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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성 안에 숨어 있는 하느님 신성의 발견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7-06 조회수6,770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생각한 게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짧은 순간이지만 하느님의 본성을 가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게 어떤 순간인지 묵상해봤습니다. 그건 사람이 사랑을 할 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아마 측은지심이 밑바탕에 전제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측은지심이 생기기 전 그 밑바탕에는 하느님의 마음과 같은 자비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비는 사회적인 위치나 신분이 높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부유한 사람만이 가난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자비는 외부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서 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은 그 사람 속에 원래부터 내재된 근본적인 인성이 좌우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십니다. 그 대상은 목자 없는 양떼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의지할 무엇인가가 있는 게 상당히 중요합니다.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살아도 아무리 원수처럼 지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래도 의지할 대상이 있다는 면에서 위안을 삼는 사람들을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사례를 다 언급할 수 없고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지금까지 간접적으로 경험한 예입니다. 측은지심이라는 것은 상대가 불쌍하고 연민의 정이 들 때만이 일어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환경이 좋아도 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그걸 병원에서 경험했습니다. 한 부부를 봤습니다. 오랜 세월 병상에 있는 아내를 간호하는 분이었습니다.

 

아내 간병 문제로 다니던 회사도 퇴직을 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간병인을 두고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참 지극정성이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남자가 있을까 하는 정도입니다. 처음엔 이런 사연을 몰랐는데 저를 간병하는 분으로부터 이분의 사연을 들었던 것입니다. 몇 번 병원 복도에서 그분을 뵈었습니다. 그분의 얼굴을 보면 많은 사람이 동감할 것입니다. 참으로 인자하고 얼굴에 조금의 악한 기운도 없을 만큼 선한 얼굴이었습니다. 우연히 잠시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좋은 덕담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러니 그분은 과찬의 말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짤막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분이 아내를 열성적으로 간호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자신의 친어머니가 병으로 입원했을 때 간호를 참 잘해드렸다고 합니다. 사실 며느리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자기가 봤을 땐 며느리로서가 아니라 친딸처럼 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꼬빡 2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그때 생각한 게 비록 부부이고 아내이지만 아내의 그 고마움은 평생 절대 잊지 않으리라고 맹세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런 고마운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했을 거라는 건 말을 안 해도 뻔한 사실일 겁니다. 지금 아내가 병상에 누운 지가 근 1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정신은 정상입니다. 다만 신경 계통에 문제가 있어서 하반신이 자유롭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아내가 말을 한다고 합니다. 자신은 시어머니를 2년밖에 하지 못했는데 당신은 나를 10년이나 간호하게 해서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이분이 하신 말씀이 참 감동적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그게 어디 부부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해득실을 따져서 부부로 산다면 인위적인 계약관계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5년간은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순수한 마음에서 한다고 해도 힘든 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거의 24시간을 병원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5년 동안 있어야 하니 충분히 이해가 되는 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는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아내가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들고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는 생각이 완전 달랐다고 합니다.

 

그분은 불교 신자입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전생에서 아내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어서 이생에서 부부로 만나 그 빚을 갚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이 든 후로는 병간호하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하나 느낀 것은 종교적인 신념이 참 무섭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와는 다른 종교적인 생각이지만 그런 종교적인 관념으로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떠나서 인간적으로는 참 순수한 생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분을 보면서 비록 그분은 불자였지만 사람이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비록 몸은 사람의 몸을 입고 있어도 종교를 떠나서 사람이라는 차원을 뛰어넘는 존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하느님은 그분을 나중에 심판할 때 어떻게 심판할까요? 저는 마태오복음 25장 최후의 심판을 생각했습니다. 그땐 그분이 불자라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때 그분이 불자라는 사실이라는 이유로 어떤 부분에서 배제가 된다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복음에서 존재 의미에 실익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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