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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 풍수원 성당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숨어 신앙을 유지한 산골에 세워진 강원도 첫 번째 성당
지번주소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1097 
도로주소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 30
전화번호 (033)342-0035
팩스번호 (033)343-5694
홈페이지 http://www.pungsuwon.org
문화정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성당),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3호(구 사제관)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풍수원 성당의 건축적 특징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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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10 조회수155 추천수0
파일첨부 풍수원 성당의 건축적 특징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hwp [406016]  

풍수원 성당의 건축적 특징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국문초록

 

풍수원 성당은 박해시대에 형성된 유서 깊은 교우촌에 지어진,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자 최초의 서양식 벽돌건물이다. 또한 국내에서 일곱 번째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며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이다. 1910년 11월 뮈텔 주교의 주례로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고, ‘예수성심’을 본당 주보로 정하였다. 이어 1912년에는 성당 뒷면에 벽돌 구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구 사제관은 원형이 잘 남아있는 벽돌조 사제관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현재는 유물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풍수원 성당은 형태, 규모, 평면구성이 약현 성당과 거의 같다. 즉 삼랑식에 7개의 회중석 베이(bay)와 한 개의 성단(sanctuary) 베이, 3각의 돌출 앺스(apse), 그리고 정면 중앙 종탑 등 구성이 같고 규모도 거의 비슷하다. 다른 점은 종탑이 약현 성당의 경우 3층에 뾰족한 첨탑을 올렸는데 비해 풍수원 성당은 4층에 완만한 첨탑을 올린 점이며, 약현 성당의 경우 트러스 지붕틀 구성없이 뾰죽한 목조아치가 지붕도리를 바로 받치고 있는데 비해 풍수원 성당은 반원형 아치 위에 초기형 트러스(평보 위에 대공이 있고 빗대공이 없는)가 놓여 약현 성당이 보다 천장이 높고 고딕적인 공간형태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구조개념 뿐만 아니라 의장적인 측면에서도 약현 성당이 풍수원 성당보다 고딕 양식에 가깝다. 따라서 풍수원 성당은 로마네스크양식의 한국 천주교 성당건축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교회사적인 가치와 건축사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풍수원 성당과 사제관은 문화재로 지정·등록된 이후 적절한 보수를 통해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교회와 지자체가 추진하고 있는 ‘유현문화관광 단지(바이블 파크) 조성사업’으로 자칫 박해시대와 초기교회의 모습이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특히 천주교 유적지의 과도한 성지개발과 관광화로 인해 전국의 많은 천주교 유산이 훼손되어가는 상황에서 얼마 남지 않은 풍수원 교우촌의 흔적마저도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충분한 고증과 계획으로 유산의 보존과 개발이 조화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Ⅰ. 서론

 

1801년 신유박해 이후 1802년 혹은 1803년경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하여 40 여 명의 신자들이 8일 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이 바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인 풍수원이다. 풍수원에서 80 여 년 동안 신자들은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영위해오다가 1866년(고종 3년) 교회 대박해(병인년)와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때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간벽지로서 산림이 울창하여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에 알맞는 곳이라 신자들이 모여들어 일부 화전으로, 일부는 옹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교우촌을 이루었다.

 

1886년 한불조약이 체결됨으로 어느 정도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자, 당시 교구장 뮈텔 주교는 안변에서 전교하던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르 메르(Le Merre, 李類斯) 신부를 박해시대에 교우촌을 이룬 풍수원에 파견하여 본당을 창설(1888. 6. 20)하고 초대 본당신부(1888~1896)로 임명하였다. 르 메르 신부는 1889년에는 그가 순회한 30개 공소에서 성인 87명에게 세례를 주고, 이듬해에는 성인 73명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하였다.

 

풍수원 성당은 박해시대에 형성된 유서 깊은 교우촌에 지어진,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자 최초의 서양식 벽돌조 건물이다. 또한 국내에서 일곱 번째로 지어진 로마네스크양식의 성당이며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이다. 1888년 설립된 풍수원 본당의 기틀을 잡고 발전시켰던 2대 정규하 신부는 1905년 중국인들을 고용하여 2년 만인 1907년 그간 사용하던 20여 칸의 초가성당을 대신할 120평의 벽돌조 양식 성당을 신축하여 1910년 11월 뮈텔 주교의 주례로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고, ‘예수성심성당’을 본당 주보로 정하였다. 이어 1912년에는 성당 뒤편에 벽돌조 구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구 사제관은 원형이 잘 남아있는 벽돌조 사제관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현재는 유물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성당 건물은 1982년 12월 3일 강원도에 의해 지방 유형 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고, 성당보다 5년 늦은 1912년에 완공되어 현재 유물관으로 개조하여 사용하는 구 사제관은 2005년 4월 15일 등록 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1897년 경 정규하 신부가 지어 임시성당으로 쓰였던 초가집이 교회의 소유가 됨으로써 보존과 활용방안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본 연구는 건축된 지 112년이 되는 풍수원 성당을 중심으로 초기 한옥성당으로 쓰였던 초가집과 구 사제관의 건축양식적 특징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규명하고 나아가 보존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Ⅱ. 풍수원 성당의 입지와 배치

 

풍수원 성당이 위치한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부락은 인근 도덕고개를 경계로 경기도계와 강원도계가 나뉘지는 횡성군의 서단에 위치한다. 북으로 시루봉(504.1m)을 주봉(主峰)으로 하여 그 능선 하에 있으며 앞으로 지나는 냇물은 원주천으로 흘러들어가며 개울을 건너서 부락이 형성되어 있다.

 

원주에서는 북쪽으로 약 20km, 횡성에서는 서쪽으로 약 12km 에 위치하고 양평으로 가려면 10km를 남쪽으로 내려가야 된다. 6번 국도변에 위치한 자연부락이다. 조선시대에는 원주군에 속해있었으나 그 후 원성군으로 편입되었으며 현재 횡성군 서원면(書院面)에 행정구역으로 속해 있다.

 

 

 

성당의 당초 진입로는 개울을 건너는 현대식 다리가 있던 학교 근방이 아니고 현재 버스정류소 상단 정도에서 개울을 건널 수가 있었으며 여기에서 산등성이로부터 내려오는 개울의 둑을 따라 현재 수녀원 옆 돌계단으로 성당을 출입하였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현재의 진입로에서 보면 자연적 지세가 북에서 남으로 경사져 있으나 지형의 평면 상태는 동서로 길게 이어지면서 층계를 이루고 있으며, 본당이 있는 곳이 제일 넓은 평지이고 그 다음에는 언덕정상이 평탄하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14처 길이 설치되어 있고 신부들의 묘지들이 있다.

 

아래 언덕 하에 신자들의 자연부락이 형성되어 있으며 좌측으로는 민가 3채가 있었다. 이 민가는 성당이 들어서기 전 임시예배소였다고 한다. 오랫동안 성당과는 관계없는 개인 소유지였는데 이전하고 현재는 임시성당으로 쓰였던 한옥만 남아있다.

 

성당 뒤편으로 가면 성당 다음에 지은 사제관(현 전시관)이 위치하고, 성당마당보다 높은 뒷면에 약간의 마당과 사제관, 피정의 집 등이 있고 그 오른쪽 언덕 밑에 수녀원이 있다.

 

현 성당구역 뒤쪽으로는 목장과 몇 채의 민가가 있던 골짜기와 경사지를 따라 현재 ‘바이블 파크’(횡성 유현문화관광지 조성계획)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유물전시관1), 가마터, 원터 등이 조성되어 있다.

 

 

Ⅲ. 풍수원 성당의 건축적 특징


1. 성당


(1) 건축 개요

 

  

 

(2) 배치 및 평면

 

평면구성은 삼랑식으로 열주의 아케이드(arcade)와 천창에 의해 신랑(nave)과 측랑(aisle)의 구분이 내부에서 뚜렷하나 외부에서는 단층지붕으로 니타나지 않는다.

 

주 현관은 전면중앙에 돌출한 정방형 종탑 하부에 위치하며, 좌우 측변에 부출입구가 붙어있다. 부출입구는 원래는 전실(현관)이 없이 임시 출입문만 나있었으나 1998년 보수공사시 부가 되었다.

 

성당의 내부는 신랑(nave)과 좌우 측랑(aisle)으로 구성된 7개의 회중석 베이(bay, 間)와 작은 성단(sanctuary)베이 및 3각 돌출 앺스(apse)로 구성되었는데 성단의 좌우칸은 제의실로 쓰고 있다.

 

주 현관 쪽 좌측 벽을 따라 종탑에 오르는 직선계단이 있으며 2층 성가대석은 설치되지 않았다. 현관의 바닥은 화강석 판석을 깔았으며 성당 내부는 육송 장마루를 깔았는데 현재의 것은 1996년에 다시 깐 것이다.

 

제단은 회중석보다 한단 높은데 목조마루 위에 카페트를 깔았으며 앺스(apse)중앙 벽쪽에 바닥을 3단 높이고 그 위에 주 제대를 두었다. 현재는 감실제대와 더불어 제단 앞쪽 가운데에 주 제대를, 그리고 왼편에 강론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측랑 맨 끝 벽 좌측에 예수성심 소제대와 우측에 성모성심 소제대가 놓여있다.

 

(3) 입면

 

외관의 전체구성은 단순하나 창의 형태와 적색 및 회색벽돌의 사용, 처마의 내쌓기 등으로 단조로움을 피하면서 중후한 맛을 내고 있다. 외벽창의 형태는 세로가 긴 장방형인데 상부 돌출부가 회색벽돌의 결원아치(segmental arch)로 되어있으며 창 둘레는 모두 회색벽돌로 장식하였다.

 

정면 중앙의 종탑은 탑신, 종루, 첨탑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탑신부분은 다시 현관 포오치 부분과 2층 갤러리의 원화창 및 3층 2연 아치창으로 이루어진다. 종루는 2연 비늘창으로 되어있으며, 매 층마다 수평돌림띠를 둘러 입면을 분절하였다.

 

첨탑하부의 처마는 코오벨(corbel)식의 벽돌 내쌓기와 이형벽돌에 의한 쇠시리(moulding)장식이 이루어져 있다. 꼭대기 첨탑은 하부의 4각에서 8각으로 꺾인 알미늄 도머(dormer)창을 가진 8각 첨탑 ? 일명 broached spire - 으로 되어있는데 비교적 낮은 편이다.

 

외관의 구성에서 중요한 요소인 부축벽(buttress)은 매 칸마다 2.0B 돌출되어 있는데 2.1m 높이에서 1.0B로 줄어들며, 종탑부에는 하부의 3.0B에서 2.0B, 1.0B, 0.5B등 4단계로 줄어든다. 모두 회색벽돌이며 종탑과 전후면 모서리의 부축벽 꼭대기에는 피나클로 장식하였다. 모든 창의 둘레는 회색벽돌로 장식하였으며 상부와 하부는 돌출시켜 강조하였다.

 

지붕은 원래 골함석이었으나 1988년 보수공사 시 동판 거멀접기로 바뀌었다. 지붕에는 좌우 1개씩의 알미늄제 도머창이 원래부터 나있고, 배면에도 제단 상부 위치에 1개소의 도머창이 나 있다.

 

(4) 구조 및 단면

 

① 기초

 

원래의 지형에 따라 경사진 대지를 그대로 정지하고 약 1m 정도 파서 강회다짐 한 다음 그 위에 호박돌 강회찰쌓기 주초를 하고, 그 상부에 화강석 장대석마름돌(높이: 270mm - 180mm) X (길이 : 450mm - 950mm)을 놓았다. 외벽 바깥의 지반선은 거의 동일하나 건물내부에서는 그 깊이가 -21.5cm에서 -8.13cm 까지로 마루 바닥까지의 높이를 유지하고 있다.

 

내부열주의 독립기초는 강회로 잡석 찰쌓기를 하고, 그 위에 뚜께 30cm의 주초석(?600mm-800mm)을 놓고 그 상부에 7.5m-8.0m의 목재기둥(강송, 말구 ?270mm 이상)을 그렝이하여 세웠다.

 

마루장선 하부의 굄돌은 처음에는 목재동바리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지면까지의 깊이 40cm 이하에는 자연석으로 되어있으나(?450, 높이 250mm) 깊이가 그 이상인 곳은 콘크리트 동바리가 길이방향으로 4개씩 1.2m-1.5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1998년 마루널 교체 시에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제단 및 제구실 하부에는 목재 90mm x 120mm 크기의 마루 굄목을 볼 수 있다.

 

② 외벽

 

외벽은 적벽돌 및 회색벽돌 1.0B 영식 쌓기이며 강회몰탈의 평줄눈으로 조적하였다. 벽돌은 230mm X 110mm X 60mm 크기이다. 매 칸(bay) 마다 폭 1.5B, 두께 2.0B의 버팀벽(buttress)이 지지하고 있으며, 높이 2.1m 부근에서 두께가 1.0B로 줄어든다.

 

벽돌은 기본형 외에 아치, 처마장식, 창틀 등에 13종류의 이형벽돌을 사용하고 있다.

 

③ 기둥과 천장

 

내부 열주(좌우 6개씩 12개)는 말구 27cm, 길이 7m-7.5m정도의 8각형 단면의 육송 단일부재이며, 노출된 바닥에서 4.175m 까지는 벽돌 조적 모양의 페인트 도장을 하였으며, 천장과 만나는 부분에는 목재를 빗잘라 취부하여 주두모양의 받침을 둘렀다. 종방향 기둥과 기둥사이에는 아치받이 목재틀이 연속해 붙어있다.

 

천장에는 횡방향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 반원형 아치형태의 리브(신랑천장)와 완만한 결원아치형태의 리브(양 측랑)가 천장을 받치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모두 목재 위에 벽돌모양의 페인트를 칠하였다. 베렐 보울트 천장은 졸대(50mm X 24mm, @15mm)를 촘촘히 대고 회반죽을 발랐다.

 

④ 바닥

 

바닥은 마루이며 마루는 1998년 교체한 것이며, 제단에는 당초 폭 90mm, 두께 12mm의 참나무 후로링으로 깔려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교체 시 마루의 장선과 멍에도 교체하였다 하며, 목재 동바리도 교체되어 현재는 콘크리트 동바리가 받치고 있다. 현재 마루는 두께 60mm, 폭 120mm 의 육송판재가 깔려있다.

 

⑤ 지붕틀

 

내부 좌우 열주인 목조 고주가 6개씩 올라와서 경사 ‘人’자보를 지지하고 있으며, 고주와 고주 사이 중앙칸(신랑, nave)에는 만곡된 평보가, 고주와 측랑(aisle)의 외벽 사이에도 만곡된 퇴보가 걸려있다. 측랑의 퇴보는 외벽 상부에 벼개보를 만들어 설치하였으며, 중앙칸 평보 가운데에는 대공(왕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人’자보를 결구하였다. ‘人’자보 위에 70cm-80cm 간격으로 중도리를 가로 놓고 개판(18mm 두께의 판재)을 덮고 그 위에 동판 거멀접기로 마감하였다.

 

빗대공이나 사재가 전혀 없는 전형적인 트러스 구조는 아니지만 충실한 평보 잡이나 중도리 등 서구형 초기 트러스의 사례를 보여준다.

 

천장골조는 평보와 접속되지 않아 별개의 독립적인 구조임을 알 수 있다.

 

⑥ 종탑

 

사방 약 3.6m의 정방형 평면(벽 중심선 3.675m X 3.555m)에 높이는 15.13m이며, 첨탑의 정점까지는 21.53m에 달한다. 종탑의 벽체는 2.0B 영식 쌓기인데 돌출한 두 개의 모서리 부분을 단면 폭 2.0B, 두께 3.0B의 버팀벽(buttress)으로 보강하였다. 버팀벽은 플랫 버트레스(Flat buttress) 형으로 높이 3.75m 부근에서 두께가 2,0B로, 7.35m 부근에서 1.0B, 11m 부근에서 0.5B로 줄어들며 꼭데기에는 피나클 장식이 있다.

 

종탑의 첨탑은 목재틀로 되어 있으며 한 가운데 옥심주에다 옥심주에 기대어 첨탑 지붕의 구조를 형성하는 방사형 ‘人’자보로 구성되어 있다. 첨탑의 하부와 벽돌벽 상부에는 모접기가 얹혀있으며, 사각부분에는 귀잡이 보가 나와 있다.

 

맨 꼭데기 4층에 사다리꼴 형태의 목조종각이 놓여있고 종(swing bell)이 달려있다.

 

(5) 내부공간

 

정면 중앙 종탑 하부의 현관을 통해 성당의 내부에 들어서면 좌우 열주로 구분되는 신랑(nave)과 측랑(aisle)으로 이어진다. 신랑(nave)의 폭은 5.85m로 3.16m 폭의 측랑(aisle)의 1.85배인데 측랑의 각 베이(bay)는 반원형 리브 보울트(barrel rib vault)로 구성되어 있다. 경사지붕이 한 층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측랑의 천장 단면은 매우 얇은 결원아치(segmental arch)이며 각 리브는 목조로서 벽돌모양의 줄눈을 도장하여 조적리브처럼 보이게 했다.

 

국내의 모든 성당과 마찬가지로 풍수원성당의 천장구조도 조적조의 보올트가 아니고 목조 보올트이기 때문에 구조적 개념으로 볼 때 리브 보올트라기 보다는 각 베이마다 목조 횡단리브(rib)가 붙어있는 베렐보올트(barrel vault)라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내부열주는 8각 판재를 부친 목재 기둥인데 단면 40㎝로 높이(4.2m)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늘며 벽돌조적 기둥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역시 줄눈의 도장을 하였다. 기둥머리에는 2단의 받침주두를 놓아 종방향 보를 받고 있다. 주두 위의 보는 목조 평보모양으로서 역시 벽돌 줄눈도장이 되어있다.

 

성당상부와 측랑 상부에는 자연 목재로써 평보를 이루고 있으며 단면은 30㎝ 내외 이다. 내부 벽면은 단층으로 명동성당과 같은 트리포리움(triforium)이나 크리어스토리(clearstrory)의 구성은 없다.

 

아치의 경간에 대한 높이의 비가 49%(신랑), 19%(측랑)로 유사한 약현성당(1892)에 비하면 훨씬 낮아 수직 상승감이 약하다.

 

내부공간의 폭과 높이의 비는 신랑 1:1.2, 측랑 1:1.51, 각 네모칸(베이, bay)의 폭과 길이의 비는 신랑 2:1, 측랑 1.08:1로 이루어져 있으며 회중석 전체의 평면은 폭과 길이가 1:1.70으로 되어있다.

 

육중한 벽체와 종축방향성이 조합된 내부공간의 성격은 로마네스크의 “보호와 초월적 열망을 지닌 하늘에 이르는 문”2)이라 할 수 있다.

 

(6) 창호

 

창호는 모두 목재창호인데 문은 4개 유형, 창은 8개 유형이 있다. 즉 문은 쌍여닫이의 정면 주출입문(1.75m X 2.22m), 쌍여닫이의 좌우 측면 부출입문(1.41m X 2.43m), 제단에서 제의실 출입문(0.94m X 1.82m), 제의실에서 외부로의 출입문(0.94m X 1.87m) 등이며, 창문은 쌍여닫이 用자 형태의 일반 창(1.1m X 1.92m), 제단 측벽 외여닫이창(0.73m X 1.8m), 제단 앺스(apse)의 아치줄창(1.07m X 3.49m), 종탑 2층 원형창(?1.72m), 종탑 2층 여닫이 4각창(0.72m X 1.3m), 종탑 3층 여닫이 4각창(1.05m X 1.38m), 부출입구 고창 원형창(?0.83m), 종탑 4층 아치 루바창(0.75m X 2.42m) 등이다. 창에는 3mm두께의 투명유리가 끼워져 있다.

 

(7) 소결

 

풍수원 성당은 형태, 규모, 평면구성이 약현 성당(1892)과 거의 같다. 즉 삼랑식에 7개의 회중석 베이와 한 개의 성단 베이, 3각의 돌출 앱스, 그리고 정면 중앙 종탑 등 구성이 같고 규모도 거의 비슷하다. 다른 점은 종탑이 약현 성당의 경우 3층에 뾰족한 첨탑을 올렸는데 비해 풍수원 성당은 4층에 완만한 첨탑을 올린 점이며, 약현 성당의 경우 트러스 지붕틀 구성없이 뾰족한 목조 아치가 지붕도리를 바로 받치고 있는데 비해 풍수원 성당은 반원형 아치 위에 초기형 트러스(평보 위에 대공이 있고 빗대공이 없는)가 놓여 약현 성당이 보다 천장이 높고 고딕적인 공간형태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구조개념 뿐만 아니라 의장적인 측면에서도 약현 성당이 풍수원 성당 보다 고딕 양식에 가깝다. 따라서 약현 성당은 준 고딕양식, 풍수원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천주교 성당건축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2. 구 사제관(전시관)

 

(1) 건축 개요

 

풍수원 성당이 봉헌된(1910) 지 2년만인 1912년에 건축되었으며, 원래는 사제관이었으나 1997-1998년도의 수리공사 후 유물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2) 평면 및 공간구성

 

구 사제관은 성당이 위치한 레벨보다 약 2.5m 높은 좌측후면에 서남 서향으로 위치한다. 성당의 좌측으로 난 경사로를 10m 정도 오르면 두 갈래 길로 나뉘는데 왼쪽은 십자가의 길과 산책로에 연결되고 오른쪽은 구 사제관과 뒤편의 현 사제관, 식당 및 수녀원과 연결된다.

 

평면은 장방형으로 5.75m X 11.85m이며(바닥면적 68.14㎡), 각층 4개의 칸으로 되어 있는데 지하층은 우측 한 칸만으로 17.7㎡, 1층은 돌출현관을 포함하여 75.74㎡, 2층은 70.8㎡ 이다. (연면적 164.24㎡) 보일러실로 쓰고 있는 지하층은 우측면이 정면으로 출입문이 나있고, 앞뒤로 작은 창이 나있다. 외벽은 적벽돌 1.5B 쌓기이며, 바닥은 시멘트몰탈 마감, 벽은 적벽돌 치장쌓기로 되어 있고 천장은 합판 위에 수성도장이 되어 있다.

 

1층은 돌출된 현관을 통해 본채로 들어가면 1.945m 폭(벽 중심선 거리)의 복도가 가로놓여 있고, 왼쪽 끝에 목조 계단이 있으며 좌측으로부터 전시실1(온돌방), 가운데 홀(거실마루), 전시실2(온돌방), 그리고 전시실3(주방으로 추정)이 있다. 가운데 홀에는 뒤편 마당으로 출입문이 나있다. 2층은 가운데 큰 홀이 있고 좌측에 전시실 1(방), 우측에 전시실 2(서재로 추정)가 있다.

 

1997년 보수공사 후 유물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어 신축당시의 마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층의 전시실 1,2의 앞 마루 하부에 아궁이 공간이 있고, 뒷벽에 두 개의 굴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재래식 온돌설치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7년 유물전시관으로의 개조 및 보수공사 전 도면을 보면(무진건축 제공), 1층은 좌측 전시실 1은 파이프 온돌 위 주방설비가 되어 있었고, 홀은 파이프온돌의 방이었으며, 전시실 2는 파이프온돌의 방, 그리고 맨 우측 전시실 3은 목재 후로링 마루방이었다. 2층은 좌측 전시실 1은 파이프온돌의 방, 가운데 홀은 칸막이가 되어 파이프온돌의 거실과 파이프온돌의 방, 그리고 맨 우측의 전시실 2는 파이프 온돌의 서재였다.

 

파이프 온돌이나 현대식 주방설비 등으로 보아 이 또한 중간에 개보수된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는 확실히 나있지 않지만 신축당시의 원형을 추적하면 다음과 같다.

 

1층 출입문을 들어서면(처음엔 현관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 바닥은 흙다짐의 붕당으로 가운데 부엌이 있고 출입문 맞은편에 뒷마당 출입문이 있었다. 부엌의 좌측에 온돌방(식복사용)이 있고(현재 전시실1), 우측에 식당(현재 전시실2), 그리고 우측 끝방(현재 전시실 3)은 마루로서 사무실 또는 회의실로 쓰여 졌으며, 좌측 복도 끝은 마루를 오르고 2층 계단이 현재와 같이 있었을 것이다. 2층은 1997년 개조전과 같이 방, 거실, 방, 서재로 구성되어 신부의 침실과 손님방, 서재(신부집무실)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3) 입면

 

구 사제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이나 지하층 부분의 지면 레벨이 2.5m 정도 낮아 정면과 후면 및 우측면은 일부가 3층으로 보이고, 좌측면은 2층이다. 모두 적벽돌 영식 쌓기에 1층과 2층의 층 구분 위치에 돌출벽돌 수평띠가 둘러져 있으며, 지면과 만나는 부분에는 거친 다듬의 화강석 기초(폭 50cm)가 둘러져 있다.

 

각 칸(실)마다 전후로 쌍 여닫이 창이 나있는데 창의 상부에는 약간 돌출된 적벽돌 결원아치로 장식되고 창의 하부는 적벽돌 반장 정도로 돌출된 밑틀이 창의 폭보다 약간 길게 설치되어 있다. 1층의 창은 모두 쌍여닫이 그릴 덧창이 붙어있다. 벽 꼭데기 지붕 처마에는 2단의 벽돌내쌓기의 수평 띠 장식(코니스, cornice)이 둘러져 있다.

 

지붕은 우진각 형태이며 동판 거멀접기로 마감되어 있다. 지붕에는 환기용 도머창이 하나 설치되어 있고, 두 곳에 적벽돌 조적의 굴뚝이 솟아나 있다. 지붕 하단근처에는 눈 미끄러짐 방지 턱(수평 bar)이 사방 둘러 설치되어 있고, 전후면 양 끝에 선홈통이 설치되어 있다. 정면 출입구 현관은 적벽돌 벽에 박공지붕을 얹었으며, 전면 아치 개구부는 문 없이 개방되어 있다.

 

(4) 구조 및 단면

 

주 구조벽인 외벽 구조는 화강석 줄기초 위에 적벽돌 1.5B 쌓기이며, 내부 칸막이벽은 1.0B, 또는 0.5B쌓기이다.

 

지붕틀은 목재 평보 가운데 대공을 세우고 ‘人’자보를 건 왕대공 트러스이나 빗대공이 왕대공과 만나지 않고 평보의 1/3지점에서 결구되어 있다. 트러스는 2m 간격으로 설치되고 경간(5.75m)에 비해 부재가 다소 굵은 평보(?240), ‘人’자보(?180), 대공(?180)으로 구성되고 있다.

 

지하층 바닥은 시멘트 몰탈 마감이며, 1층 바닥은 목재 장선(60 X 115 @450) 위에 15mm 두께의 목재 후로링, 2층 바닥은 멍에(?210 @1,400)위에 장선(60 X 115 @450), 그리고 그 위에 30mm 두께의 목재 후로링을 깔았다. 1층의 전시실 1,2는 온돌 위에 장판지를 깔았다.

 

(5) 창호

 

창호는 모두 목재창호인데 문은 3개 유형, 창은 4개 유형이 있다. 즉 문은 쌍여닫이의 정면 주출입구와 배면출입문(1.2m x 2.42m), 지하 보일러실 출입문(1.09m x 1.89m), 실내 방출입문(0.9m x 2.16m)이며, 창문은 1층 외벽의 쌍여닫이창(내부:1.08m x 1.525m) / 목재 그릴쌍여닫이창(외부: 0.93m x 1.375m), 2층 외벽의 쌍여닫이창(내부:1.08m x 1.525m) / 목재 쌍여닫이창(외부: 0.93m x 1.375m), 지하 환기창(1.075m x 0.64m), 지붕 쌍여닫이 환기창(0.78m x 0.7m) 등이다.

 

외벽 쌍여닫이창은 2중창인데 내부창은 1,2층 모두 같으나 외부창은 1층은 5mm 두께의 투명유리 바깥에 목재 그릴창, 2층은 5mm 두께의 투명유리 ‘用’자살창이다. 실내 방문은 전시실 동선을 위해 문틀만 설치하고 문은 떼어놓은 상태이다.

 

창호는 모두 홍송으로 제작되어 있으며(1997년도 보수공사 시 제작 설치) 투명 오일 페인트로 도장되어 있다.

 

  

 

 

3. 초기성당(초가한옥)

 

본당이 설정되고 1897년 경 정규하신부가 지어 임시성당으로 쓰였던 초가집이 현재 지붕을 함석지붕으로 교체3)한 채 남아있다. 외관은 거의 다 갖추고 있으나 지붕은 이미 퇴락된 상태이며, 내부는 한동안 창고로 쓰여졌다. ㄱ 자 형태의 평면으로 앞에 축단이 있고 중앙에 마루칸이, 왼쪽에 정지와 내실이, 우측에 사랑방이 있는 전통적인 강원도 살림집 구조로 추정된다.

 

지붕물매는 일반 초가의 물매 3.0 보다 낮은 2.5 물매이며, 서까래의 구배가 마당과 평행하다. 서까래는 2중 서까래이며 그 2중 서까래는 평서까래의 상부에서 결구가 되며 숨은 고미반자가 생길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주초석은 막돌에 그렝이질로 마감한 것을 보아 기술이 낮은 구조는 아니며 의도적으로 창출한 특수구조임을 알 수 있다.

 

  

 

 

Ⅳ. 풍수원성당의 마스터플랜과 보존방안


1. 풍수원성당의 장기발전계획 검토

 

풍수원 성당의 교세는 크게 확장됐고 원주, 춘천, 양평, 횡성, 평창, 홍천 등 주위의 본당들은 모두 풍수원으로부터 분가되어 나온 것이다. 이처럼 강원 지역 전교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풍수원 성당에는 오랜 세월 성숙된 신앙의 유산을 배우고 묵상하고자 지금도 많은 신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풍수원 성당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성체 현양 대회가 매년 열리는데, 제1회 성체 대회가 1920년에 실시된 이래 6.25전쟁으로 빠진 3년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열려 왔다. 오랜 역사만큼 30여 명이 넘는 사제를 배출한 성소의 못자리로서도 풍수원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1969년 5월 교구 관할구역 조정으로 풍수원 본당은 춘천교구에서 원주교구 소속으로 이관되었고, 1980년대 들어와서 풍수원 성당을 교회 유적지로 개발하자는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그 결과 성당은 1982년 12월 3일 강원도에 의해 지방 유형 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고, 성당보다 5년 늦은 1912년에 완공되어 현재 유물관으로 개조하여 사용하는 구 사제관 또한 2005년 4월 15일 등록 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되었다.

 

풍수원 성당과 횡성군은 2000년부터 강원도 유형 문화재인 성당 일대에 유현 문화관광 단지(바이블 파크)를 조성하는 사업을 시작하였다.4) 성당 일대에 6만 8천 평 규모로 조성되는 바이블 파크에는 성지를 방문하는 신자들을 위한 피정 센터와 휴양촌, 지하 성당과 가마터를 복원한 역사마을이 들어서고 있다. 2013년에 유물전시관과 강론광장, 진입로 등 기반 조성 중심의 1단계 사업이 이뤄졌다. 2014년 봄부터는 신자들의 생계유지 수단이었던 가마터 및 원터 복원과 휴게실, 제대 등 공사가 마무리됐다. 유물 전시관은 천주교 관련 자료를 비롯해 일반적인 민속박물관보다 많은 자료들이 전시돼있다. 또한 초기 성당으로 쓰였던 한옥도 교회에서 매입하여 정비할 준비를 하고 있다.

 

 

Ⅴ. 결어

 

개항과 일제강점기 초기의 서양식 성당건축은 두 갈래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명동 성당, 계산동 성당, 전동 성당 등 대도시에 지어지고 규모가 큰 성당으로 비교적 서양 중세양식에 근접한 성당이고, 다른 하나는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 성당을 모델로 당시 우리의 기술적 · 경제적 환경에 나름대로 적응한, 따라서 서양 양식을 일부 변용한 소규모 성당인데, 도시 지방 할 것 없이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어 한국 서양식 성당건축의 대표성과 특성을 구성한다.

 

여기에 속하는 사례로 약현 성당(1892), 옛 인천 답동 성당(1897), 평양 관후리 성당(1900), 원효로 성당(1902), 미리내 성당(1907), 풍수원 성당(1907), 옛 진남포 성당(1908), 용소막 성당(1915), 낙산 성당(1923), 명동 일본인 성당(1928), 옛 왜관 성당(1928) 등이 있다.

 

당시의 성당건축은 대부분 코스트(Coste), 프와넬(Poisnel) 등 프랑스인 당가신부(경리담당 신부)들이 맡았는데, 풍수원 성당은 예수성심학교 출신 첫 사제로 서품된 정규하 신부가 지었다. 한국인 신부가 지은 첫 성당건축으로 역사적 의의가 깊다.

 

풍수원 성당은 형태, 규모, 평면구성이 약현 성당과 거의 같다. 구조개념 뿐만 아니라 의장적인 측면에서도 약현 성당이 풍수원 성당보다 고딕 양식에 가깝다. 따라서 풍수원 성당은 로마네스크양식의 천주교 성당건축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풍수원 성당 사제관은 천주교 선교사들의 현존하는 주거공간으로서 명동 성당 주교관(1890), 하우현 성당 사제관(1906)에 이어 3번째로 지어진 건물이다. 서양식 생활방식이 반영된 내부공간 구성 등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이처럼 교회사적인 가치와 건축사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풍수원 성당과 사제관은 문화재로 지정·등록된 이후 적절한 보수를 통해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교회와 지자체가 추진하고 있는 ‘유현 문화관광 단지(바이블 파크) 조성사업’으로 자칫 박해시대와 초기교회의 모습을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특히 천주교 유적지의 과도한 성지개발과 관광화로 인해 전국의 많은 천주교 유산이 훼손되어가는 상황에서 얼마 남지 않은 풍수원 교우촌의 흔적마저도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충분한 고증과 계획으로 유산의 보존과 개발이 조화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문화재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적으로의 승격에 대응하여 자체적으로 준비하여야 할 사항들을 점검하고 대비하여야 하겠다.

 

* 이 논문은 2019년 10월 4일 원주 가톨릭 센타에서 개최된 ‘풍수원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글로 토론자를 비롯한 참석자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보완하였다.

 

 

참고문헌

 

김정신, 《역사, 전례, 양식으로 본 한국의 교회건축》, 미세움출판사, 2012.

김창문, 정제선, 《한국 가톨릭 어제와 오늘》, 가톨릭코리아사, 1963.

강원도, 《강원도 지정문화재 실측조사보고서》, 동남종합건축사 사무소, 1999.

문화재청, 《근대문화유산 종교건축물 일체조사보고서》, 문화재청, 2009.

문화재청, 《횡성 풍수원 성당 구 사제관 기록화조사보고서》, 2011.

원주교구사 편찬위원회, 《원주교구 30년사》, 천주교 원주교구, 1996.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천주교 문화유산 관리지침》, 2009.

加藤常昭 外, 《敎會建築》, 日本 基督敎出版局, 1985.

前川道郞, 《コジツクと建築空間》, ナカニシヤ出版,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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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수범(베드로)씨가 수집하여 기증한 서민들이 사용하던 농기구, 항아리, 사제들이 사용하던 전례용구 등을 전시하는 반지하 1층의 유물전시관으로 2013년 문을 열었다.

 

2) 문화재청, 《횡성 풍수원성당 구 사제관 기록화조사보고서》, 문화재청, 2011, 57쪽.

 

3) 1970년도 지붕 개량사업으로 교체되었다고 함.

 

4) 문화재청, 《횡성 풍수원 성당 구 사제관 기록화조사보고서》, 문화재청, 2011, 180쪽.

 

[학술지 교회사학 vol 16, 2019년 12월(수원교회사연구소 발행), 김정신(단국대학교 건축학과 명예교수)]

 

원본 : http://www.casky.or.kr/html/sub3_01.html?pageNm=article&code=368708&Page=2&year=&issue=&searchType=&searchValue=&journa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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