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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6.0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6-08 조회수6,630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7년 6월 8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제1독서 토빗

6,10-11; 7,1.9-17; 8,4-9ㄱ

10 토비야가 메디아에

들어서서 이미 엑바타나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11 라파엘이 “토비야 형제!”

하고 청년을 부르자 그가

“왜 그러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라파엘이 말하였다.

“우리는 오늘 밤을

라구엘의 집에서

 묵어야 하는데,

그 사람은

그대의 친족이오.

그리고 그에게는

사라라는 딸이 있소.”
7,1 엑바타나에 들어서자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아자르야 형제,

나를 곧장 우리 친족

라구엘에게

데려다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는 토비야를

라구엘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마당 문 곁에

앉아 있는 라구엘을

보고 먼저 인사하였다.
라구엘은 “형제들,

기쁨이 충만하기를 비오!

건강히들 잘 오셨소.”

하고 답례한 다음,

그들을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9 라구엘은 양 떼

가운데에서 숫양

한 마리를 잡고,

그들을 따뜻이 맞아들였다.

그들이 몸과 손을 씻고

저녁을 먹으러 식탁에

앉았을 때에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아자르야 형제,

내 친족 누이 사라를

나에게 주라고

라구엘에게 말씀드리시오.”

하고 말하였다.
10 라구엘이 우연히

이 말을 듣고

청년에게 말하였다.

 “오늘 밤은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내라. 형제야,

내 딸 사라를 아내로

맞아들일 자격이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나도 사라를 너 말고

다른 남자에게 줄

권리가 없다.

네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얘야, 너에게

사실을 알려 주어야겠다.

11 나는 벌써 사라를

우리 동포 일곱 남자에게

차례로 주었지만,

사라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그 밤으로

다 죽어 버렸다.

그러니 얘야, 지금은

그냥 먹고 마셔라.

주님께서 너희를

돌보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토비야는 말하였다.

 “제 일을 결정지어

주시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습니다.” 그러자

라구엘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마.

모세의 책에 있는

규정에 따라 사라는

네 사람이다.

하늘에서도 사라는

 네 사람이라고 이미

판결이 내려졌다.

너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이하여라.

이제부터 너는 사라의

오라비고 사라는

너의 누이다.

오늘부터 사라는

 영원히 네 사람이다.

그리고 얘야, 오늘 밤에

하늘의 주님께서 너희를

잘 보살피시고,

너희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

12 그러고 나서

라구엘은 자기 딸

사라를 불렀다.
사라가 오자 라구엘은

그 손을 잡고 토비야에게

넘겨주며 말하였다.

“율법에 따라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여라.

모세의 책에 쓰인

규정에 따라 사라는

네 아내다. 그러니 네가

맡아서 네 아버지께

잘 데려가거라.

하늘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번영과 평화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
13 라구엘은 다시 사라의

 어머니를 불러서 쓸 것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세 율법의

규정에 따라 사라를

토비야에게 아내로 준다는

혼인 계약서를 썼다.

 14 그러고 나서 그들은

먹고 마시기 시작하였다.
15 라구엘은 자기 아내

아드나를 불러, “여보,

다른 방을 준비해서

사라를 그리로 데려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아드나는 가서

라구엘이 말한 대로

그 방에 잠자리를

차려 놓은 다음,

사라를 그리로 데려갔다.

그리고 사라 때문에

울다가 눈물을 닦고

그에게 말하였다.
17 “얘야, 용기를 내어라.

하늘의 주님께서

너의 그 슬픔 대신에

이제는 기쁨을 주실 것이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그러고 나서 아드나는

방을 나갔다.
8,4 부모가 방에서

나가 문을 닫자 토비야는

침상에서 일어나

사라에게 말하였다.

“여보, 일어나구려.

우리 주님께 기도하며

우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십사고

간청합시다.”

 5 사라가 일어나자

그들은 기도하며

자기들에게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청하였다.
토비야는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당신의 이름은 대대로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하늘과 당신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영원히

찬미하게 하소서.

6 당신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협력자며

협조자로 아내 하와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둘에게서 인류가

 나왔습니다.

 당신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와 닮은

 협력자를 우리가 만들어

주자.’ 하셨습니다.
7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저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8 그들은 “아멘, 아멘.”

하고 함께 말하였다.

9 그러고 나서

그날 밤 잠을 잤다.

복음 마르 12,28ㄱㄷ-34

그때에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이며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작가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러시아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딸에 대한

랑이 아주 각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열 살 된 딸이

큰 소리로 울면서 집에

들어왔습니다.

톨스토이는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었지요.

딸은 울먹이며 말합니다.
“아빠, 저 심술꾸러기 아이가

막대기로 나를 때렸어요.

저 아이를 혼내주세요.”
이러한 상황에서 톨스토이는

어떻게 했을까요?

딸의 바람대로 때린 아이를

찾아가서 혼내주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속상했지만 웃으면서

 딸을 꼭 껴안고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아빠가 그 아이를 혼내면

오히려 그 아이가

너를 더 미워할 거야.

그 아이를 미워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네 사랑이 전해지면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도 않고,

오히려 더 친해질 거야.”
극성스러운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맞고

들어오면 바로 때린 아이를

찾아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가정교육까지

들먹이면서 크게 혼을

 내는 데만 집중하지요.

그러나 톨스토이의 말처럼

그렇게 혼을 냈다고 해서

문제가 잘 해결될까요?

오히려 친구 한 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요?

따라서 톨스토이가

딸에게 보여주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미움 대신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미움은 순간적으로

승리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 뿐이지만,

사랑은 진정한 승리를

우리에게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힘은 이렇게 큽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사랑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해주셨습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이 사랑의 실천이 하느님께

드리는 어떤 봉헌보다도

훨씬 더 낫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을까요?

정말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온 힘을

다해서 하고 있을까요?

혹시 내게 잘못한 이를

사랑으로 대하기보다는,

내게 굴복하고 고개를

 숙일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랑의 힘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서 계속 우리의

삶 안에서 커다란 힘을

발휘했습니다.

리고 그 사랑의 힘은

지금 내 안에서도

큰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요?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사랑의 실천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더욱 더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랑은 어느 날

닥쳐온 사건의

선물이지만,

우정은 함께한

시간의 선물이다.

(이진경)

성모님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긍정은 위대하다."

(최천호)

어느 마을 다리 밑에는

걸인 두 사람이

고 있었습니다.

그 다리 입구 쪽에는

기념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다리를 세우기 위해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한 걸인은 그 기념 비석에

침을 뱉으며 언제나

욕을 해댔습니다.
“에이 양심도 없는 놈들

돈 많은 것들이 생색내기는...”
그러나 한 걸인은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참 고마운

사람들 아닌가.

우리에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해주고 많은 사람을 건너가게

해주니 말일세.

나도 언젠가 이 사람들처럼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그 다리 옆에 새로 큰 다리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기념 비석에 새겨진

이름 중엔 늘 고마운 마음을

가졌던 그 걸인의 이름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넝마주의를 시작하여

열심히 일하여 마침내는

건재상을 경영하는 부자가 되어

기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침을 뱉으며 항상

욕을 했던 다른 걸인은

여전히 그 다리 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긍정의 힘은 위대합니다.

내게 주어진 고난과 역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도 분명

행복해질 것입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겠어요?

긍정의 마음입니까?

부정의 마음입니까?

행복의 길을 선택하는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어제는 의정부교구

후곡성당을 다녀왔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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