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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당 봉헌 100주년의 해4: 성모당과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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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10 조회수217 추천수0

[성모당 봉헌 100주년의 해(1918~2018)] 성모당과 신자

 

 

성모당에서 소임할 때 ‘신부님 이거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신부님 이건 이렇게 해야죠.’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성모당에 일 년에 거의 12만여 명의 신자분들이 성모당을 다녀가시니 아마도 각자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싶어서 그랬을 겁니다.

 

여느 때처럼 성모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난 뒤였습니다. 봉사자 한 분이 와서 “신부님, 할머니들이 성체를 모시고는 성모님한테 절해요! 절하면 안 되잖아요!”라고 말입니다. 며칠 뒤 미사를 마치자, 성모당에서 미사를 자주하시는 신자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 성체를 모시고 성호경을 긋는 사람들이 있어요! 교리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거 아니에요?”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저는 그 말을 듣고 그냥 웃었습니다. 사실 그분들이 각자 생각하시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계명, 마지막으로 주신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입니다. 십계명도 요약을 한다면 ‘애주애인(愛主愛人)’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조금 배운 교리 지식 때문에 우리가 행해야 할 중요한 사랑실천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며칠 뒤 교구청에 같이 살던 모 신부님께 이러한 일들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각자 생각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참 많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신부님이 말씀하시기를 “자식이 어머니 보고 인사할 수도 있지!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라고 하시는 겁니다. 

 

또 성모당은 사무실이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본당처럼 미사예물을 미리 접수 받을 수가 없습니다. 매일 미사예물을 접수하시는 봉사자들이 바뀌기도 하고, 봉사자들이 하루 종일 성모당에 계실 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사예물 접수 시간은 11시 미사 전에만 가능합니다. 10시부터 10시 50분까지만 접수를 받고 있습니다. 어느 날 미사예물 접수를 받고 계신 봉사자께서 난처해하면서 저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신부님, 미사예물 봉투 안에 돈이 2천 원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요? 제가 8천 원을 넣을까요?”

 

그래서 미사예물에 대한 교회법의 규정들을 정리해서 봉사자분들에게 교육을 했습니다. ‘왜 미사예물이 생겼는지, 교회에서는 미사예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의 우선적 선택, 곧 미사예물을 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말입니다.

 

한 번은 신자 한 분이 얼굴빛이 벌겋게 되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신부님, 어떤 사람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못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속상하다고 성모당에서 기도하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자세히 들어보니 부활절을 지내고 부활 팔일 축제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분은 청할 것이 있어 매일 성모당 미사에 참례하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시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자매님이 부활시기에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면 안 된다고 뒤에서 계속 이야기 하더랍니다. 나름 그 자매님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이해는 하면서도 성모당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기도의 장소인데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기도를 못하게 하는 행위가 마음 아팠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셨다면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아마도 ‘바리사이 같은 사람아!’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어린이들이 성모당에서 미사할 때 마구 뛰어다닐 때도 있습니다. 미사 중에 조용히 하고 있는 신자들께서 보시기에 미워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한 번은 미사를 하는데 어린이 한 명이 성모당 잔디밭을 뛰어 다니다가 성모당 동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자매님 한 명이 얼른 뛰어나와 아이를 데리고 나가기는 했지만, 저는 그 모습에 빙긋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3-14)

 

2015년 5월이었습니다. 성모당에서 야외 음악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성모당 안에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취식이 금지’되어 있고, ‘흡연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야외 음악회 하는 날에는 주위에 살던 신자뿐만 아니라 비신자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각자 싸가지고 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편해서 그랬을 테고, 잔디밭에 소풍 나온 기분이라 그랬을 겁니다. 그 모습을 보고 봉사자 한 분이 취식을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옛날의 성모당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 많은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옛날의 성모당은 어땠을까? 옛날 성모당 사진을 보면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어떤 가족은 성모당에 소풍을 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서로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안 되지만 소풍을 와서는 성모님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펴고 함께 식사도 하고, 함께 기도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얼마나 편해 보이는지 재미있는 사진입니다.

 

어떨 때는 근처 학교에서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성모당에 오곤 했습니다. 졸업사진에 들어갈 사진이라면 응당 학교를 배경으로 찍을 테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당에 와서 성모당의 성모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성모당 동굴을 신자들에게 개방해 두어 신자들이 그 안에서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선배 신부님들도 성모당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기도 했습니다.

 

성모당은 열린 공간입니다. 열린 공간은 누구만의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누구만의 것’이 아니니 ‘나의 것’도 아니고, ‘너의 것’도 아닌 ‘우리의 것’,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4월입니다. 부활절이 있고, 부활기간입니다. 아마도 이 순간 성모당에서 누군가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누군가는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을 겁니다. 성모당을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라 생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 내 눈에 타인의 모습이 보기 싫은 모습이 아니라,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월간빛, 2018년 4월호, 이찬우 타대오 신부(대구대교구 사료실 담당 겸 관덕정순교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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