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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 풍수원 성당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숨어 신앙을 유지한 산골에 세워진 강원도 첫 번째 성당
지번주소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1097 
도로주소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 30
전화번호 (033)342-0035
팩스번호 (033)343-5694
홈페이지 http://www.pungsuwon.org
문화정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성당),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3호(구 사제관)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풍수원 성당을 바라보는 일곱 개의 시선2: 풍수원 성당과 정규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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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16 조회수46 추천수0

[풍수원 성당 재발견] 풍수원 성당을 바라보는 일곱 개의 시선 (2)

 

 

2. 풍수원 성당과 정규하 신부

 

1896년 4월 26일 서울 약현성당에서는 우리나라 땅에서 처음으로 사제 서품식이 거행되었다. 우리나라 첫 사제이신 김대건 신부님, 그리고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님의 뒤를 이어 우리나라 세 번째 사제로 서품된 분은 정규하(鄭圭夏, 아우구스티노, 1863-1943), 강도영(姜道永, 마르코, 1863-1929), 강성삼(姜聖參, 라우렌시오, 1866-1903) 신부 등 세분이다. 이 세분을 모두 함께 우리나라 세 번째 사제로 부른다. 서품 이후 강도영 신부는 미리내 본당으로, 강성삼 신부는 경남 밀양의 명례 본당으로, 그리고 정규하 신부는 강원도 횡성의 풍수원 본당으로 부임하였다. 정규하 신부는 처음에는 평창 하일로 발령을 받은 듯하나 여러 사정으로 당시 풍수원 본당의 주임 신부로 있던 르메르 신부의 뒤를 이어 풍수원 본당으로 두 번째 본당 주임 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1943년 세상을 떠나 성당 뒷산, 성주산(聖主山)에 묻힐 때까지 47년을 풍수원 한 본당에서만 사목하셨다. 풍수원 본당에서의 정규하 신부 사목 생활 47년은, 박해 직후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교회의 주초(柱礎)를 놓고 앞길을 준비하는 커다란 발자욱이었다.

 

정규하 신부는 1863년 충청남도 아산군 신창면(忠淸南道 牙山郡 新昌面)의 남방제 마을에서 정상묵(鄭商?, 마태오)과 한 마르타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적에는 인근 지방에 사군난(私窘難, 사사로운 박해)이 일어나 가족들 모두 여러 지역을 떠도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련 속에서도 “천주님의 품꾼이 되어 많은 영혼을 구휼하리라.”라는 꿈을 품고 1883년 신학교에 입학하여 마침내 1896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정규하 신부가 서품을 받고 풍수원에 부임하던 무렵, 조선 왕조는 몰락을 향해 치닫고 있었고 세상은 커다란 혼란과 가난에 휩싸여 있었다. 박해를 피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든 신자들에게, 그런 사회적 혼란은 더 혹독한 가난과 시련으로 닥쳐왔다. 옹기 장사와 화전으로 살아가던 신자들은 “대단히 비참한 생활을 하며”, “생존의 고통을 겪고 있고, 경작이 끝났어도 겨울을 나기 위한 식량을 겨우 마련할 정도”로 근근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정규하 신부는 특히 방인사제로서 신자들의 고통스러운 생활을 더 깊이 마음 아파하며 신자들과 지역사회에 신앙을 통한 위로와 희망을 건네주려고 온 힘을 다하였다. 한번 떠나면 한달이 넘게 걸리는 교우촌과 공소 순방을 통해 신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가난과 시름을 함께 아파하며 함께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며 위로와 희망을 건네 주었다.

 

본당에서는 신자들과 힘을 모아 박해를 이긴 승리의 기쁨을 상징하듯 우뚝 선 풍수원 성당을 지었고, 여성 신자들을 위해서는 더 깊은 기도와 더 깊은 봉사를 위한 성부안나회(聖婦安那會)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또 성체에 대한 신심을 고양하기 위해 1920년에는 성체현양대회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광동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특히 사제 양성을 위해 남다른 관심을 두어 정규하 신부가 사목하는 동안에만 6명이 사제품을 받기도 하였다.

 

풍수원 본당에서 50년 가까이 회장을 역임한 최상종(빈첸시오)은 정규하 신부님의 장례식에서 낭독한 <고별사>에서 ‘비바람, 추위 더위 무릅쓰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사목하셨으니 치료받은 양의 무리 그 감사한 마음을 어찌하리오’라며 정규하 신부의 생전 모습을 전하였다.

 

지금도 풍수원 성당 앞에는, 정규하 신부님이 심어 놓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널따란 팔을 펼쳐 그늘을 드리우고 신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말없이 든든하게 서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쉼과 위로, 희망을 건네주는 그 나무, 그 나무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구하는 일(事主救靈)’로 평생을 다 바친 정규하 신부를 닮은 듯하다.

 

[2020년 5월 17일 부활 제6주일 원주주보 들빛 3면, 원주교구 문화영성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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