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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_송영진 신부님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4-06 조회수73 추천수1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9-15)”

 

1) 여기서 ‘믿지 않았다.’ 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은 사도들 자신들에게도 ‘정말로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고백한 것인데, 이 고백은,

“지금은 확신하고 있다.” 라는 증언이기도 합니다.

11절의 ‘믿지 않았다.’ 라는 말을 9절의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라는 말에 연결해서

생각하면, “막달레나는 일곱 마귀가 들렸던 여자였기 때문에,

사도들은 그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가 됩니다.

막달레나의 과거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 때문에

그의 증언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믿지 않았다는 말을 10절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이라는 말에

연결해서 생각하면, “사도들의 슬픔이 너무 커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믿지 못했다.”가 됩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의 경우도 비슷한데, “사도들은, 그 두 사람이

열두 사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증언을 믿지 않았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는 사도가 아닌 사람들이다.” 라는 편견과

선입관이 작용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꾸짖으신 사도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도들의 편견과

선입관을 가리키는 말이 됩니다.

 

2) 만일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먼저 나타나셨다면,

그런 복잡한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왜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가 아닌 사람들에게 먼저 나타나셨을까?

분명한 이유는 모르지만, 사도들에게 뭔가 부족한 점이 있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막달레나와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는

뭔가 사도들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이제,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하는’(요한 20,29)

세상 사람들에게, 즉 예수님을 직접 볼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복음 선포 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선 먼저 사도들을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들로 훈련시키셨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먼저 ‘보지 않고도 믿는’ 신앙인이 되어 있어야,

다른 사람들을 신앙인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어떻든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한테 혼났기 때문에 억지로 믿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신들보다 먼저 만난 사람들의 증언을

믿지 못했던 사도들의 경험은,

나중에 선교활동을 할 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신앙의 증언’은 무조건 믿으라고 윽박지르는 일이 아닙니다.

증언을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증언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도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믿는다. 그러니 너도 믿어라.” 같은 일방적인 태도로는

사람들을 신앙인으로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증언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삶’입니다.

삶 전체가 변화된 사람만이 복음을 선포할 자격이 있습니다.

 

4)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라는 말씀은, 사도들에게 ‘복음 선포 사명’을

주신, 즉 사도들을 선교사로 임명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그 사명을 주신 것은,

그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완전히 극복하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믿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선교사로 임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은 글자 그대로 ‘온 세상’입니다.

복음 선포 대상에서 제외되는 지역은 없습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라는 말은, 동물들과 식물들을 포함해서

자연계 전체, 세상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만의 구세주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구세주이신 분입니다.

<만일에 ‘하느님 나라’에, 구원받은 ‘사람들만’ 있고

동식물은 전혀 없다면, 그곳이 과연 ‘하느님 나라’일까?

하느님 나라는 분명히 사람들과 온갖 동물들과 온갖 식물들과

온갖 자연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완전하게 아름답고

모두가 행복한 나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전에 정말로 사랑하고 아꼈던 ‘반려 동물들’도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로마 8,21).”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연보호와 생태계 보전을 위한 노력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실천해야 하는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출처]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평화의 사도들 원문보기 글쓴이: 정루시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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