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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홍성남 신부님 / 스킨십의 중요성과 존중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3 조회수1,511 추천수6 반대(0) 신고

홍성남 신부의 행복한 신앙




제30회 스킨십(skinship)의 중요성과 존중


안녕하십니까? 오늘이 여러분들이 강의 들으시는 마지막 날입니다. 30회째죠. 그동안 행복한 신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29회 강의를 해 드렸는데 오늘 강의 중에 마지막 부분에 대한 것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된다. 그런데 함께 사는 것이 쉽지가 않으니까 그럼 어떻게 함께 살아야 되는가에 대해

서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오늘 마지막 시간도 함께 사는 방법 중에 하나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 스킵십 (skinship)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려면 스킨십이 잦아야 된다는 말씀을 드릴게요. 성당에 처음 오신 분들이 이런 얘기를 많이 하세요. 성당에 처음 오면 기분이 별로 안 좋대요. 왜 안 좋은가? 아는 척하는 사람이 없대요. 인사하는 사람도 없고. 미사 때도 저 혼자 그냥 중얼중얼 기도문 외우고, 아무도 안 쳐다본대요. 그런데 그러다가 기분이 안 좋은 일을 당할 때가 있대요. 뭐냐고 그랬더니 평화의 인사 때에 쳐다도 안 보 사람이 갑자기 빵끗빵끗 웃어주면서 인사를 한다는 거죠. 그래서 기분이 안 좋다.^^* 세 번째로 기분이 안 좋은 것은 분명히 아까 평화의 인사를 한 사람인데 나가면 인사를 안 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세 번 기분이 안 좋다는 그런 얘기를 하는데.

 

사실 천주교 신자분들은 굉장히 스킨십이 약합니다. 그게 아마 우리 가톨릭교회는 수도회의 그런 어떤 분위기를 많이 이렇게 따라가고 있어요. 수도자들끼리 이렇게 독방에서 수도 생활하는 그런 것들이 우리한테도 많이 내려와 가지고 사람 간에 몸이 닿거나 이런 것을 좀 금기시하는 그런 어떤 게 있어요. 그래서 기도할 때도 늘 거리를 두고 하고, 성당에 들어가도 늘 앉던 자리에만 앉고, 낯선 자리에는 절대로 안 가고, 앉아도 꼭 끼리끼리 앉고. 그런 현상들이 아마 수도원의 어떤 분위기가 내려와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저희 본당 같은 경우에는 평화의 인사 시간에 신자분들끼리 등을 두들기는 그런 시간을 꼭 갖고 있습니다. 등을 두들기게 하는 것은 평화의 인사만 그냥 생뚱 맞게 하고 나면 끝난 다음에는 정말 서로 모르는 척해요. 그래서 적어도 공짜로 날 두들겨 주는 사람은 밖에 나가서 눈인사라도 하지 않을까? 그래서 등을 두들기게 하는데 정말 중요한 이유는 스킨십 때문에 그런 겁니다.

 

스킨십이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스킨십을 많이 가질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에 친밀감이 생긴다는 거죠. 내가 저 사람이 너무나 반가워요. 그러면 내 신체 부위 중에서 어디가 먼저 나가죠? 머리? 발? 어디가 먼저 나가요? 손이 먼저 나가요. 악수를 하거나 반갑다고 그럽니다. 반가운데 가가 지고 머리 디밀고 들이받거나 반갑다고 발로 차는 사람은 없단 말이죠. 다 손이 먼저 나가죠. 손이 먼저 나가 가지고 상대방의 얼굴을 만지거나, 어깨를 만지거나, 손을 만지거나 그럽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살이 닿는 행위가 유아적 습관의 연장이라는 거죠.

 

1. 스킵십을 하는 이유 : 유아적 습관의 연장


자, 아기들이 세상에 태어났어요. 그런데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거를 눈 뜨고 보지 않죠. 처음에 태어난 애들은 눈을 감고 있죠. 그럼 어떻게 알죠?  손으로 만져 보고. 엄마 젖도 손으로 만져 보고, 물건도 만져 보고 알고, 눈 감은 상태에서 이렇게 만지면서 아, 세상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는 것을 감을 느끼는데, 그 촉감이 굉장히 좋죠. 처음에 막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근처에 칼이나 창이나 가시나 이런 걸 깔아 놓는 엄마는 없잖아요. 그걸 깔아 놓으면 미친 엄마지, 정상이 아닌 거죠. 아기 주변에는 전부 부드러운 것만 갖다 놓습니다. 


2, 스킨십이 좋은 이유 : 사람의 정신적인 층을 뚫는다

 

사람들마다 겹겹이 마음의 층이 있는데 내가 이 사람 안에 있는 마음을 정말 만나고 싶어요. 그럼 밖에서부터 통과해야 될 때가 많죠. 그냥 만나자마자 마음이 막 통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대화하고 또 같이 술 마시고, 놀고 그러면서 서로 마음이 통하죠. 그런데 이렇게 통과하는 시간을 가장 빨리 단축시키는 방법은 서로 스킨십을 갖는 거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멀리 떨어져 앉아 가지고 서로 점잖게 대화를 나누면 절대로 친해지지 않아요. 그런데 놀이를 하면서, 체육대회를 하면서 막 뒹굴고, 넘어지고 이러고 나면 굉장히 친해진단 말이요. 스킨십이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지성적 이성적인 층을 뚫고서 인격과 인격이 직접 만나게 만드는 가장 강렬한 접촉법이 스킨십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3.세 번째로 스킨십이라 하는 것은 좀 어려운 글이라서 그냥 읽어드릴게요.

 

"두 개의 다른 독립적인 존재가 서로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어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고 또다시 새로운 길을 함께 가기 위한 전초 행위이다." 하고 얘기를 했어요. 결혼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가 나갈 때에 따로 떨어져서 나가나요? 손잡고 나가죠. 같이 간다는 걸 의미하죠. 동업을 할 때에도 서로 손잡고, 도원결의 남자들끼리 '우리 의형제 되자' 그럴 때도 다 손을 맞잡습니다. 그게 스킨십 때문에 그렇다는 거죠.

 

그러니까 집에서 부부관계가 안 좋거나,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가 안 좋은 집안을 보면 대개 스킨십이 적은 집들이에요. 치료 방법은? 간단해요. 만져주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 돼요. 그런데 보기 싫어 가지고 정말 만져주기 싫다 그러면 잘 때 만져주는 겁니다. 사람의 몸이 굉장히 예민해 가지고 잘 때 만져줘도 압니다. 몸이 기억을 해요. 그러니까 싸우고 잤는데 자는 얼굴 보면서 불쌍해서 "에이, 그래! 나하고 살아서 너무 안 됐다"라고 쓰다듬어 주면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요. 몸이 기억하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 가지고 '왜 내가 이렇게 기분이 좋지? 어제 내가 저 여자하고 싸웠는데 왜 저 여자가 오늘 아침에 이뻐 보이지?' ^^* 부인이 밤새도록 머리통을 만져줬어요. ^^* 아이도 그렇습니다. 엄마가 아이가 미워서 멀리하게 되면 그 아이가 엄마를 속 썩이는 행동을 계속합니다. 그 아이를 고치는 방법은 상담가한테 데려가기 전에 엄마가 애가 잘 때마다 쓰다듬어 주는 거예요.

 

우리 애를 위해서 기도해 줄 거야. 그러면서 이만큼 떨어져 있죠. 그거는 정이 오고 가지 않아요. 엄마의 체온을 느껴야 돼요. 아프면 이마 만져주잖아요. 애가 속 썩인다는 것은 애가 심리적으로 문제가 생겼다는 거예요. 당연히 머리를 만져주고 기도해 주고 그러면 애가 무의식적으로 압니다. 엄마가 날 사랑한다는걸.

 

본당에서 할머니들이 본당 신부들 보다 보좌 신부님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주임 신부님들은 별로 안 좋아해요. 할머니들이. 그런데 보좌는 좋아해요. 왜 그럴까요? 보좌 신부들이 안수를 많이 해 주거든요. 머리를 많이 만져줘요. 기도해 달라고 하면서 신부님, 저 감기 걸렸어요. 그러면서 머리를 대면 다 해 줘요. 그런데 본당 신부님들은 감기 걸렸는데 무슨 안수 받으러 왔냐고 가서 약이나 먹지. 그러니까 싫어하죠.^^* 스킨십이 이렇게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아무 데나 만지면 안 되죠. ^^*

 

하느님 나라에서 민족 간의 송사가 발생했대요. 하느님 나라 법정에 한국인 할머니하고 외국인들이 모여서 서로 성토를 하더랍니다. 그래 하느님께서 우리나라 할머니들한테 "먼저 얘기를 해 봐라." 그랬더니 할머니들이 소리를 높여서 "우리가 저놈들한테 성추행을 당했다"라고 그랬대요. 그래서 하느님이 그 외국인들한테 "왜 한국 할머니들을 성추행 했냐?"라고 물었더니 "아, 그런 게 아니고, 할머니들을 보니까 고국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안아드리고 그냥 뽀뽀해 드렸는데 할머니들이 성추행 당했다"라고 저러신다고 자기는 억울하다고. 그러면서 자기네가 당했다 그러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이번에는 한국 할머니들한테 아, 그 외국 젊은이들이 성추행을 당했다고 그러는데 무슨 소리냐? 그랬더니 아이, 뭔 소리 하냐? 젊은 놈들이 하도 눈이 파랗고 이뻐 보여 가지고 머리를 좀 만져주고 고추가 실한지 바지 벗겨서 고추를 만지작거렸는데 저놈들이 저렇게 난리라고 ^^* 그랬다는 거죠. ^^*

 

우리가 보통 찰떡궁합이라고 하는 분들이 있죠. 그런 분들 보면 몸이 붙어 있어요. 그런데 저 집은 헤어지겠다. 그러면 확 떨어져 있어요.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부부 싸움을 해도 절대로 각방을 쓰지 말라고 한 이유가 스킨십 때문에 그런 겁니다. 내가 만약에 성당에서 다른 사람들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잘 지내고 싶다 그러면, 보거든 눈 인사만 하지 마시고 가서 일단은 손을 잡으세요. 그리고 내 체온이 그 사람한테 전달될 수 있도록 조금 오래 잡고 계세요. 스킨십에 대해서 끝내고, 두 번째 얘기로 존중에 대한 얘기를 좀 해드리겠습니다.

 

■ 존중에 대해서 ...


함께 사는 데 있어서 스킨십만큼이나 또 중요한 것이 존중입니다. 이 존중과 반대되는 게 뭐죠? 무시죠. 존중받으면 무지하게 기분 좋죠. 무시당하면 아, 죽을 지경이죠. 제가 여러분들을 보면서 "아, 성당에서 제일 괜찮은 분들이 오셨다고 기분 좋습니다"라고 얘기를 하면 기분 좋죠?^^*  그런데 "시간이 남아 가지고, 본당 신부들 눈 밖에 나가지고 갈 데 없어서 이런 데 왔네!" 그러면 그때부터 이제 뚜껑이 확 열리 거예요. ^^* 이 존중과 무시라는 이 간단한 법칙, 굉장히 간단한 법칙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인간이 살고 있는 공동체, 또 자연계의 어떤 법칙을 갖다 좌우로 흔들어 대는 굉장히 중요한 법칙입니다.

 

* 범고래 이야기


범고래를 갖다가 키우는 사육사가 있었어요. 범고래는 육식을 한답니다. 육식을 하는 해양 동물인데 성질이 굉장히 사납답니다. 외국의 해양 동물원에서 범고래가 쇼를 하는데, 조련사 말을 너무나 잘 듣더래요. 그래서 사람들이 물어봤대요. 어떻게 저렇게 범고래를 조련을 잘 했냐? 그랬더니 비법이 두 개가 있답니다. 하나는 범고래를 기분 좋게 해 주는 거래요. 두 번째는 친하게 지내야 된대요. 걔를 동물로 보면 안 된대요. 친구로, 부를 때 이름을 불러주고, 자기하고 똑같은 존재로 인정해 줘야 된다는 거죠.

 

범고래가 머리가 너무 좋아가지고 무시를 당하면 화를 낸대요. 그러니까 범고래를 무시하고 범고래 하고 물속에 같이 들어가면 자살행위래요. 죽인대요. 그냥. 그럼 만약에 범고래가 그럼 잘못 했을 때는 어떡하냐? 그러면 잘못 했을 때는 칭찬을 안 하고 딴 데 쳐다본대요. 그러면 범고래가 알아서 고친대요. 사람하고 좀 비슷한 데가 있죠. 잘하면 관심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데, 잘못 했을 때는 잘못한 거를 갖다 지적을 안 하고, 보지 않고 딴 데를 보면은 범고래가 알아서 어?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이제 동물들을 갖다가 동물이니까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이제 욕먹을 확률이 높죠.

 

* 施罰勞馬(시벌 로마) : 施:행할시, 罰:죄벌, 勞: 일할로, 馬:말마

 

이거는 제가 강의 나가서 잘 써먹었던 얘기인데, 고대 중국 당나라 때 일인데 한 나그네가 어느 더운 여름날에 길을 가다가 이상한 장면을 목격을 했답니다. 밭에서 열심히 일하는 말을 계속 채찍질을 가하고 있더래요.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이 보니까 너무 안 됐더라는 거죠. 그래서 왜 그렇게 말이 열심히 일하는데 채찍질을 가하냐? 그랬더니 농부가 말하기를, "자고로 말이란 가혹하게 부려야지 딴 생각을 안 하고 일을 한다. " 그러더래요.

 

그래 나그네가 주인이 자기 말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데 뭐라고 얘기를 할 수가 없어 거지고 그냥 사자성어를 하나 남겨 놓고 갔대요. 그 사자 성어가 굉장히 괜찮은 거예요. 행할 시 施, 벌할 벌 罰, 일할 로 勞 말마 馬  : 일하는 말에게 벌을 가한다고 시벌로마 ^^* 부하가 열심히 일하는데 그 사람을 갖다가 막 몰아붙이는 사람을 두고서 우리가 이제 막 뭐라고 욕을 하는데, 그 원래의 시작이 시벌로마 여기서 시작됐다는 거죠. 사자성어죠. 괜찮은 ^^* 이 방송을 보신 분들께서는 지우기 전에 다 베껴 쓰시기 바랍니다. 아주 훌륭한 사자성어입니다. ^^* 욕 썼다고 피디가 나중에 편집할지도 모르겠다.^^*

 

■ 비교 무시


그런데 동물들도 그렇지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부모님이 아이에 대해서도 똑같이 존중해 줘야 되는데, 내 새끼인데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함부로 하게 되면 애들이 그때부터 성장을 못 합니다. 엄마들이 흔히 아이들을 몰아붙이면서 하는 무시를 주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옆집 애는 잘 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니?" 이게 비교 당하는 거죠. 비교 무시라고 하는데 이거 사람 죽이는 거예요.

 

만약에 신자분이 저한테 오셔 가지고 "아, 그 새로운 옆에 본당 신부님이 신부님 보다 훨씬 강론 잘 해요." 그러면 제가 그 신자분을 칭찬을 해 줄까요, 아니면 어디 물어뜯어버릴까요? ^^* 당연히 그 신자분은 "아, 그 신부를 칭찬하는 거고 당신을 무시하는 건 아니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무시당했다고  느끼죠. 당연히. 비교 무시라는 거는 그냥 무시하는 거보다 사람을 더 죽이는 행위인 겁니다.

 

그러니까 애들 보고 옆집 애는 그런데 너는 왜 그 모양이니? 그럼 그 애가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그러면 걔 데려다 키우지 왜 날 키워!" 그러지 "맞아, 옆집 애가 열심히 하니까 걔를 본받아야지!" 이런 생각 하는 놈은 한 놈도 없다는 거죠. 한 놈도 없다. 또 어떤 부모님은 애한테 "내가 네 나이 때는 안 그랬다." 이런 분들도 있어요. 그 나이 때를 정말 가 보면 안 그렇죠? 예, 그 성적표가 사실은 자기 애하고 비슷하단 말이에요. 오죽 자기 자랑할 데가 없으면 애 에서 자기 자랑을 하겠어요. 그러면 애가 뭐라고 생각할까요? "그렇게 공부를 잘했는데 사는 게 왜 이 모양이야?" ^^*

 

■ 벼룩의 점프 이야기


벼룩이 점프를 마음껏 하면 60cm를 뛴대요. 그런데 병을 덮어 버려 가지고, 20cm 병을 덮죠? 그러면 16cm 뛴대요. 부모님 그릇이 20cm 짜리냐, 아니면 열린 그릇이냐? 이게 애의 그릇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중요한 것은 내 새끼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 얘가 하느님이 나한테 준 선물이다." 존중해 줘야 된다는 거죠. 이것은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죠. 아, 우리 마누라니까, 우리 남편이니까 소홀히 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때부터 부부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 서로 업어주고 이혼한 부부 이야기


어떤 남편하고 부인께서 산을 오르고 있는데 부인이 힘이 들어 가지고 남편한테 부탁을 했대요. "나 좀 업어 달라"고, 그래 남편이 자기도 힘들지만 그래도 남자 체면이 있어 가지고 "그래, 업혀라." 그랬대요. 랬더니 마누라가 이제 업혀 가다가 좀 미안하고, 무안하기도 해서 "여보, 나  무겁지?" 그랬대요. 그랬더니 남편이 그랬대요. "아, 당연히 무겁지. 머리 돌이지, 엉덩이 뱃살 무겁지, 얼굴 철판 깔았지, 간댕이 부었지 무거워도 한참 무겁지." 그랬대요. 부인이 화가 났어요.

 

한참 가다가 이제 남편이 그 부인은 내려 놓고 둘이 같이 걷다가 이번에는 남편이 부인한테, "아까 내가 업어 줬으니까 이번에는 나 좀 업어줘!" 그랬대요. 그랬더니 이제 부인이 남편을 업고 가는데 남편이 그랬대요. "여보, 나 생각보다 가볍지?" 그랬더니 "암, 가볍지. 당신 머리 비었지, 나 사랑하는 맘 없지, 허파에 바람 들어갔지, 양심 없지, 싸가지 없지, 풍선 보다 더 가벼워!" ^^* 그랬대요. 그래 산에서 내려와 가지고 이혼했다는.^^*

 

■ 존중은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 

      

존중은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러 다니신 곳에서 기적을 못 하신 곳이 한 군데 있었죠? 어디였죠? 당신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 있는 거기 가서 기적을 못 하셨어요. 왜냐?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저거 목수 아들 아냐? 아, 저놈 내가 알아. 어렸을 때 내가 봤어. 그러니 당신의 기적을 할 수가 없었어요.

 

당신이 기적을 행했던 곳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주님이라고 불렀던 거죠. 거기서는 당신의 능력을 발휘했는데  당신이 살아가셨던 그 마을에서는 안 됐어요. 그거는 본당 신부나 신자들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지요. 본당분들이 신부를 보고 "뭐 저런 게 본당 신부야!" 그러면 그 본당 신부는 강론도 못하지, 기도도 못하고 헤매요. 그 본당에 있기가 싫고 떠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어요. 그런데 "아, 우리 신부님이 최고야!" 그러면 그때부터 못하던 말 문이 트이기 시작하고, 안 하던 기도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그게 존중이 갖고 있는 어떤 힘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사람이나 하느님이나 다 존중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건 상식인데도 이걸 잘 하기가 참 어려워요.

 

■ 무시당하면 이성을 잃어버린다


어쨌건 존중받으면 기분 좋고, 무시당하면 기분 나쁘다는 그런 어떤 역학 관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데가 시장이죠.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갔어요. 괜찮은 물건이 있어서 만졌는데 그 점원 애가 "아줌마, 아줌마! 그거 손 대지 마세요. 아줌마 같은 사람이 살 물건이 아니에요! 그거 비싸요!" 그러면 어떻게 할 거예요? 카드로 확~ 긁어버리죠. ^^* 그리고 집에 와 가지고 머리를 뜯어요. ^^* 왜 이성을 잃었을까요? 무시당해서. 만약에 점원이 "아, 아주머니, 그 옷이 몸에 딱 맞는 옷이네요." 그랬으면 반반이었을 거예요. 살까, 말까? 무시당했더니 그래 너 죽어봐라. 이 죽는 게 아주머니가 자기 죽으려고 카드를 확~ 긁어버리는 거죠. ^^* 그만큼 우리는 무시를 당하면 이성을 잃어버려요.

 

■ 정신적인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자존감과 자신감


그만큼 우리는 존중을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사람 마음 안에 사람을 갖다가 정신적인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그래요. 자존감, 자신감. 자존감은 자존심을 부리는 게 아니고, 내가 나를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나는 아무거나 먹을래요." 이런 게 아니고 "아, 나는 세상에 태어났는데 나는 사는 목적이 있고, 나는 내 존재 이유가 있어. 나는 내가 사는 어떤 가치가 있어."라는 그런 생각 그게 자존감입니다.

 

이 자존감이 있을 때에만 자신감이 발생을 합니다. 자존감하고 자신감은 일란성 쌍둥이라고 그럽니다. 늘 붙어 다닌다고. 그런데 무시당했을 때 내가 확 뒤집어지는 거는 자존감이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 내가 확 뒤집히는 분들은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셔야 됩니다.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들을 이 만나려면 당연히 내가 사람들한테 존중을 해 줘야 돼요. 그러면 그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런 사람들 안에 살면서 "아, 이게 사는 게 행복하구나. 사람을 만나는 게 행복하구나.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동안 30회에 걸쳐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해서 강의를 해드렸습니다. 그동안 강의를 듣는 분들도 많이 바뀌시고 그랬는데 어쨌건 처음부터 끝까지 방송을 봐 주신 시청자분들 특히 병상에 누워 계신 환우분들 제 강의를 통해서 마음의 위로를 많이 받으셨기를 바라고요. 특히 종교적인 우울증, 죄책감 때문에 시달리는 교우분들께 제 강의가 정말 심리치료가 되는 데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건강하시길 저도 같이 빌어드릴게요. 수고하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홍성남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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