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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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1일 월요일

[(홍)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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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아녜스 성녀는 3세기 후반 또는 4세기 초반 로마의 유명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열세 살 무렵의 어린 나이에 순교하였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유약한 나이에 보여 준 그녀의 위대한 신앙의 힘’을 높이 칭송하였다. 교회는 아녜스 성녀를 모진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증언하고자 정결을 지킨 순교자로 기념하고 있다. 성녀는 한 마리 양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표현되고 있다.

입당송

보라, 이제 순결한 예물, 정결한 희생 제물인 용감한 동정녀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양을 따른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세상의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약한 이들을 선택하셨으니, 저희가 동정으로 순교한 복된 아녜스의 천상 탄일을 기념하며 한결같은 그의 믿음을 본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대사제는 일정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 첫 번째로는 하느님의 부르심이고, 다음으로는 사람들의 처지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 하느님께 간구해야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대사제가 되셨고, 몸소 여느 인간처럼 살아가시며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 순종하시며 그분을 섬기셨다(제1독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생활은 요한과 그의 제자들의 생활과는 너무나 달랐다. 이 차이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이제는 단식이 아니라 혼인 잔치의 때임을 선포하신다.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새로운 백성과 온전한 일치를 이루고 계심을 암시하신 것이다(복음).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5,1-10
1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곧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2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4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5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6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10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0(109),1.2.3.4(◎ 4ㄴㄷ)
◎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 주님께서 내 주께 이르셨나이다.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너의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
○ 주님이 당신 권능의 왕홀을 시온에서 뻗치시리이다. “너의 원수들을 다스려라.” ◎
○ 네 권능의 날에 주권이 너와 함께하리라. 거룩한 빛, 새벽 품에서 나는 너를 낳았노라. ◎
○ 주님은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않으시리이다.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

복음 환호송

히브 4,12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 알렐루야.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일찍이 박해와 싸워 이긴 복된 아녜스의 생명의 제물을 기꺼이 받아들이셨듯이, 그의 축일을 맞이하여 저희가 드리는 이 제물도 어여삐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묵시 7,17 참조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을 생명의 샘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성인들 가운데 복된 아녜스에게 동정의 월계관과 순교의 월계관을 함께 씌워 주셨으니,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모든 악을 용감히 이겨 내고 마침내 천상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유학 시절에는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데에는 반드시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익혀야 했습니다. 예전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서 낯설고 불편한,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새로움이란 대개 이렇게 낯설고 불편합니다. 그러니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으려면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가능합니다. 그러나 흔히 받아들이려고 하기보다 삶의 테두리에서 배제해 버리기가 쉽습니다.
예컨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나에게 불편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들을 내 삶에서 배제한다면, 그것은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 새롭게 살려는 노력이 있으면 바로 그러한 사람들에게서 새로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처음으로 대하게 되는 이였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예수님에게서 당혹감과 불편함을 느꼈고, 시기와 미움이 솟아났습니다. 그들이 느낀 불편함을 이겨 내고 자신들을 새롭게 했다면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새로운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