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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강론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4-24 조회수73 추천수2 반대(0) 신고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마르 16,15-20ㄴ).”

 

 

 

1)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명령이기 때문에,

 

‘유언’과도 같은 말씀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이 직접

 

‘새 계명’이라고 표현하신 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새 계명’이라는 말은 ‘마지막 계명’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르코복음의 마지막 명령과 요한복음의 마지막 계명을

 

합해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또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복음 선포는 곧 사랑 실천입니다.>

 

 

 

2)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하느님이신 그리스도 말고, 사람이신 예수님의 심정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다음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그 심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6-38)”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의 인류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처지였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활동하실 때에도, 승천하신 뒤에도, 여전히 그런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그런 처지에 대한 예수님의 심정은

 

‘안쓰러움’이었을 것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는, “심판 날이 다가오는데

 

‘믿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적다.”로 해석되고,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는 “더 많은

 

사람들이 믿고 회개해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인도해

 

주십사고 하느님께 청하여라.”로 해석됩니다.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심정은 ‘안타까움’입니다.

 

<그 ‘안쓰러움’과 ‘안타까움’이 바로 “잃은 양 하나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심정”입니다(마태 18,12).>

 

그런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떠나는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심정은,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마태 10,16).” 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못 믿어서

 

걱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믿지만, 그들이 겪게 될

 

고생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안쓰러워하신 것입니다.

 

 

 

3) ‘안쓰러움’과 ‘안타까움’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사랑’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도 예수님의 심정과 사랑을 나타낸

 

말씀으로 해석하면,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는,

 

‘흐뭇함’으로,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는,

 

‘안타까움’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위협이나 경고 말씀이 아니라, 사람들이 멸망을 향해서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즉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를

 

바라시는 심정을 나타내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또는 예수님의 심정을 전하는 일이기도 하고,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의 내 모습’을 보신다면 어떤 심정이 되실까?

 

흐뭇하실까? 안타까워하실까? 안쓰러워하실까?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또 내가 사랑하고 있는

 

주님께 얼마나 ‘기쁨’을 드리고 있는가?>

 

 

 

4) 17절과 20절에 언급되어 있는 ‘표징들’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라고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항상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증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함께 일하시면서’입니다.

 

신앙생활과 선교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기도 하고,

 

반대로, 기대했지만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아서

 

실망할 때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기적 자체가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체험’과 ‘확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겠다.”

 

라고 약속하셨습니다(요한 14,18).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약속하신 대로 우리를 외로운 처지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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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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