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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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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2 조회수36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제1독서 말라 3,1-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제2독서 히브 2,1-4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복음 루카 2,22-32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지금이야 젊은 사람이 등산하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1990년 초반까지만 해도

등산하는 젊은이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이때에는

 젊은 청년이었기에 등산을 참으로

많이 했습니다. 방학 때에도

혼자서 등산을 하러 갔고, 친구들과

놀러 가도 주로 산에 갔습니다.
한 번은 친구들과 방학 때에

설악산에 간 적이 있습니다.

오색약수로 올라가서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코스였습니다. 하지만

 전날 산 밑의 민박집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산을 오르는데

다들 너무나 힘들어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합니다.
“어차피 내려갈 건데

그냥 내려가자. 너무 힘들다.”
이 말에 모두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 옆으로

한 무리의 등산객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 등산객은 모두 젊은

여성들로, 아마도 우리처럼

 동아리 MT를 온 것 같았습니다.

여성으로 이루어진 등산객을 보고서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요?

원래 계획대로 설악산을

온전히 등반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 여학생들과는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힘내어 산을 오르는 여성 등산객들을 보면서

우리도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때를 떠올려 보니, 우리 삶 안에서는

포기하려고 했던 적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냥 포기해버리면 어떤 변화도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하려고

했을 때 뜻밖의 변화도 얻을 수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 열심히 하는

누군가로 우리 모두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모습을 보고서도

누군가가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은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심을

기념하는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님은 율법의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라는 기록을 따라

 예수님을 봉헌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굳이 봉헌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이를 낳은 여인은 부정한 몸이

되었으므로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자기가 낳은 자식과 함께 하느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는 정결례를 통해

깨끗해져야 한다고 율법은 말합니다.

그런데 남자의 씨를 받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은 성모님을 어떻게

부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더군다나 그 아이는 하느님이 아닙니까?
율법 위에 계시는 특별한 권한을

가지셨지만, 우리에게 겸손의 모범을

보이십니다. 이는 우리 역시 그 겸손의

모범을 세상에 실천해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그 명령을 기억하면서

겸손의 모범을 세상에 보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 모습에 깨달음을

얻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선물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이란걸 선물을 사면서

 나는 알았어.

이 행복한 마음,

바로 네가 준 선물임을

 그때 나는 알았어.

(신달자)

싸가지

한양도성을 건립할 때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따라,

동대문은 인(仁)을 일으키는

 문이라고 해서 ‘홍인지문’,

서대문은 의(義)를 두텁게 갈고

닦는 문이라고 해서 ‘돈의문’,

남대문은 예(禮)를 숭상하는

문이라고 해서 ‘숭례문’,

 북문은 지(智)를 넓히는

문이라고 해서 ‘홍지문’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가운데를 뜻하는 신(信)을 넣어

보신각을 건립했습니다.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

다섯 가지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에

기초해서 건립한 것입니다.
인(仁)은 측은지심으로

불쌍한 것을 보면 가엾이 여겨

정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의(義)는 수호지심으로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예(禮)는 사양지심으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하여 남을 위해

사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지(智)는 시비지심으로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입니다.
신(信)은 광명지심으로 중심을

잡고 항상 가운데에 바르게 위치해

밝은 빛을 내는 믿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종종 ‘싸가지가 없다’라는

말을 쓰지요. 그런데 이 싸가지가

 바로 ‘인의예지’ 4가지를 말한다고

한답니다. 즉, 싸가지가 없는

사람은 ‘인의예지’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싸가지 있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 봉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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