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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부활] 십자가의 수난 증거하는 성 유물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12 조회수7,285 추천수0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십자가의 수난 증거하는 성 유물들


이마에 핏자국 선명한 예수님 얼굴, 믿음의 길로 이끌어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2코린 5,19-20). 

 

바오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설명한 말씀이다. 이 말씀의 핵심은 예수께서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위해 죄없이 희생되셨고, 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더럽혀진 세상은 참으로 정화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걸으셨던 수난의 길을 묵상할수록 참생명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맞아 십자가의 길에 남겨놓으신 예수님의 자취를 통해 인류를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보고자 한다.

 

로마에 있는 예루살렘 성 십자가 성당에는 헬레나 성녀가 발굴해 안치한 성 십자가와 성 못, 예수님의 죄명패, 가시 면류관 조각 등이 보관돼 있다. 

 

 

성 십자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십자가'는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이들의 표지가 됐다. 이 '복된 수난'의 증표인 예수님의 성 십자가는 오늘날까지 교회의 가장 귀중한 성물로 보존돼 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셨던 곳인 골고타는 제2차 유다항쟁(132~135)이 끝나던 해에 로마 최고 신인 제우스를 비롯해 헤라와 아프로디테의 신전터가 됐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가 예루살렘에 순례 와서 이 신전 때문에 골고타 언덕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헬레나 성녀는 326년 신전을 허물고 골고타를 발굴, 성 십자가와 예수님 빈 무덤을 찾아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예수님 거룩한 무덤 대성당'(예수님 부활 대성당)을 세웠다. 

 

헬레나 성녀는 성 십자가를 삼등분해 하나는 새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 주교 마카리오에게 주고, 남은 부분을 로마로 가져왔다. 그녀는 자신의 세소리아누스궁을 성당으로 개조해 로마로 가져온 성 십자가를 안치했다. 그는 궁전 바닥을 모두 뜯어내 골고타에서 가져온 흙으로 덮고 "이곳은 로마가 아니라 예루살렘 땅"이라고 했다. 그리고 궁을 '예루살렘 성 십자가 성당'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성 십자가와 함께 골고타에서 가져온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 일부와 못,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새겨진 죄명패, 예수님께서 묶여 채찍질을 당했던 돌기둥 파편과 무덤의 돌조각, 베들레헴 마구간 구유 조각, 토마스 사도의 손가락 뼈(요한 20,24-29)도 이 성당에 모셨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보관돼 있는 예수의 가시 면류관. 수난을 상징하는 붉은 색 방탄유리 속에 보관돼 있어 가시 면류관 형태만 볼 수 있다.

 

 

가시 면류관 

 

루카 복음서를 제외한 마르코, 마태오, 요한 복음서는 예수께서 체포되신 후 총독 관저로 끌려가 로마 군인들에게 조롱을 당하셨고, 가시 면류관을 쓰셨다고 한다(마르 15,16-20; 마태오 27, 27-31; 요한 19,2-3). 

 

이 예수의 가시 면류관은 헬레나 성녀에 의해 성 십자가와 함께 골고타에서 발굴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보내졌다. 12세기 십자군 전쟁때 '성왕 루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루이 9세 왕이 동로마 황제에게 13만 5000리브르라는 엄청난 금액을 주고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을 비롯한 여러 성유물을 매입했다. 루이 9세는 이 성물을 보관하기 위해 파리 시테섬에 1242년 생 샤펠 성당을 지었다. 가시 면류관을 보관하고 있던 생 샤펠 성당은 18세기 프랑스 혁명 때 크게 파괴돼 1846년에 복원됐고, 이후 가시 면류관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보관돼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매해 성주간 때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을 현시하고 있다.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에 보관돼 있는 베로니카 수건. 눈을 감고 있는 토리노 성의와 달리 이 베로니카 수건에는 구타 당하고 머리에 찔린 상처가 있는 눈 뜬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위)


- 눈을 감고 있는 토리노 성의.(아래)

 

 

베로니카 수건 

 

라틴말 '베로니카'(Veronica)는 베라(vera, 참된)와 이콘(icon, 인상)의 합성어로 우리말로 '참 얼굴'을 뜻한다. 따라서 베로니카의 수건은 '참 얼굴을 담은 천'이라 직역할 수 있다. 

 

전승에 따르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로 가는 것을 보고 한 여인이 마음이 아파 예수 얼굴을 닦아줬는데 그 얼굴이 그 천에 찍혔다. 

 

베로니카 수건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재위 14~37)를 치유했고 여러 기적을 일으켰다. 심지어 죽을 위험에 처한 이를 살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베로니카 수건은 역사와 신화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944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확인됐다. 13세기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로마로 옮겨와 성 베드로 대성전 '베로니카 경당'에 보관했다. 로마 순례자들에게 베로니카 수건은 '로마 7대 보물 중 하나'로 알려졌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 견해에 따라 진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베로니카 수건은 2개가 있다. 하나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에 보관돼 있다.

 

교황청은 매년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베로니카 수건을 담은 상자를 전시하고 있다. 오후 5시 저녁 미사 시작 시작 때 베로니카 수건으로 축복하는 예식이 열린다. 

 

마노펠로 카푸친 수도원이 1660년부터 보관하고 있는 베로니카 수건은 최첨단 장비로 조사한 결과 천은 1세기 때 것으로 예수께서 활동하던 시기 수건이며 사람 손으로 그린 흔적이 전혀 없고 토리노 수의에 찍힌 예수의 얼굴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수도원 중앙 제대 뒤편에 현시돼 있는 마노펠로 베로니카 수건의 예수님 얼굴은 왼뺨을 맞아 오른뺨보다 부어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마 위쪽 가운데와 관자놀이 쪽에는 가시관에 찔린 상처로 흘러내린 핏자국을 볼 수 있다. 또 오른쪽 눈두덩에도 폭행으로 인한 상처를 볼 수 있다. 얼굴이 한쪽으로 일그러질 만큼 폭행을 당했어도 예수님 눈은 바라보는 모두를 빨아들일 만큼 깊고 맑다. 진품 여부를 떠나 현존하는 베로니카 수건은 그리스도 수난의 증거로 하루 몇 번이고 나락에 떨어지는 우리 믿음을 굳건히 회복시켜주는 귀중한 성화임이 틀림없다.

 

[평화신문, 2014년 4월 13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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