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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0년 2월 2일 주일[(백) 주님 봉헌 축일 (봉헌 생활의 날)]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2 조회수78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2월 2일 주일

[(백) 주님 봉헌 축일 (봉헌 생활의 날)]

교회는 성탄 다음 40일째 되는 날

곧 2월 2일을 주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감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한다.

예루살렘에서는 386년부터

이 축일을 지냈으며, 450년에는

초 봉헌 행렬이 여기에 덧붙여졌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주님께 자신을 봉헌한 수도자

들을 위한 날로 삼았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맞이하는 이 축성 생활의

날에 수도 성소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고, 축성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한다.

한편 한국 교회는

 ‘Vita Consecrata’를

‘축성 생활’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봉헌 생활의 날’

을 ‘축성 생활의 날’로 바꾸었다

(주교회의 상임위원회 2019년 12월 2일)

오늘 전례

▦ 2월의 첫 주일인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요셉 성인과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역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도록 합시다.

우리 각자에 대한 주님의 부르심에

감사드리고, 또한 교회 안에서

각별한 봉헌의 삶을 선택한

수도자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자신의 소명에 더욱 충실할 수 있도록

이 미사 중에 함께 기도해야겠습니다.

말씀의초대

말라키 예언자는 주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보내시어 주님의 길을

닦게 하실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에 유혹을 받은

이들을 도와주실 것이다(제2독서).

시메온은 마리아에게, 이 아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반대받는 표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제1독서◎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4(23),7.8.9.10(◎ 10ㄴㄷ)
◎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영광의 임금님 누구이신가?

힘세고 용맹하신 주님,

싸움에 용맹하신 주님이시다.

◎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영광의 임금님 누구이신가?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2,14-18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환호송

루카 2,32 참조
◎ 알렐루야.
○ 그리스도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요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시네.
◎ 알렐루야.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

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송◎

루카 2,30-31 참조
제 눈으로 주님의 구원을 보았나이다.

모든 민족들 앞에

마련하신 구원을 보았나이다.

◎오늘의묵상◎

오늘은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지 40일이 되는 날입니다.
교회는 이날을 맞이하여 봉헌의

삶을 사는 수도자들을 기억합니다.
수도자들은 복음적 권고를

서약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며 가난, 정결,

순명을 서약하는 것입니다.
가난은 ‘나의 것’을 봉헌하여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것’으로

여기는 것이며, 정결은 ‘나의 사람’을

봉헌하여 모든 이를 ‘그리스도의 사람’

으로 여기는 것이고, 순명은 ‘나의 뜻’

을 봉헌함으로써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가난, 정결, 순명은 비단

수도자만이 아니라 신앙인이라면

모두가 자신의 처지 안에서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봉헌하기에 앞서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하여’

아드님을 봉헌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분께서는 요셉과 마리아를 통하여

당신 아드님을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천상에서 영원무궁토록 찬미를 받아

마땅하신 당신의 아드님을 지상으로

보내시어, 여느 평범한 이들과 다를 것이

없는 이들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 인류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감히 우리의 형제로 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가

바치는 봉헌의 의미를 새길 수 있습니다.
봉헌은 하느님께 어떤 대가를

바라고 바치는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분께 무언가를 바치기에 앞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전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셨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가 봉헌입니다.
그 감사함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봉헌은 시장 경제의 논리에 갇힌

투자나 거래와 다름없을 것입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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