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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06-10 조회수7,193 추천수10 반대(0)

한국 천주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 1995년부터 해마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날은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는 가운데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입니다. 사제직의 존귀함을 깨닫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날입니다. 교구에서는 사제성화의 날이면 사제들이 모여서 하루 피정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피정 중에 강의를 듣고, 함께 기도하고, 고백성사를 보았습니다. 교구장님과 함께 미사로 피정을 마쳤습니다. 20년 전입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저에게 사목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하라는 권유가 있었습니다. 저는 3년 동안 본당신부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선배 신부님의 권유를 받아들였고, 제가 생각하는 사목에 대해서 발표하였습니다. 오늘 사제성화의 날을 지내면서 20년 전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사목이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산보를 하고 있지만 20년 전에도 산보는 제게 유일한 운동이었습니다. 산보 중에 있었던 기억입니다. 점심을 먹고 산보를 가려고 사제관을 나서는데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잔뜩 흐렸습니다. 우산을 들고 길을 나서는데 초등학교 2학년인 진성이가 성당으로 왔습니다. 진성이는 성당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어린이인데 달리기를 아주 잘합니다. "진성아! 산보갈래!"하니까 진성이는 가방을 교육관에 벗어놓고 곧 저를 따라나섭니다. 우리는 큰 찻길을 건너, 비가 온 뒤에 물이 많아진 개울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을 지나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장날이 아니라서 시장은 한산했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는 진성이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다시 큰길을 건너 진성이가 다니는 학교엘 갔습니다. 진성이가 우산을 교실에 놓고 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개울을 건너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놀다가, 성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평소보다 길게 산보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제관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진성이가 말하였습니다. "신부님 산보는 어디에 있어요?" 저는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다시 산보를 가자는 말인가! 진성이는 "산보"라는 장소가 어디에 있는 줄 알았나 봅니다. 문득, 하느님 앞에 저 자신을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다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다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진성이처럼 하느님은 어디계시냐고, 하느님의 뜻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양심을 주셨고, 예언자들을 보내 주셨고,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사목이라는 것도, 어쩌면 어려운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미 사제가 되었으면 어떤 사목자가 하느님 마음에 드는지, 어떻게 살아야 참된 사목자가 될 수 있는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꼭 많은 이야길 해야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꼭 먼가를 가르쳐야만 마음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실천하려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둘째, 사목이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는 예수님께 옳고 그름에 대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안식일의 규정을 들어서 죄인들을 단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의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규정을 따져서 죄를 범한 여인을 돌로 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시오.’라고 하셨습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주시오.’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의 잘못을 비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갈 수 있도록,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나갈 수 있도록 성령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과 심판은 하느님의 몫으로 남겨 놓으셨습니다. 밀과 가라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가라지의 삶이었을지라도 밀이 되는 것입니다. 악의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과 멀어지는 사람은 밀의 삶을 살았을지라도 가라지가 되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은 밀과 가라지의 경계가 없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宗敎란 으뜸가는 가르침이라는 한자입니다. Religion은 엉킨 실타래를 푸는 의미가 있는 영어입니다. 으뜸가는 가르침으로 세상사의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이 종교라면 그리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 그리하여 참된 구원의 문에 도달하려면 꼭 옳고 그름을 가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사목이란 용서와 사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셋째, 사목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교우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사제관으로 들어가려는데 건회와 진성이가 성당 문으로 뛰어오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왜 뛰어올까 생각하면서 물어 보았습니다. 두 친구는 집에서 성당까지 뛰어왔답니다. 두 아이의 집은 장현리이고, 장현리는 차로도 15분은 가야되는 거리입니다. 아이들은 성당 버스를 놓쳤고, 그래서 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3시간 30분을 뛰어서 성당에 도착한 아이들을 보니, 가슴이 찡해집니다. 뛰다 넘어지고, 그리고 또 뛰고 그렇게 성당엘 온 아이들을 생각하니, 조금만 불편해도 짜증을 내는 저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졌습니다. 건회는 현지라는 동생이 있고, 진성이는 민정이라는 누나가 있습니다. 현지와 민정이는 뛸 수가 없어서 장현리에 있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을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건회와 진성이와 성당차로 장현리 건회의 집으로 갔습니다. 두 아이들을 이 저를 보고 너무 반가워합니다. 우리는 함께 성당으로 왔고, 아이들은 230분 군종미사 참례를 하였습니다. 주님의 수난 성지 주일에, 두 아이가 그렇게 저에게 감동을 줍니다. 주님의 수난 성지 주일에, 두 아이가 성지 주일의 참 의미를 알려줍니다.

 

어느덧 주님께 모욕을 주고, 어느덧 주님을 모른 체하고, 어느덧,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사목이란 한 번에 무엇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사목이란 논에 모를 심는 것과 같이 모를 심었다고 농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관심과 노력 그리고 반성을 통해서 결실을 맺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그 속에서 생명의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오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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