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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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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3 조회수681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2월 13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

제1독서 1열왕 11,4-13

솔로몬 임금이 4 늙자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다른 신들에게 돌려놓았다.

그의 마음은 아버지 다윗의

마음만큼 주 그의 하느님께

한결같지는 못하였다.

5 솔로몬은 시돈인들의 신

아스타롯과 암몬인들의

혐오스러운 우상 밀콤을 따랐다.

 6 이처럼 솔로몬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고,

자기 아버지 다윗만큼 주님을

온전히 추종하지는 않았다.

7 그때에 솔로몬은 예루살렘

동쪽 산 위에 모압의 혐오스러운

우상 크모스를 위하여 산당을 짓고,

암몬인들의 혐오스러운 우상

몰록을 위해서도 산당을 지었다.

8 이렇게 하여 솔로몬은 자신의

모든 외국인 아내를 위하여

그들의 신들에게 향을 피우고

제물을 바쳤다.
9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다. 그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에게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그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시어,

10 이런 일, 곧 다른 신들을

따르는 일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는데도, 임금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11 그리하여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뜻을 품고, 내 계약과

내가 너에게 명령한 규정들을

지키지 않았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너에게서 떼어 내어

너의 신하에게 주겠다.

12 다만 네 아버지 다윗을

보아서 네 생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네 아들의 손에서

이 나라를 떼어 내겠다.

13 그러나 이 나라 전체를

 떼어 내지는 않고, 나의 종

윗과 내가 뽑은 예루살렘을

 생각하여 한 지파만은

네 아들에게 주겠다.”

복음 마르 7,24-30

그때에 24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29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

어느 책을 읽다가 독일 부부들은
평균적으로 매일 5분 정도만
이야기를 나눈다는 충격적인 글을
보았습니다. ‘진짜?’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나라는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독일보다도 더 일 중심의
사회인 우리나라가 아닙니까?
더군다나 과묵한 것이 하나의 미덕처럼
생각되는 우리나라이니 어쩌면 더
대화가 없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는 은퇴 후 더욱더 함께 사는 것을
힘들게 하는 이유가 되고,
 이로써 황혼 이혼이 늘어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대화가 없는 상태를 사랑이 있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말이든 하려고 할 것이고,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들으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또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해도 크게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사랑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주님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정의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라고
하지요. 따라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사랑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따라서
 ‘기도하기 어렵다’라는 고백은
사랑의 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부인이 예수님께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런데 사랑 가득하신 예수님께서는
아주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어쩌면 커다란 모독이 될 수 있는
말입니다. 사람을 ‘강아지’에
비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욕을 당했다면서 오히려 예
수님을 향해서 욕을 퍼부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상황 같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자신의 청을
거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말을 합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주님을 향한
 믿음이 컸고, 딸에 대한 사랑이
 컸기 때문입니다. 주님에게는
 외적인 모습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커다란 사랑을 가졌는지,
또 자신을 향한 믿음의
크기를 보실 뿐이었습니다.
주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주님께서
너무하다 하실 정도로 커다란
고통과 시련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올 때,
주님께서는 커다란 사랑으로
다가오십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맘껏 죄지으려고

자유를 남용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죄를 아예 짓지 않기

위하여 자유를 사용하십시오

그대의 의지는 그대가 하느님을

공경할 때에만 자유롭습니다.

의로움의 종이 되면 그대는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주님의 별

일상사에 빠져 있을 때,

무엇인가에 함몰되어 있을 때,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2,000년 전 동방 박사들처럼

주님의 별을 따라야 합니다.
이 별은 ‘경건한’ 기도 속에서만

그리고 잠심하는 묵상 안에서만

자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일상 안에서 스스로 갖게 되는

희망과 확신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사랑의 주님이시기에

우리가 실천하는 사랑 안에서

주님의 별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주님의 별을 쫓아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을 경배했던 동방

박사의 여행길이 쉬었을까요?

희망과 확신을 잃지 않았기에

별을 끝까지 쫓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희망과 주님께 대한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의심이 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더 큰 희망으로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별을 쫓고 있습니까?

사실 세상일에 푹 빠져서

주님을 외면합니다. 미사, 기도,

묵상을 시간 낭비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은퇴 후 시간이

나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별이 갖는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비용과 효용의

논리는 하느님의 범주가 아닌데,

하느님의 일을 세상의 논리로

따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스러기는 먹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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