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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득인 베드로(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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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권득인 베드로 (權得仁 Peter)
축일 9월 2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상인,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805-1839년
같은이름 권 베드로, 권베드로, 베드로,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성인자료실
제목 전장운 요한 성인(1811-1866)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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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영규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21 조회수319 추천수1 첨부파일수1

전장운全長雲 요한 성인 초상화, 72.7x60.6cm, 패널에 유채, 2018년, 작가 조영규.JPG

전장운全長雲 요한 성인 초상화, 72.7x60.6cm, 패널에 유채, 2018, 조영규 레오나르도 작품, 2018222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한국 103위 순교성인 63인 초상화] 제작자 위커숍 이후에 위촉으로 제작


[전장운 요한의 약력]

-전장운(全長雲) 요한은 생애를 통하여 농사를 짓는 한편 일용품을 만드는 일로 가족의 생계를 이루고

-베르뇌(berneux, 張敬一)주교는 그의 참된 신앙생활을 보고 그에게 세례를 베풀 권한을 주었으며, 1866년에는 최형 베드로(petrus)와 함께 성경 등 교회서적 판각과 출판하는 직무를 맡겼다.

 

성 전장운 요한(joannes)은 서울 애고개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승연이다. 착한 성격을 지닌 그는 열심한 신자인 어머니로부터 영세를 받았고, 부친을 잃은 후에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짓는 한편 가죽부대와 담뱃대 만드는 일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었으나 신앙이 굳지 못하여 감언이설에 빠져 배교하고 풀려 나왔었다. 이때부터 전 요한은 언제나 깊은 참회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전 요한은 실망하지 않고 1845년 김대건 안드레아(andreas) 신부가 입국하자 즉시 회개의 성사를 받고 자기의 열성과 신심을 되찾아 열심히 살았다. 이 때문에 많은 교우들도 그의 열심에 감복하여 그를 존경하였다. 그 후 전 요한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고 살았다.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는 그의 참된 신앙생활을 보고 그에게 세례를 베풀 권한을 주었으며, 1866년에는 최형 베드로(petrus)와 함께 교회서적을 출판하는 직무를 맡겼다. 그래서 출판에 종사하던 임 요셉으로부터 집을 샀으나, 아직 목판의 인수인계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베르뇌 주교가 체포되고 박해가 일어났다. 전 요한은 피신도 하지 않고 목판을 사수하였다. 신자들이 그에게 피신을 권유하자 그는 내가 어디에 간다 하더라도 천주님이 부르시면 나는 체포될 것입니다. 여기서 체포되나 다른 곳에 피했다가 체포되나 무엇이 다릅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교우들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귀중한 물건들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이 목판이 교회에 매우 유익하다고 믿기에 어떠한 불행이 닥친다 하더라도 달게 받으며 여기를 지키렵니다.” 하고 말했다.


186631일 포졸들이 와서 집을 지키던 그에게 이 집은 천주교도의 집인 줄 알고 있는데 당신도 천주교도요?” “그렇게 물을 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틀림없는 천주교도입니다. 나를 체포해서 가겠다는 말씀이신 모양인데 기다리고 있던 참이오. , 앞장서십시오. 나 기꺼이 따라 가리다.” 이리하여 그는 순순히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그는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지만 예수 마리아만을 부르면서 갖은 고통을 다 참아 받았다. 3일간의 고문과 심문이 끝나고 186639일 사형선고가 내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전 요한의 목을 베는 희광이는 전에 신자였고 잘 아는 사이인 고성철이란 사람이었다. 그가 내 어찌 차마 자네 목을 벨 수 있겠소?” 하며 거절하려 하자 전 요한은 당신은 임금께 복종하고 나는 하느님께 복종하는 것뿐인데 무엇을 꺼리는 거요?” 하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의 칼에 목이 땅에 떨어지니, 때는 1866310일이요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그는 1968106일 교황 성 바오로 6(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5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제작시의 제1차 한국103위 순교성인 초상화 제작자 위커숍 및 참고된 고증(考證)

-일시 : 2018222일 오후 130~5

-장소 :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중곡동) 4층강당

-시작기도와 경과보고 및 위촉장 수여 :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장봉훈 주교

-성인들의 삶과 영성 : 시복시성주교 특별위원회 총무 류한영신부

-성인화 제작 유의사항 강의 :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총무 정웅모 신부

 

초상화의 오른손에 든 검은 물체는 인체(印體)로서 이는 머리털 뭉치에 밀랍을 발라 만든 것이다. 인체로 먹을 목판이나 금속활자에 바른 다음 종이를 엎고 그 위를 문지르는데 사용된다. 인체를 사용할 때 쇠기름이나 돼지기름을 묻혀 목판의 종이 위를 문지르면 손쉽게 된다. 이러한 기름에 문질러서 사용하는 것은 지면과 인체가 붙어서 종이를 부풀게 하지 않고 인체에 묻은 기름이 글자의 배면에 묻어서 먹물의 확산과 부식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77년에 청주의 흥덕사에서 세계최고(最古)의 금속인홰물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또는 직지(直指)를 인쇄할 때에도 사용한 도구이다.

 

http://blog.daum.net/choyeungart/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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