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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루카13,1-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24 조회수1,29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10월 24일 토요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루카13,1-9)

   

1독서<그리스도 덕분에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에페 4,7-16)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높은 데로 오르시어 포로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9 “그분께서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아주 낮은 곳 곧 땅으로 내려와 계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0 내려오셨던 그분이 바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고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신 분이십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어떤 이들은 예언자로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14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것입니다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의 속임수나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려다닙니다.

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16 그분 덕분에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또한 각 기관이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화답송 시편 122(121),1-2.3-4ㄱㄴ.4ㄷㄹ-5(◎ 참조)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나는 몹시 기뻤노라예루살렘아네 성문에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견고하게 세워졌네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그곳에 심판의 왕좌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복음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루카13,1-9)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제1독서(에페4,7~16)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7)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와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11)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12)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13)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 4장 ~6절에서 교회 일치를 위한 권면과 교회 일치의 근거 및 당위성에 대해 제시함으로써,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전환의 접속사 '데'(de; but)가 사용된 본절 이후부터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를 받은 교회 구성원들의 독특성과 그들이 다양한 봉사의 직분을 가지고 하나된 교회의 일치와 성장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한편 사도 바오로는 본절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 구성원 각 사람에게 분량에 따라 은총을 나누어 주셨음을 밝힌다.

여기서 '은총', 즉 '헤 카리스'(he charis; grace)는 성경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된 의미의 죄의 용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도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봉사의 직분을 가리킨다. 이 봉사의 직분은 선물로 주어진 것이므로 '은사'라고도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하나의 몸으로 부르시는데, 각 지체의 개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으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지체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각 은사를 통해(1코린7,7)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된 교회를 효과적으로 섬기게 하셨다(로마1,11).

 

여기서 7절의 원문을 보면, 한글 새 성경은 능동태로 번역했으나 원문상으로는 수동태로 되어있고, 직역하면 '그러나 그 은총이 우리 각 사람에게 주어졌다'(But to each one of us grace was given)이다.

여기서 '은총'이 주어로 사용된 것은 은총을 강조하기 위함이고, 수동태로 쓰여진 것은 은사 분배자이신 그리스도의 시혜성을 잘 드러낸다.

 

둘째로 본문의 시제가 부정(不定) 과거 시제인데, 이것은 은사의 분배가 이미 이루어졌으며, 이제 필요한 것은 인간 편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함을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본문은 성도 개개인에게 주어진 은혜(doreas; 도레아스; gift; 선물)가 그리스도께서 주시고자 하는 분량에 다라 주어졌음을 말한다. 

여기서 '양에 따라'에 해당하는 '카타 토 메트론'(kata to metron)은 '알맞게 측정된 것에 따라서'(according to the measure) 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 구성원들인 성도 각자에게 가장 알맞는 은사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측정하시고,그에 적합한 봉사의 직분을 주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다른 사람의 은사를 무시하거나 자신의 은사만을 높여서는 안된다.

 

반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다른 사람이 잘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평가 절하해서도 안된다.

그 누구보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느님께서(로마8,29) 나에게 가장 알맞는 은사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그 은사를 자랑삼거나 불만삼는 것이 아니라 그 은사로써 오직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교회와 지체를 섬기는 것이다(에페4,12).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와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1)

 

이 구절에 대해서는 9월 18일 연중 제24주간 화요일(1코린12,12~14.27~31ㄱ)의 코린토 1서 12장 28절 주해 보면 좋겠다. 

다만 빠진 부분만 보충하면, 여기서 '복음 선포자'는 선교사처럼 복음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곳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에 해당하는 '유앙겔리스타스'(euanggelistas)의 원형 '유앙겔리스테스' (euanggelites)는 '복음을 전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유앙겔리조'(euanggelizo)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번역 그대로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단 세 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는데, 사도행전 21장 8절에서는 필리포스에 대해서 사용되어 '복음 선포자' 로 번역되었고, 티모테오 후서 4장 5절에도 티모테오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목자'로 번역된 '포이메나스'(poimenas)의 원형 '포이멘'(piomen)은 본래 '보호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어근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가축지기', '양치는 목자'를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나는 착한 목자'라고 하셨을 때에도 이 단어가 쓰였다(요한10,11).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포임네'(poimne)가 '양떼'를 의미한다는 것은(루카2,8; 1코린9,7) 이 '포이멘'(poimen)이 양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임을 잘 나타낸다.

 

한편, 목자를 바로 이어 등장하는 교사와 동일한 직분으로 보는 견해와 다른 직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먼저 동일한 직분으로 보는 견해 '교사'를 가리키는 '디다스칼루스'(didaskalus) 앞에 관사 '투스'(tus)가 없다는 점을 그 근거로 둔다. 

이 견해에 따르면 '목자'는 곧 '가르치는 자'(교사)라는 것이다.

코린토 1서 12장 28절에서 '사도'와 '예언자' 다음에 '교사'만 언급되는 점도 이 견해를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목자'와 '교사'를 다른 직분으로 보는 경우에는 먼저 '목자'를 '감독' 과 '원로'로 나뉘어지는 교회를 다스리는 직분으로 보고, '교사'를 성경을 해석하고 그 내용을 가르쳐 영적으로 인도하는 직분으로 본다.

 

실제로 '목자'라는 용어는 필리피서 1장 1절이나 티모테오 1서 3장 2절에서는 '감독'이라는 용어와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었고, 사도행전 14장 23절이나 티모데오 1서 4장 14절에서는 '원로'(단)라는 용어와도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었다.

 

위의 두 견해 중에서 문법적으로 보면, 목자가 곧 가르치는 교사라는 견해가 타당하다. 가르치는 일은 사목의 필수적인 부분이고, 목자와 교사는 서로 결합하여 한 가지 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12)

 

먼저 본절에서 전치사가 세 개 쓰였는데, 성도들을 준비시키려는 것이라는 구절 앞에 사용된 전치사는 '프로스'(pros)인 반면에,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한다는 구절 앞에 사용된 전치사는 '에이스'(eis)이다.

 

전치사 '에이스'(eis; for)가 최종 목적의 의미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볼 때, 본절은 성도들을 준비시키는(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to prepare God's people; for the perfecting of the saints) 목적이 곧 직무를 수행하는 일(봉사의 일; the work of the ministry; the work of service)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절은 일차적으로 '이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게 하고 (결국)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성장시키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즉 에페소서 4장 11절에 거론되고 있는 직분자들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고 준비시키기 위해 직분(직책)을 부여받았으며, 그 직분의 수행의 결과로 준비된 성도들은 봉사의 일을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콜로사이서 1장 28절에서 성도들을 가르치는 목적을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라고 말하며, 본절과 동일한 사상을 보였다.

 

원문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기 위함'에 해당하는 전치사구 앞에 쉼표(,)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을 때,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궁극적 목적이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데에 있음이 잘 드러난다.

 

여기서 '준비'에 해당하는 '카타르티스몬'(katartismon)은 신약 성경에서 오직 본문에만 사용된 단어로서 '온전'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힘과 조화를 이루어 발전하게 한다' 또는 '원래 있던 제 자리로 되돌리다'라는 의미이다. 후자는 의학 용어로 사용된 경우로서 '탈골된 뼈를 제 자리로 맞추어 넣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이나, 결국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은 사람이 피조물로서 또한 성도로서 제 위치에 섰을 때 자연스럽게 되는 일임을 보여준다.

 

한편, '직무'로 번역된 '디아코니아스'(diakonias)는 로마서 12장 7절에서는 '봉사'로 번역되었는데, 원어로는 '디아코니아'(diakonia)라는 동일한 단어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로마서 12장 7절에의 경우에는 은사로서의 봉사를 말하고 본문의 경우는 교회안의 성도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봉사를 말한다.

 

이 두 경우를 함께 생각할 때,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을 잘 섬기는 특별한 은사를 가진 경우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섬기는 일을 기본적인 의무로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킨다(세운다)는 말은 교회를 건물로 비유했던 에페소서 2장 21절, 22절의 표현과 관련된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를 이루는 각 성도들이 서로 연결되어 성전으로 만들어 가게된다. 

그런데 이 일이 가능하려면, 성도 각자가 온전하게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절의 요지이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하지 않고 준비되지 않으면, 각 사람이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교회라는 건물이 결코 온전히 세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복음(루카13,1~9)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 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6ㄴ~9)

 

루카 복음 13장 6~9절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 말씀이다.

루카 복음 13장 1~5절이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 오는 멸망에 대한 경고라면, 13장 6~9절은 지금이 하느님께서 인내하시는 때로 곧바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함을 교훈하는 비유이다.

 

보통 구약에서 포도나무(시편80,9~12; 이사5,2)와 함께 무화과나무 (예레24,3; 호세9,10)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한다.

여기서도 '무화과나무'에 해당하는 '쉬케'(syke; a fig tree)도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지만, 넓게는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할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문맥상 '어떤 사람'에 해당하는 '티스'(tis; a man)는 '포도밭 주인'인 '하느님'을, '열매'는 '회개'를, 그리고 13장 7절의 '포도 재배인'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그리고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포도밭 주인이 무화과나무에 대해 특별한 기대와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심어 놓았다'에 해당하는 '페튀튜메넨'(pephyteumenen; planted)는 '심다'는 뜻의 '퓌튜오'(phyteuo)의 수동태 완료 분사이다.

 

여기서 동사를 과거에 이미 완료된 동작을 가리키는 완료 시제로 표현한 것은 이 무화과나무가 심어 놓은 후 많은 시간이 지났고, 이제 완전히 자라 충분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13장 6절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 보았지만'에 해당하는 '제톤 카르폰 엔 아우테'(zeton karpon en aute; and sought fruit on it)에서 '제톤'(zeton)의 기본형 '제테오'(zeteo) '집요하게 구하다', '열심히 찾다'는 뜻이고, '카르폰'(karpon)은 '열매'를 말한다.

 

여기서 '제톤'(zeton)은 '제테오'(zeteo)의 현재 분사형으로서 포도밭 주인이 그 무화과나무로부터 '열매'를 구하기를 계속적으로 해왔다는 것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포도밭 주인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을 무렵부터 계속해서 그 무화과 열매를 기다리며 열심으로 찾았던 것이다.

 

루카 복음 13장 7절에는 구체적으로 삼년 동안 열매 얻기를 구했다고 말한다. '보게, 내가 삼 년째'에 해당하는 '이두 트리아 에테'(Idu tria ete; Behold three years)에서 '보라'는 뜻의 감탄사 '이두'(Idu)를 문장 서두에 사용하여 '삼 년'(tria ete)을 강조해 주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그 동안 열매 맺기를 기다린 포도밭 주인의 인내를 암시하는데, 바로 지금까지 심판을 유보하시어 회개의 열매를 맺기를 인내하며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상징한다.

 

 '삼 년'은 하느님께서 회개의 열매를 기다리시며 인내하신 오랜 기간을 상징하지만, 하느님께서 마냥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을 '삼 년'이란 시간으로 한정했다는 점에서 회개할 시간이 무제한을 주어지지 않고 한정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13장 7절에 '잘라 버리게'에 해당하는 '엑콥손'(ekkopson; cut down)이 등장한다.

 

이 동사의 기본형 '엑콥토'(ekkopto)는 '나무를 잘라내다' 또는 '완전히 제거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부정(不定) 과거 명령형으로 사용되었는데, 부정과거는 완료적 결과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완전한 제거, 즉 영원한 멸망을 가리킨다.

 

이제 루카 복음 13장 8절은 비록 포도밭 주인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잘라 버리라고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포도 재배인이 끝까지 열매 맺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여기서 포도 재배인은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의 진정한 의로움의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또한 이 구절은 하느님의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로 말미암아 유보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포도 재배인의 노력은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는 것'인데, 이것은 별개의 행동이 아니라 무화과나무에 거름을 주기 위한 한 가지 행동을 중복하여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의 의로움의 열매를 맺도록 거름을 주는 것 말씀을 가르치고, 보호자 성령님을 통해 은총을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로 하느님의 심판이 유보되었는데, 유보된 시간도 거름을 주어 열매를 기다리는 '한 해'라는 한정된 시간이다.

따라서 '거름'에 해당하는 '코프리아'(kopria; dung)로 비유된 예수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바로 이때가 '구원의 시기'이며, 예수님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결국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음을 비유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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