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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0년 2월 3일[(녹) 연중 제4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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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3 조회수28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2월 3일 월요일

[(녹)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말씀의초대

다윗 임금이 압살롬의 반란으로

쫓기게 되자, 그는 주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에게 명령하신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제1독서

<압살롬에게서 달아납시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5,13-14.30; 16,5-13ㄱ
그 무렵 13 전령 하나가

다윗에게 와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렸습니다.”
14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어서들 달아납시다.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압살롬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오.
서둘러 떠나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가 서둘러 우리를 따라잡아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고,

칼날로 이 도성을 칠 것이오.”
30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계속 올라갔다.

16,5 다윗 임금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울 집안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그곳에서

나왔는데, 그의 이름은 게라의

아들 시므이였다. 그는 나오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6 온 백성과 모든 용사가

임금 좌우에 있는데도,
그는 다윗과 다윗 임금의

모든 신하에게 돌을 던졌다.
7 시므이는 이렇게 말하며

저주하였다. “꺼져라, 꺼져!

이 살인자야, 이 무뢰한아!
8 사울의 왕위를 차지한 너에게
주님께서 그 집안의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돌리시고, 그 왕위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
너는 살인자다. 이제 재앙이

너에게 닥쳤구나.”
9 그때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 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
10 그러나 임금은 “츠루야의

아들들이여, 그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 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11 그러면서 다윗이 아비사이와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 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12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
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13 다윗과 그 부하들은 길을 걸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2-3.4-5.6-8ㄱㄴ

(◎ 8ㄱㄴ 참조)
◎ 일어나소서, 주님. 저를 구하소서.
○ 주님, 저를 괴롭히는 자들

어찌 이리 많사옵니까?

저를 거슬러 일어나는 자들

 많기도 하옵니다.

“하느님이 저런 자를 구원하실까 보냐?”

저를 빈정대는 자들 많기도 하옵니다.

◎ 일어나소서, 주님. 저를 구하소서.
 ○ 주님, 당신은 저의 방패,

저의 영광, 제 머리를 들어

높이는 분이시옵니다.

 제가 큰 소리로 주님께 부르짖으면,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시나이다.

◎ 일어나소서, 주님. 저를 구하소서.
 ○ 주님이 나를 지켜 주시기에,

누워 잠들어도 나는 깨어나니,

나를 둘러싼 수많은 무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일어나소서, 주님.

저를 구하소서, 저의 하느님.

◎ 일어나소서, 주님. 저를 구하소서.

◎복음환호송◎

루카 7,16
◎ 알렐루야.
○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 알렐루야.

◎복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20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송◎

시편 31(30),17-18 참조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오늘의묵상◎

예수님과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마주칩니다. 이 사람은

한마디로 죽음의 세력입니다.
이는 그가 무덤에서 살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본디 무덤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죽은 이들이 머무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 사람은 사람들의 삶을

자꾸 죽음의 공포로 몰고 갔습니다.
그를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지만, 이마저도 부수어 버리고,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쳤습니다.이렇게 게라사

지방은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진 곳이

되었고, 하느님의 영을 받아야 할 사람은

 족쇄와 쇠사슬로도 다스리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생명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죽음의

 세력인 더러운 영에게 이르십니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이어서 부정한 짐승으로 여기던

돼지에게 도망치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그제야 게라사 지방은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 생명의 빛을 향한 첫걸음을

떼었습니다.그런데 놀랍게도 게라사

 주민들은 예수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 달라고 간청합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셨다고 하여도, 이 일 때문에

생계에 가장 필요한 돼지 이천 마리

가량이 죽어 속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음의 그늘에서 해방된

사실보다도 당장 먹고살 문제에

 마음이 쓰일 뿐이었습니다.

생계와 생명은 비슷하면서도

큰 차이가 있는 낱말입니다.
생계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을

 지나치게 염려하고 걱정한다면

참생명을 알아보지 못하고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생계와 생명을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한재호 루카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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