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마태7,1-5)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6-21 조회수7,32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6월 21일 월요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남을 심판하지 마라 (마태7,1-5)

   

 

1독서<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창세12,1-9)

그 무렵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너에게 복을 내리며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롯도 그와 함께 떠났다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그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다.

아브람은 아내 사라이와 조카 롯과자기가 모은 재물과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길을 나서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아브람은 그 땅을 가로질러 스켐의 성소 곧 모레의 참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족이 살고 있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을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그는 그곳을 떠나 베텔 동쪽의 산악 지방으로 가서서쪽으로는 베텔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이가 보이는 곳에 천막을 쳤다그는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

아브람은 다시 길을 떠나 차츰차츰 네겝 쪽으로 옮겨 갔다.

 

화답송 시편 33(32),12-13.18-19.20과 22(◎ 12ㄴ 참조)

◎ 행복하여라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 행복하여라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그분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주님은 하늘에서 굽어보시며모든 사람을 살펴보신다

○ 보라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 주님은 우리 도움우리 방패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주님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당신 자애를 저희에게 베푸소서

 

복음<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마태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남을 심판하지 마라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어떻게 형제에게 가만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제1독서(창세12,1~9)

 

 그 무렵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1) 

 

'주님께서~말씀하셨다'에 해당하는 '와요메르 예흐와'(wayomer yehwa) 시작하는 본문은 아브람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부르심을 받고 역사(歷史)의 전면에 등장하는 장면을 보도한다. 

 

이것은 역사의 전면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인간 아브람이지만, 그 배후에는 주님의 역사(役事)하심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본문이 '그 무렵(그러자;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로 번역되는 '와요메르'(wayomer)로 시작되는 것은 하느님의 역사하심이 주로 말씀으로 이루어짐을 보여 준다. 

 

'(너는)~가거라'에 해당하는 '레크 레카'(lek leka)에서 '레크'(lek; go) '걷다'라는 뜻이 있는 '할라크'(hallak)의 2인칭 단수 명령형이다. 그리고 '레카'(leka)는 전치사 '레'(le)와 2인칭 단수 어미가 붙은 형태로서 '너에 대해서는'(as for you) 또는 '너에 관한 한'(as far as you are concerned) 으로 번역될 수 있다. 

 

여기서 '레크'(lek)라는 2인칭 단수 명령형 그 자체가 '너는 가거라'라는 의미가 있는데, 다시 '너에 대해서는(관해서는)'이라는 뜻이 있는 '레카'(leka)를 덧붙인 것은 '가거라'는 하느님의 명령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아브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아브람을 대신하여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아브람이 버리고 떠나야 할 것으로 명시된 세 개의 단어 '메아르체카'(meartseka), '밈몰라드테카'(mimmolladtheka), '밉베트아비카' (mibbethabika) 앞에는 모두 철저한 분리를 나타내는 전치사 '민'(min)이 붙어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당신 자신에게서 스스로 나오는 반면에, 인간의 거룩함은 하느님을 향한 지향으로 세속과 이기와의 철저한 구분에서 시작됨을 알려준다. 

 

이것은 또한 거룩한 당신의 백성을 구별하여 세우시려는 하느님의 의지가 이미 아브람이라는 칼데아 사람을 세상에서 철저히 분리시키는 일에 예표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브람이 떠날 대상 고향, 친족, 아버지의 집  삼중으로 표기된 것은 결국 과거의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아브람이 이러한 것들을 과감히 버리도록 하느님께서 강력하게 요구하셨음을 의미한다. 

 

루카 복음 14장 33절에서 예수님께서도 '이와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한편, '네 고향'으로 번역된 '메아르체카'(meartseka) '너의 땅으로부터'라는 뜻이다. 이 말이 다른 두 가지, 즉 친족과 아버지의 집보다 앞에 나온 것은 하느님께서 아브람을 궁극적으로 인도해 가실 곳이 바로 약속의 '땅' 가나안이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최초의 요구로 '땅'을 떠날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이것은 옛 삶과 새로운 삶의 구별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새 출발과 더불어 가나안의 약속이 지배하는 삶의 영역으로 향하는 실질적인 삶을 강하게 명령하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이 있을 거처를 미리 마련해 놓으시고, 기존의 것에 안주하지 말고 떠날 것을 요구하신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6절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친족'으로 번역된 '몰레데트'(molledeth) '낳다'(창세4,18), '태어나다'(고헬렛7,1)로 번역되는 '얄라드'(yalld)에서 유래하여 '한 조상으로부터 태어난 자' 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느님께서 이러한 '친족'이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신 것은 당시 하란에는 아브람의 형제 나호르의 가족들이 살았기 때문이다(창세24,10; 28,10). 아마도 나호르 가족은 테라 일행이 칼데아 우르를 떠난 후(창세11,31) 바로 뒤이어 하란으로 이주하여 계속 그곳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치안 유지가 잘 되지 않았던 고대 사회는 오늘날보다 친족의 중요성이 더 컸다. 따라서 친족이 많은 자는 유력한 자로 여겨졌으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친족은 모여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친척 뿐만 아니라 보다 가까운 혈족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의 집조차 떠나라고 명령하신다. 이것은 하느님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도무지 순종할 수 없는 큰 희생의 요구이다. 

 

이제 하느님꼐서는 '고향'이라는 넓은 영역에서 '친족'이라는 중간 영역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고 너의 아버지의 집으로부터'에 해당하는 '우밉베트 아비카'(umibbeth abika)  가장 작은 영역으로, 아브람이 떠나야 할 곳을 점점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아브람은 그의 '고향', 즉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을 떠나는 '지역적 이동'을 해야 하는  뿐만 아니라 '친족'을 떠나는 '공동체로부터의 이동'을 해야만 하고,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마저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아브람에게 주어진 부르심의 내용은 당시 친지와 깊은 유대 관계를 가지고 살고 있었던 고대 유목민에게 있어서는 결코 따르기에 쉬운 것이 아니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사실에 대해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히브11,8)라고 계시하고 있다.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여기서 '너에게 보여줄'로 번역된 '아르에카'(areka) '라아'(raah; '보다') 동사의 사역형 미완료형에 2인칭 어미가 붙은 형태로서 '내가 너로 하여금 보게 할' 혹은 '내가 너에게 보여줄'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아직 아브람에게는 구체적인 목적지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본문에서 아브람이 가야할 곳의 지명이 막연하게 하느님께서 보여주실 '그 땅' 해당하는 '하아레츠'(haarets)으로만 표기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셨지만, 실상 그가 가야할 곳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분명한 목적지가 이미 선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하아레츠'(haarets)라는 '그 땅'에 붙은 정관사 '하'(ha; '그')에 의해서 확인된다. 

 

 '어떤 땅'이 아니라 바로 '그 땅' 가나안을 하느님께서는 생각하시고 아브람에게 명령하시고 계신 것이다. 아브람이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하느님의 확신에 찬 명령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십자가를 우상의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니겠지요.

(마태 7,1-5)

남을 심판하지 마라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 성경 말씀을 제사와 계명의 그 율법으로그리고 선과 악의 도덕과 윤리로 보게 되면 반드시 판단하게 됩니다.

그 선악의 법으로 먹으면 아담처럼 자신부터, 이웃까지 판단하게 되는 것이지요.

 

(로마5,12-16. 18) 12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3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15 그렇지만 은사(은총)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거져내렸습니다. 16 그리고 이 선물의(은총경우도 그 한 사람이 죄를 지은 경우와는 다릅니다한 번의 범죄 뒤에 이루어진 심판은 유죄 판결을 가져 왔지만많은 범죄 뒤에 이루어진 은사(은총)는 무죄 선언을 가져왔습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십자가의 대속)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로마3,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말씀(예수)을 내 뜻을 위한 제사와 윤리로 보면 심판으로그러나 하느님의 뜻인 대속의 십자가그 하늘의 진리로 받으면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어떻게 형제에게 가만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위선자야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눈으로 보다의 4단계말씀을눈에 보이는대로 보는 것.(옵타노마이그래서 ② 내 뜻을 만족시켜줄 능력의 힘으로 우상 삼아 보는(에이돈그리고 ③ 말씀의 뜻을 깨닫기 위해 여러 과정을 겪는 훈련의 단계 (블랙보우그래서 ④ 하느님의 뜻으로 깨닫는 단계(호라우)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성경을문자 그대로 보아 내 뜻을 만족시켜줄 사람의 규정과 교리계명으로 갖어버리면 내 눔에 하느님의 뜻을 헛되게 하는 들보가 되는 것입니다.(마르7,7 티토1,14참조)

 

(지혜13,1) 1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사람의 눈으로는 좋게는 보면서 하느님의 뜻으로 보는 눈이 없는 그 무지의 들보를 빼내는 방법은 옵타노마이로 아이돈의 상태인 그 욕망의 나를 버리고 깨달음의 과정 블랙보우를 통해 호라우’, 하느님의 뜻인 진리로 깨달아 돌아오는 겁니다.

 

(루가9,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그래서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를 대속하신 내 십자가임을 믿는다면,~

(골로2,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내 뜻을 위해 십자가에 경배를 한다면 십자가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열왕하 18,4 참조)

십자가는 죄의 용서구원의 진리인 것입니다그 진리의 예수님을 믿는 겁니다.

 

(요한3,18) 아들(진리)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5,24) 내가 진실로진실로(거듭해서너희에게 말한다내 말을 듣고(진리로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히브10,10) 이 에 따라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아멘.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7,1-5)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가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1~3) 

 

마태오 복음 6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자들이 일상 생활 가운데서 추구해야 하는 자신 스스로의 경건과 의로움과 관련된 규정을 다루었다면, 마태오 복음 7장 1~6절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하는 대인 관계의 규정을 다루고 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에 해당하는 '메 크리네테'(me krinete; do not judge) 단도직입적인 매우 강력한 의미를 지니는 명령문이다. 여기서 '심판하지'로 번역된 '크리네테'(krinete)는 복수 2인칭 현재 명령형이다. 

 

희랍어에서 현재 명령형은 생활 습관이나 기준을 새롭게 제시할 때 사용되는데,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계속해 왔던 심판하는 일을 그만두고, 심판을 금하는 새로운 생활 기준을 가지라는 말이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율법이나 자신들이 만든 계율로 이웃을 단죄하는 풍조가 만연했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판 혹은 비판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정당한 판단을 가리키지 않는다. 

 

여기서 금하는 심판(비판)은 유익하고 지혜로운 선악의 구별이 아니라 이해심이나 동정심없이 상대방을 근거없이 헐뜯는 것을 말하며, 절대 공의(義)로 심판권을 행사하시는 하느님과 같은 위치에서 다른 사람을 단죄하는 교만한 태도를 말한다(로마2,1~3; 야고4,11.12). 

 

그리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형제를 심판하는 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 사실은 마태오 복음 7장 1절의 '심판을 받다'에 해당하는 '크리테테'(krithete; you are judged)가 수동형이라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이 단어에서 동작을 받는 대상은 복수 2인칭 으로서 지금 이 말을 듣고 있는 자들이지만, 비판을 하는 주체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서 불공정하게 심판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단죄하시는 분이 바로 공의로우신 하느님이시라는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7장 2절은 마태오 복음 7장 1절의 보충설명이며 재강조의 성격을 가진다.

 

여기서 '심판받고'에 해당하는 '크리테세스테'(krithesesthe;  yo u will be judged)의 원형 '크리노'(krino)는 사사로운 단죄나 헐뜯는 것을 가리키지만판결하고 언도하는 사법적 의미로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또한  '그 되로 받을 것이다'에 해당하는 '메트레테세타이'(metrethesetai; it will be measured)의 원형 '메트레오'(metreo)는 양이나 길이를 재는 것을 가리키는 '메트론'(metron)에서 유래하여 물건 거래와 관련하여 사용되는 경제적 용어이다.

 

이처럼 마태오 복음 7장 2절은 사법적 용어와 경제적 용어를 사용하여 이웃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자는 동일한 처우를 받게 될 것을 강조한다.

 

두 단어가 모두 수동태로 사용되어 상대방을 향한 심판과 되질함이 하느님에 의해 자신에게 되돌려질 것을 보여 준다.

 

한편 마태오 복음 7장 3절은 '형제의 눈 속'과  '네 눈 속',  '티와 들보',  그리고 '보면서'와  '깨닫지 못하느냐'가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는 기교적인 문장이다.

 

'티'에 해당하는 '카르포스'(karphos; mote; speck)는 '시들다'는 뜻을 가진 '카르포'(karpho)에서 유래하여 지푸라기나 왕겨 등을 뜻한다.

 

그리고 '들보'에 해당하는 '도코스'(dokos; the beam; the plank)는 '받치다',  '지탱하다'는 뜻이 있는 '데코마이'(dechomai)에서 유래하여 건물을 받치는 기둥, 재목 또는 서까래를 뜻한다.

 

타인의 조그마한 결점을 상징하는 '티'와  자신의 큰 허물을 상징하는  '들보'라는 서로 대조되는 단어를 대구시키는 과장법을 통해 교훈이 전달된다.

 

예수님께서는 타인의 작은 도덕적 잘못이나 교리적 오류에 대해서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 예리하게 지적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갖고 있는 더 큰 잘못, 즉 마치 들보와 같은 결함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는 자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시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대표적인 들보와 같은 결함은 자신이 가진 죄악을 보지 못하는 영적 무지와 형제에 대하여 사랑이 없는 가혹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 7장 1절과 2절에서는 동사가 복수 2인칭으로 사용된 것과는 달리 마태오 복음 7장 3절에서는 동사가 단수 2인칭으로 사용된 것이 대조를 이룬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7장 3절에서 지금 말씀을 듣고 있는 자들 개개인이 바로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지적하는 심정으로 단수 2인칭을 사용하신 것이다.

 

 


 

2016년 6월 20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