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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제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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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06-24 조회수4,312 추천수69 반대(0) 신고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루가 1장 57-66절, 80절

 

"아기는 날로 몸과 마음이 굳세게 자라났으며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사제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

 

전통적으로 저희 살레시오회는 매년 6월 24일 세례자 요한의 탄생 대축일에 사제 및 부제 서품식을 갖습니다. 내일도 6명의 사랑스런 후배들이 사제, 부제로 서품됩니다. 저도 사제로 서품된 햇수가 어느새 10손가락을 다 사용해야될 정도로 세월이 흘렀습니다. 돌아보니 요란스럽기만 했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세월이었습니다.

 

내일 서품식을 앞둔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오래 전 제가 사제서품을 준비하던 피정 때 두고두고 묵상하던 시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김용석 시인의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였습니다.

 

"나는 꽃이예요. 잎은 나무에게 주고 꽃은 솔방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게예요. 가을이 오면"

 

철저하게도 자신을 내어놓은 후에 미련 없이 떨어져 내리는 꽃잎들! 바로 우리 사제들이 추구해야할 삶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국 사제직의 본질은 세상으로부터의 죽음을 바탕으로 한 자기 희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 여름 탄생될 모든 사제들이 강렬한 예수님 체험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세상에 죽고 그 세상 한가운데서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들, 바로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세례자 요한 같은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새사제들의 삶이 예수님 그분으로 인해 행복한 삶, 예수님 그분만을 선택함으로 인해 행복한 삶이 되길 기원합니다. 예수님 그분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를 확연히 깨달았기에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초연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모든 비본질적이고 부차적인 것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삶의 중심을 옮겨가는 새사제들이시길 기원합니다.

 

한 야생오리의 이야기는 우리 새사제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느 가을이었습니다. 지중해 해변에 살고 있던 한 떼의 야생오리들이 북쪽으로 날아가던 중에 네덜란드 상공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오랜 비행으로 인해 한 야생오리가 완전히 지치고 말았습니다. 날개는 아프지, 삭신은 쑤셔오지, 배는 고파죽겠지... 그런 야생오리 눈앞에 아주 황홀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저 아래, 한 마당 넓은 집 안에서는 한 떼의 집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평화롭게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힘이 빠져버린 그 야생오리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무리를 떠나 그 집 마당에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딱 하루만"하고 맹서했었는데,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었습니다. 사흘은 또 일주일, 한달, 두달, 세달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야생오리는 집오리들의 환대 속에 너무도 잘 먹고 잘 쉬면서 아쉬움 없이 잘 지냈지요.

 

그렇게 계절이 흘러서 어느새 이듬해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작년처럼 한 떼의 야생오리들이 해질 무렵 빨갛게 물든 가을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북쪽으로 날아갔습니다.

 

그 순간 야생오리는 있는 힘을 다해서 날아오르려고 했지만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몸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지만 그냥 한평생 집오리로 살게 되었습니다.

 

사제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사제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성무일도서요 성서, 묵주입니다. 주님의 은총 안에 지속적으로 성화된 삶을 사는 것, 그 이외의 것들은 다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주어진 여건이 호화로우면 호화로울수록 버리고 떠나기가 힘들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현실적인 능력, 경제적인 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하느님께 의탁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사제들이 자신을 비우면 비울수록 그 빈자리에 하느님이란 새로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사제로서의 인생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자기 자신에 완전히 죽을 때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떠날 때입니다. 그래서 그 떠난 자리에 하느님 그분께서 머무르실 때입니다.

 

새사제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그릇된 집착에서 떠나며, 이 세상에 살면서도 천국을 사는 사제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사제서품식의 핵심에 바닥에 엎드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몸짓이지요. 성인호칭기도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모든 신자들이 보는 앞에서 바닥에서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겠다는 장엄한 약속이지요.

 

결국 사제생활의 묘미는 쌓아 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허물어트리고 바닥으로 끊임없이 내려가는데 있음을 모든 새사제들이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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