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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제는 땅위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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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03 조회수332 추천수0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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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 긴 고해를 하시는 분들은 명동성당의 상설고해소를 방문하세요 ]



사제는 땅위의 천사


우리가 사제의 신성한 직분을 이해한다면 미사의 무한한 위대함을 보다 풍부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순교자 이냐시오 성인은 사제직은 세상의 모든 직분중 가장 숭고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에프렘 성인은 사제란 무한한 존엄의 직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로부터 온 성직의 존엄이신 사제는 모든 이해를 넘어서는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카시안은 하느님의 사제는 모든 지상의 주권자들과 모든 천상의 직들 위에 높이 들어 올려져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사제보다 높이 계시는 분입니다.

* 교황 이노슨트 3세 성하는 "사제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놓인 존재입니다. 하느님보다는 아래에 인간보다는 위에 사제의 직분이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 데니스 성인은 사제는 성스러운 인간이며, 사제직은 성스러운 직분이라 명하셨습니다.

* 요한 크리소스톰 성인은 사제를 존경하는 이는 그리스도를 존경하는 축복받은 사람이고, 사제를 모욕하는 이는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토마스 성인의 말씀에 따르면 사제직의 존엄은 천사의 존엄보다 더한 것이라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 : "죄인을 용서하는 것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는 일보다 더 위대한 것입니다. 단 하나의 죄를 용서하는 데도 주님의 모든 전능하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사제의 능력이란 어떤 것이겠습니까?"

* 순교자 이냐시오 성인 : 사제는 교회의 영광이며 기둥입니다. 또 천국의 문지기이기도 합니다.

* 치쁘리아노 성인 : 하느님의 진정한 영을 받아서 사제직을 받도록 신탁된 사람들은 경외감과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 에피파니우스 성인 : 저는 사제의 직분을 기꺼이 수령하고자 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사제 직분은 두려울만큼 성스러운 것입니다.


천사와 사제를 한자리에서 만나게 된다면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사와 사제를 한자리에서 만나게 된다면, 저는 우선 사제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고 그 다음에 천사께 인사하겠습니다."
성인은 끝까지 성직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


하느님은 사제를 돕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십니다

아일랜드의 한 작은 마을에 가난한 상인이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이 가족은 세속적인 것들은 많이 갖지 못했지만 매우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한 많은 미사에 함께 참례하곤 했습니다.
가까운 교구에 허약한 체질에 너무 공부를 많이 하다 정신적 균형에 문제가 생기고 더 이상 사제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된 한 젊은 사제가 있었습니다. 이 사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안 되는 한에서 이곳 저곳을 떠돌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착한 상인은 아내에게 자기 집에 작은 방을 정돈하여 신부님께 묵으시도록 하고 음식을 마련해 드리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젊은 사제도 이 부부의 친절한 초대에 기꺼이 응해, 수년간 편한 마음으로 한동안 이 집에 머물다 떠나곤 하였습니다.
이 사제는 죽음의 때에 이르러 의식을 온전히 회복했습니다.  사제는 침상에서 일어나 앉아 가장 절실한 기도로 이 선한 사람들에게 주님의 풍성한 은총을 내려주십사 청하였습니다.
"오! 주여, 이 사람들이 당신의 사제인 제게 베푼 것에 수천배로 갚아주십시오. 이 착한 당신의 자녀들에게 정신적인 축복과 물질적인 축복을 함께 베풀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를 마친 후 신부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로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는지 들어보십시오. 이 가난했던 상인은 굉장히 장사가 잘 되서 부유하게 되었고, 그의 아들은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상인의 여동생 중에 네 명이 수녀가 되었으며, 부인의 형제 중에 네 명이 역시 수녀가 되었습니다. 이 상인은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평화로운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사제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봉헌하는 신자들은 큰 보상을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 좋은 사제를 봉헌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사제만큼 주님께 큰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미사의 신비)






사랑 품고 하느님께로 떠나라



사랑 품고 하느님께로 떠나라.
그것이 고통이 되었든, 불안이 되었든, 내면의 영적 갈애가 되었든, 우리는 생애에서 절대자 하느님을 애절하게 찾는 계기를 만나게 된다. 홀연 신앙의 문턱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연하기만 하다. 누군가의 안내가 필요한 것이다.

한 선배의 고백은 우리를 신앙이 가져다주는 은총의 세계로 친절히 안내해 준다. 일찍이 청년 시절 동경으로 유학 가서 종교학을 전공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던 모태 신앙(母胎信仰)과 동양 유수의 종교(儒佛仙) 사이에서 처절한 갈등을 겪어 내고나서, 스스로는 천상 가톨릭 신자임을 선언하고 살았던 구상 시인(1919-2004년)은 만년에 자신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은총에 눈을 뜨니
이제사 비로소
두 이레 강아지만큼
은총에 눈이 뜬다.

이제까지 시들하던 만물 만상이
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
그렇듯 안타까움과 슬픔이던
나고 죽고 그 덧없음이
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다.

이제야 하늘이 새와 꽃만을
먹이고 입히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리심을
눈물로써 감사하노라.

아침이면 해가 동쪽에서 뜨고
저녁이면 해가 서쪽으로 지고

때를 넘기면 배가 고프기
매한가지지만
출구가 없던 나의 의식(意識) 안에

무한한 시공이 열리며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소중스럽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

(구상, "마음의 눈을 뜨게 하소서")


누구든지 신앙의 은총에 눈을 뜨게 되면 세상이 이제까지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보이게 된다. 이 세상의 하찮은 들꽃 하나도 거룩함이 깃든 하느님 피조물로 보이게 되고, 지난날 슬픔과 고통 투성이로 보였던 삶의 편린(片鱗)들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축복과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껏 몸부림치며 고독하게 살아온 줄로만 알았던 자신의 삶에서 드러나지 않게 도움의 손길로 부추겨 왔던 하느님 동반(同伴)에 눈물로써 감사할 줄도 알게 된다. 당신께서 신앙의 눈을 떠서 당신 의식 안에 무한한 시공이 열림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거룩하게 대하고, 아름답게 누리시기를 바란다.

당신은 이제 신앙의 첫 발을 내디디려 한다. 신앙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며 결단이기 때문이다. 망설이는 당신 발걸음에 이해인 수녀가 "당신을 따른다는 것은"이라는 제목의 시(詩)로 격려의 말을 전한다.

“'내가 당신을 따른다는 것은 나와 정든 것과의 아낌없는 결별이며 당신과의 새로운 해후입니다. 유예 없는 결단이며 지체 없는 출발입니다. 또한 낯선 것과의 만남이기도 합니다. 그물과 배를 버리고 당신을 따라나선 제자들처럼 모험을 받아들이는 용기 있는 행위. 당신을 따른다는 것은 그러므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의 고백을 세 번 거듭한 시몬 베드로처럼 당신께 대한 사랑을 매사에 확인하는 기쁨의 응답입니다.”


"사랑은 나의 인력(引力), 당겨지는 대로 그리로 나는 쏠린다"고 외운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씀과도 같이 당신 아닌 그 아무것도 나의 배고픔을 채워 줄 순 없습니다. 
당신의 좁은 길을 넓은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려 하오니 지금껏 나를 이끄시고 보살피신 그 크신 사랑으로 나를 새롭게 하여 주소서. 내가 당신을 잘 듣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한 건 나 자신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 당신 은총으로 나를 새롭게 하소서."

(이해인, "사계절의 기도")


당신이 과거 정든 것과 아낌없이 결별하시기 바란다. 낡은 가치관, 악습, 고집들을 가차없이 버리기 바란다. 그래야 하느님과 새로운 해후가 이루어진다. 과거가 당신을 잡아당기더라도 주저하지도 머뭇거리지도 말아야 한다. 단호하게 출발해야 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모험의 길을 떠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낯선 것"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마라. 당신이 챙길 것은 오로지 하나, 사랑뿐이다. 사랑을 품고 사랑이 부르는 대로 가라. 거기 하느님이 계신다. 그렇다고 대충 떠나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호락호락한 길이 아니다. 좁고 험한 길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마태 7,13).

이렇듯이 생명에 이르는 길은 모든 것을 원하고 몰두를 요하는 길이다. 헐렁한 마음으로는 얼마 못 가서 포기하기 십상인 길이다. 하지만 길이 험하다 해서 신앙을 짐으로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오히려 신앙이 당신 짐을 덜어줄 것이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리.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 11,28-30).

길은 순탄치 않지만 예수님께서 짐꾼으로서 우리와 동행해 주실 것이다. 우리 짐이 무겁지 않도록 부축해 주실 것이다. 아니 그 짐이 더 이상 짐이 안 되게 하는 비결을 일러주실 것이다. 이윽고 당신은 신앙이 결코 짐이 아니고 오히려 인생의 고달픈 짐을 대신 져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주저하지 마라. 당신이 신앙을 통해 누리게 될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몰라서 그렇지 그 가치를 알게 되면 모든 것을 몽땅 팔아 그것을 사려들 것이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우리는 세상 잇속에는 얼마나 눈이 밝은가! 어느 지역 땅이 얼마나 오를지, 어느 아파트가 얼마나 투자가치가 있는지 얼마나 잘들 아는가!
아무리 잘난 체하고, 아무리 으스대도 이런 사람들은 "밭에 묻혀 있는" 하늘나라 "보물"을 볼 줄 아는 사람에 비하면 애송이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 지혜는 잠시의 가치에 집착하지만 성령의 영감을 받은 지혜는 영원히 녹슬지 않을 보화(마태 6,20)를 붙들기 때문이다.

(사랑의 성모수녀회 사랑수녀님)






하느님께서는 주시는 사명의 확신은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사명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을 향한 비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의 확신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여기 이 짧은 글로서 표현하는 것이 사실은 쉽지 않습니다.
사명은 자기의 은사에 대한 인식과 자각이 있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기적이나 이상으로 이런 부르심을 받았다, 이런 사명을 받았다고 하는 경우는 제외합니다). 보통 사람의 경우,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명을 말할 순 없습니다. 또한 사명은 신앙을 기본으로 합니다. 신앙 없는 사람은 사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신앙인이면서 사명을 받지 않은 사람도 없습니다.

사명에는 우선 내적 확신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그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각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나 틀림없는 것은 사명에 대한 내적 확신이 없는 사람의 신앙 생활은 힘이 없습니다.
두 번째로 사명은 '은사'와 함께 주어집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바오로에게 유대인들을 맡기지 않으셨고, 베드로에게 유대인들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바오로에게는 이방인을 위해 일할 사명을 주셨죠. 그것은 바오로가 가진 은사와 그의 여러 가지 여건이 그 일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며 하느님께서 그렇게 준비시켜 주신 것입니다.

형제자매님은 사명에 대해서 고민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형제자매님은 하느님을 위하여 무엇을 잘 하실 수 있습니까? 즉,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형제자매님의 달란트, 재능이 무엇입니까? 그곳에 사명이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엿장수에게 엿을 팔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은 그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그 사람에게 사명으로 주십니다.
요약하면, 사명에 대한 확신은 그 개인의 신앙에 따라 그 강도가 다르고, 그 방법과 확신의 과정이 다릅니다. 분명한 것은 확신이 없으면 그리스도인답게, 사명자답게, 직분자답게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명은 이미 주신 은사와 달란트, 재능의 범위 내에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창골산 봉서방"에서 hijjang)






하느님 관점에서 본 장애인 이해 9가지



1. 장애인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만드신 걸작품입니다 (탈출기 4,11)

작품이란 상품과는 다르게 상대적이거나 조건적이 아닌 그 자체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을 의미합니다. 작가의 뜻과 혼을 담아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것을 걸작품이라고 합니다. 장애인이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 특별한 섭리 가운데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로 만드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의도를 알지 못한 채 성급한 평가를 내리는 장애인은 하느님의 특별하신 뜻을 간직한 걸작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장애인을 통하여 우리들의 영적 장애를 깨닫게 하시고, 만족하는 삶의 비결을 배우게 하시며, 진정한 성숙과 강함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따라서 장애인(障碍人)은 장애인(長愛人)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2. 장애인은 성숙한 인격을 가진 존재입니다 (마태 18,1-10)

우리나라의 인간문화재 가운데 병신춤을 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부가 장애인의 약점을 가지고 흉내내어 춤을 추는 사람을 인간문화재로 특별히 보호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사회는 연약한 자의 약점을 통하여 상대적으로 기쁨을 누리는 미성숙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은 다른 사람의 약점을 통하여 기쁨을 얻는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도움을 청할 따름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인정할 수 있는 용기는 성숙함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숙한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 곳은 서로의 다른 특성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업신여기는 용기를 가진 자는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3. 장애인은 강한 자를 부끄럽게 만드시는 하느님의 도구입니다 (1코린 1,27-29)

장애는 질병과는 다르게 평생을 씨름해야 할 만성적 슬픔이며 사람이 극복하기 힘든 한계적 상황입니다. 따라서 능력이 중시되는 경쟁사회에서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적 불리한 존재로서 낮은 자존감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단지 불쌍하게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장애인 - 이들은 하느님에게 쓸모없는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상대가치의 범주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한 채 욕망의 노예요, 경쟁의 투사가 되어 살아가는 영적 장애인들에게 육신적 장애는 분명 하느님의 거룩한 도구입니다.


4. 장애는 벌이 아닌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입니다 (요한 9,1-5. 39)

제자들은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누구의 죄 때문인지 예수님께 질문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선입견을 단호히 배격하시며 시각장애인을 통하여 "하느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요한 9,3) 그것은 육신적 장애를 치유(25절)하는 일과 영혼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전인적 구원을 베푸시는 것은 메시아만이 하실 수 있는 것으로 일찍이 하느님께서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셨던 내용입니다. 따라서 약속의 실현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증명하는 것이며 세상 속에 하느님의 나라가 강력히 임한 것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영광과 직결됨을 살펴볼 때 장애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인 것입니다.


5. 장애인은 들러리가 아닌 복음의 주체입니다 (루카 14,12-14. 21)

하느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악인과 선인들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구원으로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초청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잔치에 거부하자 주인이신 하느님이 화가 나서 어떤 특정한 대상들을 지목하여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가난한 자들이며 장애인들입니다. 들러리가 아닌 초청 받은 주빈(the guest of honor)입니다. 이들은 잔치에 초청 받고 감사의 예물을 준비하지 못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조건 없이 베푸시는 은혜의 성격에 꼭 맞는 것입니다. 그저 감사한 마음을 갖기만하면 되는 것입니다.


6.장애인은 우리가 도와줘야 할 나의 이웃입니다 (루카 10,30-37)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나의 이웃이 누구인가"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는 가"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구원 받은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어야 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경건의 생활은 생명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야고보 1,27)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애인도 고아와 과부처럼 도움을 줘야 할 우리의 이웃입니다.


7.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셔서 믿음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잠언 3,11-12)

하느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당신의 자녀들을 훈련시키십니다. 욥처럼 고난을 통하여 단련케 하시며 믿음의 높은 산봉우리에 우뚝 서게 하십니다. 장애는 분명 한계 상황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렀다면 그것은 곧 한계상황을 두고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어떤 고난도 문제는 아니며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인생으로 하여금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 도구입니다(시편 119,71)


8. 장애인은 교회의 하나됨을 위하여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요한 17,11)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통하여 차별 없는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교회가 하나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랑과 희생을 부르짖는 교회에서는 장애인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도움이 되지 않는 장애인일지는 몰라도 교회의 하나됨과 성숙함을 위하여 장애인은 함께 해야 합니다. 장애인사목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 사목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하는 교회의 본질적 사목입니다.

교회는 건강한 체질을 위하여 장애인들을 구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닌 전교와 교육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9. 인류역사에 위대한 공헌을 했던 장애인들은 교회의 하나됨을 위하여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요한 17,11)

*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킨 천체물리학자 스티브 호킹 박사 [ 루게릭병/전신마비장애인 ] 
* 흑인팝 음악의 살아있는 신화 Steive Wond [ 시각장애인 ] 
* 음악의 성인 베토벤 [ 청각장애인 ] 
* 초인적인 의지로 세계인에게 도전을 주었던 헬렌켈러 [ 언어, 시각, 청각장애인 ] 
* 형 에사우를 만나기 전 야뽁 강가에서 하느님의 사자와 씨름하다 엉덩이 뼈를 다쳐 지체장애인이 된 야곱(창세 32,31) 
* 예로보암 시대에 시각장애를 가지고 예언자의 역할을 감당했던 아히야(1열왕 14,4) 
* 이스라엘의 적 블레셋 사람 삼천 명을 죽였던 이스라엘의 시각장애인 삼손(판관 16,21) 
* 원형탈모증의 장애를 극복하고 멋있게 쓰임 받았던 엘리사(2열왕 2,23) 
* 눈의 질환으로 고통을 겪었으나 평생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순종했던 사도 바오로(2코린 12,7) 
* 의심 많은 토마스를 위하여 영광의 부활체를 포기하고 영원한 장애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요한 20,27)

(김해용님)






조지 뮐러의 대답



영국의 조지 뮐러(1805~1898)는 

일생을 고아를 위해 헌신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에 말년에 뮐러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평생을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조지 뮐러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조지 뮐러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평판, 선택, 좋은 것, 싫은 것, 원망
이런 것들에 대해서 내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세상의 칭찬이나 비난에도 나는 죽었습니다.

제가 두려워했던 것은 하느님의 책망이었고
제가 원했던 것은 하느님의 칭찬이었습니다.

그러자 나의 인생이 나도 모르게 바뀌었습니다.
달라졌습니다』



조지 뮐러의 대답은 간단한 대답이지만
가장 중요한 대답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자기 부인" 이라는 기초위에서 시작됩니다.

자기를 부인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자비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죽을 때 비로소
성경적인 진정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아의 죽음은 매일, 매순간마다 계속되어야 합니다.
내 속에는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를 쳐서 날마다 죽이는 것이 나의 의지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기도와 은총, 성령충만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너무도 많은 신자들이 "자기부인"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날마다 죽는다는 것" 과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 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나는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라고
생명으로 고백하는 신앙이 되어야 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임신하지 못하는 부부를 위한 기도


우리 조상들의 주 하느님, 주님은 진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하와를 그에게 동무로 주시어 주님을 위하여 이 세상에 인류를 번식하게 하시고, 그들을 주님께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게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의 축복과 자비를 가지고 내려오시어 원수가 간음과 실망이라는 두 가지 죄로 이끌어가기 위하여 닫아 놓았던 태를 열어 수태시켜 주십시오.

지극히 높으신 조물주, 거룩하신 아버지, 이 두 자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들을 행복하고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내는 포도나무와 같이 번식력이 있게 하시고, 남편은 그를 받쳐주는 지주(支柱)와 같이 그의 보호자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오 생명이여, 내려와 생명을 주십시오. 오 불이여, 내려와 다시 따뜻하게 하십시오. 능하신 분이여, 내려와 행하십시오. 내려오십시오! 

올해의 풍성한 수확에 대한 찬미의 축제를 위하여 이들이 산 곡식다발을, 즉 주님께 바라는 자들에게 복을 내리시는 영원하신 주님께 봉헌된 그들의 맏아들을 바치게 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시 )


(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립니다. 아멘 )

 


 

 




교만의 증상들



이기심

자기의 욕심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짓밟고 있다면, 자기의 재능을 활용해도 다른 이에게 축복이 되지 못한다면 자신의 재능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중심적인 교만으로 인해서 섬김을 받고자 하며, 항상 자기만 옳다고 여기며,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자신의 소원이 항상 성취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자라나게 된다.


우월감

교만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을 멸시하도록 부추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교리나 행동, 고유의 가치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여기게 만든다.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은 교리나 불화가 아니라 바로 교만이다. 서로에게 주고받을 만한 가치 있는 것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때, 모든 분쟁과 분열, 불신, 갈등과 불화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비꼬는 말

비꼬는 말은 위장된 유머로서 다른 사람의 결점을 부각시켜 상처를 입히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편견을 드러낸다. 비꼬는 말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거나 감정이 상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당당히 그것을 다룰 용기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마음속에는 쓴뿌리가 자라나는 것이다.


정죄와 비난

교만한 자는 비판하고 정죄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장점을 잘 발견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장점이 드러나면 삐딱하게 받아서 무시해 버린다. 비난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기쁨이나 은혜를 다른 사람과 나누지 못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다른 사람을 모함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한 점에 대해 있는대로 얘기해 버리는 것은 곧 그 사람에 대한 모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참지 못함

참지 못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계획, 일정을 사람보다 더 중시한다는 것을 나타내며,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 참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안에 사랑과 절제가 없다는 증거다.


탐심

질투와 탐심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 탐심은 우리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과는 동떨어진 세상의 것을 바라보게 하는 태도와 방식이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 갈망할 것이다.


강퍅한 마음

마음이 강퍅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은근히 기뻐한다. 다른 이들을 위로할 줄도 격려할 줄도 모르며, 다른 사람이 잘 되는 일에 함께 기뻐해 주지 못한다. 강팍한 마음으로 변해가는 첫 단계는 싫어하는 사람과 마주하지 않는 것이다.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되면서 서서히 냉각되어 그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다. 그대로 방치하면 교만에 뿌리를 내린다.


배우기 싫어하는 마음

고침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완전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 어떤 잘못을 지적할 때, 그 말을 경청하는가?, 화를 내는가? 합리화하고 변명하는가? 아니면, 해명하는가? 성숙한 사람일수록 남의 충고나 지적을 잘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훈계 속에는 최소한의 진실이 들어있게 마련이다.


아부

칭찬과 아부는 같은 것이 아니다. 칭찬은 다른 사람을 신실히 세워주기 위한 것이지만, 아부는 조종하려는 의도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얻기 위한 정직하지 못한 행위이다.


자기연민

상처받고 지치고 약점잡히고 오해받고 압박받고 죄를 지을 떄, 그리고 낙심하거나 침체될 때 우리는 쉽게 자기연민에 빠진다. 이런 습관을 깨뜨리기 위해 때로는 격전을 치러야 하며,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자기 연민은 교만을 조장하며 그 이면에 있는 이기적인 목적을 합리화한다. 만족할 줄 모르며 이기적이기 때문에 또 다른 무언가를 요구한다.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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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돌아가신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여,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를 위해 하느님께 자비를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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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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