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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령] 위령 성월 특집: 그리스도교 장례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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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05 조회수333 추천수0

[위령 성월 특집] 그리스도교 장례의 변천


속죄냐, 파스카냐… 죽음의 관점 따라 절차 달라져

 

 

세상 떠난 이들의 영혼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위령 성월이 돌아왔다. 이 기간에 교회는 앞서 죽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며, 죽음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묵상하도록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통해서 모든 인간이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느님에게서 영원한 삶을 선물로 받았으므로 죽음은 삶의 폐막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옮아감이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교의 장례 예식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가는 파스카적 성격을 지닌다. 위령 성월을 맞아 그 역사적 변천 과정을 살펴본다.

 

이탈리아 화가 라자로 바스티아니의 ‘성 예로니모의 장례’(1470~72).

 

 

초대교회

 

그리스도교 장례 예절이 완성되지 못했던 초기교회 때는 유다교와 이교 장례 관습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 대다수가 유다인이었던 면에서 당시 장례 예절은 유다교 관습을 그대로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시신을 처리하는 문제는 유다인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먼저 눈을 감기고, 몸을 가지런히 하고, 수의를 완전하게 입혔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 관습에 육신의 부활이라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덧붙였다.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서 중요한 것은 슬픔의 표명과 위로였는데, 신자들은 오히려 이를 뛰어넘은 것으로 보인다.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쁨을 드러내려 했고 파스카와 관련된 시편과 감사의 찬가를 불렀다. 그들에게 있어 신앙은 파스카를 통한 영원한 생명의 세상으로의 부활을 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중세 초기까지 일정한 장례 예식서를 갖지 못했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자신이 속한 문화적 관습을 부활 신앙과 결합해 지역별 다양한 장례 예식으로 거행했다. 그리스도교가 전파될수록 각 지역의 이방인들 문화와 관습은 그리스도교 전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장례 예절은 지역별로 독특한 것이어서 매우 다양한 형태의 이교적 관습이 전례 안에 들어왔다. 세상 떠난 날 행해졌던 초대 교회의 음복 관습, ‘레프리제리움’(Refrigerium)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위령미사로 발전됐고 2세기부터 봉헌된 흔적을 아리스티데스의 「호교론」과 외경 「요한행전」 등에서 찾을 수 있다.

 

 

- 이교적 관습이 전례 안으로 들어온 모습 중 하나인 ‘레프리제리움’은 세상 떠난 날 행해졌던 초대 교회의 음복 관습이다. 사진은 터키 앙카라 부근의 ‘레프리제리움’을 보여주는 대리석 구조물.(3세기경) 위키미디어. 

 

 

중세교회

 

이때는 전승된 장례 예식 안에서 이교적인 관습을 제거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7세기 이전까지는 그리스도인의 죽음에 담긴 파스카적 기쁨이 강조됐다. 죽음이란 하느님 자비하심에 의해 이 세상 삶을 마치고 영원한 왕국으로 떠나는 여행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중세 중기에 이르러 죽음의 속죄와 참회 측면이 강조되기 시작했고 장례 예식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장례미사는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한 속죄 수단으로, 또 장례 예식에서 파스카 기쁨은 죽은 이의 영혼의 죄를 씻는 속죄적인 성격으로 대체됐다. 장례 예식에서도 기쁨을 표명하던 파스카적인 요소는 서서히 사라졌다. 특히 8세기 이후 갈리아 지방 전례에서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17세기 초까지 지역별로 여러 수도원 전승에서 기인한 여러 장례와 매장 예절이 로마 교회 안에 존속했었으나 바오로 5세 교황(재위 1605-1621)은 1614년 전 교회에 통일된 예식서, 즉 「로마예식서」 사용을 선포한다.

 

이 예식서는 예식을 간소화하면서 파스카적 성격을 띠는 기도문 숫자를 줄였다. 세상을 떠난 이의 죄의 용서를 청하는 사죄 예식을 예식의 중심에 놓았다. 속죄의 성격을 띤 기도문, 시편, 후렴 등은 충실하게 보존했고, 장례 예식을 상징하는 색을 검은색으로 규정했다. 초대교회에서는 장례의 색상이 부활을 상징하는 흰색이었다.

 

이 예식서는 결국 그리스도교의 장례 예식이 파스카적인 성격을 상실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전례헌장」은 장례 예식이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파스카적인 성격을 더욱 명백히 표시할 수 있도록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장례 예식의 개정에 대해 언급했다.

 

이를 바탕으로 1969년 개정 출간된 새 「장례예식서」는 파스카적인 성격을 명백히 표현했고 각 나라 전통과 환경에 맞춘 변화를 허락했다. 초상 직후부터 하관 예식까지 장례 절차를 세 가지 유형 예식으로 제시하고 지역교회가 각국 관행에 맞는 예식을 사용하도록 했다. 파스카 요소를 담은 기도와 성경 말씀을 사용하도록 제시했고, 어린이 장례 미사를 세례 받은 어린이와 세례 받지 않은 어린이로 구분해 수록했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도 「장례예식서」를 1976년 한국어로 번역해 사용했다. 이후 2003년 「상장예식」 발행에 이어 로마미사경본과 장례예식 개정으로 수정 보완한 개정판을 2018년 출간했다. 2019년에는 장례미사 집전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장례미사」를 간행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9년 11월 3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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