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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공연한 객기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10-27 조회수2,559 추천수41 반대(0) 신고

10월 28일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루가 6장 12-19절

 

"그 무렵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들어가 밤을 새우시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공연한 객기>

 

청년시절, 한번은 저 홀로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본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진지하게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기도하러 산에 올랐으면 좋았을텐데...기도하러 올라간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을 한번 테스트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공연한 객기" 혹은 "치기"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괜히 폼 한번 잡아보기 위해서, 뭔가 제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보겠다는 "대단한" 바램을 안고 산에 올랐습니다.

 

낮에는 그리도 호젓하고 정겹던 산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자 낮과는 전혀 다른 길,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습니다.

 

그 밤길은 제게 있어 당장이라도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두려움의 길, 깊은 숲 속에 뭔가 잔뜩 도사리고 있는 듯한 음산한 길이었습니다. 산중턱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잘 올랐었는데, 능선을 타기 시작하면서 머리카락이 꼿꼿하게 서고 등골이 오싹오싹해져왔습니다.

 

주변 모든 상황이 다 두려움의 요소들이었습니다. 세찬 바람마저 스산한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를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러면서 불현듯 어린 시절부터 듣고 알게 되었던 귀신 이야기란 귀신이야기는 다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삶에 대한 반성이니, 새로운 결심을 세우느니 하는 것들은 모두 뒷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깊은 밤에 올라간 깊은 산, 그저 가만히 서있기도 두렵고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기간 동안 자주 밤 시간을 이용해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름대로 중대한 결정이라고 여겨지면 습관처럼 야밤에 산을 타셨습니다. 그냥 산보 삼아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진정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헤아려보기 위해, 강도 높은 기도를 위해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추호라도 인간적인 마음이나, 사사로운 마음, 이기적인 마음에 따라 결정하지 않도록, 온전히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업의 첫째가는 협조자들인 12제자를 뽑기 전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셔서 밤새워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오랜 시간을 아버지의 뜻을 찾는데 소요하셨습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간절히 기도하면서 아버지 앞에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마음에 맞는 친한 친구들과, 좋은 사람들과, 동기생들과 몇 날 몇 일 밤을 새워가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우리입니다.

 

좋아하는 취미활동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몇 달, 몇 년이고 우리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붓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아버지 앞에 홀로 밤을 지새운 적이 있는가?" 자문했을 때,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 시대, 홀로 있기를 두려워하는 시대인가 봅니다. 혼자 있으면 괜히 시간 낭비하는 것 같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하느님 앞에 홀로 앉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분 앞에 홀로 앉아야만 우리 자신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분 앞에 홀로 앉아야만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분 앞에 홀로 앉아야만 우리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가 하나 하나 드러납니다. 그분 앞에 홀로 앉아야만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오버한 일들, 중대한 실수들이 낱낱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작업-하느님의 얼굴을 홀로 대면하는 일-이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됨과 동시에 참된 하느님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고, 그 결과 진실로 기도다운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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