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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6.0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6-05 조회수6,534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7년 6월 5일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토빗 1,3; 2,1ㄴ-8

3 나 토빗은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왔다.

나는 나와 함께

아시리아인들의 땅

니네베로 유배 온 친척들과

내 민족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다.
2,1 우리의 축제인 오순절

곧 주간절에 나를 위하여

잔치가 벌어져, 나는 음식을

먹으려고 자리에 앉았다.

2 내 앞에 상이 놓이고

요리가 풍성하게 차려졌다.
그때에 내가 아들

토비야에게 말하였다.

“얘야, 가서 니네베로 끌려온

우리 동포들 가운데에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잊지 않는 가난한 이들을

보는 대로 데려오너라.

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 그런다.

얘야,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마.”

 3 그래서 토비야가

우리 동포들 가운데 가난한 사

람들을 찾으러 나갔다.
그가 돌아와서 “아버지!”

하고 불렀다. 내가 “얘야,

나 여기 있다.” 하고 대답하자

그가 계속 말하였다.

 “아버지, 누가 우리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을 살해하여

장터에 던져 버렸습니다.

목 졸려 죽은 채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4 나는 잔치 음식을

맛보지도 않고 그대로

 둔 채 벌떡 일어나 그 주검을

광장에서 날라다가,

해가 진 다음에 묻으려고

어떤 방에 놓아두었다.

5 그런 다음 집에 돌아와서

몸을 씻고 슬픔에 싸인 채

음식을 먹었다.

 6 그때에 아모스 예언자가

베텔을 두고 한 말씀이

생각났다. “너희의

축제들은 슬픔으로,

너희의 모든 노래는

애가로 바뀌리라.”
7 나는 울었다.

그리고 해가 진 다음에

나가서 땅을 파고

그를 묻어 주었다.

8 이웃들은 나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이제는 두렵지가

 않은 모양이지?

전에도 저런 일 때문에

사형감으로 수배되어

달아난 적이 있는데,

또 저렇게 죽은 이들을

묻는구먼.”

복음 마르 12,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자들과 원로들에게

1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2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3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5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9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허리 디스크로 고생을 많이 했던

자매님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매님께서는 걸을 때에도

허리 통증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수술을 받게 되었답니다.

수술은 잘 되었고,

어느 정도 회복한 후에 퇴원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을 나서면서 길을 걷는데

전혀 고통이 느껴지지 않더랍니다.

그 순간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모든 발걸음마다

감사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걸을 때마다

고통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하겠다는

다짐을 했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감사할 일이라는 것,

정말로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니 그만큼 편안하고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불평불만을 내뱉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누가 더 행복의

감정을 가지고 살게 될까요?
일단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비참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자신이 정말로 비참한

인간이라고 믿게 된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서 감사할 일이 많아서

행복하다고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실제로 자신을 행복한 인간으로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고, 어떤 말을 많이

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소작인들을 떠올려

보셨으면 합니다.

포도밭 주인이 직접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소작인들이 해야

 할 일을 주인이 직접 한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하고서는

소작인들에 포도밭을

내주고 멀리 떠납니다.

이 상황이 감사할 일일까요?

불평불만을 던질 일일까요?
당연히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 소작인들은

욕심이 자리 잡습니다.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떠났기

때문에 자신들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욕심을

가졌나 봅니다.

그 결과 은혜를

폭력으로 갚습니다.

소출을 받으러 온

종을 붙잡아 매질해서

보내고, 또 다른 종에게는

상처를 입히고 모욕했으며,

죽여 버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마지막으로 보낸

사랑하는 아들까지도 붙잡아

죽여 버리는 은혜도 모르는

아주 못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향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못된 모습을

꾸짖는 비유이지만,

이 비유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간직하며 사는 우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뿐인데

나의 것인 양 욕심과 이기심을

맘껏 내세우는 우리의 모습이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과

무엇이 다를까 싶습니다.
앞선 자매님의 말씀처럼

 한 걸음마다 감사할 일입니다.

이러한 감사의 마음을 간직할 때,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대신 주님의 뜻에 기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감사는 미래에

보내는 승리의 편지다.

(키케로)

강화 성체 현양대회가 있었습니다.

"행복은 어디서?"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책을 잘 읽지 않던 저였습니다.

책 읽는 취미가 없다면서,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곤 했지요.

하지만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먼저 책에 대한 관심을

갖기 위해 읽기 쉬운 책을

 처음으로 펼친 것이 신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그때 비로소 난생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너무나 만족스러웠고

행복했습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옛날의 생각이 떠올려서

다시 책을 펼쳐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와 닿지도 않고,

조금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괜히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불만이 가득해집니다.
분명히 이 책 때문에

신학교 1학년 때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책이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저를 행복하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책이 아니었습니다.

책이 아니라,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는 사실이

행복하게 해 준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물건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가 부러워할

높은 지위를 갖게 되었을 때일까요?

잘 생각해보면 그런 세속적인

것보다는 그 안에서 내가 행했던

노력과 나에게 의미를 건네주는

기억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행복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가 그리 어려운 것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삶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기억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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