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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7.0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07-07 조회수7,685 추천수6 반대(0) 신고

 

(열두 사도)

2021년 7월 7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 10,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었던,

2004년은 제가 갑곶성지에

처음 발령받아왔던 해였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미사를 할 수 있는 경당을 먼저

만들어야 했습니다이를 위해

원래 있던 건물 일부분을

부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미사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이를 위해

토목 공사를 했습니다.

솔직히 건물 허무는 것을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오함마라고 불리는 커다란 망치로

마구 부수고 정리하면 되는 것으로

간단하게 여겼습니다그런데 일에

순서가 있다고 토목회사 사장님께서

말씀하십니다아무렇게나 허물다 보면

건물이 무너져서 위험할 수도 있고,

또 시간 절약을 위해서도 체계적으로

따로 떼어 부셔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사사로운 욕망을 품습니다.

이를 부셔야지만 깨끗한 마음으로

지금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욕망을 억제할 수

있을까요건물을 부수는 것처럼

우리의 욕망도 체계적으로

부숴 나가야 합니다간단한 것부터

어렵고 힘든 것을 향해서

체계적으로 말입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셨습니다.

사도는 단순히 제자와 다릅니다.

사도는 파견된 이사자더 나아가서는

전권을 위임받은 이를 뜻합니다.

특수 사명을 띠고 파견된 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와 동등하다.’

사도가 되어 세상에 파견되는 것은

주님과의 동등함을 가지고 파견된 것입니다.

그래서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받았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같이 다니며 하나씩

가르쳐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세상에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교육 방식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계속됩니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서,

성경 말씀을 통해서,

또 신심 서적 등을 통해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이런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주님의 일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처럼 삽니다.

그래서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지 못합니다.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지금 해야 할 것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분명히 도착하게 되어 있어.

오래 걷다 보면 말이야(루이스 캐럴).

인간의 네 부류

인간은 네 부류로 나눠진다고 합니다.

첫째, 훌륭한 사람자신을 존중하고

남을 존중합니다자신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남도 귀하게 여길 줄 압니다.

타인과의 관계도 잘 이끌어가며

자신과의 관계도 잘 유지합니다.

둘째, 나쁜 사람. ‘나쁜 놈

나뿐인 놈에서 나왔다고 하듯이,

오직 나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나를 귀하게 여기지만

남은 발가락의 때만도 안 여깁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은 어떤

피해를 보든지 알 바가 아닙니다.

셋째, 착한 사람남은 존중하지만,

자신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남을 돌보느라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자신의 욕구보다

항상 남의 눈치가 더 중요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편의를 위해

이 착한 사람을 자꾸 이용합니다.

세상살이에서 상처받아 점점 지쳐갑니다.

넷째, 아픈 사람자기도 돌보지 않고

남도 돌보지 않습니다.

남을 돌보지 못하므로 관계가

나빠지고 이것이 아픈 자신을

회복시키기 어려운 쪽으로 작용해서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혐오 수준으로 갑니다.

세상만사가 다 싫고 미우니

심한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은 훌륭한 사람이거나

최소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들을 세상에 파견하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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