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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눈은 눈으로 (마태5,38-4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6-14 조회수7,705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6월 14일 월요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눈은 눈으로 (마태5,38-42)

 

1독서<우리를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2코린토6,1-10)

형제 여러분, 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이 직분이 흠잡히는 일이 없도록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곧 많이 견디어 내고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합니다또 수고와 밤샘과 단식으로,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합니다.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10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화답송 시편 98(97),1.2-3ㄱㄴ.3ㄷㄹ-4(◎ 2)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새로운 노래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그분의 오른손이거룩한 그 팔이승리를 가져오셨네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주님께 환성 올려라온 세상아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찬미 노래 불러라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악인에게 맞서지 마라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제1독서 (2코린6,1-10)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 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3)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후서 6장 2절에서 자신이 전개하는 논리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약 성경을 인용한다. 여기서 인용한 구약 성경은 이사야서 49장 8절이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이것은 본래 주 하느님께서 예언자 이사야에게 이스라엘의 바빌론 포로 생활이 종식될 것이라는 의미로 주신 말씀이다.

바오로 사도가 이 구절의 인용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지금이 하느님의 구원이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은혜의 때라는 것이다.

 

코린토 후서 6장 2절 후반부의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의 의미는 무엇인가?

 

여기서 '은혜로운'으로 번역된 '유프로스덱토스'(euprosdektos) '잘'(well)을 뜻하는 접두사 '유'(eu)와 '받아들이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프로스데코마이'(prosdechomai; accepted)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잘 받아들여지는', '받아들일 만한' 이란 의미이다.

 

원문상으로는 '성도들이 하느님의 은혜를 받을 만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들을 받으실 만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베드로 전서 2장 5절의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라는 구절에서 '하느님 마음에 드는'과 같은 의미이다.

 

코린토 후서 6장 2절 상반절의 인용구인 '은혜로운 때'에 해당하는 '카이로 덱토'(kairo dekto) 역시 '받으심의 때'로서, 후반절의 '카이로스 유프로스덱토스'(kairos euprodektos)와 구조와 의미가 동일하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지금'(nyn; 뉜; now), 즉 '복음으로 화해하게 만드시는 때'는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때이며, 하느님께서 친히 정하신 구원을 베푸시는 날인 것이다.

 

역사의 주권자이시며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느님께서 받으시는 바로 이때에 그분의 화해의 요청을 듣고, 하느님께 받아들여지는 영혼은 복된 자인 것이다.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복음(마태5,38~42)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38~41)

 

마태오 복음 5장 38절에서 구약의 형법 규정(탈출21,24; 신명19,21; 레위24,20)과 고대 형법의 근간을 이루었던 '동태복수법'(lex talionis)의 내용이 소개된다.

 

하느님께서 주신 절대 불변의 율법이며, 고대 세계에 널리 통용되던 정의 구현의보루라고 생각되었던, 악(惡)을 행한 자에 대하여 동일하게 보복을 가하여 징계하는 '동태복수법'을 예수님께서는 새롭게 해석해 주신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에서 '맞서지'로 번역한 '안티스테나이'(antistenai; resist)의 원형 '안티스테미'(anthistemi)는 '반대하다', '대신하다'는 뜻이 있는 전치사 '안티'(anti)와 '두다', '세우다' 등의 뜻이 있는 '히스테미'(histemi)의 합성어로서 '~에 대항하여 일어서다'는 뜻을 지닌다.

 

여기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행해지는 복수와 더불어 법정에서의 공방까지 가리킨다.

그리고 '악인'으로 번역된 '포네로'(ponero; evil person)의 원형 '포네로스'(poneros)는 마태오 복음 5장 37절에서 '악'으로 번역된 단어와 같은 단어로서 '악을 행하는 자', '비열한 자'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자신에 대해 위해를 가하는 비열한 상태에 대해  그 어떠한 복수도 삼가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피해자가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피해 보상의 권리를 포기하라는 교훈으로서 '동태복수법'을 절대 진리로 알고 있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5장 29절에서 '치다'로 번역된 '라피조'(rapizo; strike; smite)는 막대기로 '때리다'(마태26,67)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비록 손으로 때리는 것이지만, 큰 고통을 줄 만큼 매우 세게 쳤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손으로 뺨을 때리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었다.

 

특히 히브리인들은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른뺨을 때렸다는 것은 정면에서 손등으로 치거나 뒤에서 손바닥으로 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유대 풍습에서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보다  두 배나 모욕을 주는 것이다.

또한 등 뒤에서 때린다는 것은 상대방이 모르게 불의의 공격을 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럴 경우 다른 뺨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실제로 왼쪽 뺨까지 때리도록 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복수하지 말고 고통과 모욕을 견디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어떤 문제에 직접 대응함으로써 복수가 악순환되는 것을 막고, 오히려 상대방을 너그럽게 대하는 관용과 무저항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5장 40절의 '너를 재판에 걸어'에서 '재판에 걸다', '송사하다'로 번역되는 '크리노'(krino; sue at the law)는 '재판하다' 뜻도 있고, '비난하다', '헐뜯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을 반드시 재판을 염두에 둔 상황이라고 볼 필요가 없다.

 

이 구절은 재산상의 분쟁이나 강도를 당한 상황에서 속옷까지 가지려는 상대에 대하여 저항하지 말고 오히려 애덕을 베풀라는 뜻이다.

 

그 당시 속옷은 겉옷보다 가격이 싸고 보잘 것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반면에 겉옷은 가격도 비싸고, 일교차가 심한 팔레스티나에서 밤에 덮고 자야 하는 필수품이기에 전당잡힐 수조차 없는 품목이었다(탈출22,26; 신명24,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더 비싸고, 없으면 당장 추위에 떨어야 하는 겉옷까지 아무 저항없이 양도하라는 것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마태오 복음 5장 41절에서 '억지로 ~가게 하거든', '가자고 강요하거든' 번역된 '앙가류세이'(anggareusei; force~to go; compel~ to go) 페르시아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강제로 봉사하게 하다'는 뜻을 지닌다.

 

즉 페르시아 국왕이 조서를 전달할 때 사람들을 징발하여 짐을 지게 만들거나 문서를 전달하게 한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로마에서는 이러한 양민 징발 규정이 적용되었고, 로마의 식민지 유다에서도 시행되었다.

 

마태오 복음 27장 32절에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보고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이 구절은 '천 걸음'에 해당하는 '밀리온 헨'(milion hen; one mile), 즉 '오리' 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기꺼이 '오리'를 더 동행해 주는 너그러움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오늘 말씀은 상대방에게 호의를 보여야 할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그것을 묵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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