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앙의 땅: 대구대교구 주교좌 계산성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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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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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8-10-10 | 조회수1499 | 추천수0 | |
[신앙의 땅] 대구대교구 주교좌 계산성당 대구대교구의 중추 주교좌 계산성당
주교좌 계산성당은 1886년 초, 조선대목구 블랑 주교에 의해 설정됐다. 당시에는 대구본당이라 불렸다. 초대 주임신부인 김보록 로베르 신부는 처음 신나무골에 거처를 정했다가 1891년에 경상도 지방 포교의 실질적인 중심지였던 대구 읍내로 진출하였다. 신자 수 증가에 따라 성당 건축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현 성당 위치에 건축을 시작하였다. 당시 본당의 모든 신자들이 스스로 성당을 지을 목재와 흙을 짊어 나르고, 기와를 구운 끝에 1898년 12월25일에 십자형 한옥대성당을 축성하였다.
하지만 이 성당은 1900년 2월에 발생한 지진과 이어진 화재로 전소하고 말았다. 화재로 소실된 성당을 재건하기 위한 신자들의 노력으로 1902년 벽돌로 된 영남지방 최초의 고딕식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다. 1903년 11월1일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성전봉헌식을 거행했다. 이 성전은 서울, 평양에 이은 세 번째 고딕식 성당건축물이다. 또한 대구에 현존하는 1900년대 유일한 성당건축물로 1981년 9월에 사적 제290호로 지정되었다.
안세화 드망즈 주교의 허원에 따라 성모굴 봉헌
이 허원대로 성당 증축이 이루어져 1918년 지금과 같은 형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증축 당시 신자들의 자발적인 모금에 힘입어 성당의 종각이 두 배로 높아지고, 1902년 건축한 성당의 뒤편을 헐어 나래를 달아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1919년 5월11일에 드망즈 주교가 이 성당을 축성했다.
성전 안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성수대 위에 1984년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방문하여 기도했다는 안내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성전 양 옆에는 고풍스러운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들이 성전을 더욱 경건하게 만들어준다. 베드로, 바오로 사도와 10사도가 성전 좌우에 위치하고 있는데 프랑스에서 제작되어 1902년 10월에 도착했다고 한다.
‘드망즈 주교 일기’에 의하면 아멜리 추기경이 파리 주교관의 보물 보관소에 있던 진짜 십자가의 상당히 큰 조각을 보내왔다고 적혀있다. 이 제대에는 또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팔 부분)도 함께 모셔져 있다. 이곳을 순례하면서 옛 제대에 모셔진 예수님의 십자가와 김대건 신부님을 묵상하면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옛 제대에 십자가 보목 모셔져 있어
계산성당 종탑의 종은 지금도 은은한 종소리를 삼종 때마다 울린다. 영혼을 정화시키는 이 종소리처럼 계산성당이 앞으로도 지역 복음화의 산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성당을 떠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10월호, 김의도 헤르메네질드(대구 S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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