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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27.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1-06-27 조회수7,531 추천수1 반대(0) 신고

마르 5, 21-43(연중 13주 주일)

 

오늘은 연중 제13주일이며, 교황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1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다.”(지혜 1,13)고 하시면서,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를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지혜 2,23)고 말합니다.

<2독서>에서는 기아 상태에 있는 코린코 신자들의 궁핍을 해결하기 위해 모금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면서 예수님의 너그러움을 상기시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9)

오늘 <복음>은 열두 해 동안 하혈병을 않은 여인 이야기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소생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것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는 단지 병을 고쳐주시는 분이 아니라, 죽은 이도 살리시는 하느님이심을 드러냅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으로서 명예와 존경을 받는 자였지만, 죽어가는 어린 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 속수무책의 슬픔과 절망 속에서 그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간청을 드립니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마르 5, 23)

 

회당장은 그야말로 전적인 신뢰의 자세로 진지하고 간절하게 청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만물을 당신 말씀으로 창조하시되, 인간만은 당신 “손”으로 창조하셨듯이, 이제 당신 “손”을 얹으시어 딸을 치유하시어 다시 살게 해 달라고 간청입니다.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한 아버지의 이 애틋한 사랑과 믿음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라나섭니다. 그런데 도중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말합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르 5, 35)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일인가! 모든 희망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깊은 절망과 슬픔에 빠져드는 순간입니다. 사람에게는 도저히 희망을 걸 수 없어서 하느님께 희망을 두었는데, 그 희망이 이루어지는가 싶더니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참담한 순간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때를 종종 마주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순간을 맞이하면, 우리는 어찌하는지요?

이 절망의 순간, 원망과 좌절이 밀어닥치는 이 순간, 하염없이 넘어지고 마는가요?

아니면 더 깊은 데서 물을 길어 올리는가요?

 

사실, 바로 이 순간이 우리가 진정으로 응답해야 할 순간입니다. 바로 이 순간이 더 깊은 곳으로부터 믿음을 퍼 올리는 기회의 순간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마르 5, 36)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죽었을 때에도 마르타에게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믿는다면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한 11, 23-26 참조)

 

그렇습니다. 죽음의 이 순간이, 바로 더 깊은 곳으로부터 믿음을 길러 올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생명을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자 마르타가 예수님께 대답하였습니다. “예, 주님! 저는 ~믿습니다.”(요한 11, 27).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야히로에게도 이 순간이, 병을 고쳐주실 분으로 믿었던 예수님을 이제는 나아가 이미 죽은 딸을 살려주실 분으로, 더 깊은 믿음을 끌어올리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바로 이 순간이 믿음의 시련의 순간이기도 하고, 기회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믿음은 우리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인가 봅니다. 우리가 끝났다고 여길 때, 바로 그때 하느님께서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절망적이라고 여길 때, 바로 그 때가 구원의 때요, 은총의 때가 됩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딸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슬픔과 절망과 두려움이 밀려오는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마르 5, 36)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는다는 것’, 그것은 내가 지배하고 있던 자리를 예수님께서 지배하시도록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눈에 보이는 희망이 가라진 현실상황에서, 바로 그 상황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단지 지적인 동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예수님 안에서 기다리는 인격적인 행위를 동반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리는 일입니다.

이처럼, 회당장 야이로는 믿음으로 일어섰던 것입니다. 야히로라는 이름의 뜻대로, 주님께서 깨우치리라, 일으키리라는 그 뜻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소녀의 나이는 열 두 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는 부모에게 “저는 제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 49) 하고 말했을 때도 열 두 살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하혈 병을 치유 받은 여인도 열 두 해를 앓았었습니다. 당시의 열두 살은 결혼할 수 있는 나이를 말한다고 합니다. 일어나 새로운 걸음을 걸을 수 있는 나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맞이하여 새 생명으로 살아갈 나이입니다.

오늘 우리도 일어나야 할 일입니다. “탈리다 쿰!”(마르 5,41), 이 말씀으로 일어나 걸어가는 사람, 예수님을 믿고 일어나 새 사람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믿음으로 걸어가는 사람 말입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너는 나를 따라라(마태 8,22)

 

주님!

오랏줄로 꼭꼭 저를 당신께 묶으소서.

당신은 저의 보금자리오니

당신을 따라 내려가 아래에서 살게 하소서!

대우보다 천대 받을 줄을, 존중보다 무시 받을 줄을,

인정보다 멸시 받을 줄을, 배려보다 모욕 받을 줄을 알게 하소서!

형제들을 떠받드는 발판이 되고, 머리기댈 곳이 되고,

당신의 제자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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