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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5.2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5-23 조회수6,500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7년 5월 23일

부활 제6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도 16,22-34

그 무렵 필리피의

22 군중이 합세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그 두 사람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지시하였다.

23 그렇게 매질을

많이 하게 한 뒤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24 이러한 명령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차꼬를 채웠다.
25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26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27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28 그때에

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하고 말하였다.
29 그러자 간수가 횃불을

달라고 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30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32 그리고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33 간수는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34 이어서 그들을

자기 집 안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였다.
복음 요한 16,5-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5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6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7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불평의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불만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런 행동을 할까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요.

반드시 복수할 거예요.”,

 “도대체 이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요?”,

 “종교인들도 믿을 수가 없어요.”

 등등의 말로 타인을 향한

부정적인 말로 불평불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결국은 자기 자신도 싫어합니다.
“내 자신이 비참합니다.”,

 “나는 도대체 왜 그럴까요?”,

“제 삶에는 희망이 없어요.”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니가 그렇게 불평이 많고

타인과 세상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가진 게 없어서 그래.”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부정적인 말의 종착역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이더군요.

이는 곧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타인과 세상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타인과 세상으로

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환자들을 보던 중에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모두 부정적인 단어를

 선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불편해서 정신과를 찾아올

 정도니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증상이 호전되어 평상시 모습으로

되돌아왔을 때에도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부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곧 병에 걸려서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니까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내 안에서

몰아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볼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생활하는

 나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근심이 가득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나를 보내신

분께로 간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자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고통스러운 일을 주님 없이

이겨내야 한다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근심을 했던 것이지요.

솔직히 근심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제자들은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당할 때

도망갈 정도로 너무나도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인

상황으로 바꿔놓으십니다.

바로 당신이 떠남으로 인해

 보호자 성령께서 오시고,

성령께서 주시는 다양한

선물을 통해 영광스럽게

될 수 있다고 하시지요.
주님께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하십니다.

 늘 희망의 길을 마련해주시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더욱 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늘 좋은 것만을 주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노력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다면

 이 또한 행복이다.

(우당 이회영)

아름다운 자연 안에서 근심걱정을 잊습니다.

"딱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어떤 신혼부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 제가

이런 질문을 던졌지요.
“상대방의 어떤 점이

끌렸어요?”
그러자 아내가 곧바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키가 커서요.”
신장 하나만으로 결혼을

 결심했다는 이 자매님의

말씀을 듣고서 저는

 “다른 이유는 없어요?”

라고 물었습니다.

평생을 함께 살 것인데

겨우 신장 하나만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랬던 이 자매님께서는

“그거 하나면 충분해요.”

라고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자매님께서는 자신의 신장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배우자는 무조건 키가

크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하나도 보지

무조건 결혼했다고 하네요.
물론 신장만 보지는 않았겠지요.

그러나 딱 하나의 조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사랑도 어쩌면 이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딱 하나의 모습만으로도

사랑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사랑할 수

없는 딱 하나의 조건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는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보세요.

딱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오스트리아의 다흐슈타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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