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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 행주 성당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1899년 행주 포구에서 시작된 신앙 공동체의 여정
지번주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194 
도로주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산성로144번길 50
전화번호 (031)974-1728
팩스번호 (031)972-8537
홈페이지 http://cafe.daum.net/haengjucatholic
문화정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55호
성지와 사적지 게시판
제목 신앙의 땅: 의정부교구 행주성당 - 성모 성당으로, 전대사 순례지 성당으로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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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03 조회수272 추천수0

[신앙의 땅] 의정부교구 행주성당


성모 성당으로, 전대사 순례지 성당으로 승인

 

 

명동성당, 약현성당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건축된(개성 송악성당은 북한에 소재해서 제외) 110년 신앙전통의 행주성당을 깊은 경외심과 설렘을 갖고 방문하였다. 고양시 행주대교 북단 행주나루터 까페촌 입구, 언덕정상에 새로이 조성된 성모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1909년에 부임한 초대 김원영 아오스딩 신부가 ‘성모몽소승천’ 성당을 파티마 성모님을 제대 정면에 모신 성모당 형태의 한옥으로 신축하였다. (이 한옥 성당은 2010년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45년 8월15일 성모승천 첨례를 마친 신자들은 성당 마당에서 무장해제를 거부하다 미군전투기에 격추되어 행주 벌판에 추락하는 일본기를 바라보며 해방의 감격을 맞는다. 2016년 행주성당은 로마 성모대성당과 영적 유대 및 전대사 순례지 성당으로 교황청 승인을 받았고 루르드 동굴을 재현한 성모당이 건립 축성되었다.

 

옷깃처럼 한강물 띠를 이뤄 서남해로 흘러들고 용깃발과 잉어깃발 수백편의 황포돛대 오가던 행주는 성 김대건 신부님께서 지나시던 신앙의 뱃길이었다. 이 한강 변은 포졸출신 임치백 요셉, 밤섬일대 김효주·효임 자매 성인의 생활 터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거듭된 박해, 특히 한강변에 집중된 병인박해로 행주 교우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1890년대부터 다시 교우촌이 형성되자 당시 부주교였던 정 가밀로 두세 신부는 행주를 당신의 미래 사목지로 여기며 기뻐하였다. 두세 신부에 의해 1899년 행주공소와 성당학교가 설립되었다. 이어 1909년 김원영 아오스딩 신부님이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행주는 정식 본당이 되었다. 이 시기에 행주성당은 지금의 고양, 양천, 부평, 파주, 은평 신사동, 양주 신암리, 인천 소래의 논현동, 김포 통진까지 사목구로 관리하였다.

 

 

1910년 8월17일 뮤텔 주교 주례로 축성

 

본당 설립 후 초대 김원영 아오스딩(1909~17년), 2대 김휘중 요셉(1917~18년), 제3대 황정수 요셉(1919~23년), 4대 이순성 안드레아(1923~26년), 5대 박우철 바오로(1926~32년), 제6대 윤의병 바오로 (1932~35년), 제7대 이종순 요셉(1935년 1~3월), 제8대 김유용 필립보(1936~42년), 제9대 이철연 프란치스코(1942년 1~5월), 제10대 김성환 빅토리노(1948~50년), 제11대 임충신 마티아(1953~57년) 신부가 본당신부로 행주에서 봉직하였다.

 

이 신부님들 중 몇 분들만 소개하면 학식과 외국어에 탁월하였고 민족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가진 김원영 아오스딩 신부는 경향잡지의 창간의 실무자이다. 행주 부임 후 토요일이면 나막신에 지팡이를 짚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내일이 주일이요. 성당 꼭 나오시오”라고 항상 알리고 다닐 만큼 열심히 전교하였다. 신자들과 같이 피죽을 먹으며 성당 신축을 위해 동분서주했고 마침내 20평짜리 한옥 성당을 신축하여 1910년 8월17일 뮈델 주교 주례로 축성식을 갖는다. 김 신부는 “영혼에 좋은 약은 진시황의 불사약보다 억천 배나 유익하여 불사불멸할 것”이라고 결론 지은 ‘수신영약(修身靈藥)’ 등 많은 책과 수많은 편지를 남겼다.

 

김원영 아오스딩 신부가 뮈텔 주교에게 보낸 불어편지 하나를 보자.

 

“존경하올 주교님, … 행주의 훌륭한 류[승로] 가밀로 회장이 [1916년] 9월28일에 선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몹시 가슴 아픕니다. 그의 공적, 현명, 겸손 등은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었고 또 제게는 매우 유익했었는데, 이제는 사라졌습니다. 그는 여기서 부주교[정 가밀로 두세(Doucet) 신부]로부터 회장으로 임명되어 언제나 그의 직무에 충실했습니다. 정 가밀로 두세(Doucet) 신부는 그를 많이 칭찬했습니다. 어지신 하느님께서 제게 그런 회장을 보내주셨을까요?”

 

2대 김휘중 요셉 신부는 한강변에 도열한 신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부임한 첫 임지 행주성당에서 1년 만에 스페인독감으로 순직하였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행주 덕양산에 일단 안장된 김 신부님의 유해는 1년 뒤 전 교구의 행사로 용산 삼호정묘지로 천묘한다. 이때 상여를 멘 행주교우들이 발을 뗄 때마다 눈물도 떨어졌다고 한다. 김 신부 사후 행주 교우들은 미사나 참례 뒤에 반드시 연도를 바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이순성 안드레아, 윤의병 바오로 신부는 황해도에서 사목 중 공산당에게 끌려가 순교하셔서 현재 근현대순교자 시복을 앞두고 있다. 특히 윤 신부는 ‘알려지지 않은 순교의 꽃’이라는 의미를 지닌 ‘은화’의 저자이다.

 

중국 공산화과정에서 만주 연길교구에서 탈출한 김성환 빅토리오 신부는 행주에 부임, 성당을 증축하고 베네딕도회 서인화(베르나데따), 이신숙(미리암), 이갑진(에화) 수녀들과 무료시약소 운영, 구역장제 도입 등 적극적 포교활동 중 다시 북한 인민군의 6.25 남침으로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두봉 주교가 13년간 사목하며 사랑으로 신자 보살펴

 

공소시절 전 안동교구장이셨던 두봉 주교님이 1991년부터 2004년까지 13년간 행주성당에서 사목하시면서 성당을 보수하고 사랑으로 신자들과 함께하셨다.

 

- 금경축에서 축하 꽃다발을 받고 있는 두봉 주교.

 

 

2003년 9월1일 행주성당에서는 13년째 행주성당에서 사목하시는 두봉 주교를 위해 행주 교우들이 두봉 주교(파리외방전교회)의 금경축 축하행사를 마련했는데, 이 자리에는 최창무 대주교와 황인국 몬시뇰을 비롯해 수도자, 신자 등 300여명이 참석해 선교사와 교구장으로서 한국교회를 위해 헌신한 두봉 주교의 사제생활 50년을 축하하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행주성당의 긴 공소시절이 2004년 끝난다. 의정부교구가 창설되면서 행주는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어 제12대 홍승권 대건 안드레아(2004~12년), 13대 장경원 세례자 요한(2012~15년) 신부님이 본당신부를 역임하였고 현재 14대 추교윤 시몬 신부님이 재임 중이다.

 

행주출신 성직자로는 류봉구 아오스딩, 류병일 이냐시오, 이용유 베네딕도, 이기양 요셉 신부님과 류병순, 박문옥, 이은주, 류성엽 수녀 등이 있다. 또한 황민성 베드로 주교, 장강택 필립보 신부님, 박병례·병숙 자매 수녀는 행주 출생이다.

 

도시화에 밀려 점차 쇠락해가는 행주내동, 한때 신앙의 거점이었던 행주성당에는 신앙의 후손들이 선대를 이어 신앙의 뿌리를 지키며 살고 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5월호, 김현채 바오로(의정부 R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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