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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계약의 표징 할례/아브라함/성조사[18]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3 조회수1,194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8계약의 표징 할례

 

아브람의 나이가 아흔아홉 살이 되었을 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계약을 세우고,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전능한 하느님은 히브리 말로 엘 샤따이이다. 샤따이의 뜻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산속에 사는 분또는 보호자를 뜻할 수 있다. 지금도 전능하신 그분께서 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 이는 늘 깨어 있으면서 단련하라는 명령일 게다. 어쩌면 조건 없이 하느님께만 속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이에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하느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를 보아라. 너와 맺는 내 계약은 이것이다.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본디 아브람은 아버지는 존귀하다를 뜻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에서 라함은 히브리어 하몬’, 많은 숫자또는 군중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라는 뜻이 될게다.

 

이렇게 이름을 새롭게 갖는 것은 임금이 왕위에 즉위하면서 새 이름을 갖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이름을 바꾸는 것은 새 직책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이제부터 아브라함은 단순한 유목민의 족장 아브람이 아닌, 이스라엘의 아버지, 민족들의 아버지로 그 뜻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묵상거리가 있다.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람은 이제 아브라함이 되었다. 아마도 야곱은 아브람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을 게다. 왜냐면 그는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뀐 후 태어났기에. 그는 한창 재롱을 피울 때에 아브라함 할아버지하며 잘도 따랐을 게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그의 이름대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었다. 그는 드디어 이스라엘 한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고, 많은 민족의 아버지로도 자리매김 되었다.

 

그런데 야곱도 그의 할아버지처럼 하느님으로부터 새 이름을 부여받았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32,29). 그렇지만 그는 오늘날까지 늘 야곱과 이스라엘 두 이름으로 함께 불린다. 그것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하느님을 뵙게 될 다음 세상에 속하기에 그렇다. 우리의 현실 안에서는 늘 야곱이고 희망에 찬 다가올 하느님과의 시간에서는 이스라엘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이 하느님의 시간 속에 속하기에 야곱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이다. 그래서 아브라함 손자는 지금도 야곱이랑 이스라엘이 같이 불리어지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계속 아브라함에게 이르셨다. “나는 네가 매우 많은 자손을 낳아,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너에게서 임금들도 나올 것이다.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나는 네가 나그네살이하는 이 땅, 곧 가나안 땅 전체를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고, 그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본디 계약은 상호적이어서 나는 너의 하느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가 되어야만 완전 계약 내용이 될 게다. 그런데 이 계약에는 오로지 그분께서는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단지 하느님이 되어 주겠단다.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말은 없다. 이처럼 한 쪽만 굳이 언급된 이유는, 이 계약 체결은 절대적으로 하느님의 계획으로 이루어지고 하느님의 행위임을 드러내는 것이리라.

 

하느님께서 이어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셨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너희가 지켜야 하는 계약, 곧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은 이것이다. 곧 너희 가운데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는 것이다. 너희는 포피를 베어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세운 계약의 표징이다.”

 

노아의 홍수가 끝난 다음, 하느님과 노아를 비롯한 온 인류와 맺어진 계약이 무지개로써 세상에 알려졌듯이(9,12-13), 아브라함 그리고 그 자손들과 맺어진 선민 계약은 몸에 있는 표지, 곧 할례로써 표출된다. 할례는 많은 민족들이 치렀던 혼인 입문 의식의 하나였다. 이 의식이 이스라엘에서는 선택된 민족에 속한다는 표징이 되었기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기들은 할례를 받았다. 혼인 적령기에 접어들었음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이 의식이 탄생 의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이스마엘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데, 그가 이 할례를 받을 때가 열세 살이었단다(17,25).

 

계속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대대로 너희 가운데 모든 남자는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 씨종과, 너의 후손이 아닌 외국인에게서 돈으로 산 종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 네 씨종과 돈으로 산 종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러면 내 계약이 너희 몸에 영원한 계약으로 새겨질 것이다.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 곧 포피를 베어 할례를 받지 않은 자, 그자는 자기 백성에게서 과감히 잘려 나가야 한다. 그는 내 계약을 깨뜨린 자다.”

 

사실 할례는 엄밀히 말해 하느님을 예배하는 구체적인 행위가 아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널리 성행했다. 그런 관점에서 할례 받지 않은 이들을 자기 백성에게서 잘려 낸다는 위협은 좀 과하다 싶다. 더구나 여드레 된 아이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는 게 다소 어색하다. 이는 어쩜 부모나 지각이 깨인 나이 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이런 완강한 표현을 구사할 만큼, 할례는 이스라엘 유대인이 다른 민족들과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한 중요한 표징임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되어졌을 게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할례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 이 점은 분명 지금의 관점에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 계약이 영원하다(17,7.13)고 무척이나 강조하셨다. 어쩜 그 영원성은 하느님 그분께만 해당하는 말씀일 게다. 그분께서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니까. 그러나 우리는 늘 시간 제약을 받는 존재들이다. 더구나 하느님께서 아브람이 아닌 아브라함과 맺은 그 계약은, 아직 예수님 족보에 새겨질 합법적 정통 상속인인 이사악이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다.

 

그러기에 그 할례는 영적인 할례의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기에, 단지 육체의 할례를 먼저 내세운 것뿐이다. 사실 초세기의 계약의 표징인 할례는 죄인들의 몸에도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새 할례인 영적인 시간이 오면 이 육적인 할례는 자연 폐지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5,6).

 

이리하여 아브라함은 그날로 자기 아들 이스마엘과 씨종들과 돈으로 산 종들, 곧 아브라함의 집안 사람들 가운데에서 남자들을 모두 데려다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대로 포피를 베어 할례를 베풀었다.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포피를 베어 할례를 받았을 때, 그의 나이는 열세 살이었다. 그리고 집안의 모든 남자들, 곧 씨종들과 외국인에게서 돈으로 산 종들도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다.

 

이제 계약의 표징 할례를 마무리하면서, 영원한 계약의 표징이 되는 포피를 베어내는 육체적 할례’(17,11)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린 할례라는 표징’(로마 4,11)의 실재 여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 표징은 믿음의 진리가 올 때까지는 강력한 표징으로 남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제 그 진리를 드러내시는 예수님께서 오셨다. 그분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분명히 밝히셨다. 그분은 신체의 작은 부분의 표징으로 할례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당신을 찾는 모든 이에게 온 영혼에 할례를 베푸신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종래의 표징인 할례를 과감히 폐기하시고 진리의 세례를 세우셨다. ‘완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사라진다’(1코린 13,10)와 같이, 전체를 드러내는 세례의 할례가 빛나자 부분에만 새겨진 할례는 끝났다.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부분적인 구원에 그치지 않고 영혼 육신 안에서 영원한 구원을 받는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이것이 완전하고 영적인 할례인 세례를 두고 하신 그분의 말씀일 게다.[계속]

 

[참조] : 이어서 '19. 이사악 탄생 예고'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할례,아브라함,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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