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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기그릇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2-06-10 조회수2,433 추천수29 반대(0) 신고

6월 11일-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마태오 10장 7-13절

 

"가서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사람은 고쳐 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 주어라. 나병 환자는 깨끗이 낫게 해 주고 마귀는 쫓아내어라."

 

 

<사기그릇>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하시면서 선교사가 지녀야할 가장 기본적인 노선에 대해 특별교육을 실시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청빈한 삶, 고통받는 이들과의 연대, 대가를 바라지 않는 봉사, 평화의 추구, 떠날 순간이 오면 지체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결단력 등등을 요청하십니다.

 

저희 수도원에 저하고는 달리 정말 수도자답게 생긴 형제가 있습니다. 마음도 천사처럼 곱지만, 외모도 그럴 듯 하게 예수님을 빼어 닮았습니다.

 

그 형제가 언젠가 볼일을 보러 지방에 내려갔다가 서울로 올라올 때 열차 안에서 생긴 일입니다. 맞은 편에 앉았던 아주머니 한 분이 계속 우리 형제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 "혹시 신부님이나 수사님 아니세요?" 하더랍니다. 평복차림이었던 형제는 깜짝 놀라 "어떻게 아셨냐?"고 물었더니 아주머니께서 "벌써 얼굴에 쫙 써있는데요"하더랍니다.

 

그 형제가 겪은 일을 떠올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연륜이 더해 가면 갈수록 보다 자신을 비우고 자신의 내면을 갈고 닦아야할텐데...그리고 그런 노력이 얼굴을 통해 드러나야 할텐데...세상 사람들은 그런 우리의 얼굴을 보고 그리스도의 얼굴을 뵐 수 있어야 할텐데..."하는 마음 말입니다.

 

우리가 언제 "∼답다"는 말을 사용합니까? 주어진 신분이나 직책에 걸맞게 살아갈 때 "∼답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답게 살고자 노력하는 것은 복음선포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선포를 위해 팜플렛을 들고 어깨띠를 두르고 가두선교를 하는 노력들, 참으로 소중하고 눈물겨운 노력입니다. 번번이 퇴짜를 맞으면서도 끈질기게 집집마다 방문을 해서 천주교를 알리는 일 역시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중요한 노력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보다 근본적인 일이 있습니다. 복음선포를 떠나는 우리의 내적인 준비입니다. 먼저 세상의 찌든 우리의 헌옷을 과감하게 벗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라는 새 옷으로 옷을 갈아입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화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제 2의 그리스도,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화 되지 않고,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를 살지 않고 복음선포의 길을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곤혹스런 일입니다.

 

아침이면 아침마다 하루 운수가 어떨지 화투로 패를 떠보는 사람, 때만 되면 점 집이나 역술가를 찾는 사람이 복음선포를 한다고 돌아다니면 세상 사람들이 다 웃을 것입니다. 사기나 유리로 만든 그릇은 부부싸움 하느라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으로 된 그릇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참으로 설득력 없는 복음선포가 될 것입니다.

 

진정한 복음선포는 무엇보다도 삶을 통한 복음선포입니다. 우리 존재 자체로, 우리 삶의 모습을 통해 복음선포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 얼굴만 봐도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힘겨운 가운데서도 기쁜가?", "나도 한번 신자가 되어보고 싶다"고 결심할 정도로 기쁘고도 열정적인 삶,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최상의 전교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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