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묵주를 엮으며
작성자김철붕 쪽지 캡슐 작성일1998-10-23 조회수7,211 추천수3 반대(0) 신고

제 글은 아닙니다만 나누고자 게시합니다. 많이들 읽으시고 그 느낌들을 마음에 담아 묵주기도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묵주(默珠)를 엮으며 남상숙 데레사 <수필가> 까닭없이 마음이 어수선하고 심난할 때 혼자만이 즐기는 취미 하나가 나에게 있다. 직경 2밀리미터쯤의 가는 끈목(매듭짓는 실)으로 콩알 만한 매듭을 지어나가는 것이다. 원래 매듭짓기가 능률적인 것이 못 되고 남 보기에 답답하기조차 하기에 할 일 없는 사람의 남아도는 시간 메우기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열중하다 보면 한가닥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정확한 순서와 방법이 마음을 모으게 하기에, 어수선한 마음을 가라앉힌다. 본디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십여 년 전, 전통 매듭 배우기에 빠졌었다. 지금은 엮는 기법을 잊기도 했지만, 도래 매듭으로 시작하여 생쪽, 장고, 나비, 매화 매듭… 등등의 기본 매듭과 그것들을 응용한 문양들이 다양하다. 부채 손잡이 끝이나 노리개, 안경집, 주머니에까지 갖가지 모양으로 매듭지어 달던 여인들의 미적 감각과 안목. 실 자체는 원색이 많았고 장식용이라 화려했지만, 카키색 벽돌색 은행색 겨자색 등 중간색의 아름다움과 보색대비의 격조 놓은 색의 어울림이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었다. 전통매듭은 조선시대에 가장 활발하였지만 오랜 세월 여러 장인들에게 맥이 전승된 공예예술이다. 바깥 출입이 쉽지 않았던 여인들이 심심파적으로, 더러는 시름을 달래려 즐기던 취미이기도 했다. 얼기설기 엮는 것을 무심히 보면, 끝 실이 뒤엉키는 것 같지만 당기고 조이다 보면 앞뒤의 문양이 구분없이 꼭 맞아 떨어지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얼마나 많은 생각과 되풀이로 방법을 알아내었기에 이리 정확한 모양새가 나오는가. 얼마나 인내를 가지고 지혜를 모았기에 이리 아름다운 문양이 엮어질까. 짜임새 있고 빈틈없는 창작적 두뇌와 끈목이 엮어지는 기법에 감탄을 했었다. 그 동안 만들었던 것은 하나 둘 친지들에게 나누어주고 지금은 단순한 색과 문양의 벽걸이 하나만 가지고 있다. 지금은 실용성이나 소비성 있는 것이 아니기에 매듭 엮는 것을 잊고 지내다가 묵주 엮는 법을 배우게 됐다. 양팔로 열 발이나 되는 긴 끈목을 반으로 접어 두 가닥 실로 가락지매듭을 동글동글 지으니 콩알만한 모양새가 앙증맞았다. 성모송으로 가락지 매듭 열 개, 영광송으로 쌍가락지 매듭 한 개씩을 엮어나가는 것이 즐겁기도 하였지만, 어느 순간들은 지루하기도 하다. 가락지 매듭은 단추 매듭의 응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인들의 한복 저고리에 고름 대신 매듭지어 달던 단추. 단추가 귀하던 때 헝겊으로 단추를 만들었다. 무명 헝겊을 끈목처럼 좁게 접어 실로 감쳐서 끈목삼아 매듭짓던 단추. 그건 무명 저고리와 모시 적삼에 우아하게 어울리는 단순미였다. 삶아 빨아 방망이로 두드려도 깨질 염려가 없는 무명의 헝겊 단추. 한여름 염천에 속살이 언뜻 내비치는 세모시 적삼의 그 서느러움과 정결미는 가슴 한복판에 꼭 여며진 콩알만한 매듭단추로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올곧게 지키려는 여인들의 자존심의 징표 같은 것. 치렁한 긴 고름의 부드러움과는 또다른 아름다움이기도 했다. 그 단추 매듭을, 아니 가락지 매듭을 어찌 묵주알에 연결시켜 생각할 줄을 알았을까. 맨 처음 그는 누구였을까. 그 착상이 놀랍기만 했다. 그렇게 가락지와 쌍가락지 매듭을 70여 개 만들며 심취하다 보면 일상의 번다한 시름쯤은 잊게 된다. 마지막에 십자가까지 매듭지어 완성시키려고 끈목을 끊거나 잇지 않으니까 긴 실을 추스르기가 쉽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반복됨이 지루하거나 비생산적인 작업이지만, 푸새하여 모양 잡아내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기쁨이 어찌 좋지 않으랴. 지금은 묵주 구하기 힘든 옛날도 아니고 아름답고 견고한 묵주가 쏟아져나오는데 왜 괜한 고생이냐고 남편은 핀잔을 한다. 그러나 조율사가 음이 엉망인 악기를 조심스런 마음으로 조율하듯 묵주알을 엮으며 내 감정의 파장을 조율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기도 함을 어찌 알까. 나에게는 어려서 첫 영성체 때 어머니께서 사주신 깜장 실묵주도 있고, 결혼 때 수녀인 이모께서 주신 소화 데레사 성녀상이 달린 묵주도 있다. 그러나 묵주의 기능(機能)이 보존하기 위한 것만이 아님을 왜 모르랴. 틈만 나면 기도의 생으로 일관하셨던 나의 할머니 묵주는 십자고상이 마모되어져 할머니와 함께 묻혔는데. 매끄럽고 동글한 묵주를 들고 아이들과 둘러앉아 기도 드리는 시간도 좋고, 투박하고 까칠한 감촉의 매듭 묵주로 혼자서 드리는 기도도 좋다. 실로 만들어졌기에 모양새는 없지만 남이 알지 못하는 나의 이 기능과 취미가 더할 나위없이 좋다. 필요할 때만 더욱 절실해지곤 하기에 한뉘 이럴까 싶기도 한 적극적이지 못한 나의 신앙. 핑계대기에 바쁘다가 미안스러워 돌아서는 감정의 기복(起伏). 어쩐지 늘 억울한 듯싶은 불만투성이의 내 삶에서 그렇게 신앙의 자맥질을 계속하면서 마음을 모으면, 알지 못할 심연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마음의 정복을 느낀다. 한 알 한 알 묵주알을 엮고 손톱밑이 아리도록 꼭꼭 조이며 성모송을 읊조리면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순일한 정감이 가슴에 가득 차오른다. 나의 심원을 꿰뚫어보는 분의 부드러운 눈길을 감지한다. <'아름다운 것은 가장 오래 남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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