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죄인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 죄인과 친구 맺기를 원하시는 주님!)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03 조회수1,006 추천수4 반대(0) 신고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죄인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

죄인과 친구 맺기를 원하시는 주님!

며칠 전 한 뉴스에 한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맡고 계시는 반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그리 유쾌하지도,

듣기 좋지도 않은 별명들을 일일이

지어놓고 부르셔서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원성을 크게 샀더군요.

저라도 존경해마지 않는 담임 선생님께서

제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셨으면

좋을텐테, 유독 내가 싫어하는 별명,

예를 들면 돼지코, 깜생이, 숏다리...

이런 별명을 불러주신다면,

기분이 참으로 거시기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 자주 드는 생각 한 가지!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그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준다는 표현입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너와 나 사이에 친교의 다리를 놓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그래서 돈보스코는 당시 교육자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쳤습니다.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며

청소년들에게 다가가십시오.

왜냐하면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그 자체로 아주 좋은 교육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전 세계 살레시오

교육 현장에서는 신학기만 되면

살레시안들이 아이들 이름 외운다고

쌩고생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간 복음의 첫번째 가는

조연 배우인 자캐오 역시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던지던 호칭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할아버지께서 공들여 지어주신

자캐오라는 번듯한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캐오라는 이름으로 불려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들 그를 향해 참으로 듣기 싫은

별명을 불러댔습니다.

매국노’ ‘수전노’ ‘반역자

배신자그리고 숏다리

그런데 예리코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돌 무화과나무 위에 숨어있는

자캐오를 발견하십니다.

그리고 다정하게

그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루카 복음 195)

사실 자캐오가 그간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웃 동료 인간들에

바란 것은 뭔가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별명이 아니라

그저 본래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

평범한 이웃들 사이에 끼어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동료 이웃들이 자캐오에게 보여준

모습은 참으로 서글픈 것이었습니다.

쌓아둔 재물은 엄청났지만 자캐오는

사람들 사이에 끼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캐오의 마음은

언제나 공허했습니다.

거기다 치명적인 신체적 콤플렉스

(작은 키)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어딜 가든 사람들은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격적인

대우를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철저하게도

세상으로부터 왕따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그는 오로지 돈을 벌고

재산을 증식시키는 데만

온힘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 결과 예리코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재산이 늘어날수록

그의 마음은 점점 공허해졌습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서신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자캐오야!”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너무나도 친근하고 다정한

그분의 음성에 자캐오는

지난 모든 상처가 즉시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그 어떤 말도 필요가 없었습니다.

연민과 사랑이 마음이 흠뻑 담긴

예수님의 한 마디에 그가

오랜 세월 쌓아올렸던

세상으로부터의 장벽은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만 것입니다.

저는 나뭇잎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자캐오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빛에 대해서 묵상해봤습니다.

예수님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처량한 모습의 그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이윽고 예수님의 시선과

그의 시선이 마주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번에 그의 내면

상태를 파악하셨습니다.

혹시라도 사람들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을까, 그래서 제대로

한번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잔뜩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몹쓸

구제 불능으로 여기며 이름은커녕

별의 별 듣기 싫은 별명을 다

불렀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예수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루카복음 195)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누군가가, 특별히 주님께서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신 것 하

나 만으로 자캐오는 오랜 상처가

그 자리에서 씻은듯이 나았습니다.

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자캐오 집 방문을 통해

우리는 구세주 하느님께서 지니신

사명의 본질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죄인의 집을 찾아오시는 하느님.

죄인에게 다시 한 번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느님,

죄인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느님,

죄인과 친구 맺기를 원하시는 하느님....

그런 하느님께서 오늘 이 아침,

2천 년 전과 똑같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다가오십니다.

우리와 친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가요?

결국 구원은 주님의 부르시는

목소리에 응답함을 통해서 시작됩니다.

또한 구원은 한 인간이 주님의

현존 앞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함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