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사적지 자료실

교구 성지명     지역명     내용 검색

원주교구 > 풍수원 성당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숨어 신앙을 유지한 산골에 세워진 강원도 첫 번째 성당
지번주소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1097 
도로주소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 30
전화번호 (033)342-0035
팩스번호 (033)343-5694
홈페이지 http://www.pungsuwon.org
문화정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성당),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3호(구 사제관)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풍수원 성당을 바라보는 일곱 개의 시선1: 풍수원 성당의 역사와 의미
이전글 풍수원 성당을 바라보는 일곱 개의 시선2: 풍수원 성당과 정규하 신부
다음글 신앙의 땅: 의정부교구 행주성당 - 성모 성당으로, 전대사 순례지 성당으로 승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11 조회수39 추천수0

[풍수원 성당 재발견] 풍수원 성당을 바라보는 일곱 개의 시선 (1)

 

 

원주교구 문화영성연구소에서는 지난 2019년 10월 4일 원주 가톨릭센터 마리아 홀에서 <풍수원 성당을 바라보는 일곱 개의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풍수원 성당 재발견 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 문화영성연구소에서는 모두 여덟 차례에 걸쳐 당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을 간추려 소개합니다. 풍수원 성당의 역사와 문화, 풍수원에서 살았던 사제의 삶과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속살을 살펴보며 오늘 우리 신앙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연재 순서>

 

1. 풍수원 성당의 역사와 의미

2. 풍수원 성당과 정규하 신부

3. 풍수원 성당의 공소

4. 풍수원 성당 교우들의 삶

5. 풍수원 성당의 성체현양대회

6. 풍수원 성당과 안나회

7. 풍수원 성당과 교육

8. 풍수원 성당의 건축

 

 

1. 풍수원 성당의 역사와 의미

 

“계곡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듯하다.” 1910년 11월 18일 새로 지은 풍수원 성당 축성식을 위해 그 전날 풍수원 성당에 도착한 뮈텔 주교(Mutel, 1854~1933)는 일기에서 풍수원 성당에 대한 첫인상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계곡에 홀로 우뚝 선 성당. 지금도 풍수원 성당을 방문하며 똑같은 느낌을 가지게 하는 이 우뚝 선 성당 건물은 단순히 깊은 산속에 큰 건물이 세워졌다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뜻을 품고 있다. 그것은 바로 깊은 계곡처럼 힘들고 어렵게 박해를 견디며 신앙생활을 이어온 신자들에게는 <신앙의 자유를 알리는 높다란 깃발>과 같은 것이었다.

 

풍수원에 처음 신자들이 정착한 정확한 시기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대체로 신태보(베드로, 복자)가 1802년 무렵 자신이 알고 지내던 교우 40여 명과 더불어 박해를 피해 용인을 떠나 ‘인적이 드문 강원도의 깊은 산골’로 이주한 것을 처음으로 여긴다(『신태보 옥중수기』, 흐름, 2016년. 73~74쪽 참조). 아쉽게도 당시 상황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이후 본격적으로 신자 공동체가 이루어진 것은 1866년 병인박해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모여들면서부터이다. 그리고 마침내 신앙의 자유가 이루어지자 숨어살던 교우들이 풍수원을 중심으로 모여들어 커다란 교우촌을 이루었고, 마침내 1888년 6월 20일 당시 교구장 블랑 주교(Blanc, 1844~1890)는 풍수원을 강원도 첫 본당으로 설정하며 안변에서 전교하던 르메르(Le Merre, 李類斯, 1858~1928) 신부를 풍수원에 파견하고 초대 주임신부로 임명하였다. 당시 풍수원 본당의 구역은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경기도 북부에 걸친 12개군에 걸쳐 있었고, 신자는 약 2,000여 명에 달하였다.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으나 여전히 박해 때에 숨어 살던 교우들은 자신들이 이룬 교우촌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르메르 신부 역시 33곳의 교우촌을 순회 방문하며 어떤 때는 한번 순회할 때에 1,645리를 걸으면서도 박해 당시 몰래 숨어 다니던 길을 떳떳하게 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였다. 곧 풍수원 성당은 신앙의 자유의 상징이 되어 박해 시기 동안 깊은 산속에 흩어져 살던 수많은 교우촌 교우들의 마음을 한 데로 모으는 구심점이 되었고 많은 신자들은 아예 풍수원 인근으로 다시 이주하여 작은 교우촌과 공소를 이루며 생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신앙의 구심점이 된 풍수원 성당은 동시에 인근 수많은 본당의 어머니, 뿌리가 되기도 하였다. 풍수원 본당의 초석을 놓은 르메르 신부는 1896년에 정규하 신부가 후임 신부로 풍수원에 정착하면서 원주 본당(지금의 원동 본당)의 초대 주임신부로 이동하였다. 그렇게 풍수원 본당으로부터 원동 본당이 설립된 이후 춘천의 죽림동, 홍천, 양문, 대화 등 수많은 본당들은 풍수원 성당의 공소에 속하여 있다가 본당을 이루어 나갔다.

 

오랜 세월 박해와 시련 속에 힘들고 지친 교우들을 모으고 위로하며 다독여주고, 또 새롭게 출발하는 본당들의 어머니, 뿌리가 되어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신앙의 샘터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오늘도 풍수원 성당은 원주교구 모든 본당의 어머니로, 모든 신앙인들의 고향이며 뿌리로 홀로 우뚝 서 있다.

 

[2020년 5월 10일 부활 제5주일 원주주보 들빛 3면, 원주교구 문화영성연구소]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Total 0 ]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