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성사

성혈은 왜 신부님만 영하시지요?

초대 교회 신자들은 최후만찬에서 예수께서 분부하신 말씀을 충실히 따라 미사를 거행하면서 성체와 성혈을 영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11세기까지 양형 영성체(성체와 성혈을 다 받아모시는 것)가 지켜졌으나, 12세기 말에 이르러 단형 영성체(성체만 영하는 것)가 우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우선 실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시대나 초기 교회에서는 주로 가정집에서 작은 공동체 단위로 미사를 거행하였습니다. 그러나 313년 박해시대가 끝나고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가 신앙의 자유를 얻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고, 이와 함께 공동체의 규모도 커졌습니다. 또한 큰 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한 수백 명의 신자들이 모두 성체와 성혈을 영하자니 전례시간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바로 이런 실천적인 이유에서 신자들은 단형 영성체, 사제는 양형 영성체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단형 영성체는 신학적으로 뒷받침 되었습니다. 즉 성체 안에는 예수님의 살만 존재하고 성혈 안에는 예수님의 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체에도 예수님이 온전히 계시고 성혈 안에도 예수님이 온전히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학이 발전하게 됨으로써 성체만 영해도 예수님을 온전히 모실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항상 양형 영성체를 하는 동방 교회에서 가톨릭 교회의 단형 영성체의 관행을 반박하자 이에 대한 콘스탄티노플공의회(1414-1418년)에서는 양형 영성체를 금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평신도에게도 양형 영성체를 허락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전례헌장 55항 참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전례개혁에서도 신자들이 양형 영성체를 할 때 미사의 본 의미가 더 잘 드러나게 된다고 천명하였습니다(미사경본 총지침 240-252항 참조). 양성 영성체가 최후만찬을 더 가깝고 실감나게 기념하도록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신자들 이 양형 영성체를 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권장 사항에 속합니다. 단지 위에서 언급한 실천적인 이유에서 양형 영성체를 하지 않을 뿐입니다. 소공동체 미사나 피정 등과 같이 소수의 인원이 참석한 가운데 드리는 미사 때는 양형 영성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성체 분배는 어떤 사람이 할 수 있나요? 여자도 가능하지 않나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체는 성직자(주교, 사제, 부제)만 분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직자를 도와서 수녀님과 평신도들도 성체를 분배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성찬의 봉사자''라고 부르는데, 일정 기간의 교육을 받은 다음에 성체분배의 직무를 맡게 됩니다.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최근까지 평신도는 남자들에게만 성체분배를 허락하였습니다. 아마도 여성들이 공적인 자리에 나서는 것을 꺼려하는 한국의 독특한 상황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천 교구에서는 수년 전부터 여성들에게도 성찬 봉사의 직무를 맡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자들은 미사 때 영성체하러 나가다가 평신도나 수녀님이 성체를 분배하면 줄을 바꿔 사제에게 가서 성체를 받아모시는데, 이는 잘못된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는 성직자가 분배하는 성체만이 진정한 성체이고 평신도가 분배하는 성체는 뭔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직자가 분배하든 평신도가 분배하든 성체는 같은 성체입니다. 평신도나 수도자 성체분배자를 피해가면서 영성체를 한다면 결국은 그분들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성체는 모든 인간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성체를 하면서 내 형제 자매를 무시한다면 이는 영성체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행동일 뿐만 아니라 결국 사랑이신 주님을 욕되게 하는 행위가 아닐까요?

성체조배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지요?

성체조배란 성체를 모셔둔 감실 앞에서 성체를 경배하면서 그 신비를 깊이 묵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체조배에는 특별히 정해진 양식이 없고 침묵 중에 성체를 경배하거나 혹은 성체조배를 도와주는 책자나 기도문을 읽으면서 묵상하면 됩니다.

감실에 모셔둔 성체를 현시하고 사제가 성체를 높이 들어 신자들에게 강복하는 것으로 끝맺는 성체조배를 성체강복이라고 합니다. 성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좀더 깊이 체험하고 감사하기 위해서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성체조배를 한다면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신령성체란 무엇인가요?

가톨릭 교회에서는 중세 때 신령성체(神領聖體) 교리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교리는 준비가 부족하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실제로 성체를 영하지 못하는 경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사랑 안에서 성체를 모시고자 하는 원의를 지닌다면 성체성사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합니다. 중세 때의 유명한 신학자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세례성사에서 세례가 가능하지 않을 경우 세례에 대한 원의가 이 성사의 효과를 보완하는 것처럼, 성체성사에 있어서도 성체에 대한 원의로써 이 성사의 효과를 이룰 수 있다."

트리엔트리공의회(1545-1563년)는 이 견해를 수용해서, 눈앞에 놓인 성체를 영하고자 원하면서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갈라 5,6) 안에서 성체성사의 효과를 얻는 신령성체를 인정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사제가 없어서 미사를 거행하지 못하고 단지 말씀 전례만 거행할 경우라든가, 병고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에서 미사를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 혹은 혼인 조당으로 지속적으로 성체를 영하지 못하는 경우 등에 신령성체를 통해서 예수님과 마음으로 일치를 이루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성체성사(미사)의 기원과 역사를 알려주세요.

성체성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하신 최후만찬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교회는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라서 최후만찬을 기념하는 성체성사를 거행해왔고, 교회가 존속하는 한 계속 거행할 것입니다.

최후만찬은 유다인들의 식사 순서에 따라서 진행되었습니다. 이 식사는 우선 가장이 식구들이 먹을 빵을 손에 들고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드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즉 "우리 하느님이시고 온누리의 임금이시며 땅에서 빵을 생산하시는 주님, 찬양받으소서" 하고 감사의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칠 무렵에 가장이 ''축복의 잔''이라고 부르는 포도주잔을 들고 장엄하고 긴 찬양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기도는 일반적으로 음식에 대한 감사, 구원에 대한 감사, 간청 및 찬양의 내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신약성서가 전하는 것을 보면 최후만찬 역시 이런 순서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1고린 11,24-26).

최후만찬과 초기의 미사는 이렇게 유다인들의 식사 순서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50년대에 씌여진 고린토서간(1고린 11,17-34)을 보면 미사의 순서가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서간에서 사도 바오로는, 일찍 온 사람들이 늦게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자기들이 가져온 음식을 먹어치우고 술에 만취하는 반면 나중에 온 사람들은 굶주리게 되는 식사 관행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성찬 예식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질책하였습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점은 고린토 교회는 식사를 하고 나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순서로 성찬 예식을 거행했다는 것입니다. 즉 초기의 빵을 들고 감사한 후 나눔 ­ 식사. 포도주잔을 들고 감사한 후 나눔의 순서로 거행되던 미사가 식사를 하고 나서 빵과 포도주잔을 나누는 순서로 변형되었습니다. 이러한 식사(아가페, 애찬) ­ 성찬의 순서는 70년경에 완전히 정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2세기 초엽에는 적어도 일부 지역에서는 성찬 예식과 식사가 완전히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성찬 예식 앞의 식사가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유다인들의 회당 예배를 닮은 말씀의 전례가 미사의 고정 요소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155년경에 유스티노 성인이 이교도인 안토니우스 황제에게 보낸 <호교론>에서 이러한 미사의 절차를 상세하게 서술하였습니다.

"그리고 ''태양일''이라고 하는 날(주일)에는 도시와 시골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집회를 열고 사도들의 회고록이나 예언자들의 글을 시간이 허용하는 데까지 읽습니다. 독서가 끝나면 그 다음에 주례자는 방금 들은 아름다운 교훈들을 우리 생활에서 본받도록 권고하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나서 함께 일어나 기도를 바칩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기도를 끝낸 후에 빵과 포도주와 물을 가지고 옵니다. 주례자는 온갖 정성을 다해 기도와 감사송을 바칩니다. 그러면 회중들은 ''아멘''이라고 큰 소리로 응답합니다. 그 다음에 감사의 기도를 바친 그 음식을 분배하여 참석자가 각기 그것을 받아모시며 참여치 못한 이들에게는 부제들을 통하여 그것을 보냅니다.(호교론 1권67장).

이 문헌을 보면 그 당시의 미사가 독서(사도들의 회고록이나 예언서), 강론 공동기도(보편 지향 기도), 성찬 전례 순으로 거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현재의 미사 순서는 이미 2세기 중반에 형성된 것입니다.

성체성사 관련 구절들을 알려주세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안에서 산다."(요한 6,53-56)

"우리가 감사를 드리면서 그 축복의 잔을 마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가 그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1고린 10,16-17)

"우리 구세주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 최후의 만찬중에, 당신의 살과 피로써 감사의 제사(미사성제)를 제정하셨으니, 이는 당신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십자가의 제사를 세세에 영속화하고, 또한 당신의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에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를 위탁하시기 위함이었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요, 일치의 표징이요, 사랑의 고리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받아모시게 하여 마음을 은총으로 충만케 하고, 우리에게 장래 영광의 보증을 주는 파스카 잔치이다."(전례헌장 47항)

"다른 성사와 교무직무와 사도직 활동은 모두 성체성사와 연결되고 성체성사를 지향하고 있다. 실제로 지극히 거룩한 성체 안에 교회의 영적 전재산이 내포 되어 있다. 즉 우리의 ''파스카''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그 안에 계신다."(사제직무교령 5항)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는 거룩한 영성체는 주님께 대한 일치를 증대시키며, 소죄를 사해주고, 대죄에서 보호해준다. 성체를 모시는 사람과 그리스도 사이에 있는 사랑의 유대가 굳건해지므로, 영성체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일치도 강하게 해준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416항)



"엎디어 절하나이다. 숨어 계신 천주성이여,

두 가지 허울 안에 분명 숨어 계시오니,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삽기에,

내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오이다.

보고 맛보고 만져봐도 알 길 없고

다만 들음만으로 믿음 든든하오니,

믿나이다, 천주 성자 말씀하신 모든 것을.

진리의 말씀보다 더한 진실 없나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체찬미가 -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