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5.2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5-28 조회수6,740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7년 5월 28일

주님 승천 대축일

제1독서 사도 1,1-11

1 테오필로스 님,

첫 번째 책에서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

2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

3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4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6 사도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

 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8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10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제2독서 에페 1,7-23

형제 여러분,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빕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빕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복음 마태 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지금으로부터

한 15년 전이었을 것입니다.

제 신학교 은사 신부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본당 신자들이 저를 추천했다고

하시면서 강의를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흔쾌히

허락을 했고 약속한 날에

 열심히 강의를 했습니다.

솔직히 강의를 시작하면서

 부담이 좀 컸지요.

왜냐하면 은사 신부님께서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저의

모든 강의를 듣고 계셨거든요.

 하지만 강의를 마친 뒤,

신부님께서는 제 손을

잡아주시고는

“강의 정말로 좋았어.

아주 훌륭해.”라고 칭찬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존경하는 은사 신부님의

칭찬은 오랫동안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사실 저는 신학생 때에

모든 것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사고도 많이 쳤고 성소에 대한

갈등도 있었기에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남들 앞에만 서면

울렁증이 발동해서 부끄러운

 상황에 놓였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은사

 신부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니 어떻게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제 존재에 대한 인정에

큰 행복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은

이렇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그 인정이 정말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으로부터 얻게 되었을

때에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정이 그 뒤

강의를 하는데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즉, 제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어서

더욱 더 자신 있게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이 자기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서 이 세상 삶을

자신 있게 살아가도록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솔직히 제자들이 얼마나

부족합니까? 주님과 수난과

 죽음을 외면하고 도망 칠 정도로

나약하고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핵심 가르침을 맡기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제자들을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정에 제자들은

완벽하게 변화됩니다.

주님 말씀을 따라 세상 끝까지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누군가를 인정하는 것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 이웃을

향해서 인정해주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사실 웬만해서는 인정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일구어내도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아서 폄하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남들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나한테는 한없이 너그러운

모습을 가지고 나를

인정해주기만 원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주님의 마지막 말씀은 언제나

우리를 인정해주시겠다는

다른 표현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웃을 향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 역시 이웃들을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 우리 안에 주님의 일이

완성됩니다.

성공한 사람이 되려

하기 보다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금계국이 활짝 핀 예쁜 길, 제 자전거 길이랍니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들의 존경을,

아이들의 애정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인정을 받고 그릇된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을 발견하는 것
아이를 건강하게 기르든,

한 뙈기 정원을 가꾸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게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미국의 시인 에머슨의 시입니다.

이 시의 표현대로 보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등만이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힘들어 할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안에서 서로 인정하며

사랑하며 살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러한 삶이

더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요?
모두들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진정한

성공임을 기억하면서,

불행한 1등을 쫓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행복한 꼴등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어떨까요?

강화 앞 바다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