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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안토니오(다블뤼 안토니오)(9.20)

안 안토니오(다블뤼 안토니오)(9.20)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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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안 안토니오(다블뤼 안토니오) (安 Anthony(Daveluy Anthony))
축일 9월 2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818-1866년
같은이름 안 안토니오, 안돈이,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안토니오,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성인자료실
제목 갈매못에서 순교한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 일행의 순교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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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29 조회수2023 추천수0 첨부파일수6

성 다블뤼 주교 일행1_조선에 도착.jpg

성 다블뤼 주교 일행2_고문당하는 다블뤼 주교.jpg

성 다블뤼 주교 일행3_오성바위.jpg

성 다블뤼 주교 일행4_솟재를 넘는 다섯 순교자.jpg

성 다블뤼 주교 일행5_순교의 날.jpg

성 다블뤼 주교 일행6_장깃대에 매달린 다섯 성인.jpg

대전교구 갈매못 순교성지 기념관에 전시된 성화입니다.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의 조선 입국부터 갈매못에서 순교하신 다섯 성인들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갈매못 순교성지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입니다.

  

  

1. 조선에 도착하는 다블뤼 안토니오 신부, 페레올 주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Father Antonio Daveluy, Bishop Ferreol and Father Kim Dea Keun Andrea on their arrival in Joseon)

  

안토니오 다블뤼 성인은 1845년 8월 31일 3대 교구장이신 페레올 주교님과 서품된 지 2주된 김대건 신부와 용감한 신자 10명과 함께 상해를 출발한다. 그러나 폭풍을 만나 42일간 표류한다. 제주도 남쪽 용수리 해안가까지 떠내려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같은 해 10월 12일에 강경 나바위에 도착한다.

  

2. 고문당하는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 (Torture of Bishop Antonio Daveluy)

  

주교님과 신부님들은 신자들을 지키기 위해 자수하였다. 성인은 주뢰형(周牢刑)을 받으면서도, “내 양들을 고발하는 것은 내 믿음을 잃는 것입니다. 모진 형벌로 비록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차라리 내 몸이 화를 입을지언정 남에게 해를 미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다리는 잘라지면 그만입니다. 다시 할 말이 없습니다. 헤아려 처분하소서.”(‘우포도청등록’(병인 2월 3일)라고 소리쳤다.

  

3. 오성바위 (Osung Bawui, Rock of the five Saints)

  

다블뤼 주교 일행은 한양을 떠나 형장인 오천의 충청 수영으로 향하던 중 지금의 충남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사거리에 있는 오성(五聖) 바위에서 잠시 쉬었다. 이 바위의 크기는 둘레가 11미터, 지름 4미터, 두께 1미터, 무게는 16톤이다.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는 5명의 사형수들은 호송 포졸들의 호의로 잠시나마 오성 바위 위에서 포승을 풀고 짧은 휴식을 즐겼다. 순교자들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잠시지만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면서 성가도 불렀다. 이 바위는 한 때 복자 바위로 불렸으나 1984년 성인품 이후 오성바위로 불린다. 지금은 서울 절두산 순교자 기념성당 정원에 있다.

  

4. 솟재를 넘는 다섯 분의 순교자 (The five Martyrs crossing over a hill, sotjae)

  

순교자들이 충청 수영 인근에 도착했을 때 포졸들은 처형 일을 늦추려고 했다. 이에 주교님은 “안 될 말이오, 우리는 내일 죽어야 하오”라고 소리치셨다. 예수님의 수난 성금요일에 순교하고 싶었던 것이다. 충청 수영에서 하룻밤을 지낸 순교자들은 오천 남쪽 솟재를 넘어 이곳 갈매못으로 온다. 순교자들은 끝까지 성가와 성영을 노래하며 기쁨에 넘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달레, ‘한국천주교회사’, 하권)

  

5. 순교의 날 (The Day of Martyrdom)

  

형장으로 택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 장총으로 무장한 9명의 군인들이 관장을 호위하였고, 군사 2백 명이 죽 늘어서서 사방에서 몰려오는 구경꾼 무리의 접근을 막았다. 다블뤼 주교께서 제일 먼저 칼을 받았다. 망나니는 주교님의 목을 반만 쳐놓고는 돈을 더 받기 위해 관속들에게 가서 흥정했다. 그동안 주교님의 머리와 사지는 뒤틀리고 경련을 일으켜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500냥에 흥정을 마친 망나니는 두 번의 칼질에 안 주교님의 머리를 떼어 냈다. 나머지 순교자들은 단칼에 혹은 두 번의 칼질에 목이 떨어졌다.(달레, ‘한국천주교회사’, 하권)

  

6. 장깃대에 매달린 다섯 성인 (Hanging of the Martyrs on the scaffold)

  

다섯 순교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수난 성금요일에 이 갈매못 바닷가 모래사장의 장깃대에 자신들의 머리를 매달았다. 그리고 사흘 동안 전시되었다. 그 많던 까마귀들도, 개들도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달레, ‘한국천주교회사’, 하권) 순교자들의 머리가 매달린 그 시간 바닷가 먹구름 사이로 다섯 개의 흰 빛 무지개가 떴다.(병인년박해 순교자 증언록, 22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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