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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병자성사] 병자성사는 죽음의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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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10-08-13

병자성사는 죽음의 성사?

 

 

제가 아는 가톨릭 신자 한 분이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병석에 누워 있는 그분 곁에는 같은 본당의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한 신자분이 그 환자에게 신부님께 병자성사를 청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나는 싫어요.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작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야 그는 병자성사를 청하였지만,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가운데 과연 병자성사가 무엇이며, 그 효과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신자들이 병자성사를 종부성사라고 부르는데, 종부성사라는 말은 죽음을 눈앞에 둔 이가 마지막으로 받는 성사라는 느낌을 주어서 환자에게 섬뜩한 느낌을 주리라고 생각되는데, 과연 종부성사와 병자성사 중 어느 말이 옳은지요.

 

 

제가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얼마 동안 일하던 때였습니다. 제가 살던 수도원에는 신부가 여러 명 있었지만 저를 제외하고는 다 외출하고 없던 어느 날, 필리핀 사람 한 명이 신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간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신부를 찾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제가 병자성사를 위한 도구를 준비하여 그를 쫓아갔는데, 그가 저를 안내한 곳은 수도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야자나무 숲속인데, 이곳 저곳에 초라한 집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제가 환자의 집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는데, 그들의 눈초리가 약간 이상하였습니다. 이들은 저를 죽음을 선포하러 온 하나의 저승사자처럼 보는 것임이 분명했습니다. 이제 환자가 죽을 때가 다 되어 신부를 불렀구나, 아이구, 불쌍해라. 이러한 마음을 그들 눈에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던 저는, 우리 신자들이 뼛속 깊이 가지고 있는 병자성사에 대한 편견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병자성사에 대한 편견

 

지금도 대부분의 신자들은 병자성사를 종부성사(終傅聖事)라 부릅니다. 종부성사라는 말은 라틴어로 Extrema unctio라고 하는데, 이 말은 마지막으로 받는 도유(기름바르는 예식)라는 뜻입니다. 기름바르는 예식은 이 예식을 받는 당사자에게 필요한 은총을 성령께서 내려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 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여러 번 도유를 받게 되는데, 예를 들어 세례 때, 견진 때, 서품 때, 병자성사 때입니다. 종부성사란 이러한 의미의 도유를 마지막으로 받는다는 것이니, 그것은 곧 이 성사를 받으면 다시는 살아날 가망이 없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병자성사를 받으면 불치병을 선고받은 것처럼, 이제 당신은 곧 죽습니다라는 선고를 받은 것처럼 여기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병자성사를 주러 온 신부는 저승사자로 비유되고, 환자와 그 가족들은 신부가 환자를 방문하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을 띠었으며, 신부가 오게 되면 이제 환자는 가망이 없구나 싶어 통곡을 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입니다.

 

 

병자성사에서 종부성사로

 

8세기까지 병자성사는 병자를 위한 교회의 관심과 하느님의 은총을 드러내는 성사로 나타났으며, 그 효과는 몸과 마음과 영혼 모두의 건강에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병자들에게 보여주신 관심과 그 치유 행위를 교회가 계속 이어감을 보여줍니다. 이때 사용되는 기름은 지중해 지방에서 치료제로 쓰였던 올리브 기름이었습니다. 이 성사의 효과가 우리 인간 전체의 건강에 있는 것으로 보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육체의 건강에 그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았고, 따라서 신자들은 아플 때마다 주교가 축성한 기름을 자신의 몸에 발라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9세기 이후 이 성사의 효과를 영혼의 치유, 즉 죄의 용서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졌고, 이에 병자성사가 고해성사와 연결되면서 점차 임종 때에 마지막으로 받는 성사로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병자성사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하는 고해성사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병자성사의 대상은 일반 환자가 아니라 임종을 앞둔 환자로 인식되었으며, 이로써 병자성사를 종부성사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중세의 일부 학자들은, 종부성사는 소죄를 지은 임종자가 받는 성사이며, 종부성사로써 소죄가 용서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살아가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가 성사를 받고 난 다음 다시 살아나면 안되므로, 종부성사는 이미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 즉 확실히 죽을 사람에게만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종부성사에서 병자성사로

 

1962년에 시작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개혁을 통해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고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임종자가 받는 성사라는 의미를 갖는 종부성사라는 말 대신 병자성사(정확하게는 병자도유성사이나, 한국 교회가 병자성사로 통일하였으므로 그대로 사용한다)라는 말을 사용하도록 하였고, 이 성사를 받는 사람도 임종자뿐만 아니라 "질병으로나 노환으로 인해서 위중하게 앓고 있는 신자들"(병자성사 예식서 8), "위험한 병 때문에 외과 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람"(예식서 10), "비록 병이 위중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노환으로 기력이 많이 쇠잔해진 노인들"(예식서 11)이 그 대상이라고 가르칩니다. 또 이 성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경우엔 어린이에게도 베풀 수 있습니다(예식서 12). 병세가 호전되었다가 다시 위독해지거나 위험한 외과 수술을 받을 때마다 이 성사를 반복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예식서 9).

 

 

병자성사는 죽음의 성사가 아니다

 

예식서가 말하고 있는 병자성사의 대상을 살펴보면, 결코 죽음을 앞둔 사람, 더 이상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 위험한 수술을 받을 사람으로서, 병자성사를 받고 나서 육체적으로도 회복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점에서 병자성사받기를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하겠습니다. 또한 중세 때 잘못된 신학으로 인하여 나온 "죽음의 성사"라는 냄새를 풍기는 "종부성사"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병자성사는 환자에게 힘을 주는 성사이지 죽음을 선포하는 성사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