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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606 - 연중 제9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 유광수 야고보 신부님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6-06 조회수7,284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7
06 06 () 가해 연중 제9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토빗기 2,9-14
마르코복음 12,13-17


유광수 야고보 신부님


<
합당합니까? >


우리는 살아가면서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많이 있다. 이것을 해야 하는가? 저것을 해야 하는가?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이것이 옳은 일인가? 저것이 옳은 일인가? 매 순간 판단을 내려야 하고 결정을 해야 한다. 이럴 때 답을 알고 있으면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만 답을 모를 때에는 곤란할 경우가 많이 있다. 참 어렵다. 그래서 우왕좌왕하고 결정을 미루기도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항상 분명하다. 언제 어디에서든 당신의 행동은 분명하고 신속 정확하다. 아니면 아니고 맞으면 맞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 할 것은 ""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대답하여라 고 말씀하셨다. 당신의 행동도 분명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8,34) 또는 "네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마르9,4347)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답을 알고 있으면 쉽게 대답할 수 있다. 답을 모를 때 우왕좌왕하는 것이고, 확신이 없고, 애매모호한 것이지 답을 알고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분명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올바르고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라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하느님께 배워야 한다. 하느님만이 바른 지혜를 가르쳐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달려있다.

하느님만이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분부하신 길만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너희는 행복하게 살고 잘 될 것이며, 너희가 차지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신명6,33)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응답하기를 ", 올라 가자, 주님의 산으로 야곱의 하느님께서 계신 전으로! 가는 길을 그에게 배우고 그 길을 따라 가자."(이사2,3)고 하였다

그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 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고 대답하신 예수님의 뜻은 무슨 뜻인가?

당시 로마의 데나리온(동전)에는 언제나 황제의 초상과 이름 및 명의가 조각되어 있었다. 당시의 황제는 티베리우스였으므로 겉에는 "하느님이신 아우구스토의 아들 티베리오, 카이사르 아우구스토" 라고 새겨져 있고, 뒤에는 "최고의 사제"라고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황제의 초상과 이름은 그 화폐가 황제의 것임을 뜻한다. 곧 화폐는 그들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세력과 권위의 심볼로서 나타나 있는 것이다. 만일 유다인들이 자기들의 나라 안에서 황제의 돈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제의 권위는 자기 돈이 사용되고 있는 모든 영역에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만일 예수가 황제에게 세금(주민세)을 바쳐야 한다고 대답한다면 예수를 하느님의 주권을 부인하는 민족의 반역자로, 그리고 주민세를 바쳐서는 안 된다고 대답한다면 민족 독립운동의 선동자로 고발할 구실을 얻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지배에서부터 벗어나려 했다. 황제의 통치에 대항하여 하느님의 왕정을 이룩하려는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했고 특히 과격한 혁명당원들은 납세거부운동을 벌이면서 무력 항쟁까지 불사했던 것이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친다는 것은 황제의 권력에 승복하고 동시에 하느님의 주권을 부인하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속셈을 알고 계신 예수님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 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고 대답하셨다. 즉 주민세로 바치는 로마 은화 데나리온은 황제의 흉상이 박혀져 있기 때문에 황제에게 속한 것이니 황제에게 바치고 이에 반해서 하느님의 모습을 지닌 인간은(창세 1, 27) 하느님의 것이니 하느님께 바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대답은 황제에게는 주민세로 은화만을 지불하면 되겠지만, 하느님께는 하느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인간 즉 자신을 모두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한 마디로 예수님은 황제의 통치와 하느님의 통치를 대등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하느님의 권위는 절대적이고 황제의 권위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하느님이냐, 황제냐"의 양자택일 문제는 근본적으로 제기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양자택일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냐 할 때 자칫 잘못하면 하느님의 권위보다는 황제 즉 국가의 법을 더 먼저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유혹에 빠지게 될 경우가 많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의 권위에 우선권을 두면서 행동하기 위해서 즉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법 즉 성서를 읽어야 한다. "너희는 ... 한 말을 읽어 본적이 없느냐?" 라는 말씀이 바로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나의 모습이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그래서 하느님의 것이라면 나의 것 중에 하느님의 것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1코린 3,23) 라고 사도 바오로는 말씀하셨다.

나라에 여러 가지 세금을 내는 것이 국민의 의무라면 하느님의 것인 우리는 하느님께 무엇을 바쳐야 하는가? "우리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없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7-8)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하느님의 것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 나의 시간도, 건강도, 능력도, 권위도, 재물도 등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할 하느님의 것이지 나의 것, 우리의 것이 아니다.

즉 나와 너와 우리를 위해서 사용되어져야 할 것들이 아니라 나와 너와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잘 사용해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할 것들이다. 이 원칙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판단의 기준이 설 것이다.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서 사용되어져야 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 하느님이 주신 모든 선물들을 잘 사용하여 하느님께 돌려 드릴 수 있는 은혜로운 하루가 되도록 하자.


유광수 야고보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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