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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마태8,5-17)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6-26 조회수6,73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6월 26일 토요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마태8,5-17)

 

1독서<주님이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창세18,1-15)

그 무렵 주님께서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자기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그는 그들을 보자 천막 어귀에서 달려 나가 그들을 맞으면서

땅에 엎드려 말하였다.

3 “나리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시어 발을 씻으시고이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제가 빵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이렇게 이 종의 곁을 지나게 되셨으니원기를 돋우신 다음에 길을 떠나십시오.” 그들이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아브라함은 급히 천막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말하였다. “빨리 고운 밀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 반죽하여 빵을 구우시오.”

그러고서 아브라함이 소 떼가 있는 데로 달려가 살이 부드럽고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하인에게 주니그가 그것을 서둘러 잡아 요리하였다.

아브라함은 엉긴 젖과 우유와 요리한 송아지 고기를 가져다 그들 앞에 차려 놓았다그들이 먹는 동안 그는 나무 아래에 서서 그들을 시중들었다.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댁의 부인 사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그가 천막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내년 이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그때에는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등 뒤 천막 어귀에서 이 말을 듣고 있었다.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 많은 노인들로서사라는 여인들에게 있는 일조차 그쳐 있었다.

12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늙어 버린 나에게 무슨 육정이 일어나랴내 주인도 이미 늙은 몸인데.’

13 그러자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사라는 웃으면서, ‘내가 이미 늙었는데정말로 아이를 낳을 수 있으랴?’ 하느냐?

14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내가 내년 이맘때에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그때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15 사라가 두려운 나머지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하면서 부인하자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너는 웃었다.”

 

화답송 루카 1,46-47.48-49.50과 53.54-55(◎ 54ㄱ 참조)

◎ 주님은 당신 자비를 기억하셨네.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고내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내 마음 기뻐 뛰노네

○ 그분은 비천한 당신 종을 굽어보셨네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 그분 자비는 세세 대대로그분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미치리라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네

○ 당신 자비를 기억하시어당신 종 이스라엘을 돌보셨으니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그분의 자비 영원하리라

 

복음<가거라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마태8,5-17)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14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15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제1독서(창세18,1~15)


그 무렵 주님께서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자기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천막 어귀에서 달려 나가 그들을 맞으면서 땅에 엎드려 말하였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시거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제가 빵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의 곁을 지나게 되셨으니, 원기를 돋우신 다음에 길을 떠나십시오."(1~5)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서' 

'마므레'는 아브람과 동맹을 맺었던 아모리족의 한 사람인 '마므레'를 가리키는 이름 (창세14,13.14)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그의 개인 소유지로서 아브람이 롯과 헤어져 정착한 장소(창세13,18)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창세23,17.19; 35,27). 

 

한편 '참나무들 곁에서'에 해당하는 '뻬엘로네'(beellone) '참나무'(상수리나무) 뜻하는 '알론'(allon)의 복수형 '속에', '~사이에', '곁에'를 뜻하는 전치사 '뻬'(be)가 결합하여 당시 아브라함이 '참나무들 사이에', '참나무들 바로 가까이에 (곁에)' 살았음을 보여준다. 

 

'나타나셨다'에 해당하는 '와예라'(wayera; and appeared)에서 '보다'(창세7,1) 라는 뜻이 있는 '라아'(rah)의 단순 재귀형이 사용되어 '그리고 그는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셨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찾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셨음을 보여준다. 

 

'한창 더운 대낮에'에 해당하는 '케흠 하이욤'(kehm haiyom; in the heat of the day)에서 '날'(창세1,8; 탈출6,28)을 뜻하는 '욤'(yom) 정관사 '하'(ha)가 결합하여 '그날'(the day)이란 뜻의 '하이욤'(haiyom)이 쓰였다.  

 

그리고 '한창 더운'에 해당하는 '케흠'(kehm) '입다'라는 뜻을 지닌 '하맘'(hamam)에서 유래하여 '더위'(창세8,22), '따뜻함', '따끈함'(1사무21,7)이라는 뜻을 가진 '흠'(hm) '~같이', '~처럼', '~할때'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케'(ke)가 결합된 말이다. 

따라서 직역하면 '그날의 그 더운 때에'(in the heat of the day; while the day was growing hot)가 된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오전 일을 모두 마치고 가장 더운 때를 피해 휴식을 취하고 있던 때였음을 알려 준다.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자기 앞에 제 사람이 서 있었다' 

'그가 눈을 들어 보니'에 해당하는 '와잇사 에나이우 와야르 웨힌네'(waissa enaiu wayer wehine; and he lift up his eyes and looked and saw)에서 아브라함이 세 사람을 발견한 것을 자연스럽게 묘사하지 않고, 감탄사인 '힌네(hinne)를 통해 묘사한 이유가 '잇사 예나이우'(issa enaiu; he lift up)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문자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눈을 들어 보게 된 경우를 묘사한다. 

 

 아브라함은 정오의 햇볕을 피하기 위해 천막 앞에 앉아 졸고 있던 중에 언뜻 눈을 들어 보는 중에 세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에 놀라움을 가지게 된 것이고, '힌네'(보라)라는 감탄사는 이러한 당황스러움을 묘사하는 말인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왜 달려나가 그들을 맞이했는지 그 이유를 말해준다. 이것은 그가 졸고 있었다는 사실을 만회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그가 보게 된 대상은 '세사람'으로 소개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그들을 전혀 사람 이상의 다른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달려 나가 그들을 맞으면서 땅에 엎드려' 

'달려 나가'에 해당하는 동사 '루츠'(ruts) '달려들다', '돌진하다'(욥기15,26), '급히가다'(1사무20,6) 라는 뜻으로서, 여기서는 계속적 '와우'(wau)와 함께 쓰여 아브라함이 세 사람을 보자마자 곧바로 달려 나간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맞으면서'에 해당하는 동사 '카라'(qara)는 '만나다'(창세46,29; 탈출4,27) 라는 뜻이다. 

 

따라서 직역하면 '그러자 그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급히 나갔다'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낯선 손님을 환영하기 위해 서둘렀음을 말한다. 

이것은 손님을 맞이하는 고대 근동의 관습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졸고 있었기에 눈앞에 까지 그들이 왔어도 알아채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을 만회하기 위해 평상적인 모습보다 더 과장된 행동으로 나그네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에 해당하는 '샤하'(shaha)는 재귀형으로 쓰여 외부의 간섭없이 자의적으로 '엎드리다'(창세23,7; 이사51,23), '절하다', '경배하다'(탈출11,8; 신명8,19)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처럼 몸을 땅에 대고 엎드리는 이런 인사는 귀한 방문자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는 근동의 인사 양식이었다. 

 

성경에서는 야곱이 에사우를 맞이할 때(창세33,3), 요셉이 그의 아버지를 환영하며 맞아들일 때(창세48,12), 그리고 예언자 무리(생도들)가 엘리사를 맞이할 때 (2열왕2,15) 등 여러 시대에 걸쳐 이런 인사 풍습을 보여 주고 있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나리'에 해당하는 '아도나이'(adonai)는 원래 '주'(창세19,18; 여호3,11), '주인'(창세18,12; 판관19,11), '소유주'(창세42,30; 이사24,2)를 뜻하는 '아돈'(adon)의 강조형이며 남성 복수형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브라함이 세 사람의 나그네에 대하여 '나의 주여'(my Lord)라고 하면서 1인칭 단수를 사용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아브라함이 세 사람의 나그네 중 한 사람이 하느님이심을 즉각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학자들은 '주'에 해당하는 '아도나이'의 기본 어근이 '아돈'이며, 이 단어는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창세18,12), 종이 주인(상전)을 부를 때 (창세24,12) 상대방을 지극히 높여 부를 때 사용되었고, 아브라함이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하였다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점(히브13,2) 등을 들어 아브라함이 그들 중 한 명이 하느님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지극히 높여 부른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것은 그가 처음으로 그들을 발견했을 때 '세 사람'이라고 말한 것에서 확인되며, 아브라함은 계속적인 대화를 통해 이들 중에 한 명이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된 것은 확실하다(창세18,17.22절).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에 해당하는 '임 나 마차리 헨 뻬에네카'(im na matsathi hen beeneka)는 직역하면 '만일 제가 당신의 눈속에서 은혜를 찾아냈다면 (발견했다면)'이다.

여기서 '입다'(창세6,8; 탈출33,12)에 해당하는 '마차'(matsa) '얻다'(창세19,19; 신명22,3), '발견하다'(창세36,24; 민수24,1), '만나다'(민수35,27; 여호2,22)라는 뜻을 지닌 '임'(im)과 함께 쓰여 '발견했다면'이란 의미이다.

 

그리고 '은혜', '은총'에 해당하는 '헨'(hen) '불쌍히 여기다'(2사무12,22)라는 뜻의 '하난'(hanan)에서 유래하며 '은총'(탈출33,12; 잠언3,4), '호의'(신명24,1; 탈출39,21)로도 번역되었다. 또한 '뻬에네카'(beeneka)에서 '아인'(ain) '눈'(창세3,5; 1사무2,30)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서 '당신의 눈들 속에'라는 뜻이다. 

 

'내가 당신의 눈들 속에서 은총을 발견했다면', '내가 당신의 눈들 속에서 나에 대한 사랑을 찾아냈다면, '내가 당신의 마음에 들었다면'하면서 아브라함은 지금 나그네들에게 쉬어 갈 것을 최고의 예의를 갖추어서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명령형과 함께 사용되지만  강압적인 명령이 아니라 부드럽고 신중한 요청을 할 때 혹은 더 나아가 간청할 때 쓰이는 '제발', '부디'라는 뜻이 있는 부사 '나'(na) 창세기 18장 3절에는 두 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아브라함은 두 번이나 이 단어를 사용하여 세 명의 나그네에게 자신의 거처를 그냥 통과하여 지나가지 말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다. 

 

특히 아브라함은 자신을 '종'에 해당하는 '에베드'(ebed)이라고 까지 표현하며 손님들을 최대한 예우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이러한 손님 접대에 대한 열성에 대하여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13장 2절에서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하기도 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시어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씻으시고'에 해당하는 '라하츠'(rahats) '발'에 해당하는 '레겔'(regel)을 목적어로 하는 명령형으로 쓰였다. 그러나 여기서처럼 히브리어 부사 '나'(na; 부디, 제발, 청컨대) 명령형과 함께 쓰일 때에는 명령보다는 애원의 의미에 더 가깝다.  

 

따라서 '제발 당신들의 발들을 씻으십시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쉬십시오'에 해당하는 '샤안'(shaan) '의지하다'(2사무1,6; 2열왕5,18)라는 뜻이다. 이 동사는 지팡이(에제29,7), (2사무1,6)  혹은 팔이나 손(2열왕5,18; 7,2.17)과 같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게 의지하여 기대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동작의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가는 재귀 명령형으로 쓰여져 나무 그늘에서 휴식하며 식사하기에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옆으로 비스듬히 누어 왼팔로 몸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는 식사 관습을 반영하는 표현으로서 식사 대접을 편안히 받으라는 의미 지니고 있는 것이다(요한13,23).  

창세기 18장 4절에서 아브라함이 제공할 발 씻을 물과 나무 그늘에서의 휴식은 더위에 지쳐 있는 여행자가 가장 고마워할 것들이다. 

 

'원기를 돋우신 다음에' 

'원기를 돋우신 다음에'로 번역된 '웨싸아두 립베켐 아하르'(wesaadu libbekem ahar)에서 동사 '싸아드'(saad) '지탱하다'(이사9,7), '강하게 하다', '만족시키다' 뜻하는 말로서 명령형으로 쓰였는데, 보통 '레브'(leb; 마음)라는 단어와 함께 쓰여서 마음을 강하게 지탱하라는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서 여행으로 인한 피곤한 육체를 쉬게 하고 음식을 먹음으로써 쇠잔한 기력을 힘있게 회복하고 재충전하라는 말이다. 

 

한편 창세기 18장 3절과 5절 '종'에 해당하는 '에베드'(ebed) '노동하다', '일하다'라는 뜻의 '아바드'(abad)에서 유래하여 '노예'(창세43,18), '종'(창세9,25) 이란 말로 사용되거나 낮은 신분에 처한 자신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자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당시 아브라함은 이미 거대한 부자였으며, 한 가문을 대표하는 족장이었다. 그런 그가 신분조차 모르는 나그네들 앞에 자신을 낮추어 '종'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당시의 관습이 아무리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는 사회라고 할지라도 크나큰 겸손의 표현 이라고 할 수 있다.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지성이면 감천’ 이라는 말은 성경엔 없다.

(마태8,5- 17)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카파르나움 나를 위한 고을성전이라는 뜻입니다카파르나움의 집은 머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곧 우리의 머리이신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중풍병인 것입니다.

 

(2티모4,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 들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거짓 가르침을 찾아다니니하느님의 말씀을 먹지 못해 모두 영적 중풍에 걸려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인간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낸 사람의 규정과 교리 계명의 가르침을 단식하고죄인들의 운명을 되돌려 주시는 십자가의 대속그 진리의 복음을 믿고 받아먹어야 합니다그때 죄인이 의인으로 운명이 되돌려 지지요.(로마3,24참조)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카파르나움자신을 위한자신의 열심히 지은 그 집(성전)은 자격이 없음을 알고 주님의 한 말씀이 병()을 치유(용서)하는 능력권한 있음을 아는 백인대장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예수님께서 감동하시는 고백은자신의 의로움정성은 자격없음을 깨닫고(이사1,11-17 64,5 로마3,24참조주님의 한 말씀만이 전능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동쪽(에덴의 동쪽동쪽과 서쪽은 온 사방을 줄임)으로 쫓겨났던 죄인들이 돌아와 (하마뜨리아-회개하늘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지요.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들(유대인을 지칭함-자칭 선민들)은 하늘의 양식씹을 것이 없어서 이빨만 가는곧 카파르나움의 자기열성그 헛 양식으로 이빨끼리 부딫히는그 이를 간다는 말씀입니다.

 

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14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진리의 말씀()이 없어 온갖 자기 열성법의 행위로 신앙이 짐이 되어 오히려 열병(두려움근심)이 난 것입니다.

 

(아모8,11) 보라그날이 온다주 하느님의 말씀이다내가 이 땅에 굶주림을 보내리라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

 

15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진리의 손()으로 열이 내리고 시중(디아오코스-말씀으로 섬기다)을 들었던 겁니다.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말씀이 이루시는 것입니다헛된 신앙의 카파르나움은 마귀()의 유혹 때문인 것이지요.

 

(창세2,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그 열매를 따 먹는 날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말씀을 선악으로 먹지 말라 하시는 것입니다.

 

(창세3,4-5) 그런데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선과 악을 인간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죄입니다선과 악은 하느님만이 이시는 것입니다그러나 뱀마귀의 유혹으로 말씀을 선악의 도덕과 윤리로 말하고 들어 모두 그 뱀의 말을 먹어 악이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악의 윤리와 제사의 열성에서 돌아서서 선이 악을 대속하는 그 제사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져 용서로 생명을 주는 그 하늘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악령은 쫓겨납니다.

빛이 켜지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처럼빛 앞에서 어둠은 없는 것입니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악을 먹어 죽을 수밖에 없는 모두를 살리시기 위해 그들의 악()를 예수님께서 다 짊어지시고 저주의 뱀으로 죽으러 오신 것입니다.(요한3,14참조)

 

(에페1,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사랑으로아멘.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복음 (마태8,5-17)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8) 

 

'저는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에 해당하는 '우크 에이미 히카노스'(ouk eimi hikanos; I am not worthy; I do not deserve to)에서 '히카노스'(hikanos) '가치 있는', '적합한', '알맞은'으로 번역할 수 있다. 

 

마태오 복음 8장 7절에서 '유다인인 내가'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이방인들의 집에 들어가거나 합석하지 않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 유다인임을 밝히셨는데, 이것은 이방인인 백인대장의 믿음을 시험하신 거라고 볼 수 있다. 

 

'유다인인 내가 굳이 너에게 가서 그를 고쳐야 하느냐?'의 질문에 대해, 이방인인 백인대장은 '저는 주님께서 저희 집에 들어오실 만한 가치조차도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표현했다. 

이것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등의 교제를 금지하는 유다인의 관습을 잘 알고 있었던 이방인 백인대장의 사려깊은 배려이기도 하며, 또한 마태오 복음 15장 25절과 27절에서 가나안 여자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게 해 달라는 겸손과 믿음의 모습과도 비슷한 것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렇게 이방인 백인대장의 겸손하고 믿음있는 모습을 강조하여 마태오 복음의 독자인 유다계 크리스챤들에게 큰 믿음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저'로 번역된 '모논'(monon; only)는 수식하는 문장의 의미를 제한하거나 분리하는 역할을 하는 부사로서 '단순히', '오직'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리고 '말씀'에 해당하는 '로고'(logo; the word) '말씀'이라는 뜻의 '로고스'(logos)의 수단을 나타내는 여격 단수형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직역하면 '다만 한 말씀으로 하옵소서'이다. 

 

백인대장은 구약의 나아만 장군과 같은 이방인이면서도 주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고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병을 고쳐 주기를 바라는(2열왕5,11) 주술적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이방인 백인대장이 바라는 것은 이방의 우상 숭배자들처럼 주문을 외거나 주술적 기원을  하는 행위가 아니었고, 스스로의 이름과 신적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고침(치유; 나음)을 입으라'는 단 한마디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이방인 백인대장은 주님의 한 '말씀'(logos) 자체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은 참된 믿음의 소유자였던 것이다(루카4,26; 히브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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