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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모당 봉헌 100주년의 해7: 이윤일 성인 유해봉안 및 순교 120주년(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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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7-11 조회수56 추천수0

[성모당 봉헌 100주년의 해(1918~2018)] 이윤일 성인 유해봉안 및 순교 120주년(1987)

 

 

7월입니다. 6월말부터 7월초까지 장마철입니다. 제가 성모당에 처음 부임할 때가 겨울이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서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봄비가 내릴 때는 그렇게 좋더니 여름에 내리는 비는 점점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와 간간이 내리는 비로 찜통같은 습기가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미사 때 제의를 입을 때면 몇 가지를 챙겨 입습니다. 제일 먼저 개두포, 그리고 그 위에 장백의, 영대, 띠 마지막으로 제의를 입습니다. 너무 더울 때는 개두포를 벗어 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성모당에서 미사를 하는데 이 정도 보속은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모당 미사의 입당은 고해소가 있는 쪽에서 하는데,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입당을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난 뒤에 비오는 날 우산을 안 들고 온 신자가 보였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미사를 하시는 모습이 거룩하게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비를 안 맞는 동굴 안에서 미사를 하는데, 비를 맞으면서 미사하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성체분배를 할 때도 그랬습니다. 봉사자가 우산을 받쳐 들고 성체분배를 하는데, 때로는 성합 안으로 비가 내리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성체가 빗방울에 젖어서 홀로 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이럴 바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비오는 날 우산을 안 쓰고 오신 분들은 성모당 동굴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그 후로는 비오는 날이거나 눈내리는 겨울이 되면, 성모당 동굴을 개방했습니다. 개방해서 싫어하시는 분도 있었지만 제 짧은 생각으로는 동굴 안에서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성체분배도 성모당 동굴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약간 불편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성모당에 기도하러 오신 분들은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미사를 하고 마치는 날 어떤 분께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윤일 요한 성인이 저 제대에 계시는 거에요?’ 라고 말입니다. 성모당 제대 앞에 보면 ‘이윤일 요한 성인을 이곳에 모시다.’ 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마도 성모당 동굴 안에서 미사를 하면서 그 문구가 더 잘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의 과정을 살펴볼까 합니다. 물론 제가 소임을 맡고 있는 관덕정순교기념관과도 연관이 있지만 최대한 성모당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볼까 합니다. 성모당의 제대 아래에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가 있다.’는 문구가 새겨진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이윤일 요한 성인에 관한 것과 관덕정순교기념관에서 돌아가신 순교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를 빌려야 될 것 같습니다.)

 

대구대교구에서는 교구 성지 개발사업의 하나로 수원교구 미리내 무명순교자 묘에서 발굴된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를 성인이 순교한 관덕당 형장에 건설 중인 기념관에 봉안하기 위한 사업을 1986년 시작합니다. 사실 103위 순교 성인의 시성식이 1984년에 있었고, 103위 순교성인 중에서 경상도에서 순교하신 분은 이윤일 요한 성인이 유일합니다.(게다가 103위 순교 성인 중에서 유해가 있는 분은 27위뿐이기도 합니다.)

 

대구대교구에서는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던 중 성인의 유해가 미리내의 무명순교자 묘역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1986년 12월 21일 수원교구에 요청해서 미리내 성지에 위치한 무명순교자 묘역에서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를 대구로 모셔와 교구청 본관의 경당에 임시로 모셨습니다.

 

이듬해인 1987년 1월 21일 ‘이윤일 요한 성인 유해봉안 및 순교 120주년 기념미사’가 성김대건기념관에서 이문희(바울로) 대주교의 주례로 봉헌됩니다. 그 자리에서 이윤일 요한 성인은 대구대교구의 제2주보 성인으로 선포됩니다. 또한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는 관덕정순교기념관이 완공될 때까지 성모당의 돌 제대 안에 모시게 됩니다.

 

당시 성모당에는 1918년 성모당 봉헌 때 만든 제대가 있었지만 성인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그 돌 제대를 성직자 묘지로 옮기고, 새롭게 축성한 돌 제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는 제대 안에 모셔졌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1월 22일부터 성모당에 고해소를 설치하여 매일 한 시간의 고해성사와 평일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당시의 사진을 보면 참 많은 신자들이 성모당에 모여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봉안에 참여했고,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미사와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는 성모당의 돌제대 아래에 계셨고, 많은 신자들이 그곳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성인께서는 하늘에서 지켜보셨을 겁니다.

 

이후 관덕정순교기념관이 완공되어 1991년 1월 20일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를 관덕정순교기념관 경당에 봉안하게 되었고 일부 유해는 성모당 제대에 모셔져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를 모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7월이라 성모당은 이전에 비해서 조용하고 기도하는 분도 줄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빠지지 않고 성모당을 찾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이 시간에도 성모님께 간구하고 있을 겁니다. 혹 성모당에 가신다면 제대 앞에 새겨진 문구와 함께 교구 제1주보, 제2주보 성인들께 간구하시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월간빛, 2018년 7월호, 이찬우 타대오 신부(대구대교구 사료실 담당 겸 관덕정순교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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