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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 죽음 (최영철 알폰소 신부)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15 조회수1,667 추천수0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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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 긴 고해를 하시는 분들은 명동성당의 상설고해소를 방문하세요 ]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 죽음

 





인간은 희망의 존재이다. 내일과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존재로서 살아가기 때문에 희망하면서 산다. 오늘이 고달프더라도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 바라기 때문에 힘든 지금은 인내로이 견딜 수 있고 더욱이 보람 있게 지낼 수 있다. 내일과 미래를 향해 열려있지 않고 닫혀 있다면 희망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희망은 가까운 내일에 한정되지 않는다. 내일을 넘어서 먼 미래를 향해 뻗어있다. 내일에만 국한된 희망은 참 희망이 아니다. 인간에게 죽음과 더불어 모든 것이 끝장난다면 인간은 진정 희망하는 존재일 수 없다. 죽음으로 끝장나는 삶이라면 인간은 희망의 존재일 수 없다. 참 희망은 죽음을 넘어서까지 뻗어있는 것이다. 인간이 진실로 희망하는 존재라면, 희망이 인간 존재의 근본 요소라면, 인생은 죽음과 함께 끝장나는 삶이 아님이 확실하다. 우리가 영원한 삶을 갈구하고 믿는 것은 죽음을 넘어서 있는 희망 덕분이다.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다”(로마 5,12). 이 성경 말씀대로 과연 죽음은 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온 것인가? 죄가 끌어 들인 죽음은 ‘자연적 죽음’이 아니라 ‘영적 죽음’ 곧 인간을 영원히 멸망시키는 죽음이다. 인간은 죄를 짓지 않았어도 죽기 마련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 즉 ‘끝이 있는’ 존재다.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죽음은 생명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며 외부로부터 생명 안으로 침입하는 것도 아니다. 죽음은 생명 안에 있다. 생과 사는 따로 분리되어 있는 두 개체가 아니다. 생과 사는 하나이다. 죽음은 이미 생명 안에 들어 있다. 생명이 자라면서 죽음도 함께 자란다. 죽음은 생명의 마지막이고 끝장이지만 생명 안으로 갑자기 들이닥쳐 모든 것을 훔쳐가는 ‘도둑’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 안에 이미 들어와 생명과 함께 자라는 생의 동반자이다. 생명 안에 죽음이 포함되어 있다면, 참 생명은 죽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자연적인 죽음은 원래 생명 안에 있었는데 죄가 생명 안에 들어와 죽음을 영원한 멸망으로서의 가치로 바꾸어 놓았다. 죽음이 공포와 절망을 안겨주는 무서운 원수로 바뀌게 된 것은 죄 때문이다.

죽음이 생명 안에 이미 내포되어 있으면 죽음은 두 가지 상반된 측면을 지닌다. ‘끝장’으로서 또한 ‘성취’로서의 죽음이 있다. 이는 끝의 두 얼굴과 마찬가지다. 마지막은 멸망을 뜻하는 끝장이 될 수도 있는 반면에 완성을 뜻하는 성취일 수도 있다. 목표 달성은 마지막 일이다. 죽음 역시 파멸이 될 수도 있고 완성이 될 수도 있다. 미완성의 생명이 죽음으로 인해 완성될 수 있다. 죽음의 두 상반된 모습은 삶의 질과 내용에 따라 좌우된다. 이처럼 죽음은 긍정적 가치와 부정적 가치를 동시에 지닌다. 죽음은 그 안에 삶을 요약하여 생전의 감추어 있던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낸다. 삶을 결산하고 그 결실을 거두는 수확이다. 죽음이라는 끝이 없으면 삶은 영원히 감추인 채 남아있을 것이며 끝없이 권태로운 연속일 뿐이고, 안식 없는 분주함이며 수확 없는 헛일일 수도 있다.

예수님은 삶과 죽음으로써 그 가치를 역전시켰다. 죄로 인해 영원한 멸망으로 치닫고 있던 죽음의 본래가치를 회복시켰다. 그 긍정적 가치를 드러내고 그 흐름을 바꾸어 놓으셨다. 그분은 죄가 없는 거룩한 분임에도 불구하고 죄인의 모습으로 또 지고한 사랑으로써 죽음을 겪으신 결과 죽음 안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죄를 쳐부수셨다. 그리하여 부정적 가치를 극복하고 긍정적 가치를 죽음에 되찾아 주었다. 죄를 극복하고 이기는 사랑의 승리를 위한 길을 터놓으셨기에 죄에 물든 죽음 즉 영원한 멸망의 죽음을 패배시킬 수 있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렸다.”(1코린 15,55)


(최영철 알폰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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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돌아가신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여,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를 위해 하느님께 자비를 빌어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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