · 유럽) 망자의 집 한곳에서 거행하는 장례식이다. 집에서 예식을 거행할 경우 말씀 전례나 고별식은 앞 양식들에서 인용하여 사용할 수 있다.63) 

 

우리나라는 로마 표준 예식에 준하여 일부 관습만 첨가하여 사용하고 있는 실정으로 아직까지 한국적 관습에 맞는 고유한 예식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64) 그러므로 1969년에 공포된 《장례예식서》를 따르는 경우와 1800년대부터 연도를 수록한 《천주성교예규》를 따르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장례예식서에는 밤샘기도 부분만 전통적으로 행해오던 연도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일반 신자들의 가정에서는 상장례의 전 과정에서 연도를 행하고 있다. 

 

상장례65)의 내용을 보면 임종과 운명, 위령기도(연도), 염습과 입관, 장례, 우제, 면례로 구분된다. 모든 예식에서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드러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강조한다. 

 

임종의 순간이 다가오면 집 안팎을 깨끗이 하고 임종자의 손에 십자가나 묵주를 쥐어준 후 함께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시편(연도)을 낭송한다. 운명을 하면 시신이 굳기 전에 시신을 닦고 옷을 갈아입힌 후 광목으로 가볍게 묶고 홑이불로 덮어 사방에 틈이 생기지 않게 한 후 병풍이나 휘장을 쳐서 시신을 가린다. 그 앞에는 십자가와 고인의 사진, 세례명을 새긴 패를 세우고 촛불과 성수, 향로와 향을 준비한다. 고인을 주님께 맡기는 기도로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인 ‘자비송’을 두 편으로 나누어 교환창으로 한다. 

 

위령기도(연도)는 상가에 도착한 신자들이 성수를 뿌리고 분향한 후 다른 문상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알맞은 자리에서 그룹을 지어 바치게된다. 시편62(63)66), 시편129(130), 시편50(51), 성인호칭기도, 찬미기도, 주님의 기도, 마침기도, 성가로 구성되지만, 대기하는 신자들 그룹이 많으면 짧은 연도(시편130과 시편51)만 하거나, 사제와 수도자가 주관하면 각 예식 간에 성경을 봉독하고 성체를 영하기도 하여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행하게 된다. 

 

운명 후 24시간이 경과하면 시신을 정성껏 씻겨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는데(염습), 반함은 하지 않는다. 시신을 관에 안치하면(입관) 가족들은 촛불을 켜들고 시편113(114)과 시편113 후편(115)을 노래한 후 성수를 뿌리고 분향하며 관을 덮는다. 

 

장례는 고인을 가족과 신자들의 공동체에서 떠나보내는 예식으로 출관과 장례미사로 구성된다. 출관에 앞서 시편41(42)과 42(43), 시편22(23)를 노래한 후 고인에게 경의와 애도의 표시인 분향과 절을 한다. 출관은 시신에 성수를 뿌리고 시편을 바친 후 시신을 성당으로 모신다. 영구가 성당에 도착하면 사제가 관 앞으로 나와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경의를 표하고, 신자들이 관을 성당 안의 제단 앞으로 이동하면 사제는 장례식의 중심인 미사를 시작한다. 고별식에서는 유족과 친지들이 분향 · 배례 · 성수뿌림 등으로 고인과 마지막 작별을 하게 된다. 고인의 시신이 장지에 도착하는 동안 시편117(118)과 시편41(42) 혹은 위령기도를 반복한다. 묘역에 도착하면 적당한 곳에 안치하고 기도를 바치며 하관 예식을 한다. 하관 예식에서는 인간의 유한성과 부활에 대한 신앙을 강조하여 파스카 신비를 드러낸다. 

 

초우 · 재우 · 삼우를 가리켜 우제라고 하는데, 초우는 장례를 치른 날 집에 돌아와 고인의 영정(위패)을 모시고 지낸다. 재우는 초우를 지낸 다음날 지내며, 삼우는 유가족이 모두 미사에 참례한 후 묘소를 찾아 지내게 된다. 

 

면례는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 무덤에 안장했던 시신의 유골을 추려 납골당이나 다른 곳으로 이장할 때 하는 예식이다. 면례에서도 처음 장사지낼 때와 같이 정성을 다하여 예를 갖춘다. 

 

가톨릭 상장례 노래인 연도는 지금까지 살펴본 18~20세기의 한국 전통문화와 상장례 문화의 습합으로 형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도나 천주가사를 통해 가톨릭 교인들 사이에서는 한글이 민중의 언어로 정착하게 되었는데, 이는 그 당시 한글의 편리성과 예술계의 시대상황을 받아들인 결과로 볼 수 있다. 한글은 민족운동이나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한 작품, 양반층의 여성들 사이에서 주로 사용되던 언어로서 신분차이를 뛰어넘어 감정표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언어였으며, 예술계 역시 한국적이면서도 민족적이며, 대중적인 특징으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톨릭 상장례 문화는 한국인의 삶 속에 녹아든 무속과 불교 · 유교 등 각 종교의 장점인 조상숭배와 예절을 받아들였고, 혈연에 의존하는 장자 중심의 상속제도와 예법을 강조한 전통적인 공동체는 문화의 충돌 없이 그대로 실현하게 된다. 

 

마을 단위에서는 대동회나 계의 특성을 지닌 상두계와 교우촌을 형성하여 공동체 의식을 실천하였고, 공동체 내에서 보편화된 두레와 품앗이를 응용한 가톨릭 장례문화에서는 이웃사랑을 근간으로 선교의 폭을 넓혀나갔다. 

 

전통 상장례는 유교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초기에는 양반층에서만 행해졌으나, 1894년 이후에는 서민들 사이에도 널리 확산되었다. 1742년 가톨릭에서 반포된 제사금지령이 종교 · 정치 · 사회 등 한국 문화 전반에 걸친 갈등으로 대두되었으나, 한국가톨릭에서는 1800년대에 연도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전통 상장례가 유교의 쇠퇴로 종교별 · 문중별 · 지역별로 다양화되는 가운데 가톨릭만의 독창적인 문화를 이룩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톨릭 상장례 문화는 국내의 가정의례준칙(1968년)과 가톨릭계의 장례예식 공포(1969년)로 인해 간소화되었다. 한국의 가톨릭계에서는 1976년에 장례예식서를 번역하여 발행하였고, 밤샘기도 부분만 전통적으로 행해 오던 연도를 사용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이러한 규정과는 달리 가톨릭 교인들은 장례 미사 부분에서만 연도를 할 수 없고, 출관 · 장지도착 · 하관 · 우제 · 면례 등에서는 연령회원들과 함께 연도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장례 미사 예식은 가톨릭 로마예식을 따르고, 그 외의 장례예식에서는 한국 전통문화를 따름으로써, 아직까지 이질적인 두 문화를 어우를 수 있는 고유한 예식은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3. 전통 장례노래와 전례음악 

 

장례노래는 상여소리와 무덤 다지는 소리 등 상두꾼들에 의해 불려지는 소리만을, 전례음악은 종묘와 문묘의 제례의식에 따른 노래(악장)와 음악 · 무용 등을 총칭한 용어를 의미하고자 한다. 장례노래는 상여놀이와 상여 소리, 무덤 가래질소리와 무덤 다지는 소리 등을 살펴보고, 전례음악은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종묘제례 · 문묘제례에서 사용되는 음악과 창홀성의 특징을 비교하고자 한다. 

 

1) 전통 장례노래 

 

초종 · 습렴의례 · 치장의례 · 흉제로 구성되는 전통상장례 중에는 상여놀이와 상여소리, 무덤 가래질소리와 무덤 다지는 소리 등의 장례노래가 불리게 된다. 상여놀이는 습렴의례에서 행해지고, 상여소리· 무덤 가래질소리와 무덤 다지는 소리는 치장의례에서 행해진다. 이러한 장례노래는 지방에 따라 다양하며 현재는 환경적 요인에 의하여 거의 불리지 않지만, 상여소리와 무덤을 다질 때 부르는 달구소리는 대부분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보존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상여소리와 달구소리뿐만 아니라, 상여놀이에서 불리던〈다시래기노래〉및 무덤 가래질 소리도 자료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상여놀이는 습렴의례에서 행해지는 풍속으로서 다음날 출상을 위한 예행연습에 불과하지만, 상례 중 처음으로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분위기가 된다.67) 이는 서러움을 웃음으로 달래보는 과정이라고 한다. 출상 전날 상두꾼들이 밤을 새면서 부르는 노래에는 〈다시래기노래〉, 〈밤달애노래〉, 〈느시랑타령〉 등이 있는데, 다음은 진도군의 〈다시래기노래〉이다. 

 

♬ 개기개 개개야 기개개 개개야 / 기개기개 기개 개개 개개 

서방님 무그대〔부디〕평안히 가리오 / 오냐 나는 간다 너는 잘 있거라 

이제나 가시면 어느 시절에 오리오 / 언제 올 줄을 나는 모르겄네 

아이고답답 아이고답답 서런 정아 / 차마 서러 못살으겄네 요놈의 노릇을 어찌어찌 살까 … 

 

♬ 이히야 헤헤헤헤야 여리히 어허허허로고나야 / 아무리야 허허허도 니가 내로고나 

사당 마느라 미선들고 / 마느라 머리끝에다가 법단댕기만 디레부려라 

허라뒤야 어리씨구나 저리씨구나 방해가 내로고나 

찬칼을 쑥 빼보니 할절에 없는 용천에 검이로고나 

허라뒤야 어리씨구나 저리씨구나 방해가 내로고나68) 

 

〈다시래기노래〉는 앞부분을 개타령, 뒷부분은 사당패노래라고도 부르며, ‘다시래기’는 ‘다시 난다’는 뜻이다. 〈밤달애노래〉 중 ‘밤달애’는 ‘밤을 새운다’는 뜻으로 사당패들에 의해 놀이판에서 불려졌다. 〈느시랑타령〉은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하여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내용인데, 다음은 연평도의 〈느시랑타령〉이다. 

 

♬ 에헤야아헤 에헤야 느시랑거리고 왜 왔댔나 

불쌍하고 가련도하다 돌아가신 맹인〔망인〕이 불쌍하다 

저승길이 멀다고 해도 대문밖이 저승일세 

언제오려나 언제나 오시려나 우리나 부모님 언제 오시려나 

사롱〔살강〕안에 삶은 팥이 싹이나 나면 오시려나 

평풍안에 그린 수탉 날개나 치며는 오시려나 

세월 청춘아 가면 너 혼자 가지 아까운 청춘을 왜 데리구 가나69) 

 

죽는 것은 비록 서럽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초상집의 밤샘작업은 슬픔의 결정체로서 땅을 치며 통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와 해학이 어우러지는 즐거움으로 묘사되고 있다. 삶은 팥에 싹이 나는 일이나 그림 속의 수탉이 날개 치는 일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것과 같이 황당하고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유족들은 죽음이란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살아날 것만 같은 기대와 환상을 갖게 된다. 이 노래는 그러한 꿈이 부질없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은근한 비유법을 써서 유족들을 달래주고 있는 것이다. 

 

망인과 후손이 분리되는 마지막 의례인 치장의례에서는 발인제 · 노전제 · 하관의례와 같은 동적인 작업을 하면서 상여소리와 무덤 가래질소리 · 무덤 다지는 소리를 부르게 된다. 유족들은 서러움의 극적인 표현으로 곡을 하지만, 슬픔과 고통 중에 있는 이들과는 달리 상여를 멘 상두꾼들은 운구 도중 슬픈 상여소리에 농을 얹어 부르거나 유머로 상주를 위로하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면서 실랑이를 부리기도 한다. 

 

상여는 망자를 저승으로 모시는 가마로서 꽃과 구름무늬로 장식한다. 상여소리는 민요의 메기고 받는 형식과 같이 소리를 잘하는 앞소리꾼이 메기면 여러 사람이 ‘어이가리 넘차’나 ‘어나리 넘차’ 등의 후렴구로 받게 된다. 망자를 극락왕생하게 해달라는 소망이나 인생무상, 이별의 슬픔 등이 상여소리의 공통되는 내용이지만, 표현방식이나 후렴에 있어서는 지역별로 약간씩 차이가 나기도 한다. 강원도 강릉에서는 ‘오오오 해 넘어가네’를, 전남 지방은 ‘관암보살소리’와 ‘허화널소리’가 결합한 형태의 소리를 한다. 이러한 노랫말을 차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밖이 저승일세 / 오오오 해 넘어간다 

만장같은 집을두고 북망산천 찾어가네 / 오오오 해 넘어간다 

친구하나 삼었더니 술만먹고 잠만자네 / 오오오 해 넘어간다 

나비나비 호랑나비 날과같이 청산가세 / 오오오 해 넘어가네 

이팔청춘 소년들아 백발보고 웃지마라 / 오오오 해 넘어가네 

(강원도 강릉시 / 앞소리 : 권영하) 

 

에헤이 이헤이 에헤 허이 나먼 보살(앞뒷소리 여러 번 반복) 

♬ 관암보이 관암보살 

앞산도 첩첩허고 뒷산도 캄캄헌디 혼은 어디로 가셨네 

그려 쉽게 가시려거든 당초 이 세상을 나오시지를 말제 

황천길이 멀고도 멀다더니 지체없이도 잘가셨소 

 

♬ 오호 호호 오호 호오호 나무아미타불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건네 안산이 북망일레 

나는 가네 나는 가네 북만의 산천으로 나는 가네 

가세가세 어서가세 일석지집을 어서가세 

 

♬ 허허 허허이 어리가리 허화널 허널 허화널 

애들쓰네 애들쓰네 우리 유대군〔상두꾼〕애들쓰네 

조심들 허세 조심들 허세 우리 형제군들 조심들 허세 

가세가세 어서를 가세 날만 따라서 걸어를 오소 … 

(전남 곡성군 / 앞소리 : 황수성)70) 

 

이러한 상여소리의 대부분은 미-라와 라-레로 불리는 메나리토리형71)과 미-라와 시-미로 불리는 육자백이토리형72)으로 구분한 연구가 있으며,73) 메나리토리는 미(종지음)-솔-라(청)-도-레-미, 경토리는 솔(종지음)-라-도(청)-레-미-솔, 육자백이토리는 미(종지음)-파#(솔)-라(청)-시-도-(레)-미의 음조직으로 구분한 연구도 있다.74) 상여소리의 음조직은 이와 같이 지역별로 차별화되며, 음악을 표현하는 시김새 역시 다르지만, 선율의 골격은 미-라(메나리토리와 육자백이토리)와 솔-도(경토리)의 도약 진행을 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묘지에 도착하면 산신이나 토지신에게 깎듯이 노전제를 드린 후 하관을 위해 무덤을 파면서 가래질 소리를 하게 되고 하관 후에는 무덤을 다지는 소리를 한다. 가래질 소리를 많이 하던 곳은 전남 지역인데, 그곳은 무덤 다지는 소리를 잘 하지 않는 대신에 가래질 소리가 많으며 지역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한다. 가래는 긴자루가 달린 삽날의 양쪽에 줄을 달아 세 명이 힘을 모아 흙을 팔 수 있는 도구이다. 현재는 가래 대신에 굴삭기가 있어 이를 대신하므로 가래질 소리를 부를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전남 지역의 무덤 가래질소리의 예를 차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오 오헤 가래오 

어허 가래소리 잘도나 한다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한데 혼은 어디로 행하셨는고 

이 가래가 누 가래냐 기씨망제 가래로다 

오날가면 언제올라 동방화절춘풍시에 꽃 피거든 오실라오 

달아달아 밝은달아 이태복이 노든달아 

어허 저기저기 저 달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 

(전남 고흥군 / 앞소리 : 김태명) 

 

고흥군의 소리는 가락이 매우 느리고 내용은 상여소리와 거의 유사한 반면, 완도군은 장례노래다운 내용에 가락이 매우 빨라 노동요의 성격이 강하다고 한다. 

 

♬ 에헤헤라 뫼토짐지기야 

에헤헤라 뫼토짐지기야 / 이뫼토가 뉘 뫼톤가 

죽은 맹인 뫼토로구나 / 가자가자 원했더니 

염매대왕을 찾어갔네 / 무정허요 무정도허요 

염매대왕도 무정허요 / 다려갈 양반도 많이 있건마는 

울 아버지를 다려가야 / 약방약도 쓸데가 없고 

요새 병원도 쓸데가 없고 / 염매대왕서 다려간다 

(전남 완도군 / 앞소리 : 박광연) 

 

제주도에서는 무덤 가래질소리를 ‘진토굿파는소리’라고 하며, 매우 장중하게 인생의 허무를 노래한다. 

 

♬ 에 아아 호 

노세놀아 젊아 놀아 늙어지면 못노리라 에 

어야 솔기로구나 

한로산아 잘있거라 부모동생 이별하고 에 

오오야 솔기로구나 

인생한번 죽어지면 세상만사가 허사로구나 

어어허야 솔기로구나 

인생이라 한 것은 토란 잎에 이슬이로구나 에 

어어허야 솔기로구나 

오널날은 일기도 좋고 동넷어른덜도 수고가 많습니다 에 

어어허야 솔기로구나 

(제주도 북제주군 / 앞소리 : 강대홍)75) 

 

무덤을 다지는 방법에는 무덤 안에 들어가서 다지는 방법과 무덤 밖에서 다지는 방법으로 구분된다. 무덤 안에 들어가서 다질 때는 첫 켜에 횟가루를 섞어 넣고 다지는 ‘회다지소리’를 하고, 무덤 밖에서 다질 때는 ‘달구질소리’를 하게 된다. 강원도 정선의 회다지 소리는 자진모리장단의 경쾌한 빠르기로 소리를 한다. 

 

♬ 오허 달회 

등맞추구 배맞춰요 / 일시에 놓고 일시에 들어 

먼데사람 듣기 좋고 / 곁에 사람 보기좋게 

종종회를 다여보세 / 종종회를 잘 다으면 

이 산 명기 돌아오고 / 천수목근 면한다네 

이 산소 터 잡을 적에 / 누구누구 잡었든가 

도선이 박상하고 / 무학이 잡을 적에 

지남철을 손에 들고 / 윤두관을 앞에 놓고 

좌향놓고 안배놀 제 / 득수득파 어떻든가 

좌청룡 되었으니 / 자손번성 할 것이요 

우백호 되었으니 / 외손번성 할 것이요 

앞에 주춤 노적봉은 / 거부장사 날 것이요 

뒤에 주춤 문필봉은 / 문장재사 날 것이요 

일산봉이 비췄으니 / 수령방백 날 것이요 

투구봉이 비췄으니 / 대대장군 나리로다 

저 건너 저 첨지야 / 이 건너 이 첨지야 

오조밭에 새 들었네 우여! 

(강원도 정선군 / 앞소리 : 홍동주)76) 

 

충남 지방의 달구소리는 ‘돈 뜯는 소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돈에 대한 내용이 노골적으로 나온다. 처음에는 덕담을 하면서 느린 소리로 시작하지만, 자진소리로 넘어가면 상주들에게 “우리도 땀 흘려 달구하니 노자도 내놔라 내놔”하면서 돈을 요구 한다. 

 

♬ 어허야 달구 

허허달구 / 달구소리에 맞춰서 합시다 

콰광쾅 굴러라 달구 / 이 묘지는 좋기도 하다 

청룡백호가 따로 있나 / 이 자리가 청룡백홀세 

상제님들은 많으신데 / 딜여다보는 이 없네 

 

♬ 어허 다구 

괄세마라 괄세마라 / 들어간다고 괄세하니 

몸은 들어갔을망정 / 정신 쪽은 두고가네 

네 병일랑 내가갖고 / 내 명일랑 네게 주고 

복다말은 복을랑은 / 손자에게 주고가니 

어려워도 어렵다 말고 / 부지런 딴딴 일을 해라 

 

달고달고 또 달어라 / 먹물 내듯이 달고 

아끼지 말고 밟으소서 / 흙진 나도록 밟으세요 

큰 상주님네 들어라 / 달구소리가 안 들리느냐 

우리도 땀 흘려 달구하네 / 노자도 내놔라 노자도 내놔 

나온다나온다 달고 / 돈 나온다 달고 

돈 나온다 돈 나온다 / 여기도 달구달구 / 저기도 달구 

(충남 아산군 / 앞소리 : 강희준)77) 

 

가톨릭 상장례 문화 중 밤샘기도는 전통상장례의 밤샘작업에서 행해지는 상여놀이와 같이 위로와 해학을 담고 있으며, 연도의 선율은 상여소리 중 메나리토리의 특징인 미-(솔)-라-도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상여놀이는 출상을 위한 예행연습으로서 초상집의 밤샘작업에서 행해지는데, 상례 중 처음으로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분위기가 되어 상주를 위로하게 된다. 상여소리는 극락왕생을 바라는 소망과 인생무상, 이별의 슬픔 등을 지방 특성에 따라 약간 다르게 표현한다. 

 

전통상장례의 장례노래는 상주나 유족들에 의해 불리지 않고 모두 전문 상두꾼에 의해 불리며, 그중 소리를 잘 하는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여러 사람들이 후렴을 받는 선후창방식(메기고 받는 형식)이 되어 가톨릭 장례노래와는 차별화된다. 

 

2) 조선시대의 전례음악 

 

조선시대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법과 제도 · 제례 등 대부분의 생활이 유교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제례 가운데 음악이 연주되던 제례는 대사(大祀)와 중사(中祀)78)에 속하는 제사에 국한되었으며, 이들 가운데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제례는 종묘대제와 문묘석전제이다.79) 그러므로 이번 항에서는 종묘제와 문묘제에 사용되는 음악의 특징과 제례의식에서 집례에 의해 낭독되는 창홀성80)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종묘는 조선의 역대 임금들과 왕비들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그 사당에서 제사를 드릴 때 사용되는 음악과 무용 일체를 종묘제례악이라고 하며, 종묘제례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의 문화유산이다. 

 

종묘제례악은 조선 세종대왕이 회례악81)에 사용할 목적으로 작곡한 〈보태평〉과 〈정대업〉을 세조 때 제례악으로 제정하여 현재에 이른다. 제례악에서 사용되는 노래를 악장이라고 하는데, 문묘악의 악장은 4언의 규칙적인 한시로 되었지만 종묘악의 악장은 3언· 4언· 5언 등 불규칙적인 한시로 되어 있다. 불규칙적인 노랫말은 연도나 문묘악과 같은 일자일음식(sylabic)이 아닌 일자다음식(melismatic)을 사용하여 더욱 그 길이가 불규칙해진다. 5언의 규칙적인 율격을 지닌〈보태평〉의 제1곡 희문82)의 가사와 가사붙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보태평 희문 

列祖貽孫謨(열조이손모) 炳蔚赫葉昌(병위혁엽창) 

願言頌盛美(원언송성미) 維以矢歌章(유이시가장)83) 

 

<악보1> 보태평 희문 

 

보태평 희문은 ‘열조이손모’(列祖貽孫謨)의 다섯 글자를 16박으로 부르며, ‘병위혁엽창’(炳蔚赫葉昌)은 20박, ‘원언송성미’(願言頌盛美)는 19박, ‘유이시가장’(維以矢歌章)은 20박으로 부른다. 즉, 열은 1박, 조는 4박, 이는 1박, 손은 2박, 모는 8박으로 가사에 따른 규칙성이 없이 부른다. 

 

한 글자를 2박 이상으로 부르는 일자다음식은 종묘제례악의 악장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 성악곡에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노랫말이 율격에 맞는 규칙성을 지녔다하더라도, 발음변화에 따른 음의 강약을 최대한 살려서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율 및 언어변화에서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이러한 일자다음식은 말씀을 중요시하는 연도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음계는 5음 음계로 된 평조(보태평)와 계면조(정대업)로 되어 있으며, 전체 22곡에 달하는 각 곡은 가사의 길이와 형식이 다를 뿐만 아니라 일정한 틀도 가지고 있지 않다. 악기편성은 악장(노래), 박, 아쟁, 해금, 대금, 피리, 어, 방향, 편경, 절고, 장고, 편종, 축으로 구성된 등가84)와 악장(노래), 박, 해금, 대금, 피리, 태평소, 어, 방향, 편경, 진고, 장고, 편종, 축, 대금(징)으로 구성된 헌가로 구별된다. 음악은 의식절차에 따라 〈보태평〉의 제1곡인 희문이 사용되는 경우, 〈보태평〉11곡이 모두 사용되는 경우, 〈정대업〉이 사용되는 경우, 〈보태평〉 〈정대업〉이 아닌 〈진찬〉이 사용되는 경우 등 다양하기 때문에 그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을 맞이하는 영신례에는〈보태평〉중 제1곡인 희문을 9번 반복하고 집례자들은 4번 절을 한다. 폐백을 드리는 전폐례에는 영신례와 같은 희문을 여러 번 반복하지만, 영신희문과는 빠르기와 노랫말에서 차별화된다. 고기와 음식을 드리는 진찬례에는 〈보태평〉과 〈정대업〉곡이 아닌 별도의 진찬곡을 연주한다. 〈진찬〉은 7음 음계로서 서양의 다장조라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잔을 올리는 초헌례에는 〈보태평〉제1곡인 희문에서부터 제11곡인 역성까지 전곡을 연주한다.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례에는 〈정대업〉의 제1곡인 소무에서부터 제11곡인 영관까지 전곡을 연주한다.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례에는 의식절차, 음악 등이 아헌례와 똑같다. 제기를 덮는 절차인 철변두와 신을 보내는 송신례에는 진찬례에 사용된 〈진찬〉을 연주한다. 

 

종묘제례악은 노래 · 악기 · 춤이 어우러진 종합예술로서 한문으로 된 가사와 일자다음식인 가사붙임이 연도와 구별되지만, 장단이 불규칙하고, 등가와 헌가에서 교대로 연주하며, 격렬하지 않은 계면조(정대업)를 사용하는 점은 연도에서도 나타나는 유사점이다. 

 

문묘는 공자를 모신 사당을 뜻하는데,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안에 있는 문묘대성전에 공자의 제자들과 중국의 유학자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유학자들을 합쳐 39위가 모셔져 있다. 이곳에서 드리는 제사는 해마다 봄과 가을 두 번이며, 이 제사에 사용되는 음악과 무용 일체를 가리켜 문묘제례악이라고 한다. 문묘제례악은 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묘악의 악장은 4언의 규칙적인 한시로 되어 있으며, 각 음의 길이가 일정하다. 연도와 같은 일자일음식(sylabic)의 가사붙임이지만, 글자수에 따라 리듬형이 달라지는 연도와는 달리 동일한 리듬이다. 4언의 규칙적인 율격을 지닌 황종궁의 가사와 가사붙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문묘제례악 황종궁 

大哉宣聖(대재선성) 道尊德崇(도존덕숭) 維持王化(유지왕화) 斯民是宗(사민시종) 

典祀有常(전사유상) 精純?隆(정순병륭) 神其來格(신기래격) 於昭盛容(오소성용)85) 

 

<악보2> 문묘악 중 황종궁 

 

음계는 7음 음계로 되어있으며, 전체 15곡 가운데 12곡은 12율을 각기 주음으로 하여 이루어지므로, 황종궁~응종궁 등의 12율명이 곧 곡명이 된다. 즉, 12곡은 황종궁을 조옮김하여 만든 것이지만, 문묘악에 사용되는 악기의 음역이 한 옥타브(12율, 8도)이거나 한 옥타브를 조금 넘는 12율 4청성(9도)으로 좁기 때문에 이 음역을 벗어나는 높은 음은 옥타브 아래로 내려 연주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 율씩 이조하여 생긴 12곡이라 할지라도 서로 다른 곡같이 느껴진다. 문묘악에 사용되는 악기편성은 악장(노래), 편종, 편경, 특종, 특경, 금, 슬, 훈, 지, 약, 절고, 부, 축, 어, 박 등으로 구성된 등가와 편종, 편경, 훈, 지, 약, 적, 노고, 노도, 진고, 축, 어, 부, 박 등으로 구성된 헌가로 구별된다. 현재 문묘제례에 사용되는 음악은 12곡 가운데 황종궁, 중려궁, 남려궁, 이칙궁, 고선궁, 송신황종궁의 6곡만을 의식절차에 따라 선택해서 연주한다. 이러한 곡은 의식에 따라 영신례에서는 황종궁 3번, 중려궁 2번, 남려궁 2번, 이칙궁 2번을 반복 연주하며, 전폐례와 초헌례에서는 남려궁을, 공악86)과 아헌례, 종헌례에서는 고선궁, 철변두에서는 남려궁, 송신례와 망료에서는 송신 황종궁을 연주한다. 

 

제례의식에서 창홀(唱笏)이란 ‘홀기를 부른다’는 의미이며, 홀기란 대중의 집회 · 제례에서 그 진행순서를 적어서 낭독하게 하는 기록을 뜻한다.87) 제례에 사용되는 홀기는 순한문의 종서체로 기록되며, 앞서 살펴본 종묘나 문묘의 제례의식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의 향교나 서원 등의 제례의식에서도 사용된다. 

 

창홀성의 예는 영신례에서 헌관이나 집례자들이 절을 네 번 할 때 배 ‘호(拜乎) 흥호(興乎)’ 하고 소리 높여 부르거나 초헌례부터 종헌례에서 헌관들을 부르는 ‘초헌관 · 아헌관 · 종헌관’ 등에서 나타난다. 

 

배호흥호(拜乎興乎)는 종묘제나 충주, 청주, 공주향교에서는 라 한음만을 사용하는데, 종묘제의 경우는 ‘배(라)-흥(라)’을 네 번 반복한다. 전주, 남원, 나주향교에서는 미-라의 두음을 사용하며, 문묘제와 거창향교에서는 미-라-도-라의 3음을 사용한다. 문묘제의 경우는 ‘배(미)-호(라)-흥호(도라)’를 네 번 반복하는데 배는 1박자, 호는 5박자, 흥은 1/2박자, 호는 3과 1/2박자로 부른다. 대구와 춘천향교에서는 미-라-라-솔의 3음을 사용하지만, 음을 흘려주는 퇴성과 밀어 올리는 추성 등 시김새가 나타난다. 

 

초헌관 아헌관 · 종헌관의 창홀은 대부분 라로 시작하여 라로 종지하는데, 전주와 춘천향교에서는 미로 시작하여 라로 종지하며, 거창향교에서는 도로 시작하여 라로 종지한다. 종묘제의 경우에는 ‘초(라-도)-헌(도-라)-관(라)’과 ‘초(라-도)-헌(라)-관(라)’으로 구별되는데, 시작음인 초는 라음으로 부른 후 도음으로 밀어 올리는 선율이지만, 중간음인 헌은 도-라로 흘려주거나 라음으로만 부르는 두 가지 선율 중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된다. 문묘제의 경우는 크게 세 가지 선율로 구별되는데, ‘초(라)-헌(도-라)-관(라)’, ‘초(미)-헌(미)-관(라)’, ‘초(라)-헌(라)-관(라)’ 중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선율은 초헌관 · 아헌관 등 어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집례의 경험에 의한 융통성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생활이 유교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조선시대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지내는 제례에 노래(악장)뿐만 아니라 악기반주(음악), 무용을 포함한 전례음악을 행하였다. 그러므로 개인별로 행하는 상여소리와는 구별되며 1960년대 이후부터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종묘제례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의 문화유산이며, 문묘제례악 역시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다. 이외에도 불교의식인 영산재(49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고, 무속에서 행하는 진도씻김굿(72호), 풍어제(82호), 동해안별신굿(82-1호), 서울새남굿(104호) 등 종교별로 행하는 제례의식이 대부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종묘는 조선의 역대 임금들과 왕비들의 신위를 모신 사당을 뜻하고, 문묘는 공자를 모신 사당을 뜻하며, 이 제사에 사용되는 음악과 무용 일체를 가리켜 제례악이라 하고, 제례의식에서 집례에 의해 낭독되는 것은 창홀성이라 한다. 

 

가톨릭 상장례 문화 중 밤샘기도는 전통상장례의 밤샘작업에서 행해지는 상여놀이의 특성을, 그 노래소리(선율)는 상여소리 중 메나리토리와 유사함을 살펴보았다. 전통장례노래에는 상여놀이, 상여소리, 무덤 가래질 소리, 무덤 다지는 소리가 있으며, 그중 상여놀이는 초상집의 밤샘작업에서 행해지는 위로와 해학이 깃든 소리이다. 상여소리는 소망과 인생무상 등을 내용으로 담고 있으며, 미-라의 4도 진행이 선율의 골격을 이룬다. 무덤 가래질 소리는 오늘날 거의 불리지 않지만, 무덤 다지는 소리는 회다지 소리와 달구질소리로 양분되어 전승된다. 이러한 노래는 상주나 유족들에 의해 불리지 않고 모두 전문 상두꾼에 의해 불리듯, 가톨릭 상장례에서는 연령회원들에 의해서만 불리기도 한다. 

 

조선시대 국가적 차원에서 지낸 전례음악과 연도와의 유사점을 살펴보면, 등가와 헌가의 교대연주를 응용한 교환창, 종묘제례악의 불규칙한 장단과 격렬하지 않은 계면조 사용, 문묘제례악의 가사 붙임법, 그리고 창홀성의 구성음(미, 라, 도)과 밀어올리고 흘러내리는 시김새, 큰 소리로 부르는 점, 100년 이상 전승되어 온 점, 의식에 따라 장시간 행하는 점 등이다. 차이점은 노래, 악기, 춤이 어우러진 종합예술로서 한문으로 된 가사, 무형문화재 지정, 조선시대 역대 왕 34위(종묘) 혹은 유교학자들 39위(문묘)를 위한 제사이다. 연도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이유가 이러한 몇몇 차이점에 불과하다면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악기반주와 춤을 곁들인 전례음악으로 편곡하거나 음악적으로 가사를 다듬어야 할 것이다. 

 

 

4. 한국가톨릭 전례음악 

 

가톨릭에서의 전례음악은 예식서 및 문헌·악보집을 통해 살펴보고, 가톨릭 장례노래는 연도를 통해서 그 의미를 살펴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현시대에 맞는 바람직한 연도의 가창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1) 초기의 가톨릭 전례음악 

 

미사전례는 예수님께서 12제자와 함께 최후 만찬에서 제정하신 이래 오늘날까지 시대변천과 상황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88) 제자들 시대에는 ‘주님의 성찬’ 이외에 ‘빵을 나눔’이란 표현을 사용하였으며, 1세기 말엽부터는 ‘감사’(Eucharistia)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3~5세기에는 다양한 전례들이 동방전례와 서방전례로 이분되거나 전례언어가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바뀌었다. 500년경에 이르러 ‘미사’(Missa)라는 용어가 통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604)은 미사를 개혁하고 미사전문인 《성무집전서》를 만들었다. 중세시대(7~14세기)에는 ‘천주의 어린양’과 ‘거룩하시다’가 전례 안에 들어오게 되었고, 성작도 들어 올리게 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전례생활을 혁신시켰으며, 1570년 통일미사경본은 물론 각종 전례서들이 출간 보급되었다. 통일미사전례의 기도문과 예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400년간 지속되었다. 

 

한국의 초기 미사형태는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이승훈이 이벽, 권일신 등에게 대세를 주었고, 몇몇 학자들은 사제와 신부 등의 성무를 맡아 미사를 올렸다.89) 

 

이 시기를 가성직시기라고 하는데, 학자들은 가톨릭 교회법상 모든 성직자 임명권이 로마 바티칸 중앙에 있다는 사실을 통고받고 2년 만에 해체되었다. 이 시기에 전례음악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최필선의 주장과 전례미사곡은 라틴어 가사의 그레고리오 성가 형태라는 차인현의 주장이 있지만,90) 1795년 주문모(1752~1801)91) 신부가 입국하기 전까지의 전례음악에 대한 확실한 실체는 파악하기 힘든 실정이다. 

 

다만 천주가사가 교인들의 신심과 교리실천을 강조하기 위하여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기 전부터 발생(1784~1801)되었으며, 한국인 사제 최양업(토마스, 1821~1861)이 만든 천주가사와 더불어 기해박해(1839)를 비롯한 박해시대를 견뎌낼 수 있는 활력소로 작용하였다. 

 

주문모 신부가 입국한 후에 그레고리오 성가 형태의 미사곡이 불려졌으며,92) 1887년에 설립된 예수성심신학교에서는 라틴어 가사의 그레고리오 성가 교육이 실시되었다.93) 그러나 이러한 라틴어 전용 미사는 제단과 신자석 간의 간격을 크고 멀어지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을 미사전례에서 도외시키고 성직자 위주의 미사성제가 되었다고 한다.94) 이러한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전례 환경과 계속되는 박해 속에서 신자들은 신앙생활의 활성화를 위한 천주가사와 연도를 애창하게 된다. 연도(연옥도문)는 喪家에서 뿐만 아니라 미사전례 중 봉헌 때도 불린 예가 1903년 선교사 뮈텔 주교의 일기에서 보인다. 

 

1892. 5. 16.〈5. 15. 쿠테르 신부 사망〉 하루 온 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신자들이 끊임없이 연도를 바친다(《한국가톨릭교회음악사료집》 2). 

 

1903. 8. 5. 주교대례미사 … 성가는 아이들이 했다 … 성가는 수녀원의 아이들이 입당송, 키리에, 디에스 이레, 상투스, 아뉴스 데이, 리베라 등을 노래했고, 봉헌 때 교우들이 함께 연옥도문을 바쳤다(《한국가톨릭교회음악사료집》 2). 

 

그레고리오 성가는 사제나 수도자, 교육받은 어린이들이 부르게 되며, 일반 신자들은 우리가락의 노래를 부른 것을 알 수 있다. 창미사와 그레고리오 성가는 미사전례음악으로 행해지고, 우리가락의 노래들은 전례가 시작되기 전이나 봉헌, 사제가 퇴장한 후에 불리면서 서서히 전례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다음은 1899년 뮈텔 주교의 일기이다. 

 

1899. 2. 23. (2/18일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르(Felix Faure)의 서거) … 9시 반에 첫 종을 시작으로 미사 동안 내내 종이 울렸다. 9시 45분경, 교우들이 연옥도문을 시작했고, 10시에 푸아넬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가 시작되었다. … 수녀원의 어린이들은 〈레퀴엠〉을 다 불렀고, 〈키리에〉는 교대로, 〈상투스〉와 〈아뉴스데이〉와 미사의 응답송을 불렀으며, 〈디에스 이레〉까지 불렀다. (《한국가톨릭교회음악사료집》 2) 

 

전례미사곡은 기리에(가련한 찬가) · 글로리아(영광의 찬가) · 크레도(신앙고백) · 상투스(감사의 찬가) · 아뉴스데이(평화의 찬가)로 구성되며, 이 노래들은 통상 미사에 있어서 변함없이 쓰이는 것이므로 “미사통상문”이라 불린다. 레퀴엠(안식의 뜻)은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을 뜻하며, 가톨릭 교회의 위령미사 전례에서는 입당송을 레퀴엠으로 시작하게 된다.95) 이러한 그레고리오 성가들은 교육받은 성가대나 사제들에 의해 위령미사에서도 서서히 자리를 굳혀 갔으며, 1920년대 오선보 성가집에도 수록되었다. 

 

《조선어성가집》과 《공교성가집》 등 대부분의 조선어 성가집은 가사만 조선어(한글)일 뿐 음악적인 어법은 모두 서양의 것을 수록하였다. 성가대들이 창단되어 이러한 프랑스와 독일 전례음악들을 애창하게 됨으로써 우리가락의 천주가사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연도 역시 1927년경부터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창으로 된 연미사로 대체되면서 미사전례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례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이는 라틴어 전용 미사에 따른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전례를 일반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전례로 부흥시키려는 것이다. 전례운동의 핵심은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 지방분권적인 전례의 민주화, 자국어로 된 미사 전향, 신자 중심의 전례 등을 촉구한 것으로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1963)이 반포되었다. 전례헌장이 반포되자 우리나라에서도 200주년 사목회의(1981, 1984)와 서울 세계성체대회(1989)를 통해 미사전례의 한국화 작업이 시도되었다.96) 그러나 전례음악 부문에서는 라틴어로 된 미사곡이 한글로 번역된 것일 뿐, 선율은 외국인의 작품을 그대로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동체성가집》(1975), 《가톨릭성가집》(1986) 등 미사전례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성가집이 외국인의 곡은 물론 한국인의 작품조차도 서양 음악 어법으로 작곡된 창작음악으로 구성된 것이다. 

 

가톨릭전례는 초기에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이래 오늘날까지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초기에는 다양한 전례들이 동방전례와 서방전례로 이분되거나 전례언어가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바뀌었으며, 500년경에 이르러 미사(Missa)로 통용되기 시작하였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전례생활의 혁신을 가져왔고, 통일미사전례의 기도문과 예식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400년간 지속되었다. 그 후 일반대중이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 전용 미사를 바꾸려는 전례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어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 지방분권적인 전례의 민주화, 자국어로 된 미사 전향, 신자 중심의 전례 등을 촉구한 전례헌장(1963)이 반포되었다. 

 

한국의 가톨릭 전례는 초기의 가성직시기를 거쳐 주문모 신부가 입국한 이후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교인들의 신심과 교리실천을 강조하기 위한 우리가락의 천주가사가 주문모 신부의 입국 전에 발생(1784~1801)하였고, 한국인 최양업 신부 역시 천주가사 여러 편을 만들어 박해시기에 발전기(1801~1886)를 맞이하게 된다. 일부 전례에서는 천주가사가 연도와 함께 일반신자들에게 불리게 된다. 그 후 1887년 예수성심신학교가 설립되면서 라틴어 가사의 그레고리오 성가 교육이 실시되었고, 교육받은 성가대나 사제들에 의해 위령미사에까지 그레고리오 성가가 불렸으며, 1920년대 오선보 성가집에 수록되었다. 《조선어성가집》과 《공교성가집》등 대부분의 조선어 성가집은 가사만 조선어(한글)로 바꾸었을 뿐 선율은 외국곡을 그대로 수록한 것이다. 성가대들이 창단되어 이러한 프랑스와 독일 전례음악들을 애창하게 됨으로써 우리가락의 천주가사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연도 역시 1927년경부터 창으로 된 연미사로 대체되면서 미사전례 밖으로 완전히 밀려난 후 상가와 묘지 등에서 행해지고 있다. 

 

2) 가톨릭 장례노래의 의미 

 

천주교가 한국에 들어온 초기에는 중국에서 간행된 여러 기도서들을 토대로 만든 《천주성교공과》와 장례의식만을 규범화해서 만든 《천주성교예규》가 예식서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기도서는 새로운 내용만 추가하며 여러 차례 개편된 후, 공과는 1972년 《가톨릭기도서》로, 예규는 1991년 악보를 수록하면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한 변화는 이미 밝힌 바 있으므로97) 본고에서는 상장예식 중 초상에서 사용하는 기도문의 내용만 살펴보고자 한다. 예식이나 기도문은 초기의 예규를 참고하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기도문의 어휘는 가장 최근(2003년)의 《상장예식》을 토대로 살필 것이다. 

 

상장예절 중 초상에 사용되던 기도문은 성영(시편)98) 129(130), 성영50(51), 연옥도문(성인호칭기도), 축문(사제를 위한 축문과 부모를 위한 축문 2종), 찬미경1~3단(찬미경은 성모경으로 대체할 수도 있음)이다. 

 

시편은 구약성경에 150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시 또는 노래형식으로 표현된 기도문이다. 시편은 탄원시편, 감사시편, 찬양시편의 큰 유형들과 신뢰시편, 군왕시편, 순례시편, 전례시편, 율법시편, 교훈시편, 지혜시편 등 작은 유형들로 분류된다.99) 그중 초기부터 현재까지 연도에 사용된 시편 130과 51편은 하느님께 고통에서 구원해 주십사하고 간청하는 탄원시편에 속한다. 죽은 영혼에 대한 구원을 청하기에 앞서 하느님 앞에서는 누구나 죄인일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삶을 깊이 통회하는 자기성찰의 기도가 우선시 된다. 중세 가톨릭문화나 한국가톨릭 초기에는 이러한 사죄의식이 강조될 수 있었지만, 빠르게 변화되는 21세기에는 찬양과 감사, 지혜시편 등 다양한 기도문을 활용하는 방법도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기도문은 두 팀으로 나누어 목청껏 교환창으로 부르다 보면, 유족들은 북받쳐 오르는 곡(哭)을 대신할 간절함이, 조문객들은 자기 죄를 고해하는 개운함이 증가된다. 두 팀은 계 . 응(○ ●)으로 표기되고 팀원들은 자기 팀의 기도에 정성과 열정을 담는다. 전통상장례에서 상두꾼들에게만 맡기던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개인이 합친 우리가 함께 풀어나가는 적극적인 자세인 것이다. 시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편 130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주님 제 소리를 들어주소서. 

● 제가 비는 소리를 귀여겨들으소서.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 오히려 용서하심이 주님께 있사와 더더욱 당신을 섬기라 하시나이다. 

 제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오며 / 당신의 말씀을 기다리나이다. 

●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 제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 주님께는 자비가 있사옵고 풍요로운 구속이 있음이오니 

 당신께서는 그 모든 죄악에서 /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리이다. 

 

시편 51 

 

◎ 하느님 자비하시니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느님 자비하시니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 애련함이 크오시니 저의 죄를 없이하소서. 

 제 잘못을 말끔히 씻어주시고 제 허물을 깨끗이 없애주소서. 

● 저는 저의 죄를 알고 있사오며 / 저의 죄 항상 제 앞에 있삽나이다.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 죄를 얻었삽고 / 당신의 눈앞에서 죄를 지었사오니 

● 판결하심 공정하고 / 심판에 휘지 않으심이 드러나리이다. 

 보소서, 저는 죄 중에 생겨났고 / 제 어머니가 죄 중에 저를 배었나이다. 

● 당신께서는 마음의 진실을 반기시니 / 가슴 깊이 슬기를 제게 가르치시나이다. 

 정화수의 채로써 제게 뿌려주소서. / 저는 곧 깨끗하여지리이다. 

● 저를 씻어주소서. / 눈보다 더 희어지리이다. 

 기쁨과 즐거움을 돌려주시어 / 바수어진 뼈들이 춤추게 하소서. 

● 저의 죄에서 당신 얼굴 돌이키시고 / 저의 모든 허물을 없애주소서.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 제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 하소서. 

● 당신의 면전에서 저를 내치지 마옵시고 / 당신의 거룩한 얼을 거두지 마옵소서. 

 당신의 구원, 그 기쁨을 내게 도로 주시고 / 정성된 마음을 도로 굳혀주소서. 

● 악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오리니 / 죄인들이 당신께 돌아오리이다. 

 하느님, 저를 구하시는 하느님 / 피 흘린 죄벌에서 저를 구하소서. 

● 제 혀가 당신 정의를 높이 일컬으오리다. 

 주님 제 입시울을 열어주소서. / 제 입이 당신의 찬미 전하오리니 

● 제사는 당신께서 즐기지 않으시고 / 번제를 드리어도 받지 아니하시리이다. 

 하느님, 저의 제사는 통회의 정신 / 하느님께서는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을 낮추 아니 보시나이다. 

● 주님, 인자로이 시온을 돌보시고 / 예루살렘의 성을 다시 쌓아주소서. 

 법다운 제사와 제물과 번제를 / 그때에 받으시리니 

● 그때에는 사람들이 송아지들을 / 당신 제단 위에 바치리이다. 

◎ 하느님 자비하시니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100) 

 

이러한 연도소리는 제일 앞부분을 미-라로 시작하여 라음으로 부르다가 솔음으로 한 호흡 쉬는 반종지선율과, 라-도의 시작선율과 도-라의 중간선율, 라-미-라-라의 완전종지선율이 짝을 이루게 된다. 지역별로 첫 음의 높이, 도-라 하행선율의 위치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으며 이러한 세 가지 선율이 전체적인 연도소리의 틀을 이루게 된다. 이는 상여소리의 음조직이 지역별로 차별화되는 것과는 구별되는 요인이지만, 단순하고 반복적인 교환창법은 상여소리 중 받는 소리(메기고 받는 선후창)와 같이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통점을 지닌다. 

 

시편은 가톨릭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기도문으로 우리나라의 7·5조나 4·4조 등의 운율과는 거리가 먼 불규칙한 율격을 지닌다. 불규칙적인 가사는 음절수에 따라 1음절은 장(♩), 2음절은 단-장(♪♩), 3음절은 장-단-장(♩♪♩), 4음절(2음절반복)은 단-장-단-장(♪♩♪♩), 5음절(2음절+3음절)은 단-장-장-단-장(♪♩♩♪♩), 6음절(2음절반복)은 단-장-단-장-단-장(♪♩♪♩♪♩)의 리듬형으로 불리며 약간의 변형이 나타나기도 한다. 가사붙임은 말씀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선율의 화려함보다는 의미전달이 확실한 일자일음식으로 부른다. 

 

성인호칭기도(연옥도문)는 죽은 영혼의 구원에 대한 청원기도로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물론 성모 · 천사 · 모든 성인들을 부르며 간청하게 된다. 성인들의 이름은 1969년 이후 지역 공동체에 따라 첨삭이 가능해졌으며, 한 팀이 그분들을 한 분씩 호칭하면 다른 팀은 “자비를 베푸소서”, “망자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용서하소서”,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하고 응답하게 된다. _는 죽은 사람의 세례명을 넣게 되며, 같은 후렴으로 부르는 성인은 / 으로 구분한 후 이어서 기록했다. 이와 같은 표기는 뒤의 첨부악보에서도 나타난다. 다음은 성인호칭기도이다. 

 

 주님 _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그리스도님 _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_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그리스도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하늘에 계신 천주성부님 

● _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다음은 같은 후렴) 

 세상을 구원하신 천주성자님 / 천주성령님 /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 성모마리아님 

● _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다음은 같은 후렴) 

 천주의 성모님 /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 성미카엘 / 성가브리엘 

성라파엘 / 모든 천사와 대천사 / 세례자 성요한 / 성요셉 

모든 성조와 예언자 / 성베드로 / 성바오로 / 성안드레아 

성요한 / 성야고보(대) / 성토마스 / 성야고보(소) /성필립보 

성바르톨로메오 / 성시몬 

● _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다음은 같은 후렴) 

 성타대오 / 성마태오 / 성마르코 / 성루가 

주님의 모든 거룩한 제자 / 성스테파노 / 성라우렌시오 / 성빈첸시오 

모든 거룩한 순교자 / 성실베스테르 / 성그레고리오 / 성아우구스티노 

모든 거룩한 주교와 증거자 / 모든 거룩한 학자 / 성안토니오 

성베네딕토 / 성도미니코 / 성프란치스코 / 모든 거룩한 사제와 부제 

모든 거룩한 수도자와 은수자 /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 성녀 아녜스 

성녀 체칠리아 / 성녀 아가타 / 성녀 아나스타시아 / 모든 거룩한 동정녀와 부인 

성김대건안드레아 / 성정하상바오로 / 성범라우렌시오 

성녀 김효주아녜스와 김효임골룸바 / 우리나라의 모든 순교자 / 하느님의 모든 성인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_를 용서하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온갖 악에서 

● 주님 _를 구원하소서. (다음은 같은 후렴) 

 모든 죄에서 / 영원한 죽음에서 / 사람이 되신 주님의 신비로 

주님의 탄생으로 / 주님의 세례와 거룩한 재계로 

주님의 십자가와 수난으로 / 주님의 죽음과 묻힘으로 / 주님의 거룩한 부활로 

주님의 놀라운 승천으로 / 주님의 강림으로 / 심판날에 

 죄인들이 청하오니 

●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죽은 모든 이에게 / 영원한 안식을 주시기를 청하오니 

●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 _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 _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소서. 

● 그리스도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성인호칭기도는 현재 미사전례에서 불리는 그레고리오 성가와 상가(喪家)에서 불리는 우리가락의 성가로 구분된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가톨릭성가 295번으로, 시작선율을 도-라로 하행하여 라음으로 동일하게 부른 후 솔-라로 반종지하는 1선율, 도음 반복 후 레-시로 하행하는 성인호칭 부분의 2선율, 시음 반복 후 라-시-도 진행의 3선율, 도음 반복 후 시-라-도-레 진행의 4선율, 시-도-도-라-솔-라-솔-파 진행의 5선율, 도음 반복 후 시-레-미 진행의 6선율, 도음 반복 후 시-라-솔-라-시-도 진행의 7선율, 도-시-도(반복)-라-시-도 진행의 8선율로 구분된다. 이 8가지의 선율을 적절히 사용한 〈모든 성인호칭기도〉는 현재 종신서원식이나 서품식, 성당 봉헌식 등 큰 전례에서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성가대와 서원자들이 부르게 된다. 

 

우리가락의 성인호칭기도는 앞의 시편과 같이 라 -도로 상행하여 도음으로 부르는 시작선율과 도-라의 중간선율, 라-미-라-라의 완전종지 선율로 짜여진 1선율, 미-라-라-솔의 반종지 선율인 2선율, 도-라 진행의 3선율을 기도문의 길이에 따라 가감하며 부르게 된다. 많은 성인을 호칭하지만, 경우에 따라 3가지 선율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다른 성가에 비해 쉽게 배우고 부를 수 있다. 현재는 짧은 연도만 하는 경우가 많아 성인호칭기도는 생략되는 경우가 많으며, 미사전례에서는 그레고리오 성가에게 자리를 빼앗긴 실정이다. 

 

축문은 교황과 주교 · 신부를 위한 축문과 부모를 위한 축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일반문상객 · 자녀 · 친구의 기도로 구분된다. 이것은 다같이 합송(율독형태)하는 기도문이므로 논의에서 제외한다. 

 

찬미기도는 인간을 한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예수님께 대한 찬미와 간구를 노래한다. 앞의 시편이나 성인호칭과 같은 선율에 1, 2, 3절의 가사를 얹어 부른다. 다음은 찬미기도의 내용이다.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예수님을 찬미하며 구하오니 성모님과 모든 성인의 간구를 들으시고 

◎ 세상을 떠난 _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 그 죄를 용서 하소서 

● 예수님의 수난과 성모님의 고통을 찬미하며 구하오니 

◎ 세상을 떠난 _에게 모든 공로를 나누어 주시어 

● 일찍 하늘나라에 올라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찬미하며 구하오니 

◎ 세상을 떠난 _의 죄의 상처를 

 낫게 하소서 

● 예수님의 십자가를 찬미하며 구하오니 / 십자가의 열쇠로 천국문을 여시어 

◎ 세상을 떠난 _가 

● 일찍 들어가게 하소서 

 모든 죄인의 희망이신 예수님의 성심을 찬미하며 구하오니 

◎ 세상을 떠난 _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그의 괴로움을 없애시고 주님의 성심과 합하여 하나되게 하소서 

●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찬미하며 구하오니 

◎ 세상을 떠난 _에게 영원한 빛을 비추시어 

● 그가 어둠의 괴로움을 벗어나 광명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사람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찬미하며 구하오니 

◎ 세상을 떠난 _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연옥의 고통을 그치게 하소서 

● 어진 목자이신 예수님을 찬미하며 구하오니 

◎ 세상을 떠난 _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그는 주님의 우리 안에 같은 양이었사오니 모든 성인과 함께 하늘나라에 들게 하소서 

 믿는 이들을 그 행실대로 갚아주시는 예수님을 찬미하며 구하오니 

◎ 세상을 떠난 _의 믿음을 보시어 

 하늘나라에서 주님의 얼굴을 뵈오며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미하며 구하오니 

◎ 세상을 떠난 _를 죽음에서 일으키시어 

● 부활하게 하소서 

 모든 믿는 이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찬미하며 구하오니 

◎ 세상을 떠난 _의 고통을 보시고 어여삐 여기시어 

 성모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하소서 

 

찬미기도는 죽은 영혼에 대한 찬미와 구원을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모마리아님께 간절히 청하는 기도문이다. 앞서 자기성찰의 기도를 올리고, 죽은 영혼을 위한 청원기도를 목청껏 부른 후에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간구를 하게 된다. 찬미기도는 앞의 기도문들과 같이 두 팀으로 나누어 계 . 응( ●)으로 1절부터 3절까지 불렀으나, 현재는 위의 예시한 바와 같이 절의 구분이 없어지고 후렴(◎)을 추가한 가창법으로 부르게 된다. 이러한 가창법은 두 팀의 순서를 혼란시킬 뿐만 아니라 반드시 악보나 기도문을 보면서 불러야하는 번거로움을 초래한다. 

 

가톨릭 상장예절은 전통상장례와 마찬가지로 초상뿐만 아니라 입관, 출관, 운구와 하관, 우제(초우·재우·삼우)를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초기에는 이러한 모든 예절에 사용하는 기도문이 시편 129와 시편 50 중에서 선택하거나 하관 때 즈가리야 성가가 포함되는 정도로 간단했다. 그러나 현재는 시편 130, 시편 51, 성인호칭기도, 찬미경 등 초상에 해당하는 기도문만 위령기도(연도)로 정해 놓고 입관, 출관 등의 기도문은 현재(2003년 기준) 거의 시편으로 바뀌었으므로, 초기의 기도문과 현재의 기도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입렴은 죽은 후 하루 낮과 밤이 지나 죽음이 분명한 경우에 행하는 예식으로, 초기에는 성영 50, 성영 129, 연옥도문, 축문 중 한 가지 기도문을 외웠으나, 현재는 시편 113(114)과 113후편(115)으로 바뀌었다. 기도문이 끝나면 성수를 뿌린 후 염을 하고 입관한다. 출관할 때는 관 앞에 고상을 향하여 꿇어앉아 성영 129와 자비송을 부른 후 관을 들어 발인하였으나, 현재는 출관과 장례미사로 구분하여 출관에서는 시편41(42), 시편42(43), 시편 22(23)를 노래한다. 운구 때는 성영 50과 연옥도문, 찬미경을 행렬하는 길의 길이에 따라 선택해서 부를 수 있었으나 현재는 시편 117(118), 시편41(42), 시편92(93), 시편24(25), 시편118(119)로 바뀌었다. 하관은 각 사람이 차례로 무덤에 성수를 뿌린 후 즈가리야 성가를 불렀으나, 현재는 자비송에 이은 하관기도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상장예절 중 초상에 사용되는 시편 130, 시편 51, 성인호칭기도, 찬미기도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천주교가 한국에 들어온 초기에는 《천주성교공과》와 《천주성교예규》가 예식서로 사용되었으며, 내용의 첨삭으로 여러 차례 개편된 후, 공과는 1972년 《가톨릭기도서》로, 예규는 1991년 악보를 수록하면서 《상장예식》으로 변모하였다. 

 

초기부터 현재까지 연도에 사용된 시편 130과 51편은 하느님께 간청하는 탄원시편에 속하며, 죽은 영혼에 대한 구원을 청하기에 앞서 자기성찰의 기도를 우선시한다. 성인호칭기도는 죽은 영혼의 구원에 대한 청원기도이며, 찬미기도는 찬미와 간구를 노래하므로, 연도의 순서는 자기성찰-청원-찬미와 간구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문은 현재(2003) 다양한 시편으로 대체되었다. 탄원시편이 찬양시편과 감사시편을 추가하여 풍성해 진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기존의 가창법과 가사붙임, 선율의 규칙을 무시한 채 통일화를 이루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연도가 미사전례에서 불려질 수 있도록 전문가에 의한 악기반주 추가나 약간의 편곡은 시급한 일이지만, 예로부터 전해오는 가락을 임의로 변형시켜 보급시키는 일은 규제되어야할 것이다. 

 

선율은 라-도-도(시작)-도-라(중간)-라-미-라-라(종지)의 완전종지선율, 미-라(시작)-라-라(중간)-라-솔(종지)의반종지선율, 도-라 선율 등 세 가지 선율을 적절히 배합해서 우리가락으로 부르게 된다. 두 팀으로 나누어 목청껏 교환창으로 부르다보면, 유족들은 북받쳐 오르는 곡(哭)을 대신할 간절함이, 조문객들은 자기 죄를 성찰하는 개운함이 증가된다. 두 팀은 계 . 응( ●)으로 표기되고 팀원들은 자기 팀의 기도에 정성과 열정을 담는다. 전통상장례에서 상두꾼들에게만 맡기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개인이 합친 우리가 함께 참여하는 적극적인 자세이다. 

 

3) 바람직한 연도의 가창법 

 

현대적 어법에 의해 변화되는 연도의 기도문은 그 시기에 적절하게 사용하면 되지만, 한국적인 맛을 내는 시김새와 음절수에 따라 적용되는 리듬형,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선율형, 공동참여의식을 높이는 가창방법은 변화된 기도문과 잘 적용되어야 한다. 또한 기도문을 가사로 사용하는 전통가락의 연도는 미사전례에서 행하는 데 별 무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喪家나 가정에서만 부르거나 가창법, 가사붙임, 선율의 규칙성을 일부 무시한 악보가 보급된 실정이다. 

 

이번 항에서는 시김새와 리듬형, 선율형, 가창방법 및 미사전례에서 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보고 그에 따른 악보를 추가로 제시하고자 한다. 

 

연도에는 기도문의 내용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기성찰에 대한 후회, 반성, 부끄러움 등의 감정뿐 아니라 가족을 잃은 슬픔, 두려움, 서글픔과 부활에 대한 기쁨, 희망 등의 많은 감정이 녹아 있다. 이러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선율을 큰소리로 외쳐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밀어올리고, 흘러내리고, 흔드는 시김새를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민요와 일반적인 상여소리처럼 처절하거나 북받쳐 오르는듯한 격렬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희망이 조화된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야 한다. 이는 현전하는 정악의 계면조가 슬픔을 내면에서 승화시켜 평화롭게 표현하는 것과 같이 연도 역시 슬픔을 신앙심으로 승화시킨 표현법이라 할 수 있다. 

 

전통음악에서의 시김새는 한국적인 맛을 표현하는 것으로 음을 흔들어주는 搖聲, 밀어 올리는 推聲, 꺾어 내리는 退聲, 음을 강하게 굴러 내는 轉聲 등이 있다.101) 이러한 시김새는 기도문의 위나 아래에 부호로 표기하거나, 오선보에서는 음표 위와 옆에 표기할 수 있다. 즉, 부호에 대한 설명을 한 후 밀어 올리는 음은 -, 흘러내리는 음은 ?, 흔드는 음은 ~~로 표현한다면 노래 속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될 것으로 보인다. 

 

아래 음에서 위 음으로 상행할 때는 아래 음을 밀어 올려주고, 위 음에서 아래 음으로 하행할 때는 위 음을 미끄러지듯 흘러내린다. 흔드는 음은 시작음을 낮은 음에서 숙여 내거나 계속되는 동음반복에서 변화를 주고 싶을 때 흔들어준다. 그러나 미-라와 라-도로 상행하는 시작선율, 도-라로 하행하는 중간선율, 도음이나 라음의 동음 반복에서 이와 같은 시김새를 매번 똑같이 해야 하거나, 한 음에서 한 가지 형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연도를 부르는 동안에는 일정한 감정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는 감정이 북받쳐 오를 수도 있고 또 어느 순간에는 평안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감정의 기복은 모든 사람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을 수 없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 달라진 감정을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밀어 올리거나 흘러내리고, 흔들어 주면 되는 것이지 규칙에 의해 반드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는 가창자나 지역별 · 상황별로 나타나는 미묘한 변화로서 열린 구조를 지닌 전통음악의 묘미로 볼 수 있다. 

 

연도의 리듬형은 ♩과 ♪♩의 리듬을 더하여 만든 형태로서 황금비율을 지닌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황금비율이란 혼돈이 아닌 통일된 자연의 질서로서 해와 달, 남성과 여성, 음과 양 등 자연계의 상반된 두 에너지 사이에서 공유하거나 분리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이러한 비율은 1음절부터 6음절까지 나타나는 기도문에 적절히 적용되고 있으며, 군데군데 변화를 줄 수도 있다. 

 

1음절은 장(♩), 2음절은 단-장(♪♩), 3음절은 장-단-장(♩♪♩), 4음절(2음절 반복)은 단-장-단-장(♪♩♪♩), 5음절(2음절+3음절)은 단-장-장-단-장(♪♩♩♪♩), 6음절(2음절 반복)은 단-장-단-장-단-장(♪♩♪♩♪♩)의 리듬형이다. 이러한 낱말의 음절수에 따라서 시편 130의 앞부분을 표기하면 다음과 같아진다. 

 

<표1> 시편 130 

 

연도에서 사용하는 시편, 성인호칭기도, 찬미기도의 기도문뿐 아니라 불규칙적인 운율을 지닌 기도문에서 이와 같은 리듬형을 적용한다면 아무리 긴 기도문이라도 부르기가 수월할 것이다. 

 

연도의 선율형은 라-도-도(시작)-도-라(중간)-라-미-라-라(종지)의 완전종지선율, 미-라(시작)-라(중간)-라-솔(종지)의 반종지선율, 도-라선율 등 크게 세 가지 선율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미-라로 시작한 선율은 반드시 라-솔로만 반종지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라-미-라-라와 같은 완전종지를 할 수도 있다. 라-도-도의 시작선율 역시 완전종지뿐만 아니라 반종지를 할 수도 있으며, 중간선율 역시 도-도-라, 라-라-도-라 등의 변형이 있을 수 있고, 성인호칭기도에서는 시작선율 없이 중간선율과 종지선율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기본형인 3가지 선율 형태 속에 내재된 가창자나 지역별의 미묘한 변화로서 합송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융통성으로 인정해야 한다. 반종지선율과 완전종지선율로 이루어진 시편 130의 앞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악보3> 시편 130 

 

연도는 초기 교회에서 행해지던 가창법과 조선시대 제례의식에서 행해지던 등가와 헌가의 교대 연주법을 받아들여 상호 교환창으로 정착되었으며, 이는 한국 실정에 맞는 공동 참여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16 · 17세기에는 이앙법의 보급과 함께 등장한 두레가 품앗이와 함께 농업을 위주로 한 전통사회에서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보편화되었으며, 18세기의 도시 발달 역시 민중들의 적극적인 참여의식을 초래하였다. 이 시기에 가톨릭 신자들은 공동체인 명도회를 설립(1797~1800)하거나 초상이 나면 서로 돕는 연령회(1886)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연령회의 회원들은 개개인이 그 집의 주인과 같은 참여의식을 갖고 연도를 행하는 것은 물론 장례 전반에 걸쳐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연도의 가창법은 사제나 독창자가 주관하지 않고 공동이 주관하는 기도형태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모두가 참례한다는 참여의식이 강하게 작용된다. 그러므로 신자들 개개인에 의해 적극적인 형태로 연도를 바치고 계승하는 풍토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환창은 개인주의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집단주의의 표현으로 보인다. 

 

연도는 긴 기도문을 낭송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장례노래나 메나리토리, 창홀성 등의 가락을 따르고, 우리말의 억양과 장단에 따라 연도만의 독특한 선율과 리듬형을 갖추었다. 또한 한국 가톨릭 초기부터 현재까지 여느 민요보다도 많이 불리며 신자들의 애환과 통회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제도나 환경에 의해 사라지는 전통장례노래와 같이 이를 방치하거나 인위적으로 변형시킬 것이 아니라, 위에 든 특징들을 충실하게 보존함은 물론 장례 미사전례에서도 행해져야 할 것이다. 기도문의 내용은 참회나 탄원 이외에 찬양과 감사 · 지혜 등 다양한 기도문을 활용하여 장례미사뿐 아니라 주일미사에서도 적극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미사전례의 개정에서는 “시대의 변천으로 없어졌던 어떤 것들도 적절하고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면, 교부들의 옛 규범에 따라 복구되어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102) 시대적 변천인 1969년에 공포된 장례예식으로 인해 연도를 밤샘기도에서만 행하도록 규정한 것은 폐지하고, 170여 년간 이어온 연도를 미사전례음악으로 복구해야만 한다. 연도가 미사전례에서 불려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에 의한 악기반주 추가나 약간의 편곡이 시급하지만, 예로부터 전해오는 가락을 임의로 변형시켜 보급시키는 일은 규제해야 한다. 

 

조선시대 전례음악인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것과 같이 연도 역시 문화재로 지정된다면 우리 민족의 예술성이나 국민성을 드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존의 연도는 문화재로 지정하고 다양한 기도문을 활용한 전례용 연도는 입당 성가나 자비송으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서양의 전례를 따른 연도가 한국의 전통적인 소리로 정착하게 된 가치와 특징을 일반인뿐 아니라 음악인들에게도 충분히 숙지시켜야 할 것이다. 성 음악에 관한 현대교회의 입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온 교회의 음악 전통은 다른 예술 표현들 가운데에서 매우 뛰어난, 그 가치를 이루다 헤아릴 수 없는 보고이다. 그것은 특히 말씀이 결부된 거룩한 노래로서 성대한 전례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 성음악은 전례 행위와 더욱 밀접히 결합되면 될수록 더더욱 거룩해 질 것이다. 성음악은 기도를 감미롭게 표현하거나 또는 한마음을 이루도록 북돋아 주거나 또는 거룩한 예식을 더욱 성대하고 풍요롭게 꾸며준다. 그리고 교회는 마땅한 자질을 갖춘 진정한 예술의 모든 형태를 인정하며, 이를 하느님 예배에 받아들이고 있다.103) 

 

이를 연도에 적용한다면, 연도는 말씀이 결부된 거룩한 노래로서 다른 예술표현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며, 전례 행위와 결합하면 할수록 더욱 거룩해질 것이다. 이러한 자질을 충분히 갖춘 연도의 모든 형태를 인정하여, 하느님 예배에 받아들여야만 한다. 초기 선교사들이나 사제들에 의해 연도의 기도문 형태가 확정되긴 했지만, 현재까지도 연도의 기도문은 시편, 성인호칭기도, 찬미기도 등의 말씀을 일자일음식의 가사붙임과 교환창으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연도는 한국가톨릭교회를 드러내는 음악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었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무형문화재는 1964년부터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다.104) 음악부문을 살펴보면, 제1호가 종묘제례악이고, 제5호는 판소리, 제11호는 농악, 제50호는 영산재(범패), 제51호는 남도들노래, 제57호는 경기민요, 제85호는 문묘제례악 등 제례음악뿐만 아니라 정악, 민속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지정되어 있다. 연도가 문화재로 지정받아야 할 이유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문화를 이끌어가는 주역들이 전례음악이나 문화재로 지정해야 하는 연도의 당위성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연도는 초기 교회에서 행해지던 가창법과 조선시대 제례의식에서 행해지던 등가와 헌가의 교대 연주법을 받아들여 상호 교환창으로 정착되었다. 이는 개인주의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한국인의 공동 참여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자들 개개인에 의해 적극적인 형태로 연도를 바치고 계승하는 풍토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긴 기도문을 낭송하는 과정에서는 전통적인 장례노래나 메나리토리, 창홀성 등의 가락을 따르고, 우리말의 억양과 장단에 따라 연도만의 독특한 선율과 리듬형을 갖추었다. 또한 한국가톨릭 초기부터 현재까지 여느 민요보다도 많이 불리며 신자들의 애환과 통회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제도나 환경에 의해 사라지는 전통장례노래와 같이 이를 방치하거나 인위적으로 변형시킬 것이 아니라, 미사전례음악이나 문화재로 지정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한국가톨릭 전례음악을 요약해 보면, 가톨릭전례는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갈등과 변화를 겪어왔다. 6세기에 미사(Missa)라는 용어가 통용되기 시작하여, 미사전문인 《성무집전서》가 나왔으며, 16세기에 이르러 통일미사경본이 출간되어 20세기까지 지속되었다. 한국의 초기 미사형태는 2년간의 가성직시기를 거쳐 중국인 주문모(야고보) 신부에 의한 첫 미사가 거행되었고, 우리가락의 천주가사와 연도는 몇몇 지성인들과 최양업 신부에 의해 만들어져 일부 전례노래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우리가락의 노래들은 미사전례에서 밀려나고 창미사와 그레고리오 성가가 미사전례음악으로 행해진다. 20세기에 이르러 전례헌장(1963)이 반포되었지만, 미사전례에서 사용되는 성가는 서양음악 어법으로 작곡된 창작음악이 대부분이다. 

 

천주교가 한국에 들어온 초기에는 《천주성교공과》와 《천주성교예규》가 예식서로 사용되었으며, 내용의 첨삭으로 여러 차례 개편된 후, 공과는 1972년 《가톨릭기도서》로, 예규는 1991년 악보를 수록하면서 《상장예식》으로 변모하였다. 초기부터 현재까지 연도에 사용된 시편 130과 51편은 하느님께 간청하는 탄원시편에 속하며, 죽은 영혼에 대한 구원을 청하기에 앞서 자기성찰의 기도를 우선시한다. 성인호칭기도는 죽은 영혼의 구원에 대한 청원기도이며, 찬미기도는 찬미와 간구를 노래하므로, 연도의 순서는 자기성찰 -청원 -찬미와 간구가 된다. 

 

연도는 초기 교회에서 행해지던 가창법과 조선시대 전례음악에서 행해지던 등가와 헌가의 연주법 및 상여소리의 선후창 방식을 받아들여 우리 실정에 맞는 교환창으로 정착되었다. 이는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한국인의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서 급변하는 현재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원동력이다. 

 

긴 기도문을 낭송하는 과정에서는 전통적인 메나리토리와 창홀성 등의 가락을 따르고, 문묘악의 일자일음식 가사붙임과 한글의 억양, 장단을 절충한 연도만의 독특한 가락과 리듬형을 갖추었다. 또한 한국 가톨릭 초기부터 현재까지 여느 민요나 전례음악보다도 많이 불리며 신자들의 애환과 통회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제도나 환경에 의해 사라지는 전통장례노래와 같이 이를 방치하거나 인위적으로 변형시킬 것이 아니라, 전문가에 의한 전례음악 수용과 무형문화재 지정이 우리 세대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5. 결론 

 

한국에 가톨릭이 들어온 시기의 전통상장례는 양반에 의한 지배층에서 주로 지켜졌으며, 1894년 갑오개혁 이후부터 신분제도의 붕괴에 의해 서민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듯 균일하게 행해지던 가례는 유교의 쇠퇴로 인해 종교별 · 문중별 · 지역별 등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행하고 있다. 

 

전통상장례 중에는 상여소리와 무덤 다지는 소리 중 일부 장례노래만이 전승되고 있는 실정이며, 이러한 장례노래는 전문 상두꾼들에 의해 선후창방식(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불리는 특징이 있다. 종교별로 다양하게 행하는 제례음악의 대부분은 1960년대 이후부터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고, 문묘제례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다. 이외에도 불교의식인 영산재(49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고, 무속에서 행하는 진도씻김굿(72호), 풍어제(82호), 동해안별신굿(82-1호), 서울새남굿(104호) 등 종교별로 행하는 제례음악이 대부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 다양하게 행해지던 장례예절은 1614년에 세 가지 형태로 압축되었으며, 1636에는 제사문제에 대한 전례논쟁이 시작되었고, 1742년에 반포된 제사금지령의 영향으로 한국 가톨릭에서는 1800년대에 연도문화를 형성하였다. 19세기의 종교인은 초혼(고복), 피발(머리를 풀어헤침), 슬피 우는 것, 신주를 쓰는 것 등의 절차는 생략했지만, 염습과 입관, 발인은 과거의 예를 따라 행하고, 대상 · 소상 · 기제사에는 가족 및 친척이 둘러앉아 기도로 제사를 대신했다. 그러나 1969년에 공포된 장례예식서로 인해 우리나라는 밤샘기도 부분만 연도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초기 미사형태는 2년간의 가성직시기를 거쳐 중국인 주문모(야고보) 신부에 의한 첫 미사가 거행되었다. 교인들의 신심과 교리실천을 강조하기 위한 우리가락의 천주가사가 주문모 신부의 입국 전에 발생(1784~1801)하였고, 한국인 최양업 신부 역시 천주가사 여러 편을 만들어 박해시기에 발전기(1801~1886)를 맞이하게 된다. 일부 전례에서는 천주가사가 연도와 함께 일반신자들에게 불리었지만, 1887년 설립된 예수성심신학교에서 라틴어 가사의 그레고리오 성가 교육이 실시되면서 위령미사에까지 그레고리오 성가가 불리게 된다. 그 후 우리가락의 노래들은 미사전례에서 밀려나고 창미사와 그레고리오 성가가 미사전례음악으로 행해진다. 20세기에 이르러 전례헌장(1963)이 반포되었지만, 미사전례에서 사용되는 성가는 서양음악어법으로 작곡된 창작음악이 대부분이며, 1990년대에 등장한 연도악보집으로 인해 옛 가락의 연도는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전통상장례 속에서 170여 년간 끊임없이 이어온 가톨릭 연도의 특징을 밝혀서 시간과 공간에 제한되지 않고 부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도의 가사는 자기성찰, 찬미와 간구 이외에도 성경을 토대로 한 다양한 내용이 추가되어야 한다. 

 

둘째, 말씀(내용)은 음절수에 따른 적절한 리듬형을 익혀서 일자일음식으로 부른다. 

 

셋째, 선율은 시작-중간-종지선율을 상황에 따라 적절히 배합해서 우리가락으로 부른다. 

 

넷째, 가창법은 성가대나 사제와 주고받는 선후창이 아닌, 두 팀이 주고받는 교환창으로 부른다. 

 

다섯째, 시김새는 미 · 솔 · 라 · 도의 구성음 중 밀어 올리고 흘러내리고 흔들어 주는 시김새를 적절히 사용하여 큰 소리로 부른다. 

 

여섯째, 미사전례음악으로 복구해야만 한다. 연도가 미사전례에서 불려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에 의한 악기반주 추가나 약간의 편곡이 시급하지만, 예로부터 전해오는 가락을 임의로 변형시켜 보급시키는 일은 규제해야 한다. 

 

조선시대 전례음악인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것과 같이 연도 역시 문화재로 지정된다면 우리 민족의 예술성이나 국민성을 드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존의 연도는 문화재로 지정하고, 다양한 기도문을 활용한 전례용 연도는 입당송이나 자비송으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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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사순, 〈한국문화 탐구의 의의〉, 《민족문화연구》 30, 고대민족문화연구소, 1997, 1~24쪽. 

2) 중인 계층은 하급 장교 · 역관 · 의관 · 산원 등 전문직인들이며, 양인은 농업 · 상업 · 공업 종사자들, 천민은 노비 · 광대 · 무당 · 백정 등이다(최재건, 《조선 후기 서학의 수용과 발전》, 한들출판사, 2005, 24~25쪽). 

3) 권도희, 〈20세기 전반기의 민속악계 형성에 관한 음악사회학적 연구〉,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2003, 18~34쪽. 

4) 최재건, 앞의 책, 23~28쪽. 

5) 이화형, 《한국문화의 이해 - 고전문헌을 중심으로》, 집문당, 1998, 113~127쪽. 

6) 신수영, 〈《언문지(諺文志)》의 체제와 유희(柳僖)의 언어관 연구〉, 이화여대 석사학위논문, 2001. 

7) 국립민속박물관, 《생활문화와 옛문서》, 국립민속박물관, 1991, 144~145쪽. 

8) 이화형, 《한국문화의 이해 - 고전문헌을 중심으로》, 15~20쪽. 

9) 이우성 · 강만길, 《한국의 역사인식》 하, 창작과비평사, 1976, 462쪽. 

10) 최재건, 앞의 책, 107~120쪽. 

11) 졸고, 〈한국천주교 장례노래(연도)에 관한 연구〉, 한양대 박사학위논문, 2005, 50~63쪽. 

12) 김종성, 《조선후기 문화의 중흥과 사회의 변동》, 문예마당, 2004, 202~217쪽. 

13) 김종성, 앞의 책, 202~217쪽. 

14) 송방송, 《한국음악통사》, 일조각, 1984, 367~515쪽. 

15) 송방송, 앞의 책, 377쪽. 

16) www.aks.ac.kr / 한국학자료원문검색 / 음성자료 / 한국민요대관 / (강등학, 〈한국민요의 사적 전개양상〉, 《구비문학》 5, 한국구비문학회, 1998, 100~113쪽) 

17) “대중은 조선후기에 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상공업이나 임노동과 같은 근대적 생산양식에 생활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경제적 관계를 바탕으로 중세적 신분질서나 이념적 질곡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집단이다”(이노형, 《한국전통 대중가요의 연구》, 울산대학교출판부, 1994, 25쪽). 

18) 윤이흠 외, 《한국인의 종교관》, 서울대출판부, 2001, 141~162쪽. 

19) 윤이흠, 〈한국종교문화의 전개〉, 《한국의 종교문화와 예술》, 문화부, 1991, 27~46쪽. 

20) 장철수, 〈한국종교의 의례와 예절〉,《한국의 종교문화와 예술》, 문화부, 1991, 281~299쪽. 

21) H. G. Underwood, The Call of Korea : Political-Social-Religious, New York : Fleming H. Revell company, 1908, 85쪽(김형개, 〈한국기독교의 신앙구조와 신앙형태 변천에 관한 연구 - 1895년 전후를 중심으로〉, 평택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4, 19쪽 재인용). 

22)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 역사〉 1, 한길사, 1996, 360쪽(김형개, 〈한국기독교의 신앙구조와 신앙형태 변천에 관한 연구 - 1895년 전후를 중심으로〉재인용). 

23) 장철수, 앞의 책, 296~298쪽. 

24) 김형개, 앞의 책, 16~19쪽. 

25) 이영춘, 〈상례와 제례〉, 《조선시대 생활사》, 역사비평사, 1996, 46~82쪽. 

26) 윤이흠, 〈한국 상장례의 현황과 문제점〉, 《민족혼》 5, 바람과 물결, 1991, 8~13쪽. 

27) 이해영, 〈전통적 가족가치와 그 변화과정〉, 《한국의 사회와 문화》 Ⅲ, 45~48쪽. 28) 최재건, 앞의 책, 341쪽. 

29) 한상복, 〈한국인의 공동체 의식에 관한 연구〉, 《한국의 사회와 문화》 Ⅲ,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30) 상종열, 《도해 조선왕조실록》, 이다미디어, 2002. 

31) 한국고문서학회, 《조선시대 생활사》, 역사비평사, 1996. 

32) 김내창, 《조선풍속사》, 사회과학출판사, 1992(한국문화사에서 1998년에 영인), 176~183쪽. 

33) 《增補文獻備考》 88, 禮考, 私葬禮 《高麗史》 64, 禮志 6(김용덕,〈상장례 풍속의 사적 고찰〉, 《비교민속학》11, 1994). 

34) 조선일보사,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올바른 가정의례》, 조광출판사, 1997. 

35) 신판귀, 〈한국의 상장례문화에 관한 연구〉, 명지대 석사논문, 1999, 58~59쪽. 

36) 장철수, 앞의 책, 281~300쪽. 

37) 김용덕, 앞의 책, 189~213쪽. 

38) 이영춘, 앞의 책, 47쪽. 

39) 이재, 《국역사례편람》, 우봉이씨대종회, 1992; 문옥배 외, 《조선시대관혼상제 : 증보사례편람》 Ⅱ~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조선일보사, 앞의 책, 132~174쪽 신판귀, 앞의 책, 30~53쪽(사례편람에서는 19절차로, 가정의례와 논문에서는 25절차로 설명하는데, 이 글에서는 25절차를 따르고자 한다). 

40) 절차에 있어서는 19나 25에 큰 차이가 없지만, 용어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므로 19절차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初終(갓 돌아갔을 때), 습, 소렴, 대렴, 성복, 弔(조문), 問喪(초상났음을 들음), 치장, 천구, 발인, 及墓(무덤에 도착함), 반곡, 우제, 졸곡, ?祭祀, 소상, 대상, 담, 길제. 

41) 김용덕, 앞의 책, 207쪽 : 이희승 감수, 《국어사전》, 민중서림, 2001, 2286쪽. 

42) 이광규, 《한국전통문화의 구조적 이해》,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 80~103쪽. 

43) 장철수, 〈한국 상장례의 변천〉, 《민족혼》 5, 바람과 물결, 1991, 25~49쪽. 

44) 문옥배 외, 《조선시대관혼상제 : 증보사례편람》 Ⅱ, 259~260쪽, 二七四-二七六. 45) 장철수, 〈한국 상장례의 변천〉, 28쪽. 

46) 윤이흠, 앞의 책, 10쪽. 

47) 정의철, 〈한국 가톨릭의 상장례〉, 《민족혼》 5, 바람과물결, 1991, 91~100쪽; 이완희 〈전례사적 맥락에서 살펴본 장례예식의 본질적 의미〉, 《사목》 27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1, 16~31쪽. 

48) 최재건, 앞의 책, 297~313쪽. 

49) Julia Ching, Confucianism and Christianity : A Comparative Study, Tokyo : Konda-nsha International, 1977(최재건, 앞의 책에서 재인용). 

50) 이만채, 〈홍낙안의 편지〉외, 《闢衛編》 3(최재건, 앞의 책에서 재인용); 윤민구 역주, 《교황청자료모음집 - 한국초기 교회에 관한》, 가톨릭출판사, 2000, 104~105쪽, 1794년12월 1일자 편지. 

51) 김종성, 앞의 책, 79쪽. 

52) 최재건, 앞의 책, 297~313쪽. 

53) 박일영, 〈한국 천주교회의 토착화 운동〉, 《한국 천주교회사의 성찰 - 최석우 신부 수품 50주년 기념 논총》 2, 1081쪽. 

54) 정하상 지음 · 윤민구 번역, 《上宰相書》, 성황석두 루가서원, 1999; 정하상, 〈上宰相書〉, 《순교자와 증거자들》; 최재건, 앞의 책, 304~305쪽. 

55) 강요한, 〈연도의 역사〉, 2002, noam.diocc.or.kr/cgi-bin(졸고,〈한국천주교 장례노래 

에 관한 연구〉). 

56) 조선우 외 편저, 《한국 가톨릭교회 음악사료집》 2, 부산가톨릭음악원, 1996, 6~7쪽; 한국교회사연구소 역, 《뮈텔 주교 일기》 1, 53, 178쪽; 2, 67~68쪽, 202쪽. 

57) 왜관수도원장 이듸모테오 감준, 《셩교례규》 데오판, 텬쥬강생 일천구백오십오년, 상장규구. 

58)《聖敎禮規 二券》한국교회사연구소 고서번호13761/0001, 48~72쪽; 왜관수도원장 이듸모테오 감준, 《셩교례규》 데오판, 텬쥬강생 일천구백오십오년, 192~220쪽(책의 내용은 같지만 고서는 옛 말투가 더 많아서 1950년대 것으로 기록하였으며, 이 내용은 일곱째 질문과 답에 해당한다). 

59) 《셩교례규》 데오판, 207쪽. 

60) 낭송은 고성하여 외우는 것을 말한다(왜관수도원장 이 듸모테오 감준, 《셩교례규》 1955, 111쪽). 

61)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2, 55쪽, 81항 장례식의 개정. 

62) 정의철, 〈한국 가톨릭의 상장례〉, 《민족혼》 5, 바람과 물결, 1991, 91~100쪽. 

63) 이완희, 〈전례사적 맥락에서 살펴본 장례예식의 본질적 의미〉, 《사목》 274, 2001, 16~31쪽. 

64) 정의철, 〈한국 가톨릭의 상장례〉, 99쪽. 

65) 연도를 수록한 《성교예규》는 한문본 《聖敎禮規》 ⇒ 《텬쥬셩교례규》(1850~1910) ⇒ 《성교예규》(1991) ⇒ 《상장예식》(2003)으로 변천했으나, 각 교구나 성당에서는 필요한 기도문을 발췌해서 《연도》 혹은 《가톨릭연도》, 《위령기도》를 만들어 사용한다. 본고에서는 《상장예식》의 내용을 따르고자 한다. 

66) 시편의 번호는 히브리어 성서와 칠십인역의 번호 매김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난다(《한국가톨릭대사전》 8, 5348쪽). 

67) 이광규, 《한국전통문화의 구조적 이해》, 95~103쪽. 

68) 최상일,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② : 의례요 · 유흥요 · 서사민요 · 기타민요》, 돌베게, 2002, 58~59쪽. 

69) 최상일, 앞의 책, 61쪽. 

70) 최상일, 앞의 책, 62~68쪽. 

71)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불리는 전통음악적 특징을 그 지역에서 많이 불리는 〈메나리〉로 표현한다. 

72) 전라도와 충청도 일부 지역에서 불리는 전통음악적 특징을 말한다. 

73) 권오성, 〈향토조 선율의 골격 - 만가선율을 중심으로〉, 《예술논문집》 16, 대한민국예술원, 1977, 116~130쪽. 

74) 최헌, 〈상여소리 선율구조 분석〉, 《한국민요학》 7, 한국민요학회, 1999, 235~262쪽. 

75) 최상일, 앞의 책, 69~74쪽. 

76) 최상일, 앞의 책, 77쪽. 

77) 최상일, 앞의 책, 82~83쪽. 

78) 국가적 차원에서 지내던 종묘단(인신제) · 원구단(천신제) · 사직단(지신제) 등의 제사규모에 따라 대사 · 중사 · 소사로 구별한다. 

79) 김영운, 〈제례의식 창홀자료의 음악적 연구〉, 《朝鮮時代 儀禮資料集成》 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3쪽. 

80) 〈제례의식 창홀자료의 음악적 연구〉에서 김영운은 ‘창홀’은 홀기를 대중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낭독하는 행위로, ‘창홀성’은 홀기를 낭독하는 소리로 구별하고 있다. 

81) 회례는 궁중의 모든 신하들이 임금과 같이 하는 의식으로 제례와는 구별된다. 

82) 희문은 문덕을 칭송하는 보태평의 첫 곡으로서 5언 12귀로 된 세종 때의 가사가 세조 

때 4귀로 준 것이다(이혜구 역주, 《세종장헌대왕실록》 22 악보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3, 73~159쪽). 

83) 세조 때는 첫째구가 列聖開熙運K(열성개희운), 둘째구가 炳蔚文治昌(병위문치창)이지만, 현재는 열조이손모 병위혁엽창으로 바뀌었다. 

84) 제례악에 편성되는 관현악단으로서 대뜰 위에 편성되는 악단을 등가, 대뜰 아래 낮은 곳에 편성되는 악단은 헌가라고 하는데, 동시에 연주하는 경우는 없고 교대로 독립된 음악을 연주한다. 

85) 이혜구 역주, 《세종장헌대왕실록》 22, 64쪽, 악보1. 

86) 종묘제례에는 없는 절차로서 공악과 망료가 있는데, 공악은 의식의 진행없이 음악만 연주되는 절차이고, 망료는 축문을 불사르는 절차이다. 

87) 김영운, 〈제례의식 창홀자료의 음악적 연구〉 3~140쪽, 창홀성에 대한 내용은 모두 이 논문을 참고한 것이다. 

88) 최기복, 〈미사전례의 한국화 모색〉, 《이성과 신앙》, 133~195쪽. 

89) 윤선민, 〈한국 가톨릭교회 미사곡의 역사적 변천과 그 특징〉 

90) 최필선, 〈초기 한국 가톨릭교회의 민족교회음악〉, 《음악과 민족》4, 61~87쪽; 차인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한 성가의 수용〉, 《교회사연구》 5, 한국교회사연구소. 307~327쪽. 

91) 중국인 주문모(야고보) 신부는 1794년 12월 23일 입국하여 1795년 부활절(4월 5일)에 미사를 거행하였는데, 조선왕국에서 처음 봉헌되는 정식미사(primum legis Evangelicae sacrificium : 복음적 법의 첫 제사)이다(《교황청 자료모음집》, 136∼137쪽). 

92) 최필선, 〈초기 한국 가톨릭교회의 민족교회음악〉, 《음악과 민족》 4, 66쪽. 

93) 윤선민, 〈한국 가톨릭교회 미사곡의 역사적 변천과 그 특징〉. 

94) 최기복, 〈미사전례의 한국화 모색〉, 《이성과 신앙》, 181쪽. 

95) 야후 백과사전, 레퀴엠 

96) 최기복, 〈미사전례의 한국화 모색〉, 180~182쪽. 

97) 졸고, 42~63쪽. 

98) 초기에는 중국과 같이 ‘성영’이라 했으나, 1970년대 이후 ‘시편’으로 바뀌었으며, 시편의 번호는 히브리어 성서와 칠십인역의 시편번호 매김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난다. 논의에 있어서는 현재의 기도문을 따르고자 한다. 

99) 임승필, 《지혜문학 · 시편》, 생활성서사, 1998, 89~127쪽. 

100)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상장예식》, 가톨릭출판사, 2003, 64~75쪽. 

101) 박현주, 〈국악보에 나타난 시김새 연구 및 초등음악 교육과정을 위한 학습내용 선정〉, 《국악교육》 18, 한국국악교육학회, 2000, 65~132쪽(졸고,〈한국 천주교 장례노래에 관한 연구〉에서 재인용). 

102) 《제2차 바티칸 공의회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2, 46쪽, 전례헌장 50항. 

103) 앞의 책, 64~65쪽, 전례헌장 112항(졸고. 재인용). 

104) 문화재연구회, 《중요무형문화재》 1, 대원사, 1999. 

 

 

참고악보 

* 상장예식(2003년) 참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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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연구 제28집, 2007년 6월, 강영애(한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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