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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 풍수원 성당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숨어 신앙을 유지한 산골에 세워진 강원도 첫 번째 성당
지번주소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1097 
도로주소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 30
전화번호 (033)342-0035
팩스번호 (033)343-5694
홈페이지 http://www.pungsuwon.org
문화정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성당),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3호(구 사제관)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풍수원 성당을 바라보는 일곱 개의 시선8: 풍수원 성당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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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30 조회수27 추천수0

[풍수원 성당 재발견] 풍수원 성당을 바라보는 일곱 개의 시선 (8)

 

 

8. 풍수원 성당의 건축

 

박해를 이겨낸 신앙인들의 드높은 깃발, 원주 · 춘천교구의 신앙의 깊은 뿌리인 풍수원 성당의 의미의 외적 표지는 단연코 풍수원 성당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성주산(聖主山)을 배경으로 삼고 느티나무를 앞세워, 기품있고 우아하게 자리 잡은 성당 건물은 친근하면서도 위엄있게 자신이 박해를 이겨 낸 깃발임을, 신앙의 뿌리임을 말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풍수원 성당을 설명하며 꾸며 넣는 ‘강원도 최초의 서양식 벽돌 건물’, ‘강원도 첫 번째 성당’,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지어진 서양 건축양식의 성당’, ‘지방유형문화재 제69호’와 같은 여러 가지 수식(修飾)들은 오히려 성당의 진면목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성당은 그 자체로 자신을 드러낸다.

 

1888년 풍수원이 분당으로 설정된 후 초대 본당신부인 르메르(1858~1928, Le Merre, 李類斯) 신부가 부임한 후 마련한 초가 소성당은 처음에는 번듯하였으나 1896년 정규하 신부가 부임할 때에는 이미 쇠락하여 무너지고 있었다. 정규하 신부는 신자들과 함께 다시 12칸의 성당을 마련하여 사용하면서 1906년부터는 새로운 성당을 지을 계획을 하였고 1907년에는 어려운 가운데 15,000냥의 돈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충분치 않아 다시 2년여를 더 준비한 끝에 드디어 1909년 성당의 건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새로 짓는 성당의 모습은 두세(Doucet. 1853~1917) 신부가 지은 약현성당을 참조하였는데, 이 약현성당은 무엇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었고, 더군다나 13년 전 정규하 신부가 서품을 받은 성당이기도 하였다, 그런 이유 외에도 당시 지어진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거대한 명동성당보다는 혼합적 양식에 규모가 작은 약현성당이 훨씬 참고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성당의 모습은 약현성당을 참고하였다면, 성당을 실제 짓는 일은 명동성당을 지을 때 일을 한 중국인 벽돌 기술자 진(陣)베드로의 도움을 받았다. 즉 성당의 규모와 모습은 풍수원의 상황에 걸맞으면서도 명동성당처럼 아름답고 튼튼한 성당을 짓고자 하였던 것이다.

 

정규하 신부는 처음에는 성당 크기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소박하게 지으려 했던 것 같다. 즉 편지에서는 성당의 넓이는 30칸 정도, 높이는 5m 정도 될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지어진 성당은 그보다는 커서 지붕 높이는 8.8m, 종탑 높이는 21.8m, 넓이는 299.62㎡(90.6평, 약 50칸)이다.

 

성당의 전체적인 모습은 단순한 듯 하면서도 꼼꼼히 살펴보면 세심한 장식으로 채워져 있다. 외관은 붉은색과 회색 벽돌을 적절하게 섞어 사용하여 단조로움을 피하였다. 본래 회색 벽돌은 좀 더 푸른색에 가깝게 만들고자 하였으나 염료 사정 등으로 회색에 더 가까워진 듯하다. 출입문과 외벽의 창 윗부분에는 회색벽돌로 눈썹 모양의 돌출부를 두어 장식하였고, 지붕의 처마 하단에는 수평 띠 장식을 두어 멋을 더하였다. 종탑의 경우 탑신에는 아치형의 출입구를 두었고, 2층에는 원화창, 3층은 아치창, 4층은 비늘창을 두어 단조로움을 피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외관을 연출하였다. 좌우측에 설치된 옆문에는 본래 현관은 없이 문만 있었으나 이후에 보사 공사를 하며 덧붙여 지은 것이다.

 

성당의 내부는 높게 늘어선 나무 기둥을 통해 길게 세 구역으로(신랑[身廊]과 측랑[側廊]) 나누어져 있는데, 나무 기둥에는 줄눈을 그려 넣어 마치 벽돌로 쌓은 기둥처럼 보이도록 하였다. 성당의 전면 중앙에는 제단을 중심으로 3각형의 제단 후진(後陣)을 누었고, 그 중앙에는 천정서부터 길게 성체등을 매어 달아 장엄한 분위기를 더하였다.

 

성당의 건축에는 본당과 공소의 모든 신자가 참여하였다. 본당의 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먼 곳에 사는 공소의 신자들도 작업에 참여할 순서가 되면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서 산을 넘어와 나무를 자르거나 벽돌을 굽는 작업에 참여하였다. 정규하 신부도 직접 팔을 걷고 일을 하였는데 특히 성당의 아래쪽 돌을 뚫어 만든 통풍구는 정규하 신부가 직접 작업한 것이라고 전한다.

 

사제와 신자들의 합심과 정성, 그리고 기도와 노력 속에 마침내 1910년 2월경 성당의 공사는 마무리되었고, 성당의 축성식은 1910년 11월 9일 아침 8시, 뮈텔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날씨는 화창하고 따뜻하였으며 축성식에 참여한 450여 명의 신자들이 성당을 가득 메웠고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밖에서 기도를 바쳤다. 성당은 예수 성심께 봉헌되었다. 풍수원 성당은 어렵게 박해를 견디며 신앙생활을 이어온 신자들에게 “계곡에 홀로 우뚝 서서” 신앙의 자유를 알리는 깃발, 하느님의 은총이 흘러 넘치는 감격스럽고 가슴 벅찬 신앙의 터전이 되었다. 그 성당에서는 여전히 풍성한 은총의 물이 샘솟아 우리의 영혼을 적시고 삶을 위로해 주고 있다.

 

[2020년 6월 28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원주주보 들빛 3면, 원주교구 문화영성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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