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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525 -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 조영만 요한 세례자 신부님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5-25 조회수6,754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7
05 25 () 가해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사도행전 18,1-8
요한복음 16,16-20


조영만 요한 세례자 신부님


"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복음은 마치 수수께끼, 암호와도 같은 말씀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요한 공동체가 처한 절박한 상황, 세상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 구원의 길에 모든 것을 내걸고 걸어가기 시작한 초세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감당해야 했던 막막함과 두려움을 생각한다면 아마 오늘 복음 내용은 그런 공동체 안에서 충분히 빚어질 수 있는 고민과 갈등을 엿볼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스승은 떠나가셨습니다. 그리고 곧 돌아오시리라고 굳게 믿었던 스승께서는 쉬이 오시질 않습니다. 머지 않아 다시금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화려하게 등장하시리라고 모든 것을 걸고 믿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도대체 언제 오시는가?” 에 대한 막연한 질문들이 쏟아졌겠지요. 그러나 그들의 기대만큼 예수님의 재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이 끝없어 보이는 고통 앞에 지리멸렬해지기만 합니다.

이것에 대한 요한의 해법이 바로 오늘 복음입니다. 그것은 바로 “다시 보게 될 그 날”이 안고 있는 종말론적 의미의 이해입니다. 사람들은 ‘몇 월 몇 일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 하고 기다리지만 요한이 바라볼 때, 예수님은 이미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는 기다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분을 발견하는 일임을 요한은 깨달은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잉태했을 때, 출산을 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이미 아이를 만났습니다. 내가 서울을 가려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는 순간, 비록 몸은 아직 부산에 있지만 동시에 나는 이미 서울과 맞닿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종말론은 그렇습니다. 몇 월 몇 일 날 받아놓은 것이 종말론이 아니라, 어떻게 될지 뻔히 그 결과가 드러나 있는 이 세상에서 얼마만큼이나 나의 종말, 나의 마지막 순간을, 천년만년 이어질 것으로 미루지 아니하고, 두 눈 멀쩡하게 뜨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 마지막을 살아낼 것인가? 나의 마지막 날을 <오늘 끌어 당겨 사는 삶>이 바로 종말론적인 삶입니다.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고 또 곧 보게 될 것이다.(요한 16,16)는 말씀의 의미는 이것입니다. 어느 병원 병실에 이렇게 적혀 있다지요. ‘당신이 맞은 오늘이라는 이 시간은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토록 기다리던 내일이었다’고. 우리는 아주 단순한 이 사실마저도 너무 쉽게 잊고 살지 않습니까?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아닌데, 정말로 그렇게 살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만은 예외이기를 바라며 사는 것이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요, 이 세상 아닙니까?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떠나가신 그분께서는 이미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종말에 드러나실 분께서 바로 지금,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때에 내어 맡긴 사람들과 지금도 함께 하고 계신다고, 그분을 죽인 세상이 지금은 즐거워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아니하고 곧 근심으로 바뀌게 될 날이 이미 지금 시작되었다고, 요한은 앞이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이 엄청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죽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종말에 관하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만, 단 한 가지 우리에게 맡겨진 선택이 있다면 이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피할 길은 없지만, 내가 어떻게 죽을 것인지는 결정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얼굴로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내 종말의 모습도 대단히 많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스승님의 유언을 묵상하는 이번 한 주간, 내 마지막 모습이 이미 지금 나의 얼굴 속에 들어있음을 더욱 뼈저리게 끌어안았으면 합니다. 옆에 혹시 거울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지금 얼굴은 어떠십니까? 여한 없으십니까? 혹 여한 남길 일 있으시면, 지금 그것을 푸시기 바랍니다. 아멘.


조영만 요한 세례자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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