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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516 - 부활 제5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 정필종 도미니코 신부님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5-16 조회수6,675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7
05 16 () 가해 부활 제5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사도행전 14,19-28
요한복음 14,27-31


정필종 도미니코 신부님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상에서의 마지막 인사 말씀을 하십니다. “내 평화를 여러분에게 줍니다.”(요한 14,27) 평화의 인사는 보통 작별인사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당신의 평화를 주고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도대체 왜세상이 주는 평화당신의 평화는 다른 것입니까?

여전히 전쟁의 참상은 지구촌을 할퀴고 있으며, 힘센 나라는 주변의 약소 국가들을 그럴 듯한 외교적인 언사로써 요리하려 합니다. 한시도 이 지구상에 총성이 그친 적은 없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으로 참혹합니다. 전쟁의 당사자들이 제일 많이 쓰는 단어가 바로평화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이스라엘의 고도(古都) 예루살렘은평화의 도시를 말하며, 그들이 주고 받는 매일의 인사는샬롬, 평화를 말합니다. 우리 말로는안녕하십니까?”와 똑같은 의미입니다. 얼마나 평화가 부재한 체험이 가득하면 평화를 그토록 아침 저녁으로 외쳐야 했겠습니까? 평화가 없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평화만큼 절실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이 단어만큼 그 의미가 퇴색하고 식상해버린 단어도 없다 싶습니다. 무의미해졌다는 말이 더 옳게 여겨집니다. 세상은 강자의 논리가 더 쉽게 적용되고 지배적인 듯이 보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나 외쳐 되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버린 지 오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께서는당신의 평화를 말씀하십니다. 그게 그렇게 다르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그분이 말씀하시는 평화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는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들여다 볼 때 비로소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유다인들이 두려워서 문을 굳게 잠그고 있던 제자들에게 홀연히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여러분에게 평화!”(요한 20,20)라고 인사하십니다.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두려움이라는 벽으로 둘러싸인 그들의 그 벽을 없애주시는 모습입니다. 그것을 성서 본문은문들이 잠겨 있었다.”(요한 20,26)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바로 우리 안에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벽들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벽들은 바로 우리 자신의 편견과 독선, 완고함과 아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와 이데올로기, 신념과 가치가 상충하면서 만들어 놓은 그 벽은 너무도 견고합니다. 우리는 그 안에 자신을 가두어 놓고 결코 밖을 향해 자신을 열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성채 안에서 마치 왕이라도 된 양 거리낌 없이 살아갑니다. 그 선과 벽은 숱한 오해와 비판, 단견이라는 자식을 낳고, 그 선과 벽을 더욱더 굳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 가운데 서시며여러분에게 평화!”를 선포하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벽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그 벽을 마치 있는 것처럼 생활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족 간의 벽, 친척들 간의 벽, 성당과 성당 간의 벽, 교구와 교구 간의 벽, 종교와 종교 간의 벽, 지역과 지역 간의 벽 등등. 이런 것들을 너무도 당연시하고, 그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벽이 없다 하시는데 우리는 자꾸만 그 벽을 높여갑니다. 이는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처럼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벽이 없다면 너무도 사는 것이 두렵게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의탁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느님만 믿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너무도 용기가 없는 우리들을 한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 바로 이어 나오는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일어나 여기서 떠나갑시다.”(요한 14,31) 그렇습니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는 먼저 두려움에 사로잡혀 웅크린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이는 용기를 상징합니다.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벽을 허물고 과거와의 단절로써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옛 것은 허물어지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정필종 도미니코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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