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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국의 적금통장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06-25 조회수2,428 추천수40 반대(0) 신고

6월 26일 연중 제12주간 목요일-마태오 7장 21-29절

 

"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천국의 적금통장>

 

한 주간을 보내면서 제 마음이 가장 조마조마한 순간이 있는데 바로 주일 저녁식사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외출이나 외박을 나갔던 아이들이 다들 무사히 돌아왔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지요. 수저를 부지런히 움직이지만 제 신경은 온통 누가 왔는지 누가 아직 안 돌아 왔는지에 몰두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기적처럼 귀가율이 100%여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너무나 기분이 좋은 나머지 아이들 담당 신부님, 수사님과 축하주라도 한잔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처럼 나지만 생각뿐입니다.

 

최근에 6개월 간의 법원처분기간을 무사히 잘 보내고, 검정고시를 위해 1년 간 더 살겠다고 연장신청을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싱글벙글 온몸으로 미소를 지으며 사흘 간의 만기휴가를 떠나던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대견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휴가를 떠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마음도 있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이 녀석이 또 옛날 친구들과 어울려서 또 사고를 치는 것을 아닌지? 그 사이에 마음이 변해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다행히 아이는 제 그런 걱정을 말끔히 씻어주었습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귀가 마감시간인 저녁 5시 30분, 현관 앞에 딱 도착했습니다. 너무도 고맙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아이에게 제가 한가지 질문을 했었지요. "애야, 정말 잘 돌아왔다. 내가 네 걱정에 사흘 간 한잠도 못 잔 것 너 아니? 그런데 너 솔직히 한번 이야기해봐라. 사흘 동안 네 마음 속에서 들어오고 싶은 마음과 안 들어오고 싶은 마음이 많이 싸웠지?"

 

한참이나 저를 빤히 바라보던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신부님, 어떻게 제 마음을 딱 알아맞히셨어요? 솔직히 사흘 집에 있으면서 한 서너 번 딴마음이 들었지요. 그래도 신부님들과 한 약속, 그리고 저 자신한테 한 약속이 있는데...남자가 그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 딱 감고 돌아왔지요."

 

6개월 전보다 너무도 달라지고 성숙해진 아이를 보니 뛸 듯이 기뻤습니다. 맛이 간 모습, 어리버리하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청소년 특유의 보송보송한 얼굴, 갓 낚아 올린 고등어처럼 팔팔함을 회복한 아이의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아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며 "정말이지 나보다 네가 더 낫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떳떳이 서기 위해 그 숱한 유혹을 당당히 이겨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도 기특해 보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입으로 만의 신앙, 생각 만으로의 신앙에서 탈피해서 삶과 정신이 일치하는 조화로운 신앙-행동하고 실천하는 신앙-을 지닐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너무도 자주 체험하는 바이지만 생각 만으로야 수 백 번도 더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삶 안에서 헌혈 한번 할 수 있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는 우리이지 않습니까?

 

입으로야 하루에 수 천 번도 더 사심 없는 희생의 중요성에 대해서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삶 안에서, 구체적인 상황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에도 끝까지 양보 한번 하지 않고, 싸움닭처럼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입술로야 하루 온종일 "예수 그리스도는 내 생의 전부입니다"고 수없이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말씀을 살기란, 실천하기란, 실제 삶 안에서 구체화시키기란 하늘의 별따기인 것이 사실입니다.

 

아주 작은 일일지라도 하루에 단 한가지씩만이라도 눈에 보이는 하느님인 이웃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일, 남들이 알아주지 않은 일, 아주 하찮고 미미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좋습니다.

 

이웃이 모르게 이웃을 위해 아주 작은 선행 한가지씩 실천하여, 그 선행을 매일 하느님 나라의 통장에 적금시키는 오늘 하루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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