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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요일(홍)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7-04 조회수7,169 추천수0 반대(0) 신고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한국의 최초의 사제로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충남 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슬라 사이에 태어났다. 양반 가문이었으나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집안이 몰락하였다.

 

김대건은 열여섯 살인 1836년 사제가 되고자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길을 떠났다. 1844년 부제품을 받은 그는 선교 사제의 입국을 돕고자 잠시 귀국하였다가 다시 중국으로 건너나 1845817일 상하이의 진자샹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고국에 돌아온 김대건 신부는 서해 해로를 통한 선교 사제의 입국 통로를 개척하려다가 18466월에 체포되어 여러 차례 문초를 받고 516일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456일 서울에서 한국 순교자 103위를 시성하면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정하상 바오로와 함께 한국의 대표 성인으로 삼았다.

한국 교회는 순교자 현양을 위하여 과거 대축일이었던 75일에 성대하게 신심 미사를 드리기로 하였다,(주교회의 2019년 추계 정기 총회)

 

 

1독서(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4,18-22

그 무렵 요아스 임금과 유다의 대신들은

18 주 저희 조상들이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즈카르야는 주님의 계명을 어기는 이들을 책망하다가 주님의 집 뜰에서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는다.

 

 

 

2독서<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6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주해(해제.역주 박영식 신부님)

1

신앙에 의한 의화는 하느님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가져다준다.  평화는 죄인이 하느님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그분과의 화해를 토대로 죄와 진노와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은 상황을 가리키다,

 

2

모든 사람들이 범죄 때문에 상실하 하느님의 영광은 세말의 축복으로서 그리스도의 중개로 다시 얻게 되었다.

유다인들은 자랑할 근거가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세말에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현존 속에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자랑한다.

 

4절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이유는 그분이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데 있다.  성령이 그들의 마음속에 현존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고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5

의인을 위해 죽을 사람이 거의 없다면 그리스도가 심지어 죄인들을 위해 생명을 바치셨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강조한다.

 

#. 의화의 결실: 의화는 다음과 같은 결실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하느님과 화해하고 평화를 누리면서 세말에 하느님의 현존에 결정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 희망은 우리를 현세의 고통과 불행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게 한다.

하느님은 당신 아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향한 사랑을 입증하고 당신 성령을 통해 우리를 향한 사랑을 입증하고 당신 성령을 통해 이 사랑을 체험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이 사랑의 힘으로 우리는 인간적 연약함과 죄를 이겨내고 그리스도의 죽음 덕분에 하느님과의 화해를 얻어 심판에서 구원받을 희망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분의 부활 생명에 참여하고 그분의 중재로 하느님을 모신 것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복음<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신부님)

17

17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다인들에게서 겪는 박해를 묘사한다. 50년경 유다지방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들에게서 박해를 받았다는 기록이 1데살 2.14에 있다. 여기 의회는 회당의 유지 23명으로 구성된 지방의회를 뜻한다. 지방의회에서 유죄판결을 내리면 회당에서 매질을 했다. 법적으로 최고 40대까지 매질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39대까지만 때렸다. 사도 바오로는 유다인회당에서 39대 매질을 다섯 번이나 맞았다.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제국의 총독들 또는 로마제국이 임명한 지방 임금들 앞에 끌려가 예수를 증거하는 것은 유다인들이 박해하거나 이방인들이 박해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19

그리스도인들이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될 때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이미 걱정할 것 없다. 성령이 일러 주실 것이다라는 말씀은 첫 번째 위안이다. 이는 본디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구전된 단절어였다. 이 단절어는 두 갈래로 구전되어 오다가 그 중 하나는 어록에 수록되고 하나는 마르 13.11에 수록되었다. 바태오는 어록과 바르코를 혼합하여 10,19-20을 엮었다.

베드로, 베드로와 사도들, 스테파노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님을 증거했다.

 

21

묵시문학계에서는 비판적 사관을 지녀서 종말이 다가올수록 비극이 도를 더한다고 보았다. 실례로 사회조직이 무너진다. 사회조직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비극의 극치다.

22ㄱ절은 절망적 상태다. 마르 13.13ㄱ을 글자 하나 바꾸지 않고 옮겨쓴 것이다. 마태오는 이 구절을 24.8ㄴ에서도 전재했는데 조금 고쳤다. “여러분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견디는 사람이야람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는 마르 13.13ㄴ을 고스란히 옮겨쓴 말씀으로서, 19-20절에 이어 두 번째 위안이다. 여기서 끝까지는 종말까지를 뜻할 수도 있겠고 또는 순교로 죽기까지를 뜻할 수도 있겠다.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역시 종말 구원을 가리킬 수도 있겠고 또는 순교한 다음의 영생을 가리킬 수도 있겠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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