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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녹) 연중 제12주일 ... 독서,복음서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6-19 조회수6,770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

욥기의 말씀입니다. 38,1,8-11

1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신다.

8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그것이 모태에서 솟구쳐 나올 때,

9 내가 구름을 그 옷으로,먹구름을 그 포대기로 참을 때,

10 내가 그 위에다 경계를 긋고 빗장과 대문을 세우며

11 ‘여기까지는 와도 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할 때에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욥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님께서는 욥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욥은 자신의 한계를 깊이 체험한 뒤에 비로소 주님을 만난다.

 

 

2독서<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5,14-17

형제 여러분,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5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으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신부님)

14

14-21절에서는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을 논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온 인류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두가지 논리를 편다. 그분은 무죄한데도 온인류의 죄를 대신 속죄하려고 죽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모든 이를 위해서 죽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는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셨다에 대속죄 죽음 사상이 잘 드러난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한 개인이 아니고 그 한 몸에 온 인류를 수용한 집단 인격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일 뿐 아니라 온 인류의 죽음이라는 논리를 바오로는 전개한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을 두고 모든 이가 죽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속사.집단인역사로 이룩된 인류 구원을 다양하게 표현하여 새로운 창조물”. “화해”,“하느님의 의로움이라고 한다. 14-21절은 구원론의 백미라고 할 만큼 다양하고 심오한 내용이 들어 있다,

 

한사람이 모든 이를 위해서 죽었다의 표현은 유순하지만 그 뜻인즉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대신 속죄하려고 죽었다는 것이니 지성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될 만큼 엄청난 신앙이다. 대속사 신앙은 신약성서 도처에 널려 있거니와 여기서는 바오로가 교ㅚ로부터 물려받아 기록한 전승 요소 열 가지만 전개한다. 예수의 죽음을 대속사의 죽음으로 해석한 데는, 자신은 무죄함에도 불구하고 겨레의 죄를 대신 속죄한 야훼의 종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스도 한분이 죽었는데도 부디 모든 이가 죽었다고 한 데는 그리스도와 인류를 동일시한 곧 그리스도는 집단인격이라는 신앙이 들어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집단인격사로 해석하는 데는 아담과 그리스도 예표론이 크게 작용했으니 그 중요한 대문 들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고린 15.21-22: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으니 역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의 부활도 올 것입니다. 아담안에서 모든 이가 죽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가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로마 5,18-19: “한 사람의 범행의 결과가 모든 사람들에게 단죄에 이르게 된 것과 같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의 결과가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의 의로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이들이 죄인들이 한 것과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들이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5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대속사 및 집단인격사를 겪으셨다.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애타행은 갈라 2.20: 로마8.35-37에 극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도 그분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15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사뿐 아니라 그분의 부활까지 언급하니, 여기에는 그리스도 신조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하겠다.

 

16

볼트만은 16ㄴ절을 설령 우리가 육에 따라서의 그리스도를 알았다 하더라도 ...”라고 번역하고,“육에 따라서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에서 활약한 역사적 예수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볼트만의 번역은 분명히 오역이다. 왜냐하면 육에 따라서그리스도의 수식어가 아니고 알았더라도동사의 수식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오로가 평소 역사적 예수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은 사실 하나만 미루어봐도 볼트만의 풀이 역시 옳지 않다.

 

어느 누구를 육에 따라 평가한다는 것은 세속적 기준에 따라 사람을 평가한다는 뜻이다. 풀이하면 하느님 또는 그리스도의 부추김에 따라서 사람을 평가한다는 뜻이다. 이제 구체적으로 앞 문맥 뒷 문맥을 감안ㅎk16ㄱ절을 풀이하면 세속적 기준에 따라서가 아니고 죽음시고 부홀하신 그리스도 신앙ㅇ에 따라서만 사람을 평가하셨다는 말씀이다. 세속적 기준에 따라 처신하는 적수들을 바오로는 세속적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겠다는 단언이다.

 

바오로의 사도직을 부인하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네를 천거하는 추천장을 지니고 고린토 교회에 들이닥쳐서 자신들을 내세우고 거물급 사도들로 행세했다. 그들은 겉으로 육에따라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언변 건강 언필칭 그리스도와의 일치 신입저서 등을 자랑하면서 고린토 교우들 위에 군림하고 당당하게 물질적 대가를 요구했다. 그들은 간교하게 행동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왜곡했다. 이따위 적수들을 바오로는 세속적 기준에 따라 알아줄 생각이 전혀 없느라고 단언한다.

 

16절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풀이해보자. 나 바오로는 세속적 기준에 따라 적수들을 알아줄 생각이 추호도 없다. 적수들 따위가 아니라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조차도 세속적 기준에 따라 그분을 이해했건 상관없다. 앞으로는 오로지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신앙에 따라서만 그분을 이해하겠다.

 

, 만민을 지극히 사랑하신 나머지 만민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대신 속죄하려고 대신 죽으시고 또한 부활하신 그분을 위해 살고 그분 안에서 살련다. “우리는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이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요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유다인이나 헬라인을 막론하고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17

대속죄적인 죽음으로 가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그리스도 부활하시어 그 사랑을 이제와 영원히 늘 베푸시는 그리스도의 품안에서 살면 새로운 창조들이 된다. 그리스도의 지극한 사랑을 체득하고 그 사랑에 당하여 죽었다가 일으켜지신 그분을 위하여 알려고작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할례나 세속적 판단기준 따위 묵은 것은 지나가고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새 사람이 출현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바오로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품안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앞당겨져 현재화한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곧 더없이 아름다운 글귀로 종말 선취 신앙을 피력할 것이다. “알맞은 때에 너(의 기도)를 들어주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와주었노라하고 말씀하십니다. 보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알맞은 때이며, 보십시오,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입니다.

 

 

 

복음<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풀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신부님)

35

35-36절은 1,33-34절을 되새기면서 많이 손질했다.

 

37

요나 1.4참조: “바다에 폭풍이 크게 일어 배가 거의 부서지게 되었다.”

 

38

요나 1.5참조: “요나는 배 밑창으로 내려가 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다,”

요나 1.6 참조:“선장이 다가와 그에게 소리쳤다. ‘이런 사람 보았나. 잠을 자다니, 당신도 일어나 당신 하느님에게 비시오. 혹시라도 하느님이 우리를 생각해 주시면 멸망하지 않을 것 아니오.’”

 

39

39ㄱ절은 구마이적사화에 나오는 귀신추방령과 흡사하다.

요나 1.15 참조: “사람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자 성난 바다가 고요해졌다.”

 

40

40절은 제자들의 몰이해를 탓하는 말씀으로 마르코가 써넣은 것이다.

일부 사본에는 아직도 믿음이 없습니까대신 어찌하여 믿음이 없습니까?”라 한다.

 

41

요나 1.16 참조: “그러자 사람들은 주님을 몹시 두려워하며 주님께 제사를 지내고 서원까지 했다.” 41절은 제자들의 반응인데 질문형 경탄사가 함께 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변은 자명하다. 예수님은 요나보다 위대한 분이시다. 폭풍과 바다를 고요하게 하신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다! 누가 왜 이 이적사화를 꾸몄을까? 해외 유다계 그리스도 교회나 이방계 그리스도 교회에서 전도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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