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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독서묵상글 * 대사제 예수 (히브리 5:1-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18 조회수1,13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 1. 18. 독서묵상글 (공동번역성서)

 

대사제 예수(복종의 삶) (히브리서 5:1-8)


(히브리서 5:1-8)

1 대사제는 누구나 사람들 가운데서 뽑혀서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대사제는 속죄를 위해서 예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2 대사제는 자기도 연약한 인간이므로 무지하거나 유혹에 빠진 사람들을 동정할 수 있습니다. 3 그는 또 이렇게 연약하기 때문에 백성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의 제물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4 이 영예로운 직무는 자기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얻는 것입니다. 5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와 영광스러운 자리를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영광스러운 자리는,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6 또 성서의 다른 곳을 보면, '너는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영원한 사제이다'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7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 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 아멘

 

계속해서 '대사제 예수'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죠? '너희들이 안식에 들어갈 수 없는 그런 일이 분명히 생길 수 있다' 라고 분명히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안식에 들어갈 수 없는 일은 우리가 뭐 착한 일을 많이 못하고 성숙을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구현해내지 못하면 못 들어가는 게 아니라 '예수 안 믿으면 못 들어 간다' 그랬죠 그럼 '예수를 믿는다'는 게 뭐예요.

'믿음' 이라는 건 나의 존재 전체를 의뢰하고 의존한다는 거죠. '야 아빠만 믿어!' 이거는 뭐예요? '니가 아빠 좀 도와줘' 가 아니라 그 '아빠만 믿어' 하고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딱 잡는 순간 애는 옆으로 지나가다가 최홍만의 정갱이도 차죠 그죠? ? 아버지가 '믿어!' 라고 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그 아버지가 이 아이에게 '그래도 넌 나 쪼끔 도와줘야 돼' 이건 아니잖아요. '믿음' 이라는 건 전적인 거예요.

그래서 예를 들어 이런 거죠. 아빠가 아이의 숙제를 대신 해주고 있어요. 수채화를 그리는 겁니다. 그런데 아빠가 정말 멋지게 그리고 있는데 그 아이는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그 아이는 그냥 이렇게 아빠가 해 주는 걸 보고만 있으면 돼요. 이게 구원입니다. 아버지가 우리의 숙제를 대신 해 주는 거예요. 그게 예수의 십자가거든요.

그런데 애가 자꾸 와 가지구 지도 뭘 돕겠다고 그냥 물감을 아무거나 찍어갖구 아빠가 잘 그리고 있는 그림에다가 도와주잖아요? 그럼 망치는 거예요 그림을.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런 식으로 성숙과 변화를 이루어 내라는게 아니에요. 어떤 노력이 분명 우리에게서 나오지만... 그런 식의 마음으로 우리가 하면 반드시 그 숙제가 완성되면 아이는 '나두 거기다가 찍은 거 있어요' 라고 지꺼를 주장하게 된단 말이에요. 하느님은 그걸 절대 용납하지 못해요.

우리가 성취해야 할 성숙은 '하느님이 은혜 베풀어 주지 않으면 우리는 그냥 죽은 흙이네요 하느님만 꼭 믿을래요' 이게 믿음을 우리에게 공고히 하기 위해 역사가 주어진 거잖아요. 그게 변화예요. 그게 성숙이예요. 그런데 '신앙이 좋다' 하는 사람은 '얼마만큼 그가 하느님을 더 붙들고 있느냐' 라는 말이에요 내가 뭘 해 내느냐가 아니라.

생각해 보란 말이에요. 예수님이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말씀의 능력은 어떤 과정을 요하지 않아요. 일어나라! 그러면 일어나야 돼요. 무덤에서 나와라! 그러면 나와야 돼요. 풍랑아 멈춰라! 그러면 멈춰야 돼요. 이게 말씀의 능력이에요. 하느님의 말씀의 능력. 그런데 왜 유독 말씀이신 그 분이 직접 내려 왔는데.... 왜 유독 인간의 구원만 이렇게 과정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지금 역사를 통과하고 있죠? 왜인 거 같으세요? 이건 과정이 아니라 말씀은 완료예요. 떨어지면 완료. 묵시 속에서 그냥 '너는 내 백성'

 

성경이 그러잖아요. 야곱과 에사오가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아 너는 천국가고 에사오는 너는 지옥가라 라고 하느님이 정했다고 그래요. 그들이 역사라는 과정을 통과하면서.... 야곱이 조금 열심을 안 부리고 에사오가 더 열심을 부려서 그 결과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예요. 이걸 뒤집어엎을 수 있다라는 게 알미니언 주의인데, 하느님이 묵시 속에서 결정하신 건 이 땅에선 어떤 방법으로든 뒤집어엎을 수가 없어요. 그러면 이 역사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것이 재연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걸 하느님의 백성에게 교훈하는 목적인 것이지 이걸 과정으로 보게 되면 항상 그렇게 하느님도 완전한 분이 안 되는거고 그리고 거기에 인간들의 행위가 자꾸 보태지게 되는 거예요. 하느님은 그걸 막으세요.

자기부인이라는 건 내가 입으로 올리는 게 아니에요. ‘라는 몸뚱이가 지금 살아 있어요. 이 몽뚱이가 살아 있어... 옛몸에 속한 몸뚱이 이거는 새 몸으로 바꿔줄 거거든요? 그럼 이 몸뚱이가 살아있는 동안에 자아는 죽지 않아요. 조금씩 죽여가는 걸 자기부인이라고 하지 않아요. 그건 쌓이는 게 아니라니깐요? '야 자기부인 오늘은 요만큼 했고 내일은 요만큼 하고 그 다음날은 요만큼' 결국 그러면 다윗이 사울을 자기의 원수를 살려줬어요 두번이나. 그럼 그 다음 단계는 그거보다 더 나은 단계여야 성숙이 쌓인다고 할 수 있는거죠? 그런데~ 자기의 원수를 살려줄 만큼 그런 큰 마음을 품은 이가 어떻게 자기가 취한 여자의 남편을 교활하게 그것도 지가 안 죽인 것처럼 교활하게 남을 시켜서 죽이죠? 어떻게 자기의 원수를 살려준 이의 삶속에서 이 삶이 어떻게 나와요? 이게 무슨 변화예요 이게?

인간이 만들어 내는 변화와 성숙은 그렇게 항상 위장되 있는 거예요. ...내가 원수를 두 번 살려준 건 내가 나를 드러내고 치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사건입니다 그죠? 그것 때문에 우리는 다윗을 칭찬하잖아요? 그게 자아를 챙기는 인간 ....자기가 어떤 손해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벌일 수 있는 인간의 죄성이에요 그것이요. 그런데 그렇게 위대한 자기의 가치를 챙겨놨는데 ....그 남편이 살아서 여기에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자 그걸 죽이는 게 인간이에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원하는 인간상은 지 원수를 두번 살려주는 다윗이 아니라 '나는 나의 이 죄를 감추기 위해... 이렇게 무죄한 우리야를 남을 시켜서 교묘하게 죽일 수 있는 자가 맞네요' 라는 고백을 하는 '' 란 말이에요. 이걸 못 알아들어요 오늘날 교회가... 항상 인간이 중심이 되다 보니까 내가 뭔가를 쌓아서 하느님께 도움이 되겠다고 하는거에요...

인간은 짐승이구나를 아는 게 인생의 목적이라고 성경이 이야기한단 말입니다. 왜 하느님이 야곱보고 (야곱은 우리 이스라엘이에요 '' 란 말이에요 교회) 왜 야곱한테 지렁이라 그래요? 바퀴벌레 같은거 뱀 같은거 징그럽죠? 인간만큼 무서운게 없어요.. 인간만큼 더러운게 없다니깐요?

그런데 우리는 교묘하게 바퀴벌레한테 우리의 모습을 투영시켜서 '! 저 징그러운 거' 뱀한테 '어우 저 흉물스러운 거' 이러고 있는 거예요. 우리에게 그런 더럽고 지저분한 것들이 감지가 되는 건... ‘바로 니가 니안에 있는 게 바로 저런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지 천국에 가면 그런 거 있을까요? 바퀴나 뭐...

 

이 역사는 우리에게 우리의 처음자리가 뭔지를 깨닫게 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 예수가 대사제로 이 땅에 오실 수밖에 없다라는 건 히브리서를 쭉 읽다보면 그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결국 그 대제사장들도 자기의 죄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피를 뒤집어쓰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 그러면서 이 대사제를 어디로 몰고 가냐면 예수라는 대사제로 끌고 간단 말이에요. 히브리서 전체의 주제예요 그것이. 그러면 이스라엘 안에서 대사제만 속죄일에 710일에 대 그 속죄제사를 드릴수 있게 했다 라는 건 하느님이 다른 이의 제사는 안 받으신다는 거죠? 대사제 말고 아무나 그 대사제의 옷을 입고 제사를 드리면 걔는 죽어요 누구든. 그건 부 대사제도 안돼. 제사장이 이만 명이 있었단 말입니다. 그 누구도 안된다니깐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그 대사제의 원형이에요, 실체라면! 그러면 하느님은 지금 누구의 제사만 받겠다는 뜻이에요? 예수의 제사만 받겠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성경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 제사장 대사제 '예수를 믿어라' 라는 것이지. 베드로가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이라고 예수님을 고백했죠. 이건 굉장히 훌륭한 신앙의 경지예요 그죠? 우리가 그걸 제대로 아는 게 최종목적이에요 사실.

이 역사와 인생의 목적이..... 예수님이 주님이다... 하느님이 주님이다 라는 걸 알아먹는데 설명하는데 필요한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베드로가 고백했다니깐요? '주님은 그리스도 메시아고 주 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는 분이고 그 분이 주인이며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곧 그가 그 입으로 예수님을 저주하며 욕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의 그 믿음은 이게 지금 이게.. 성숙의 징검다리 디딤돌 이예요? 아니 뭐예요? 이건 도대체 뭐인 거예요? 이게.

어떻게 그 신앙의 경지 (성숙이 우리에게 사유되는 거라면) 어떻게 이 입에서 저 놈은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빨리 죽이라는 이런 말이 어떻게 나오냐구요? 이게 성숙의 디딤돌이라면. 그래서 예수님이 그러는 거예요. 칭찬을 해 주면서 그 고백을 하게 한 건 하느님이다라고 이야길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안에서 나오는 어떠한 변화와 성숙도 신앙생활도 하느님이 우리에게 하게 하시는 거지, 우리가 그걸 사유해서 '나는 이 만큼 성숙했어 이 만큼 변화했어' 이거 아니라니까요? 그래서 성경이 반복하여 '율법은 하나만 어겨도 그건 다 어기는 거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아흔아홉개를 지켜냈어요 이걸 우리 인간들은 '성숙' 이라 그래요.

쟤는 두 개 밖에 못하고 있는데 얘는 아흔아홉 개를 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둘이 똑같은 죄를 하나 졌다 그래봐요. 그런데 성경은 그러면 이걸 둘다 똑같은 놈 이라고 이야길 하지 '그래도 얘는 아흔아홉 개 지키다가 하나 어긴거고, 얘는 두개 지키다가 하나 어긴거니까 이게 더 나쁜 놈이다' 라고 얘길하지 않는단 얘기입니다. 율법이라는 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기 위해 우리에게 준 거예요.

 

그런데 그 율법이 실지로 살아 몸으로 살아서 이 땅에 내려오셔 갖고 예수님(말씀)이 하신 일이 뭐예요? '니들은 다 어둠이다 회개하라!' 였잖아요. 그게 율법의 역할이란 말입니다. 말씀의 역할이었단 말이에요 그것이, 그런데 그 말씀 예수 앞에 서서.... '맞습니다 주님 저는 죄인이 맞네요' 라고 고백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앞에서 자기의 유익을 챙길려고 하는 거예요. 가치를 챙길려고 하는 거예요. ....

그 놈의 '' 이게 왜 이미 십자가에서 못 박힌 상태로 출발이 되냐면 .....복음이 역사가 왜 그 상태에서 출발이 되냐면~ '니들은 죽은 자야 그런데 그 죽은 자가 어떻게 산 자로 그것도 하느님과 방불한 자로 살게 되는지를 알아?' 라고 설명해 주기 위해, 이미 부정된 '자아' 여기에서 출발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 말씀까지도 읽으면서 뭐라고 그러냐면 '그래 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어 그래서 이제는 내 안에서 예수가 사신다' 라고 또 '' 를 이야기해요 내 안에 예수가 사신대요 또.. ~. ... 어렵다..인간이 이렇다니까요? 그럼 그 '' 는 뭐냔 말이에요 또?....

 

인간들은요 '쟤네는 지들의 행위를 의지하여 저렇게 사는데 나는 내 안에 사는 예수를 의지하여 산다' 라고 또 '' 를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인간은 이렇게 악해요. ...이거를 계~속 경험하면서 '그래 그래서 나는 죽은 자일 수밖에 없는 거구나! 하느님이 은혜로 나를 덮지 않는 한 나는 그렇게 죽은 자에 불과한 거구나!' 를 아는 걸 '내가 부인됐다' 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나를 부인해가는 게 아니라..

부인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냐면 '하느님 저는 어떻게 이렇게 '내 안에 사는 예수' 를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 를 이야기하죠? 하느님 그러니까 (이게 하느님 앞에서 '' 잖아요' 그죠?) 하느님 저는 죄인일 수밖에 없네요' '부인된 나' 예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쟤보다 이만큼 많이 부인됐어.. 이만큼 많이 부정됐어..' 자기가 부정되고 부인됐다 라는 건 여러분 내가 부인됐다 라는 건 내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내가 없는 내가 '하느님 나 이만큼 부인됐네요' 라고 인식하는 '' 는 누구냔 말이에요. 아휴 답답해라~인간이 그래요. 그런데도 우리는 끝까지 그 자존심을 못 놓는 거예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느님 앞에서 '이 잔을 될 수 있으면 내게서 물려 주세요' 그랬어요. 아니 어떻게 하느님이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이 하느님의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러 오신 분이 어떻게 그런 나약한 기도를 하냐구요. 얼마나 무서웠으면 땀이 피가.. 그거는 정말 뭔가가 간절하게 내 안에 염원으로 존재할 때 모세혈관들이 터져 버립니다 피처럼. 가 그렇게 힘드셨을까요? 하느님인데, 죽음의 자리... 없음의 자리 라는게... 얼마나 하느님의 있음의 자리에서 봤을 때 (그 분은 하느님이니까) 이 없음의 자리가 얼마나 처절하고 얼마나 어두운 자리인지를 하느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거예요. 그걸 그대로.... 예수님이 없음의 자리를 경험하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 있음인 척 하는 인간의 그 육신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단순히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하느님 나라의 존재는 그렇게 육이 죽는 자리에서 (예수님의 죽음이 왜 승리라고 하냐면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내 자아가 없어져야 ...그래야 거기에 하느님이 채우는 게 바로 그게 최종 승리의 모습이며.... 하느님 나라의 존재다 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예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오셔서.... 그건 부정되고 부인되어야 할 육신이잖아요. 그걸 십자가에서 죽여 버리는 거예요. 이게 없음의 자리예요. 없음의 자리로 내려가 버렸어요 예수님이. 그리고 이걸 지옥이라 그래요. 땅이 모여 사는 곳.

그런데 그 지옥 없음의 자리로 예수가 내려가자 ...하느님이 (히브리서에서도 그러죠? 그가 자기를 구원하실 아버지께 기도했다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본인도 하느님이 구원해 내지 않으면 그냥 없음의 자리에서 영원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내려간 거란 말예요. 그런데 하느님이 그 없음이 되신 예수에게, 하늘의 생명력을 부어 '아들로 낳았다' 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걸. 그렇게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아들이 되는 거라는 뜻이에요. 니네는 없음이고 아닌데. 그냥 배설물인데 내가 전적인 내 은혜로 너희를 살려낸 거라고 그걸 십자가가 계시해 주는 거예요.

거기에 쪼끔이라도 '아닌데 나도 어느 정도 유기물질 코아세르베이트 (coacervate) 정도의 고만큼의 기여는 했는데?..거기에 하느님이 이 만큼의 은혜를 부어서 존재를 만들어준 건데..' 라는 그 인간의 자기긍정이 '' 라는 거예요. 죄는 도덕법 무슨 윤리법 사회법 이런거 몇 개 어긴 게 죄가 아니란 말예요. 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통용되는 언어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통용되는 단어가 아니에요 엄밀히 말하면.

그런데 우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의 획일적인 관계 속에서의 어떤 착한 일 몇 개를 죄를 안졌다 그러고 이걸 성숙이라 그러고 선이라 그러고...아니요. 선이라는 건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통용되는 거라니깐요?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어떤 무례나 아니면은 손해를 끼치는 일이나 이걸 죄라 그런다니까요 이 바보들이 말이죠.

그러니까 이런 거 몇개 갖고 착하다 악하다라고 이야기 해놓고 이 그리스도교를 종교로 만들어서 이런 걸 더 많이 하고 덜 짓게 하는 거. 이게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가 되버린 거란 말이죠. 그건 다른 모든 종교랑 똑같은 거 아녜요 그거는? 그 어떤 종교가 죄지으라고 하는 종교가 있어요? 그러면 뭐하러 그리스도교를 믿어요? 그런 종교나 그리스도교나 똑같은 거지.

 

예수(말씀)가 전해져야죠. 올바른 교회인 거예요. 성도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자기를 '우리는 이 정도니까 당신들은 우리를 본받아야 된다' 로 가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나오는 건 숨 쉬는 것까지도 죄인데.... 하느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다른 한 순간도 존재일 수가 없습니다.‘라는 걸 고백하고 가는게 교회이며 성도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냥 세상에서도 아니 다른 종교집단이나 절도 얼마든지 그렇게 흉내 낼 수 있어요. 그리스도교만이 아니라 그 어떤 공동체나 집단에서도 다 그런 거는 할 수 있는 거예요 청렴결백 이거는~ 교회가 내놓아야 하는 열매는 그게 아니에요.

만약에 그런게 그리스도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해 가야할 바라면 스님들한테 진거예요 벌써. 그 분들은 아예 월급도 안 받아요~ 월급이 뭐가 필요해 동자가 동자승이 쫓아다니면서 밥 때 되면 밥 다 찾아줘~ 자가용 여덟 대가 아무 때나 전화하면 와서 데려다 줘~ 문 열면 산새가 지저귀고 ^^ 불 다 때 줘~ ? 아 정말 내 평생소원이요 그게, 그렇게 한번 살아보는 게..ㅎㅎ 그게 무소유예요 그런데? 그렇게! 그러면 거기에~ 장삼 하나 짚신 말고 뭐가 더 필요해요?! 다 해 주는데...

그런데 그거 남기고 갔다고 우리가 본받자는 거예요. 그러면 그리스도교는 불교에게 진거예요 지금. 그게! 그러한 청빈의 실천! 도덕 윤리의 실천! 이것이 우리 인간의 그리스도교의 궁극적 목적지라면 우린 진 거예요 타종교에게 이미 종교로서의 가치조차 상실된 거예요 그리스도교는. 그거 못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냥 건강하고 건전한 교회라는 곳에서도~ 사람이야 다. 인간의 가능성.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러는 거예요. '내가 도대체가 믿음을 보겠니~? 내가 다시 갈 때?'

가리옷 유다가 왜 마귀의 모형으로 예수님 제자 안에 들어가 있었는지 아세요? 예수님이 직접 그러잖아요? ‘요놈은 마귀다라고. ‘내가 이거 찍어주는 이거는 마귀다~’ 그러죠? 왜 마귀가~ 거기 들어가 있어요? 가리옷 유다가 '시카리' 였어요 시카리는 열심당원입니다 독립군. 독립군은 이 세상나라를 어떤 큰 힘에 응원군의 도움을 받아서 세상나라를 인간이 중심이 된 세상나라를 세우자 라는 게 시카리들이었어요. 열심당원. 그들이 하느님을 열심히 믿었어요. 그래서 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이에요 가슴에 칼을 품고 다니면서. 뭐가 잘못 됐어요? 우리는 독립유공자라고 해서 지금까지도 돈을 주잖아요? 그래서 메시아라고 우기는 그 사람을 쫓았던 거예요 예수님을.

그런데 움직이질 않아 이 분이. ? 우리가 원하는 이 세상나라 이 독립을 쟁취해서 ...내 민족이 선민인 내 민족이 잘사는 나라가 완성이 돼야 되는데 이 분이 움직이질 않으니까 이 분을 상대방으로 하여금 때리게 하면 이 분이 뭔가 반응을 하시겠지 하고 판 거예요 돈이 탐나서가 아니라. 그러니까 나중에 그 돈 갖다가 집어 던지는 거예요 이건 뭐야 이거? 예수님이 그 상대방에게, 이 유다가 예수를 팔았는데 바보같이 계속 얻어맞더니 죽어버리는 거예요 내 뜻대로 안되버린 거예요. 인간이 중심이 된,,,, 그리고 인간의 가능성이 확보가 되는 그런 어떤 나라를 (우린 하느님나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그 나라를 원하는 ...

그게 마귀다를 가르쳐주기 위해 가리옷 유다가 하느님에 의해 이 땅에 내려 보내진 거예요. 가서 내 백성들에게 교훈하라고...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러는 거예요. ‘너는 태어나지 않은 게 더 좋을 뻔 했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하느님이 낳게 해서 내려보낸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저마다 가리옷 유다가 되자는 거예요? 이 세상 살기좋은 나라 만들고 모두가 공평한 공평하게 얻어먹는 그런 나라 만들고? 그런 일을 하는 게 나쁘다는게 아니예요. 하잔 말예요 적어도 다른 종교인들이 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더 멋지게 하잔 말이에요. 할려면은 우리도.. 내가 받은 은혜가 뭔지를 진짜 아니까 하느님나라 나와는 전혀 무관할 수밖에 없었던 그 나라가 나에게 거저 주어졌다라는 걸 아는데 내가 어떻게 그 나라의 이 왕자 공주가 됐다라는걸 아는 사람이 '야 이제는 그냥 어유 만고 땡이다 마귀새끼처럼 막 살아야지~' 이게 돼요?

 

그런 일을 해놓고 내가 할 일 다 했다라고 하는 이거를 지금~ 하느님의 은혜를 근거하여 그 일을 했을 때 하느님은 이건 하느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는데도 이거는 하느님이 하게 한거야 라고 말씀해 주신 그 말씀이 나에게 이해가 되어서 이거 하느님이 저에게 이런 마음 주신 거죠? 라는 우리가 그 자리로 내려가서 그 일을 하자는 거란 말이에요. 그 전에는 하지 말라고 해서 안했다 치자고요. 하자는데 또 왜 안해요? 하기 싫었던거 잖아요 말씀은, 예수는 죄를 드러내는 거라고 하는데 예수믿는게 뭔지 좀 잘 분별해서 제 길로 가세요 엉뚱한데 돌아가지 마시고.

혹시 게 잡아 보셨어요 갯벌에 가서? 게는 그냥 아무케나 쑤신다고 나오지 않아요. 저기 그 아산만 있는 데가 제 고향인데 거기가면 지금은 뭐 서해안 개발로 다 없어졌지만... 멸치를 이렇게 갖다 놓잖아요? 게들이 막 놀다가 사람의 발자국소리가 들리면 확! 어디로 사라져요. 구멍으로 응? 금방 없어져요... 근데 이 바보들이 멸치 같은 걸 이렇게 살살 냄새를 맡게 해 주면 나와요~ 쪼금씩 쪼금씩 이렇게~ 나와가지고 그걸 덥썩 물어요.

가끔 하느님이 우리에게 ...고렇게 자신을 감추고 있는..내가 마귀새낀줄 모르고 그냥 자기를 감추고 있는 우리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밧세바 같은 미끼를 이렇게 던져서 냄새를 살살 맡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하느님이 우리를 죄를 짓게 하는게 아니라 니네는 도대체 누구인지를 ....니들 스스로 좀 위장 좀 하지 말라고.... 수시로 터뜨려 버리는 거예요 하느님이.

그런데 사람들은 '~ 나는 그거 안 물었어 아유 잘했어....' 그러구 여전히 갯벌 속에서.... 그게 지옥이에요. 그거 숨구멍 꽉! 막아버리면 그게 지옥~. 그 속에서. (.. 이 심오한 말을 이해를 해야 되는데 ) 근데 그걸 안 문걸 자랑하는 교회가 오늘날 건강한 교회예요. (...이 답답해. 진짜)그거 아닙니다. 제발 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미 결판이 난 결론을 갖고.... 그 결론에서 출발되어지는... 과정아닌 과정을 살게 되는지....잘 생각해 보세요.

~든게 다 즉각적으로 벌어졌던.... 무덤에서 나와라! 그러면 나와야 되고 일어나라! 그러면 일어나야 되는~ '아 이틀만 있다 일어나면 안돼요?...' 이거 안돼요. '풍랑아 멈춰라' '아 삼십 분만 더 불을게요' 이거 안돼요. 말씀 떨어지면 즉각!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말씀이 우리를 창조하는 거. 하느님의 백성을 창조하는 것도 즉각적이에요. 그런데 이 즉각적인 구원의 이야기만 ....과정으로 역사를 이루어 이렇게 진행하여 가는 건~ 이미 일어난 일이란 말이에요. 이걸 절대 잊지 말란 말이에요.

이미 일어난 게 뭐냐면.... '우리는 없음의 자리에서 있음이 된 겁니다' 라는 요! 사실. 그래서 하느님의 은혜만 또 그 분만 찬송하는 그 분만! 그게 에페소서 1장이잖아요. 그 분만 찬송. '나는 이 만큼 했으니까 상 주세요~' 이건 뭐예요? '나도 찬송해 주세요' . 요게 마귀예요. 상 달라는 게 뭐예요? 상이라는 것 자체가 찬양이에요. 너 잘했어 라는. 이 찬송을 하느님이 받아야 할 찬송을 '누구라도 요만큼 나는 내 영광 내 찬송을 아무에게도 안 뺏긴다' 라고 하신 그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는 거란 말이에요 그게. 그런데 전~부 그걸 상을 받겠다고 하고 앉아있으니까. 그건 내 행위 내 안에서 나오는 내 행위가 내가 만들어낸 거라는 전제 아닙니까. 그래야 상을 받죠. 아닌데 무슨 상을 줘요?

우리 인생은 이미 완료가 된 상태임으로 하느님께 차압된 상태인 거예요. 그래서 그 분이 차압을 했다 라는건 그 분이 인도한대로 끌려간다 라는 뜻이란 말입니다. 예수가 주님이라는 걸 드러내면서 끌려간다는 뜻이에요. 여기에 대해서 때때로 화가 날 거예요. 그러나 이게 진짜 복인 거예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왜 우리의 자아를 뺏어 가시냐면 좋은 아버지의 진짜 좋은 걸 ,채울 수 있기 때문에 뺏어가는 거예요.

남들보다 좀 차별화된 어떤 걸 거저 얻어내어.... 그들보다는 좀더 나은 삶을 살겠다 라고 지금.....로또가 상 아닙니까? '아 왜 이케 나한테만 이런 걸 주냐?^^' 상을 줬더니 얘들이 파멸과 멸망으로 떨어지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천국에서도 그걸 원하냐고요? 이게 여전히 내가 포기 안되는 거예요.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돼요. 이 기본이 안된 상태에서 성경지식만 그냥 확~ 쌓여 있으니까....

 

고수들이 가장 중요하게 제자에게 가르치는 게 기마자세예요. 뭐 싸울 때 이러고 싸우는 거 보셨어요? ^ 기마자세로 서서 앉아서... 그건 실전에서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왜 고수들이 기본기를 그렇게 가르치냐면 이 기본이 안 되있으면 실전에서 응용이 안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어설픈 놈들이 기본도 안되는 상태에서 기마자세가 뭔지도 모르는 놈들이 돌려차기 이단 옆차기를 배워갖구 차다가 쓰러지구 벽 차서 다리 부러지구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게 성경을 많이 안다는 우리교회의 현실이에요.

이 기본이..도대체 복음의 핵심이며 기본이 뭔지를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어줍지 않은 성경구절 몇 개 갖구 와 가지구 뭘~ '너 나보다 많이 알어?..' 제가 성경 이야기를 해주면 시시해 신론 죄론 인간론 이런거 해 주세요~' 이러구 앉아있는 거예요. 그건 이 성경을 보기 위해서 잠시 계단을 쌓는거지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하냐구.. 자기자랑 하구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우리는 신앙을 가지고도 이렇게 여전히 자기를 자랑하는 인간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붙드셔야 돼요. 예수님 꼬옥 붙들어야 돼요. 그리고 인생은..... 이제 금방 눈 한번 더 깜짝하면 이제.... 우리 앞에서 정말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것들이거든요.

우리는 '없음' 이에요.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죽은 '' 가 무슨 일을 하며 무슨 가치있는 일을 내놓아 상을 받겠습니까. 대사제 예수... 시은좌 ...그 보좌로 나가란 말이에요. 거저 주는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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